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3 章 野獸를 닮은 이상한 아이
‘이런...... 일이! 금창약을 바르기도 전에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 버리고 있지 않은가!’
타하륵의 눈 깊숙한 곳에서 그득한 놀람이 번져 올랐다.
늑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혁리혼의 상처는 깊고도 엄중했다.
헌데 그것이 스스로 피가 멎고 아물어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믿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스스스...... 쓰쓰.......
혁리혼의 상처는 순식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아물어 버리고 말았다.
언제 그가 상처를 입었었던가.
“헤...... 거봐, 내가 그랬잖아. 금방 나을 거라구.......”
혁리혼은 자신이 보아도 신기한 듯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상고기서(上古奇書)에 의하면 이런 체질은...... 서...... 설마! 이 아이가......!’
무엇을 떠올렸음인가?
타하륵의 무심한 눈빛은 이 순간 추스를 수 없는 엄청난 충격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누구야?”
문득 혁리혼은 친근한 음성으로 물었다.
타하륵은 흠칫 상념을 깼다.
“음......?”
“에이...... 이름 말이야.”
혁리혼의 언행은 너무도 귀여운 모습이었다.
타하륵은 혁리혼의 그런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친근한 웃음을 떠올렸다.
“후훗...... 타하륵...... 매천자 타하륵이라 하지.”
허나 타하륵은 이 순간 내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내가...... 내가 웃다니! 평생 동안 웃음을 잊어버린 채 살아왔던 내가......!’
헌데.......
― 매천자(買天子)!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어찌 들으면 그냥 흘려버릴 그런 말이다.
그리고 하늘을 파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매천자...... 헤...... 정말 멋진 이름인데?”
“네 이름은?”
“응, 혁리혼이야...... 리혼!”
“훗...... 네 이름이 더 멋진데?”
타하륵은 차게 웃었다.
습관처럼.......
그러나 그 속에는 감지할 수 없는 이상스런 정감이 찰랑이고 있었다.
혁리혼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말?”
그 웃음은 너무도 아름답고 뇌살적인 웃음이었다.
타하륵은 순간 신선한 충격을 전신 가득 느꼈다.
‘너무도 아름답다. 이런 마력적인 웃음은 처음 본다!’
그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말 멋진 이름이다, 리혼.......”
그러다 문득 그는 혁리혼의 뒤쪽에 있는 괴이한 상자에 시선을 던졌다.
까만 옻칠을 한.......
그것은 흡사 축소한 관 같기도 하고 관이라기에는 너무 우스운 것이었다.
“저 상자는 무어지, 리혼?”
“관이야.”
“관......?”
“으응.......”
타하륵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혁리혼을 바라보았다.
“저 속에 뭐가 들었지? 관이라면.......”
“엄마랑 아버지라는 사람이야!”
‘부모라고......?’
타하륵의 입가에 미묘한 경련이 일었다.
참을 수 없으리만치 슬픈 빛을 갖고 있는 혁리혼의 눈망울.
그리고 너무도 티 한점 없는 해맑은 웃음.......
“히히...... 할아범이 그러는데...... 저 속에는 울 엄마랑 울 아버지라는 사람이 들었대.”
“......!”
“하지만 리혼이 몰래 들여다보니까 뼈다귀만 있더라. 그게 어떻게 울 엄마랑 아버지야...... 우습지? 히힛.......”
‘이...... 이 녀석이......? 그렇다면 이 아이는 부모를 모르고 자란 고아......!’
타하륵은 혁리혼의 조그만 몸을 감싸고 있는 운명적 슬픔과 암울함을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무심한 눈빛이 미묘한 떨림을 스치듯 일으켰다.
소르르르...... 사륵.......
하얗고 탐스런 눈송이가 혁리혼의 조그만 어깨 위와 관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럼...... 너는 집이 없겠구나?”
“있어! 얼마나 큰 집인데...... 우리 집에 가면 이 리혼의 친구들이 많아. 백상(白象)이랑...... 음...... 소낭(小囊)도 있고, 또 예쁜 계집애들도 얼마나 많은데......!”
