第 4 章 난세를 쥐고 있는 두 개의 手
스스스...... 스.......
시리도록 차가운 월광은 소복이 쌓인 눈 위에 떨어져 신비롭도록 영롱한 빛을 발한다.
하얀 눈[雪]과, 아름다운 밤[夜]과,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눈[目].......
화노의 두 눈은 걸음을 옮김에 따라 차갑게 얼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터벅...... 터...... 벅.......
그는 가산을 돌아 죽림을 가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할아범, 춥다. 빨리 가자...... 응?”
혁리혼은 화노의 구부정한 등 위에 업힌 채 몸을 움츠리며 졸린 소리로 자꾸만 보챘다.
“쿠큿...... 빨리 가려 해도 벌레가 많아서 말입죠.......”
벌레......?
화노는 이상하게 웃었다.
‘무서운 수법이다!’
그는 지금 시체를 보고 있었다.
한 구가 아닌 무려 수십 구의 시체.......
시체는 죽림 사이사이에 교묘하게 숨겨진 채 월광을 받아 소름 끼치도록 귀기(鬼氣)스럽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미간에 정확히 일검을...... 맞고 죽었다. 가공할 고도의 살수 수법이다.’
터벅...... 터벅.......
고요한 정적을 깨며 화노의 걸음은 괴이롭도록 섬뜩한 느낌을 준다.
돌연 화노의 안색이 홱 변한 채 추악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흔들.......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채 흔들거리고 있는 시체.......
화노의 시선은 시체의 가슴에 박힌 채 격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마(魔)>
시체의 가슴에는 핏빛으로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마교......!’
씰룩.......
화노의 추악한 얼굴이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놈들이...... 어떻게 이곳에서 시체로......?’
일순 화노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를 향한 말인가?
그의 물음이 끝나는 순간이다.
“와핫핫핫...... 암중의 본인을 느낄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인물은 천하에 몇 손가락 꼽을 정도로 존재하거늘...... 과연 사교대존황(邪敎大尊皇)의 능력이외다.”
광대한 대소와 함께 흡사 안개가 모여지듯 하나의 인영이 월광 아래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스스.......
헌데.......
사교대존황―!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과거 백년 이래 가장 강했고, 가장 극악했던 사(邪)의 황제.
사교대존황 갈극척!
삼십 년 전 무림에서 돌연 의문의 실종으로 사라진.......
나타난 인물은 바로 그를 말하고 있음인가?
화노의 안색이 격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누구이기에...... 나를 알고 있다. 이미 삼십 년 동안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은 나를!’
화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이른 곳.
청의유생(靑衣儒生).
일신에는 하늘을 닮은 파란 청의를 걸쳤고, 한 손에는 묵광(墨光)을 발하는 섭선을 가볍게 말아쥐고 있는 인물.
뭉클.......
전신에서는 현기(玄氣)와 신기(神氣)가 형용불가해한 신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약한 유생의 모습 가운데 차갑고 절대신비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사내.
매천자 타하륵!
거대한 폭풍을 몰고 중원으로 들어온 묘강의 사내, 바로 그였다.
‘범상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
화노는 의문 속에 사라졌던 사도대종사(邪道大宗師) 사교대존황 갈극척이다.
백년 이래 사(邪)의 제황이자 사도최강의 인물.
그는 청의서생 타하륵을 대하는 순간 유(柔)함 속에 숨어 있는 너무도 가공한 힘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자만이 느끼는 직감이랄까?
“그대는......?”
화노, 사교대존황 갈극척의 안색이 굳어졌다.
순간 타하륵은 품위 있는 몸가짐으로 갈극척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보였다.
“껄껄껄...... 무림에 얼굴을 내밀기에는 낯뜨거운 존재지요.”
“......!”
“다만 존황과 거래를 하고 싶어하는 잡상인(雜商人) 매천자(買天子)에 불과하외다.”
매천자.
하늘을 사고 파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갈극척의 두 눈에서 차디찬 한광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광망하군.”
