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검무안-147화 (147/160)

# 147

[도검무안 147화]

第二十三章 주개(走開)! (6)

드르렁! 쿨! 드르렁!

마록타는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근 열 명이나 죽였다. 한 명도 죽인 적이 없는 자가 대살성이 되었다. 그리고 야뇌슬 곁으로 왔다. 안전지대에 도착한 것이다. 긴장감이 확 풀어지면서 노곤함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몰려왔으리라.

스윽!

야뇌슬이 일어섰다.

마록타가 밤새도록 치달렸으니 뒤를 이어서 자신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마록타가 뛰는 동안 자신은 푹 쉬었으니, 이제 마록타를 쉬게 해준다.

마록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마록타의 신법을 알아본다. 어떤 식으로 은신술을 펼치는지 안다.

그를 바로 곁에 두고 일 년 넘게 생활했다.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는 은신술을 펼친 적이 거의 없지만…… 한두 번 펼친 것만으로도 그의 움직임을 알아낼 수 있다.

마록타는 도련으로 뚫고 들어갈 때 은신술을 펼쳤다. 그가 보는 앞에서,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나.

삼백 년 전, 염왕도 자신과 같은 입장이었을 것 같다.

야복은 염왕을 죽일 수 있다지만…… 글쎄? 정말 그럴까? 삼백 년 전으로 돌아가서 염왕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그는 분명히 피식 웃을 것이다.

스스스스!

바로 마록타가 쓰던 은신술을 고스란히 펼쳐냈다.

움직임은 일어나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두 발은 땅을 딛고 있는데 땅에 닿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의 신법은 마록타보다 뛰어나다.

마록타가 즐겨 쓰는 은신술에 일시탈백 장설리의 부동명심공을 가미시켰다. 거기에 현현화륜 노광도의 무영신법까지 섞어 넣었다.

기본적으로 어둠을 골라서 움직이고, 그 위에 소리를 죽이는 공부를 가미시킨다.

움직임 한 번에 세 가지 공부가 섞여 나온다.

그는 움직였고, 마록타는 코를 골았다.

드르렁! 쿠울! 드르렁!

왕군의 집무실에 시신 열구가 놓였다.

“술 한 잔 하자는 것을 몸이 좋지 않다고 뺐더니……”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던 사람들이 지금은 죽어서 조기처럼 엮어있다.

그들 가슴에는 붉은 피가 낭자하다.

비수로 정확히 심장을 꿰뚫렸다.

열 명이 똑 같은 상처로 죽었는데, 어느 누구도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저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급공을 받았다는 뜻이다.

적암도 무인들이 손을 쓰지 못할 정도라!

중원 살수 중에는 그런 놈이 없다.

한두 명 정도 죽이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열 명이나 그런 식으로 죽일 수는 없다. 그것도 하룻밤이 채 지나기 전에 열 명을 죽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야뇌슬이라면 가능하다.

“놈인가?”

“놈이라면 굳이 숨어서 죽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럼 뭐야?”

“……”

야뇌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야뇌슬을 빼놓고 생각하자니 그럴 만한 사람이 없고, 그를 끼어 넣자니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야뇌슬은 염왕의 무공을 수련했다.

수라도주도 그를 잡지 못했다. 련주의 일격도 무위로 끝났다. 검을 빼면 반드시 목숨을 거둔다는 련주의 검이 무림출도 이래 처음으로 산 생명을 만들었다.

이들이 저항도 못해보고,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을 정도라면 야뇌슬 밖에 없다.

“야뇌슬은 아닙니다.”

왕군의 마음을 짐작한 듯 왕청이 말했다.

“그는 염왕의 대성…… 아니, 극성에 가깝게 깨우친 듯 보입니다. 그런 그가 암습을 가해올 리 없습니다. 자신의 무공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라도 정면대결을 취해왔을겁니다.”

맞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한다.

백랑대를 가장 처절하게 무너트려야 심리적인 효과가 커진다.

대등하게 검을 맞대고 있는 처지에서 한 사람이 백랑도 전체를 요절냈다고 하면 그 효과는 말할 수 없이 커진다.

야뇌슬이 공격해 왔다면 전면전을 취했다. 백랑대를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초토화시켰다.

그런 누군가?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사인은?”

심장을 찌른 한 수에도 많은 흔적이 남는다. 비수가 들어가는 속도와 힘이 느껴진다. 그것으로 상대가 사용하는 수법을 알아보기도 한다.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적암도 솜씨인가?”

“처음 보는 도흔입니다. 아마도……”

“아마도? 뭔가 짐작가는 데라도 있는 거야?”