혁리혼은 어린아이다.
그는 자랑이나 하듯 손발까지 귀엽게 놀려 가며 입술을 나풀거렸다.
‘백상, 소낭......? 흰 코끼리랑 작은 주머니가 친구들......?’
타하륵의 얼굴에는 일순 흥미로운 의혹이 떠올랐다.
‘훗...... 괴상한 친구를 가진 녀석이다.’
“집이 어디지?”
“저어기!”
혁리혼은 시리도록 하얗고 조그만 손을 들어 양자강 건너를 가리켰다.
그곳, 하나의 깃발이 눈보라 속에서 흐릿한 모습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천향화루의 깃발!
그것은 악양성 최고의 기루를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기루가 이 아이의 집?’
타하륵의 눈가에 의혹이 스쳤다.
혁리혼은 문득 몸을 일으켰다.
“참, 리혼은 이제 가 봐야 돼. 할아범이 기다리거든.”
이미 어둠은 숲 속을 끼고 돌아 배부른 포유동물처럼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범?”
타하륵은 의혹의 빛을 얼굴에 떠올리며 같이 몸을 일으켰다.
드드드― 드―!
혁리혼은 관을 끌며 걸음을 옮겼다.
“응, 리혼이 제일 좋아하는 꼽추할아범 말이야.”
“......!”
“헤...... 좋은 아저씨, 또 봐!”
혁리혼은 고개를 돌려 타하륵을 향해 해맑은 웃음을 지은 후 잰걸음으로 걸어갔다.
드드― 득―!
“후후훗...... 꼭 찾아가 너를 만나.......”
타하륵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 그의 입술을 그대로 굳혀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보라!
이제 칙칙한 어둠이 깔리는 대지.
그리고 그 위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혁리혼.
그의 조그만 몸에서 어둠을 밀어내며 뿜어지는 저 광휘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쓰쓰쓰쓰― 쓰―!
인광(燐光)?
아니, 그 빛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너무도 신비한 보광과도 같은 것이다.
경악!
불신!
‘아아...... 조금 전 나는 저 아이에게서 흡사 운명적 암울함이 만드는 어둠 같은 것을 보았다. 헌데 지금......!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전신에서 신비로운 광휘가 뿜어져 나오고 있지 않은가!’
우르르르― 릉!
뇌전을 전신에 뒤집어쓴 듯 타하륵은 어둠 속에서 엄청난 진동을 일으키고 말았다.
‘허...... 허면 아까 내가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그 상고기서에 기록된.......’
타하륵은 가슴을 짓뚫고 터져 나올 듯한 엄청난 경악과 격동을 간신히 억제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에서 나직하나 미친 듯한 뇌까림을 흘리기 시작했다.
두 눈에 광기와도 같은 뇌광을 쏟아내며.......
“리혼...... 혁리혼...... 이것은 숙명(宿命)이다...... 엄청난 숙명.......”
* * *
군산(君山).
소해(小海)라고 일컬어지는 동정호(洞庭湖)를 끼고 자그마치 삼백여 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군도(群島).
어둠은 그곳에 이르러 이상하리만치 숨통 조이는 기운을 품고 있었다.
뭉클.......
<뇌암봉(雷岩峰)>
흡사 뇌광이 내리꽂히는 형상을 닮아 그렇게 불린다던가?
뇌암봉은 군산 최고의 험봉으로 손꼽힌다.
어둠과 미친 듯한 눈보라.......
휘이이이― 잉―!
쌔애― 앵!
차가운 삭풍을 동반한 그것들은 일시에라도 뇌암봉의 정상을 찢어발길 듯 불어대고 있었다.
그때 돌연 하나의 흑영(黑影)이 흡사 야조(夜鳥)처럼 뇌암봉의 정상 위로 솟구쳐 올랐다.
스슷―!
전신을 흑색의 야행복(夜行服)으로 감싼 채.......
오싹!