“으하핫핫...... 광망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 원래 대중원의 아홉 개 하늘과 열 개의 대륙의 주인은 본인이니까.”
“......!”
― 아홉 개의 하늘과 열 개의 대륙의 주인!
너무도 엄청난 말!
갈극척의 추악한 얼굴에 묘한 일그러짐이 일었다.
‘무림에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아아...... 강유(强柔)를 겸비한 너무도 패도굴강한 인물이다. 너무도 신비한......!’
영감(靈感).
강자에게는 강자를 볼 줄 아는 특이한 영감이 있다.
갈극척은 지금 전신으로 엄습해 드는 그런 기질을 타하륵에게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매천자 타하륵은 고졸(古拙)한 미소를 물었다.
“다만...... 그것을 살 만한 인물이 하늘 아래 없기에 본인은 아직 잡상인에 불과할 뿐이오.”
“허허헛...... 그렇다면 직업을 잘못 택했군, 그대는!”
“......!”
“그 구천(九天)과 십지(十地)를 살 수 있는 인물은 앞으로도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그대는 잡상인으로서 끝날 수밖에.”
순간 타하륵의 두 눈에서 유성을 닮은 현기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니! 본인의 잡상인 행각은 오늘로써 종식되었소.”
“......?”
파다다다닥―!
타하륵의 옷자락이 바람 한점 없는데 미친 듯이 펄럭였다.
격동.
그렇다.
타하륵의 전신에서는 폭풍 같은 격동이 추스를 수 없으리만치 짓터져 나오고 있었다.
스― 윽!
그는 격동에 의해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갈극척의 등에 업혀 있는 혁리혼을 가리켰다.
“바로 저 아이로 하여!”
부르르......!
타하륵의 혁리혼을 가리키는 손끝은 점차 격동을 일으키며 전율을 일으켰다.
“나의 눈이 틀리지 않는다면 천하에 나의 구천십지(九天十地)를 살 수 있고, 또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은 오직 그뿐이외다!”
― 아홉 개의 하늘과 열 개의 대륙을 포용할 인물!
그는 지금 이제 칠 세에 불과한 혁리혼을 향해 그렇듯 엄청난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순간 갈극척의 안색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버렸다.
그의 구부정한 꼽추의 몸이 월광 아래에서 눈에 띄게 진동을 일으킨 것도 그 순간이다.
‘설마 이자가......? 아니다. 소공야가 장차 칠절성좌류(七絶星座流)의 기운을 지닐 것이라는 것을 아는 인물은 오직 나뿐이다.’
칠절성좌류―!
‘칠절성좌류를 타고난 인물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이 갖는 특이한 영명(靈命) 때문이다. 허나 대군과 화후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다. 소공야의 부모이신 그분들은.......’
갈극척의 눈빛이 미미한 떨림을 일으켰다.
‘죽음 직전 소공야의 그 가공할 신체를 오직 나에게만 일러주지 않았던가. 때문에 하늘 아래 소공야의 신체를 알고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더욱이 타인이 그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칠절성좌류의 기운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십오 세가 되는 해에 비로소 하늘로부터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녕 불가사의한 일이 아닌가?
무릇 하늘의 기운이라 함은 한 인간이 탄생함과 동시에 천부(天賦)되는 것이다.
헌데 태어난 후 십오 세에 이르러 천부받다니.......
― 칠절성좌류(七絶星座流)!
도대체 그것이 어떠한 불가사의의 기운이기에?
갈극척의 구부정한 꼽추의 단구(短軀)가 감지할 수 없는 기운을 뿜어냈다.
‘설마 이자가......! 만일 그렇다면...... 죽이리라! 향후 무림대계를 위하여!’
순간이었다.
타하륵의 입에서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 존황께서는 본인을 죽여 천기의 누설을 막으려 하오이까?”
무서운 심안이다.
그는 갈극척의 내심을 무섭도록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갈극척은 순간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 버리고 말았다.
‘생각 이상의 무서운 자다!’
