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도검무안 142화]
第二十三章 주개(走開)! (1)
귀주성(貴州省) 적수위(赤水衛) 백철소(白撤所)에 백랑도(白浪島)가 존재한다. 백철소에서 동남향(東南向)으로 이십 리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하락밀소(下落密所)에는 암혼도(暗魂島)가 포진했다.
도련 이십 개의 섬 중에 귀주성에만 네 개의 섬이 존재하는데, 그 중 두 개가 적수위에 본진을 두고 있다.
적수위는 사천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당연히 반대쪽 땅, 사천(四川) 영우위(永宇衛)에는 사천 당문 무인들이 머무른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십여 리 쯤 떨어진 구성사(九姓司)에 아미파가 자리 잡았다.
적수위는 지금까지 무려 백여 회에 걸쳐서 거친 싸움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이 비명을 토해내며 죽었다.
사천 무인들의 피와 도련 무인들의 피가 한데 섞여서 흐른다. 땅을 적신다. 그러잖아도 ‘붉은 물’이라는 뜻이 들어간 적수위를 진짜 피로 물들인다.
서로가 팽팽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세했던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도련 무인들이 사용하는 오제의 무공은 눈부시다.
사천당문과 아미파도 만만치 않다. 아미파는 구파일방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은 대문파파이며, 사천 당문은 오대세가 중에 하나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들이 지닌 저력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들의 집약된 힘은 천년 무림의 정화라고 할 수도 있다.
희생은 많았다. 하지만 한 치도 밀리지 않은 저력이 정통성에서 흘러나온다.
더욱이 당문의 암기와 독, 그리고 화약은 놀라운 무공을 효과적으로 가로막는 병기가 되었다.
천만다행하게도 무공이 하늘을 울리던 도련 무인들이 사천 당문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어린아이가 불을 보고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매는 것 같다.
만약 사천 무림의 기괴한 싸움이 아니었다면 사천 무림 역시 귀주나 광서, 광동처럼 벌써 도련의 깃발 아래 무너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연유로 아미파보다 사천 당문이 최전선에 섰다.
도련이 교착상태를 명령한 이후, 적수위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간혹 우연히 마주친 양쪽 무인들이 돌발적으로 싸우는 게 고작이다. 그런 소규모의 싸움은 아직도 벌어지고 있지만 대규모 싸움은 사라졌다.
사천 땅으로 한 발짝만 들어서면 곧바로 사천 당문과 충돌한다. 독과 암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뒤이어서 기다렸다는 듯이 아미파의 지원군이 들이닥친다.
사천 무림은 적수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왕군(王涒)은 장창을 북두칠성 위치에 꽂아놓았다.
슷!
창 한 자루를 잡았다. 아니다. 잡는다 싶은 순간, 어느새 좌우로 내지른다. 보폭을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그 사이 그가 들고 있던 창이 제 자리에 꽂히고, 두 번째 창이 들려졌다.
쏴아악!
창에서 쇳바람이 일어났다.
마른번개가 나뭇잎을 두들기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일수십창(一手十槍)!
손짓 한 번에 십창을 담는다.
스읏!
발길이 또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어졌다.
뇌전자창 왕패의 무풍비류가 섬전처럼 흘러나온다.
몸을 움직이는 소리,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 장창 휘두르는 소리까지……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죽인다. 세상을 침묵 속에 몰아넣는다. 이것이 절정에 이른 무풍비류다.
파파팟!
이번에는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듯…… 있는 듯 없는 듯…… 장창이 움직이는가 싶었는데, 다시 한 번 두 눈을 크게 떠보니 움직이지 않는다.
횡찬(橫璨)이다.
무풍비류가 극에 이르면 모든 소리를 죽이는데, 그 속에 백이십구신창술도 포함되어 있다. 창을 내질러도 소리가 나지 않고,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를 횡찬이라고 부른다.
손에 잡고 있던 장창을 북두칠성 세 번째 자리에 꽂았다. 그리고 발을 내딛었다. 네 번째 장창을 움켜잡았다.
"타앗!“
처음으로 우렁찬 일갈을 터트렸다.