허리까지 늘어진 머리결이 야풍에 휘말려 올라 전율할 귀기(鬼氣)까지 느끼게 하는 괴인.
독목(獨目).
하나뿐인 외눈이 어둠 속에서 심장 찢어발기는 악마의 눈빛을 발했다.
“저기다!”
그의 외눈은 군산 아래 동정호를 끼고 있는 악양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어둠과 눈보라 속에 불야성(不夜城)을 이루고 있는 천향화루를!
“크크크...... 크...... 사교대존황(邪敎大尊皇)! 칠년(七年) 동안 용케도 대군(大君), 그놈의 후예와 함께 숨어 있었다!”
사교대존황(邪敎大尊皇)―!
웃음이랄 수 없는 모골 송연한 귀풍(鬼風)이 그의 입술 사이로 으스스하게 흘러 나왔다.
“허나 천하에 본 교의 눈을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천하에 강함으로만 따진다면 두 번째로 가공할 존재인 네놈!”
두 번째 천하최강의 존재!
문득 독목괴인의 하얀 이빨이 어둠 속에서 치떨리도록 사악하게 드러났다.
“으흐흐...... 그러나 어차피 풀을 제거하려면 그 뿌리째 없애야 하는 것은 철칙...... 때문에 오늘 네놈은 일천 자루의 검에 의해 대군의 후예와 함께 죽는다!”
살을 가르고 뼈를 바르는 가공할 죽음의 기운이 어둠을 짓끊어 버렸다.
“바로 무림의 가장 위대한 집권자 마황제일존(魔皇第一尊)의 이름으로!”
― 무림의 가장 위대한 집권자 마황제일존!
순간이다.
슈르르르― 르.......
독목괴인의 신형이 어둠을 타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가자!”
그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어둠 속으로 또 하나의 어둠이 움직였다.
스스스스.......
스― 슷!
어림잡아 수천 개를 헤아리는 악마의 눈빛과 칼빛.......
바람[風]...... 바람[風].......
죽음의 칼바람[劍風].......
* * *
<천향화루(天香花樓)>
악양성 최고의 기루다.
사람들은 말한다.
― 최대의 호화로움과, 최고의 미녀와, 최고의 명주(名酒)로 향락을 음미하려면 천향화루로 가라!
그것은 이미 화류계의 움직일 수 없는 정론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삼미(三美), 일비일추(一秘一醜)가 있는 곳.
사람들은 천향화루를 그렇게 말했다.
눈을 현란시킬 만치 아름다운 기녀(妓女).......
몸을 휘감아 몽롱케 하는 미주(美酒).......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아름다운 소동(少童).......
가장 추하고 가장 신비한 천향화루주(天香花樓主).......
사람들은 천향화루주를 화노(花老)라 불렀다.
* * *
대설.
사람들은 사상최대의 폭설이라고 했다.
슈르르르르...... 소로록.......
이미 눈은 십 일 동안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잿빛의 암울한 하늘.......
잿빛의 눈[雪].......
노인은 그와 같은 빛깔의 눈[眼]으로 이미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일신에는 허름한 갈포(葛布)를 걸쳤고, 등이 심하게 굽은 꼽추노인.
헌데 그의 얼굴을 보라!
도대체 그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인가 싶은데.......
흡사 불에 데어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듯 부분부분에는 허연 뼈마저 드러나 보이는 용모.......
사람의 용모가 아니었다.
누군가 악마의 모습을 묻는다면 바로 꼽추노인의 얼굴을 가리키면 될 것이다.
‘아아...... 벌써 이곳에 정착한 지 일년이 지났다. 지난 육년 동안 놈들에게 쫓겨 온 세월보다 수십 배나 길고 지루한 순간들이었다.’
고통과 회한의 빛이 꼽추노인의 눈 속으로 앙금처럼 내려앉았다.
파다다닥―!
천향화루의 첨루(尖樓)에 꽂힌 삼각 깃발이 설풍에 찢어질 듯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은 이상했다.