갈극척의 음울한 두 눈에서 순간 뼈를 부수고 살을 바르는 극악극사(極惡極邪)의 녹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때에 따라서는 죽여야 되겠지.”
매천자의 차가운 냉혹의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입에 고졸한 미소가 스쳤다.
“믿지 않을지 모르나 천하의 그 무엇이라도 본인의 목을 거둘 수는 없소, 사교대존황!”
“......!”
“본인의 머릿속에 든 사만 팔천(四萬八千) 가지의 모계지략(謀計智略)과 십만 종(十萬種)의 마사요공(魔邪妖功), 그리고 십팔만(十八萬) 가지의 정도무류(正道武流)와 잡학(雜學), 도합 삼십이만 팔천(三十二萬八千) 가지 중 단 한 가지만으로도 그 어떤 형태로의 죽음도 거부할 수 있는 나외다!”
“......!”
도대체 이것이 인간의 머릿속에 기억될 수 있는 양인가?
무릇 인간의 두뇌에는 보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녕 인간의 상상을 아예 초월한 엄청 가공한 일이 아닌가?
도합 삼십이만 팔천 천기(千技)!
한 인간의 뇌리 속에 이렇듯 엄청난 것이 들어 있음을 뉘라서 대저 믿을 수 있는가?
불신과 경악!
갈극척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이미 백년 동안 사도최강의 자리를 고수해 왔던 나다! 그리고 그 와중에는 최강이라 자처했던 수많은 인물들과 죽음을 놓고 격돌했었다. 그 수많은 경험 속에서도 나는 이와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갈극척의 생각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자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무형의 기운으로 물론 그가 무서운 미증유의 능력을 몸 깊숙이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가공할 능력을 인간으로서...... 말도 안 된다!’
흡사 그의 그런 심중을 꿰뚫어 보듯 매천자 타하륵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믿지 못하겠소이까, 존황?”
동시에 그의 신형이 슈욱! 하고 허공 이십여 장 위로 솟구쳐 올랐다.
슈슈슈슈...... 슈슛.......
느닷없는 행동.
이십여 장 허공 위를 밟고 섰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파쓰쓰쓰...... 쓰.......
쉬― 익―!
타하륵의 양손이 허공에 가득 수영(手影)을 그렸다.
어림잡아 수백여 개의 손그림자.
찰나 심장을 짓잡아뜯는 마소를 터뜨리며 타하륵은 그대로 양손을 밀어냈다.
“크하하핫...... 첫 장사의 예물치고는 너무 많군!”
예물......?
순간이었다.
쩌르르르릉―!
카아아아― 앗!
보라!
그의 양손에 의해 그려지는 수백 개의 손그림자가 각각 서로 다른 엄청난 기운을 폭출시키는 것이 아닌가?
적(赤), 청(靑), 흑(黑), 백(白), 자(紫), 녹(綠).......
뻗어 나가는 기운은 각기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수백 개의 손그림자...... 수백 가지의 빛.......
그것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갈극척의 구부정한 몸이 일순 터질 듯 극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벽황무절마광지(碧煌無絶魔狂指)! 마라혈극무영수(魔羅血克無影手)! 사극대황마뢰척(邪極大皇魔雷斥)......!”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사실!
이미 수천 년 전 무림에서 사라져 버린 패도극기(覇道極技).
한 가지도 아닌 정확히 칠백팔십구(七百八十九) 가지가 죽음을 부르며 쏟아지고 있었다.
대저 뉘라서 상상이나 하랴.
한 인간의 몸에서 이렇듯 엄청난 죽음의 초식들이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을......!
순간이다.
츠왓! 꽈르르르릉―!
우지끈! 파아아...... 아.......
“피...... 피하라!”
“저...... 저자는 악마다! 느...... 늦었다!”
“크아아아아악! 켁―!”
“이런 가공할 인간이...... 커― 헉!”
“본 마교의 마황제일존과 비견할...... 흐으으아악!”
박살!
방원 오십여 장 이내에 있는 물체는 모조리 가루로 화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걸레 조각처럼 찢어발겨져 날아가는 사람들의 몸뚱이와 함께.......