“염왕은 족으로 야복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지금 야뇌슬 곁에는 마록타가 따라다니는데……’

왕청이 말을 흐렸다.

이 짓을 마록타의 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염체 없다.

마록타가 누군가. 적암도에서 병신처럼 산 놈이다.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추물이다. 하늘이 만든 최대의 실패작이다. 그런 인간이 적암도 무인들을 격살했다고는 보지 못한다.

“마록타…… 야복……”

“마록타가 야복의 진전을 이었다면 가능성 있습니다.”

“으음!”

왕군은 이 말도 안 되는 추론을 무시하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군요. 살아남은 사람들…… 오늘 생을 마칠 것 같습니다.”

왕청이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생각은 왕청만 하는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

이대로 손놓고 가만히 있으면 내일 뜨는 아침 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백랑대를 비워라!”

왕군이 뜻밖의 명을 내렸다.

“네?”

“놈이 뭘 원하는지 알겠어. 백랑대를 싹 비워. 너희 열 명, 그리고 나만 남는다. 그 외에 모든 사람을 내보내.”

“음! 알겠습니다.”

왕청이 읍하면서 말했다.

모두 왕군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도 파악했다.

야뇌슬, 그가 왔다!

백랑도에 사람들이 있으면, 그는 계속 암습을 가해온다. 사람이 없으면 일대 돌풍을 일으킬 게다. 자신들이 생각한 것처럼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후, 일전을 가릴 게다.

기왕 오늘 밖에 살지 못하는 목숨이라면 후자가 낫다.

“어쩐지 오늘 따라 이놈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더라니.”

미차단이 대도를 뽑으면서 말했다.

저벅!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연무장을 울린다.

그들 열한 명은 대문을 밀치고 걸어오는 청년을 봤다.

그는 자신들의 예상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암습을 가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걸어온다.

“오랜만이구나.”

왕군이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야뇌슬이 뜻밖에도 정중하게 말했다.

모두들 그가 빈정거리면서 말할 줄 알았다. 아니면 화라도 낼 줄 알았다. 도주를 그렇게 죽이고 겨우 이 모양 이 꼴이냐며 비웃을 줄 알았다.

그는 적암도에서처럼 다정하고 예의바르다.

“어젯밤 바삐 움직였더구나.‘

“마록타가 한 일입니다.”

“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왕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역시 예상대로다. 그 병신…… 그 꼽추…… 그 형편없는 놈이 적암도 무인 열 명을 하룻밤 새에 요절냈다. 아주 뛰어난 살수비기로 저를 놀리던 사람들을 죽였다.

정녕 믿을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야뇌슬이기에 믿는다.

이건 참 모순되지 않은가.

만약 그 말을 노모보가 했다면 절대로 믿지 않았을 게다. 어디서 무슨 개수작을 부리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뇌슬이 말하니 믿어진다.

“그놈은 어디 있는가!”

“할 일을 마쳤으니 쉬어여죠.”

“뭣!”

“이제부터는 제가 합니다.”

야뇌슬이 두 손을 축 늘어트렸다.

양손에 검이 들려있다. 시중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철검이다.

“하나만 묻자. 너 정도라면 백랑도를 그냥 들이쳤어도 될 텐데?”

“그래도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공포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공포?”

“정말 적암도 사람들이 다 죽기를 바라십니까?”

“뭐, 뭐라!”

왕군이 눈을 부릅떴다.

그들은 야뇌슬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잠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눈만 끔뻑거렸다. 하지만 그들도 예전의 적암도 어민이 아니다. 중원 무림에 나와서 산전수전 다 겪고 백전노장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야뇌슬이 한 말을 알아들었다.

백랑도가 소리 없이 침몰된다. 또 다른 섬들도 자신들처럼 침몰될 것이다. 광서성, 귀주성 무인들은 손가락도 건드리지 않고 도련 무인만 골라서 척살한다.

그리되면 적암도 무인들이 휘하에 두고 있는 귀주 무인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자신들을 죽이지 않을 사람이 왔으니 죽을힘을 다해서 싸울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그는 도련 무인들을 장난감처럼 으스러트린다. 도련 무인들에게 겁을 집어먹을 이유가 없어진다.

도련은 당연히 분해된다.

적암도 무인들이 진신무공으로 야뇌슬과 싸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몇몇 섬만 무너트리면 그때는 련주가 직접 나서야 한다. 적암도 무인들의 희생이 많아지면 도련의 기반마저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나서기 싫어도 나서야 한다.

적암도 도민들을 모두 죽이지 않고 가장 빨리 련주와 만날 수 있는 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