전체가 황금의 수실로 짜여진 채, 가운데에는 열 자루의 검이 기이한 형태로 꽂혀 있는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 뒷면에는 부운(浮雲)을 타고 흐르는 신선도(神仙圖)가 그려져 있었다.
가장 기이한 것은, 열 자루의 검이 꽂혀 있는 모습이 흡사 열 개의 대륙을 나누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기루의 깃발치고는 너무도 이상한 깃발이다.
꼽추노인은 지금 그 깃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깃발을 꽂아 놓은 지 일년이 되었다. 저 천자령기(天子令旗)를 꽂은 지.......’
― 천자령기?
‘정녕 그분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분일지도 모른다. 살아 존재한다면 이미 그분의 연륜도 칠백 세가 넘고 있을 것이거늘...... 아아...... 기다린다는 것이 바보스런 짓일지도 모른다.......’
칠백 세!
그것이 인간의 나이란 말인가?
파다다다다― 닥!
찢어질 듯 나부끼는 깃발― 천자령기!
씰룩.......
그것을 바라보는 꼽추노인의 추악한 얼굴이 격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은 형용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의 빛과도 같은 것이다.
‘허나 어쩌랴! 소공야로 하여금 그 금수만도 못한 놈을 죽이고 과거 십대천세의 영광을 되찾게 할 능력이 나에게 없는 것을.......’
답답함이 그의 가슴을 저미며 파고들었다.
그의 흔들리는 시선이 이삼십여 장 밖의 한곳에 머물렀다.
그곳.
하나의 거대한 우리가 만들어져 있고, 그곳에는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온갖 짐승들이 드글거리고 있었다.
호랑이, 표범, 코끼리를 비롯하여.......
이름조차 모를 짐승들이 우리 안에 꽉 차 있었다.
흡사 동물들의 천하를 보는 듯하다.
헌데.......
“아하하하...... 히힛...... 간지러워...... 백상...... 히힛.......”
우글거리는 살벌한 동물들 속에서 어린 소동의 웃음소리라니?
믿을 수 없게도 우리 안에서는 지금 한 아름다운 소동이 수많은 동물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며 놀고 있지 않은가?
기루에 이렇듯 거대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거니와, 그 살벌한 동물들 속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는 소동은 더욱 기이했다.
“에헤헤...... 소낭...... 너까지...... 아고...... 히힛.......”
소동을 바라보는 꼽추노인의 입꼬리가 격하게 잔파문을 일으켰다.
‘아아...... 대군, 화후이시여! 소공야는 이 뿌리깊은 한(恨)을 지워 주기에는 너무도 어리외다!’
대군, 화후―!
그들은 이미 중원 최대의 의문을 지닌 채 죽임을 당한 십대천세의 주인들이 아니던가?
‘당신들은 갔으나 소공야에게 너무도 커다란 짐을 지우셨소! 대군, 화후이시여...... 노복과 소공야가 환공(幻公), 그 어른을 찾기 이전에 마교가 먼저 우리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끝입니다. 절망...... 이지요.......’
어느 날 갑자기 십대천세는 그 오만한 난공불락의 허리를 꺾었다.
누구에 의해...... 어떻게...... 그것은 중원 최대의 의문이었다.
십대천세주 대군 혁파후와 그의 부인 화후의 죽음과 함께.......
십대천세가 거꾸러지는 날.
기다렸다는 듯 하나의 가공할 집단이 중원을 뒤흔들었다.
― 마(魔)― 교(敎)!
수천년 마(魔)의 정화와 하늘 아래 존재하는 만마(萬魔)가 모여 만든 마의 대성전.......
그리고 그 위에 고고히 군림하는 위대한 마의 주인.......
마황제일존(魔皇第一尊)―!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지상최강의 군림좌(君臨座)!
염왕(閻王)조차도 거역할 수 없는 지상최대의 명령좌(命令座)!
그는 아홉 개의 하늘과 열 개의 대륙...... 그 위대한 집권자이다.