왈칵―!
한순간 죽림 속은 진저리쳐지는 죽음의 피비린내로 뒤덮이고 말았다.
‘아아...... 너무도 가공한 일이다!’
그는 죽림 속에 숨어 있었던 수백 명의 마교 인물들에 놀라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역시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이것이 말이나 되는 것인가! 한 번의 움직임에 칠백팔십구 가지의 가공할 무공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다니......!’
스― 슷!
매천자 타하륵.
이 불가사의한 인물은 원래의 위치에 조용히 신형을 내리며 갈극척을 응시했다.
“존황과 첫 거래를 위한 예물로써 흡족하신지......? 쿠쿠쿠...... 쿳...... 쿳.......”
섬뜩한 웃음이다.
허나 그의 언행.
비록 차게 웃고 있으나 교만함은 없다.
“존황, 만약 이와 같은 무공이 본인의 머릿속에 든 것 중 최하류의 것이라면...... 그리고 삼십이만 팔천기(三十二萬八千技)를 한 사람이 극성까지 모조리 터득한다면.......”
‘무적!’
갈극척은 내심 그렇게 외침을 터뜨렸다.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닌가?
타하륵의 유약한 몸에서 일순 칼끝 같은 예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단언하건대, 그는 영원히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존좌를 가질 것이외다!”
너무도 엄청난 말.
엷은 예기가 안개처럼 타하륵의 전신을 휘감고 돌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가공할 패도광망의 기운이 되었다.
“허나 본인의 모든 절기를 극성까지 익힐 수 있는 인물은 오직 칠절성좌류의 기운을 장차 지닐 인물뿐이오!”
“......!”
“본인은 이제 나의 뇌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존황, 바로 당신의 어린 소공야에게 주겠소.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신의 능력을 부여받은 저 소동에게!”
― 모든 것을 주겠다!
이거야말로 무림사 수천년을 뒤집어도 없었던 엄청난 대기연(大奇緣)이 아니겠는가?
그 누구도 얻은 적이 없는......!
폭풍!
묘강으로부터 불어온 한 가닥 폭풍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숙명처럼.......
“그 대신 존황, 당신의 소공야가 향후 십년 뒤 독존(獨尊)의 자리에 오른 뒤.......”
“......!”
“그는 본인, 아니 우리에게 다섯 개의 대륙을 주어야 하오. 이것이 바로 오늘 본인이 존황과 당신의 소공야에게 거래하고자 하는 장사외다!”
― 다섯 개의 대륙!
그것은 곧 천하의 절반을 이름이 아닌가?
이 무슨 황당하고도 엄청난 장사란 말인가!
매천자 타하륵.
시간이 흐를수록 무한한 신비를 뿜어내고 있는 그.
“만약 소공야가 독존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면?”
“후후훗...... 본인은 절대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소.”
그는...... 확신하고 있는가?
갈극척은 순간 전신에서 음사한 기운을 흘려냈다.
숨통을 짓끊는 죽음의 기운!
그는 이미 과거의 천향화루주 화노가 아니다.
“그대의 능력으로도 천하의 절반을 얻기란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간단한 것일 텐데?”
그렇다.
매천자 타하륵, 그의 머릿속에 담긴 가공할 삼십이만 팔천 기예.
그것이면 충분히 천하를 도륙하고도 남을 엄청난 것이 아니겠는가?
갈극척은 너무도 광망하고 엄청난 타하륵의 말속에 담겨 있는 어폐(語弊)를 떠올리며 냉소를 떠올렸다.
“쿠쿠큿...... 설마 그대는 소공야를 이용하여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크큿.......”
‘......!’
타하륵의 눈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눈이 괴이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은 감내할 수 없는 고통과 같은 것이다.
“존황께서는 구절치황맥(九絶輜璜脈)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소이까?”
“......!”
갈극척의 추악한 얼굴이 크게 변했다.
‘구절치황맥...... 매천자, 이자가......!’
― 구절치황맥!
하늘조차 오시할 무서운 두뇌력을 타고난다는 전설 속의 천맥.
지략과 모사...... 지혜에 관한 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구절치황맥 위에 존재할 수 없다.
허나 그 가공할 천맥을 타고난 인물은 천부적인 지혜로 어떠한 난해의 무공도 순식간에 터득해 버리나, 칠성(七成) 이상을 펼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그...... 그랬던가?’
갈극척은 미묘하게 흔들리는 시선으로 타하륵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는 물었다.
“헌데...... 다섯 개의 대륙을 그대는 우리에게 달라고 했는가?”
우리!
그랬었다.
매천자 타하륵은 분명 자신이 아닌 우리에게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소. 이미 삼천 년 동안 인간의 모멸과 치욕을 감수하며 어둠 속에서 숨죽여 살아와야 했던 우리.......”
삼천 년!
너무도 엄청난 억겁의 세월.......
매천자 타하륵은 문득 하늘을 본다.
칠흑 같은 어둠.......
신비롭도록 영롱한 별무리.......
그리고 어둠을 깨치며 날아가는 전율할 잔소(殘笑)...... 잔인한 웃음소리!
“크크큿...... 큿.......”
그것은 타하륵 자신의 혼과 심장을 찢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증오와도 같은 외침이었다.
혁리혼.
그는 갈극척의 구부정한 등에 업힌 채 그의 웃음소리가 철사줄처럼 가슴을 쑤시고 들어옴을 느꼈다.
‘타하륵...... 너무도 신비하고 강한 사람이야.......’
이미 혁리혼은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나는 알아...... 타하륵의 가슴속에는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응어리진 한(恨)이 들어 있는 것을...... 타하륵이 나에게 따뜻하게 해준 것처럼...... 될 수 있다면 리혼이 그의 차가운 가슴속을 녹여 주고 싶어...... 진심이야......!’
혁리혼의 머릿속에 며칠 전 타하륵이 자신의 몸을 치료하기 위해 만지던 따스한 손길이 떠올랐다.
그것은 형의 손길과도 같은 따스함이었다.
‘하지만.......’
혁리혼은 입술을 잘강 씹었다.
문득 갈극척의 구부정한 꼽추의 몸에서 숨막히는 기운이 서리서리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상대의 심중조차 꿰뚫어 버릴 듯한 심강(心 )의 기운이다.
“그렇다면...... 우리라 함은 바로 어떤 세력을 일컫는.......”
“더 이상의 것은 묻지 마시오, 존황!”
타하륵은 문득 그의 말을 도중에 칼끝처럼 잘라 버렸다.
그의 두 눈에서는 차가운 한광이 쏟아졌다.
촤라라락!
찰나간 그는 가볍게 수중의 섭선을 펼쳤다.
“그러한 사실은 우리 거래에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오.”
“......!”
“우리의 거래는.......”
순간 혁리혼이 갈극척의 등에 업힌 채 앙다문 음성을 터뜨리며 그의 말을 잘랐다.
“나는 허락할 수 없어!”
“......!”
뜻밖의 말이다.
매천자 타하륵, 그가 말한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기연이 아닌가?
그 누구라도 목을 내놓고 얻고 싶어할.......
갈극척과 타하륵, 특히 타하륵은 혁리혼의 말에 안색이 굳어졌다.
“왜......?”
혁리혼의 두 눈에서 일순 기괴한 빛이 흘러 나왔다.
그것은 비록 약하기는 하나 엄청난 투혼의 빛이다.
‘또 저 눈빛......!’
타하륵의 얄팍한 입꼬리가 흔들렸다.
“할아범이 허락한다 해도 나 혁리혼의 결심은 마찬가지야.”
“......!”
“나의 길은 나 혁리혼이 택하는 것이지 그 누구도 택해 줄 수 없어. 하늘이라 할지라도!”
칼날이 번뜩이는 말이다.
어린, 그것도 이제 칠 세에 지나지 않는 소년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호랑이의 새끼는 결국 호랑이다!’