문득 꼽추노인은 흡사 뇌전에 전신을 꿰뚫리는 듯한 무서운 분노의 전율을 전신에 터뜨렸다.
“마황제일존...... 갈무좌, 이노...... 옴!”
휘리리리― 휘링―!
폭설은 거세게 꼽추노인의 전신을 휘감는데.......
불[火].
그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두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화염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대군과 화후께서는 네놈의 천고절증(天古絶症)을 고쳐 주셨고, 그분들은 이내 자신의 모든 것을 네놈에게 주셨었다...... 헌데!”
십대천세주 대군 혁파후!
마황제일존 갈무좌!
그들은 그런 관계였었던가?
놀라운 일이다.
“그분들의 가슴에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배신의 칼을 꽂다니!”
엄청난 사실이 노인의 뇌까림 속에서 분노가 되어 거침없이 짓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소공야와 이 아비의 목마저 베려 하는가?’
아비의 목―?
이 무슨 잔인한 말인가?
그렇다면 마황제일존 갈무좌는 바로 이 꼽추노인의 아들이란 말인가?
너무도 엄청나고도 놀라운 일이 아닌가?
아버지의 목을 베고자 하는 욕망의 칼!
부르르―!
꼽추노인의 구부정한 몸이 눈보라 속에서 무섭게 진동을 일으켰다.
‘내 어이 네 녀석을 용서하리...... 내 어이 천추지한(千秋之恨)을 씻을 수가 있으리...... 무좌, 이노옴―!’
엄청난 분노.......
허나 아무도 모른다.
그 역시 인간이기에 뇌까림 속에 감수할 수 없는 부정(父情)과 고통을 숨기고 있음을.......
‘이제...... 이 아비는 네 목에 칼을 들이대야 한단 말이다! 아느냐? 이 아비의 심정을...... 네놈은!’
슬픈 잿빛의 눈은 구부정한 그의 전신에 아프게 내려앉았다.
사르르...... 사르.......
‘이 아비는 네 천고절증을 고쳐 준 대군의 은혜에 수십 년 종복을 자처했다. 헌데...... 이제 나의 칼은 네 목을...... 베고자 해야 한다니...... 운명이여―!’
눈물인가?
그의 노안에 하염없이 출렁이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놈...... 이놈.......’
욕망이라 이름지어진 칼이여!
그때였다.
휘― 이익―!
한 가닥 긴 포물선이 허공에 그려지며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꼽추노인의 앞에 네 발을 디디며 몸을 세웠다.
터억......!
표범[豹].
그것은 한 마리 날렵하게 생긴 표범이었다.
전신을 뒤덮고 있는 털은 눈처럼 하얗다.
단 한 올의 잡털조차 섞여 있지 않은.......
백황표군(白皇豹君).
그것은 바로 천년 동안 장수한다는 천축전설(天竺傳說)의 영물이다.
크르르르― 르―!
백황표군은 꼽추노인의 앞에 이르러 위협적인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 꼽추노인은 급히 안색을 고치며 추악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소공야......!”
그의 부름이 끝나자 백황표군의 배 아래에서 하나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쏘옥......!
“히힛......!”
너무나 아름다운 소동...... 깨물어 주고 싶도록 귀여운 소동이다.
혁리혼, 바로 그였다.
“할아범, 여기서 뭐 해?”
노인은 바로 천향화루의 주인이다.
악양 사람들로부터 일비일추(一秘一醜)로 불려지는, 화노(花老)가 바로 이 꼽추노인이다.
꼽추노인 화노는 추악한 얼굴에 웃음을 끊지 않았다.
“허허...... 허...... 소공야를 보고 있습죠.”
악양 사람들은 모른다.
화노, 그가 천향화루의 주인이자 바로 이 소동의 노복이라는 사실을.
혁리혼은 이마를 좁혔다.
“그럼 큰일나는데.......”
“허허...... 왜요?”
“얼음할아버지가 그러는데...... 늙은 사람들은 눈 같은 차가운 것을 많이 맞으면 병이 난다고 했어.”
“......!”