“허나 만약 훗날 나 혁리혼을 보좌해 준다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줄 수 있어. 진심이야!”
보좌!
그것은 곧 수하가 되라는 말이 아닌가?
순간 타하륵의 얼굴이 치욕과 분노, 살기 등으로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다.
허나 그는 최소한 하늘을 보고 바다를 잴 줄 아는 대인이다.
“와하하하핫...... 핫핫.......”
타하륵의 입에서 일순 암천을 짓찢는 미친 듯한 광소가 짓터져 나왔다.
갈극척은 내심의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커...... 컸다! 허허허...... 나 갈극척은 소공야가 늘 어린 소년이었는 줄 알았거늘.......’
갈극척은 구부정한 꼽추의 몸을 떨고 있었다.
엄청난 격동과 격정이 추스를 수 없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던 것이다.
‘대군, 화후이시여! 보시고 계시오이까?’
갈극척은 흥분의 눈길로 어둠의 암천을 올려다보았다.
뚝!
타하륵은 광소를 그치며 감탄과 경이의 시선으로 혁리혼을 직시했다.
“천하에 나 매천자, 아니 흑뇌마자(黑腦魔子) 타하륵을 수하로 두겠다고 하는 인물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칠 세에 지나지 않는 소동이......? 크와하하핫.......”
흑뇌마자!
이것이 그의 진실한 외호인가?
흑뇌마자 타하륵은 분노인지 통쾌함인지 모를 광소를 끊임없이 터뜨렸다.
그러다 한순간 그는 광소를 그치며 혁리혼의 고사리 같은 손을 덥석 잡았다.
“좋아, 리혼! 너의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 한마디로 거래는 성립된 것이다!”
손과 손이 맞잡혔다.
하나는 이제 막 피어나는 고사리 같은 손.
또 하나는 대륙을 뒤흔들 수 있는 가공스런 미증유의 거력이 숨쉬고 있는 손이다.
이 맞잡힌 두 손의 의미!
그것은 혼돈과 난세지난세(亂世之亂世)를 뒤덮을 숙명의 의미다.
꽈― 악!
혁리혼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흑뇌마자 타하륵의 커다란 손을 거머쥐며 티없는 웃음을 떠올렸다.
“훗...... 이것은 사나이끼리의 약속이야!”
“대신...... 향후 너는 나 흑뇌마자 타하륵을 꺾어야 한다. 만약 꺾지 못한다면.......”
타하륵은 이를 드러내며 차갑게 웃었다.
“너를 죽이리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황제일존...... 당금 대륙의 집권자인 갈무좌와 함께!”
― 대륙의 집권자 갈무좌와 함께 너를 죽이리라!
섬뜩한 말이다.
가히 천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손안에 모조리 꺾어 넣겠다는 패도광망의 뜻이 담긴.......
혁리혼은 조그만 입꼬리를 귀엽게 말아올렸다.
“할아범이 그랬어. 아버님은 강했지만 꺾였다고...... 하지만 리혼은 대륙천자야, 아무에게도 꺾이지 않는.”
“후후...... 향후 내가 꺾인다면 나의 두 어린 딸과 나의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자신의 두 어린 딸?
흑뇌마자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꼽추노인 갈극척을 바라보았다.
“마교의 힘은 강하오. 어쩌면 이곳에 두 개의 무덤이 새로 생길지도 모르오. 천향화루가 없어지는 대신! 나의 힘을.......”
“과거 사교대존황 갈극척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목을 베었다!”
번― 쩍!
갈극척의 음습한 두 눈에서 극사의 가공할 안광이 뇌(雷)처럼 뻗어 나왔다.
가히 보는 이의 심장조차 발라 놓을 듯한 무시무시한 사광(邪光).
‘과연 백년 이래 사도최강의 존좌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흑뇌마자는 뒤로 물러서며 정중하게 허리를 접었다.
강자에 대한 경외의 뜻이다.
“위대한 영웅을 이 시대에 안겨주고 있는 당신에게 영광이 있기를!”