“할아범이 병이 나면...... 리혼은 울고 말 텐데.......”
혁리혼의 여린 입술을 바라보던 화노는 그만 가슴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정감이 솟구쳐 올랐다.
“허허...... 소공야, 이 늙은이는 아무리 눈을 맞아도 괜찮습죠.”
“정말?”
“그럼요. 더욱이 소공야께서 노시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몇 년은 더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혁리혼은 혀끝을 귀엽게 쏙 내밀어 보였다.
“거짓말.......”
그러다 문득 혁리혼이 키들거렸다.
“히힛...... 간지러워...... 백상(白象)...... 까불면 한 방 쥐어박을 거야. 히히힛.......”
백상...... 하얀 코끼리?
거대하고 하얀 표범 백황표군의 이름인가?
백상이 일순 혁리혼의 몸을 혓바닥으로 간지럼을 태운 것이다.
“아하하...... 하.......”
캬― 오오― 캬릉!
혁리혼과 백상은 한데 어우러져 마구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화노의 눈가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소공야! 참으로 기이한 분이다. 이 어린 소주인이 어느 날 문득 짐승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우연히 발견했다.’
화노의 눈빛이 점차 미묘한 빛으로 바뀐다.
‘때문에 나는 한 마리...... 두 마리...... 온갖 짐승들을 소공야에게 사 드렸다. 헌데 놀랍고도 기이한 것은...... 그토록 늘 슬픔에 젖어 생활하던 소공야가 짐승들과 함께 있는 순간이면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처음 소공야가 짐승들에게 해를 입을까 걱정했던 나의 기우는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화노의 눈에 기광이 스쳐 갔다.
‘오히려 온갖 짐승들은 어린 소공야의 말에 절대복종함은 물론, 자신들의 몸보다 소공야의 몸을 더 소중하게 보호한다. 정녕 불가사의한 일이 아닌가?’
그것은 진정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소공야는 짐승들의 습성을 은연중에 몸에 익히고 있다. 무엇이...... 이렇듯 사람과 짐승을 가깝게 하는 것인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혁리혼이 악양성 외곽에서 세 마리 늑대와 혈투를 벌일 때 그 모습은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이다.
‘소공야는 은연중 짐승을 닮아 가고 있다.’
화노의 얼굴이 괴이하게 꿈틀거렸다.
그것은 경이로움을 볼 때 나타나는 그의 특이한 습관이다.
그때 돌연 무심히 혁리혼을 바라보던 화노의 안색이 홱 돌변하고 말았다.
“아하하...... 백상...... 그만...... 그만...... 이놈아...... 정말이야.......”
캬르르― 캬오!
백상과 뒹굴며 놀고 있는 혁리혼.
헌데 그의 몸이 마구 뒹굴어지면서 하나의 물건이 혁리혼의 주머니 속에서 흘러 나온 것이다.
옥잠(玉簪).
그것은 푸른 기운을 뿌리는 일견하기에도 범상치 않은 여인의 비녀였다.
화노의 경악에 찬 시선 끝은 그 옥잠에 매달려 있었다.
“표향정환잠(飄香情幻簪)!”
화노의 입에서 너무도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너무 커다란 외침이었던가?
백상과 혁리혼은 느닷없는 놀람의 외침에 장난을 그치며 화노를 올려다보았다.
부르르르......!
화노는 추스를 수 없는 떨림을 일으키는 손으로 옥잠, 표향정환잠을 집어들었다.
“어? 그거...... 내 거잖아?”
혁리혼이 화노의 앞으로 다가섰다.
화노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소...... 소공야...... 이건...... 이건.......”
“응, 그거? 히힛...... 어떤 계집애가 이 리혼을 동생으로 삼는다며 준 거야.”
“도...... 동생......!”
무엇인가?
화노의 몸은 마치 폭풍을 만난 듯 격동, 아니 그 속에는 엄청난 분노마저 숨겨져 있었다.
“혹시...... 그 소녀의 성이 복성(複性)인 단소(丹素)가...... 아니었습니까?”
왠지 그의 말속에는 자신의 물음을 강하게 부정하려는 빛이 담겨져 있었다.
혁리혼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할아범 점쟁이네? 어떻게 그걸 알았지?”
“......!”
“맞아...... 그 계집애의 이름이 단소자하라고 그랬어.”
순간 화노는 전신이 일시에 무너지는 엄청난 충격을 착각처럼 느끼고 말았다.
우르르르― 릉―!
‘그...... 그럴 수가!’
화노는 일순 잿빛의 하늘을 향해 내심 미친 듯한 저주 어린 외침을 터뜨렸다.
‘으으...... 이...... 이런 빌어먹을 운명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운명.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운명의 질기디질긴 끈이었다.
* * *
대설(大雪).
그칠 줄 모르던 눈발은 이제 십 일 만에 그쳤다.
오랜만에 하늘 위에 나타난 별들은 어둠 속에서 너무도 깨끗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소공야, 저 별들을 잘 보십시오.”
화노는 혁리혼과 천향화루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야트막한 구릉 위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노는 어둠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여덟 개의 성좌를 주름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별......?”
혁리혼은 해맑은 눈으로 암천에 빛나고 있는 여덟 개의 성좌를 올려다보았다.
화노의 음성이 미묘한 신비와 조그만 격동을 담은 채 흘러 나왔다.
“여덟 개의 별...... 저것을 팔황대마성좌(八皇大魔星座)라고 부르죠.”
“팔황대마성좌?”
“예, 그리고 저 팔황대마성좌 속에는 소공야의 별도 끼여 있습죠.”
“히야! 이 리혼의 별도?”
혁리혼은 놀랍다는 듯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린 채 탄성을 터뜨렸다.
화노는 팔황대마성좌 중 가장 희미한 성좌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허허...... 그럼요. 저 팔황대마성좌 중 가장 약한 별이 바로 소공야의 것입죠.”
“에이.......”
혁리혼은 그만 실망하고 말았다.
화노가 가리킨 별은 너무도 작고 빛이 약한 보잘것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조그맣잖아. 빛도 안 나고...... 리혼은 커다란 별이 좋은데...... 쳇!”
화노는 그런 혁리혼의 귀여운 투정을 바라보며 나직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렇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저 보잘것없는 별은 팔황대마성좌 중 가장 크고 멋진 빛을 뿌릴 것입니다.”
팔황대마성좌!
무언가 화노의 말속에는 어린 혁리혼이 이해할 수 없는 무궁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혁리혼은 기분이 금방 좋아져서 물었다.
“그럼...... 할아범의 별은?”
“이 늙은이의 별은 없습니다.”
“왜? 왜 없어?”
“하늘이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죠.”
순간 혁리혼은 금세 볼이 뚱뚱 부어 버렸다.
“리혼이 가장 좋아하는 할아범의 별을 만들어 놓지 않다니! 좋아, 이 다음에 리혼은 강제로라도 할아범의 별을 내 별 옆에 만들어 놓겠어. 가장 큰 별로...... 히히...... 리혼의 별보다는 조금 작은 걸로 만들겠지만 말이야.......”
“허허허.......”
“할아범.”
“예?”
“우리는 정말 헤어지지 말자, 응?”
문득 혁리혼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길을 화노에게 주며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화노는 펄쩍 뛰는 시늉을 내며 어림도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헤어지다니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소공야.......”
“정말?”
“그럼요!”
“히...... 그럼 오늘부터 나는 할아범하고 같이 잘 거야.”
화노는 그만 더없이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이 늙은이가 소공야의 꾐에 빠져 버리고 말았군요.”
“씨이...... 리혼은 매일 꿈을 꾸는걸.”
혁리혼은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
“허허...... 소공야는 착하시니까 아름다운 꿈이겠군요.”
“아니야! 쳇! 재수 없게 할아범이 자꾸만 울면서 리혼과 헤어지는 꿈이란 말이야.”