다음 순간 흑뇌마자 타하륵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부등(浮騰)해 오르며 안개 흩어지듯 사라져 갔다.
슈슈슛...... 슈.......
동시에 하나의 거무튀튀한 물체가 혁리혼의 품속으로 날아들어왔다.
휘― 익!
“크하하핫...... 리혼, 그것을 우리가 만난 기념으로 준다. 훗날 다시 만나기를.......”
‘흑뇌마자 타하륵!’
혁리혼은 조그만 가슴에 꽉 차여드는 이상한 여운을 느끼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허나 흑뇌마자의 모습은 이미 어둠 속 그 아무 데도 없었다.
‘이상하게 나 혁리혼의 마음을 뺏는 사람이야.......’
혁리혼은 마음 한구석이 비어 버리는 기분을 느끼며 흑뇌마자가 남긴 물건에 시선을 떨구었다.
섭선(攝扇).
그것은 바로 흑뇌마자 타하륵이 수중에 들고 있던 묵광을 발하는 기이한 부채였다.
전체가 섬뜩한 기운을 지닌 채 부채의 중앙에는 기이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월하노인도(月下老人圖)!
차가운 달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백색 일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노인.
노인은 암천의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사하리만치 하얀 눈으로.......
어찌 보면 전율하리만치 오싹한 귀경(鬼景).
‘왠지 무서운 기분을 주는 그림이야!’
혁리혼은 어깨를 움츠리며 이내 부채를 뒤집어 뒷면을 보았다.
<한(恨)이 골수에 맺힌 천추지한(千秋之恨)을 어이하리...... 흑천마황선(黑天魔皇扇)의 힘은 죽어 있거늘...... 아아.......>
월하노인의 한인 듯 검은 섭선에는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뼛속을 가르고 심장까지 스며드는 한스런 문구였다.
혁리혼은 고개를 갸웃했다.
‘흑천마황선의 죽어 버린 힘......?’
“이게 무슨 소리지?”
“......?”
갈극척은 짧은 상념에 젖어 있다가 혁리혼의 쫑알거림에 문득 시선을 돌렸다.
‘허억!’
순간 그의 음울하기만 하던 두 눈이 혁리혼의 고사리 같은 손에 쫙 펼쳐진 흑선에 이르는 순간 극도의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흐...... 흑천마황선!’
우르르.......
갈극척은 불식간 전신에 진동을 일으켰다.
‘그...... 그럼 그가...... 바로......! 이것은 엄청난 소공야의 기연(奇緣)...... 아니, 가공할 악연(惡緣)인지도......!’
도대체 흑천마황선이 무엇이기에......?
알려고 하지 말자.
오늘 이 어둠 속에서 만들어진 이 조그만 일.......
‘살기가 짙어진다.’
갈극척은 피부로 파고드는 무서운 살풍을 느끼며 얼굴을 굳혔다.
처음 그것은 미약한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살기는 숨통을 끊을 듯 증가하고 있었다.
‘마교...... 놈들이 우리를 찾았다! 환공...... 그분을 아직 찾지 못한 상황에서...... 절망이다!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한다!’
스― 윽―!
일순 그의 신형이 발 없는 유령처럼 어둠 속을 미끄러져 갔다.
‘이미 준비는 모두 되었다. 그곳이라면 일단은 소공야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관을......!’
바람.......
죽음의 바람.......
위이이잉― 위잉―!
매섭게 어둠을 할퀴는 삭풍은 천향화루를 휘감으며 돌아갔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휘리리리릭―!
질식할 듯한 살기가 어둠 속의 천향화루를 구름처럼 감싸고 있었다.
우연인가?
뚜― 뚝!
천향화루의 첨루에 꽂혀 나부끼던 삼각 깃발이 허리가 부러지며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 * *
독목(獨目).
하나뿐인 눈이 어둠 속에서 죽음의 빛을 뿌리며 천향화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를 하얗게 드러내 놓고 그는 사악하게 웃었다.
“크으흐흐흣.......”
그리고 그 웃음은 이내 짓떨리는 음성으로 이어졌다.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