화노의 눈빛이 순간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무엇을 생각했음인가?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오, 소공야.’
그의 추악한 얼굴이 어둠 속에서 암울하게 변했다.
허나 이내 본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꿈이란 다 반대입죠. 그건 오히려 좋은 꿈일 겝니다.”
“정말?”
“그럼요.”
“히히...... 그럼 그런 꿈을 자꾸만 꾸어야지. 할아범하고 오늘부터 같이 자면서 말이야.”
“허허.......”
“그런 말을 해서 그런지 자꾸만 졸립다, 할아범아.......”
혁리혼은 금세 게슴츠레 반개하며 중얼거렸다.
이어 혁리혼은 엉덩이에 매달린 눈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툭! 툭!
“가자...... 할아범.”
“그러죠. 이제 밤도 깊었으니.......”
한데 문득 혁리혼은 어둠 속에서 걸음을 옮기다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터벅...... 탁!
“아고......!”
눈 속에 감추어진 돌부리에 걸린 것이다.
“소공야!”
화노는 당황과 다급함이 뒤섞인 외침을 터뜨리며 혁리혼에게 다가갔다.
혁리혼은 얼굴을 마구 찡그렸다.
“아야야...... 발목이 삐었나 보다! 아야......!”
문득 화노의 입가에 웃음이 담겼다.
“허허...... 소공야, 또 이 늙은이의 등에 업히고 싶어서 엄살을 부리는 것입죠?”
순간 혁리혼은 발딱 몸을 일으키며 항의하듯 말했다.
“아니야! 뭐.......”
화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혁리혼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어? 소공야님는 발이 삐었는데도 섰습니다?”
“익?”
혁리혼은 당황하여 급히 바닥에 주저앉으며 엄살을 부렸다.
“하야...... 큰일났는데? 발목이 삐었으니...... 아야야.......”
“크큿.......”
화노는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구부정한 등을 혁리혼에게 돌렸다.
“자아...... 이 늙은이의 등에 업히십시오.”
“에이...... 할아범이 힘들 텐데.......”
허나 혁리혼의 그 말은 이미 화노의 등 위에서 들렸다.
거미처럼 찰싹 화노의 등에 업힌 것이다.
“히히...... 좋다!”
“허허...... 이 늙은이도 소공야를 업을 때가 제일 좋습죠.”
문득 혁리혼은 화노의 목을 양팔로 끌어안으며 조그만 목소리로 뇌까렸다.
“사실은...... 리혼도 고백할 게 있는데 말이야.......”
“......?”
“나는 매일 슬퍼져.......”
“......!”
“왜냐하면 말이야...... 사람은 늙으면 다 죽는 거라면서? 그래서 할아범도 죽을까 봐 자꾸만 슬퍼지는걸.......”
혁리혼의 목소리는 자꾸만 기어들어갔다.
화노는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소공야.......’
화노는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어린 혁리혼의 말이나 그 속에는 슬픔으로 일관해 오며 살아온 혁리혼의 아픔과 고독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노야, 그 자신만이 읽을 수 있는.......
밤하늘을 빛내는 하얀 별가루가 소리 없이 화노와 혁리혼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문득 짧은 침묵을 깨며 화노가 웃었다.
“허허...... 소공야, 우리 말놀이 합지요?”
“말놀이?”
혁리혼은 화노의 등 위에서 눈빛을 반짝 빛내며 되물었다.
“예.”
“히힛...... 좋아. 이제 리혼이 말 타는 사람이 되는 거다?”
“예, 이 늙은이는 말이 되굽쇼.”
혁리혼은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리며 좋아라 외쳤다.
이어 화노의 귀를 양쪽으로 잡으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헤헤...... 가자! 이 늙은 말아...... 이럇!”
“아이구...... 늙은이 귀 떨어집니다!”
화노는 짐짓 엄살을 부리며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아하하...... 이럇!”
“허허.......”
슬픔과 아름다운 정이 담긴 별가루가 소리 없이 떨어지는 밤.
그러나 이 밤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