장창이 동서남북을 찔러댄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장창이다. 헌데 단장 두 자루를 좌우로 잡고 동시에 옆으로 찔러댄 것과 같은 환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서 앞으로도 똑 같은 환상이 번졌다.
몸통에서 창이 삐져나와 좌우로 퍼졌다. 똑같은 방식으로 앞과 뒤를 찔렀다. 그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창만 삐죽 삐져나왔다.
일수이창(一手二槍) 십분시(十分弑)!
창 한 자루로 두 가지 수법을 사용한다. 장 두 자루를 쓰는 것 같다. 동시에 열 방향을 찔러대지만 어느 방향인지 종잡을 수 없다.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것 같다는 착각을 준다.
그의 가문에서 전해지는 뇌전자창의 비전비기다.
“휴우!”
그는 네 번째 창을 쓴 다음, 큰 숨을 들이켰다.
겨우 네 단계!
아직도 북두칠성 국자 부분이 남았다.
여기서부터는 보법의 변화가 매우 심해진다. 국자 모양의 머리를 옮겨다니면서 십이환술을 써야 한다. 일수이창 십분시를 펼친 다음에 한 순간의 여유도 주지 않고 들이쳐야 한다.
헌데 그는 순간의 여유를 주었다.
숨을 고르지 않고 단번에 쭉 칠성(七星)을 짚으면 좋으련만…… 진기가 딸린다. 중간에서 한 번 숨을 몰아쉬어야만 나머지 삼성을 연결할 수 있다.
진기 한 모금으르 칠성을 쭉 밟으면, 그럴 수 있다면…… 그때는 한낱 도주 정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강자존!
누구든 강한 자는 도전하라!
그렇게 창을 쳐낼 수만 있다면 당장 련주에게 도전하리라.
이것은 꿈이 아니다.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이다. 차근차근히 수련을 해나가다가 보면 언젠가는 련주와 병기를 맞댈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반드시 이길 게다.
뇌전자창의 무공을 완벽하게 습득한다.
왕씨 일족에게 많은 비기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뛰어난 비기가 이것이다.
‘휴우! 아직도 여기서 쩔쩔 매다니. 일 년 동안 부단히 수련했는데도 진척이 없어.’
그는 고개를 내둘렀다.
근본적으로 진기를 함양시켜야 한다.
운공조식을 밤낮으로 취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땔감을 부지런히 태우는데 도무지 물이 끓지 않는다. 여전히 미적지근하다.
지금은 싸움도 없다.
도련에서 교착상태를 명했기 때문에 굳이 사천땅으로 쳐들어갈 이유가 없다.
저들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는다.
저들로써는 이쪽에서 쳐들어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감히 쳐들어온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아주 평화롭다.
이런 시기에는 무공을 수련하기에 적합하다.
눈을 뜨면서부터 잠을 이룰 때까지 하루 종일 무공만 수련한다. 외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시키고, 죽을힘을 다해서 장창을 찔러댄다.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장창을 잡는다.
도주가 되었으니 놀아도 된다?
많은 도주들이 계집을 끼고 흥청거리는 것 같은데…… 그런 짓은 야망이 없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강해져야 한다. 련주보다 강해져야 한다.
이곳은 환경도 적암도와는 다르다.
적암도처럼 궁벽하지 않다. 몸에 좋다는 영약을 실컷 복용할 수 있다. 오제의 무공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타 문파의 신공절기도 참고할 수 있다.
무공을 정진시키기가 훨씬 수월하다.
이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불철주야 노력했는데도 무공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는다. 사성을 넘어서 오성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나머지 삼성을 이루지 못한다.
왕가의 창법은 칠성(七成)이 만성(滿成)이다.
칠성만 이루면 모든 무공이 완성된다.
그것을 재는 척도가 바로 이 칠성진(七星陣)인데, 아직까지 오성을 넘지 못한다.
그는 다섯 번째 창에 흥미를 잃었다.
창술을 수련하고자 함이 아니다. 진기 한 모금으로 몇 합을 휘두를 수 있는지 점검하고자 함이었다.
그는 등을 돌렸다.
“시교혈랑대가 왔습니다.”
조카 왕청(王淸)이 달갑지 않은 말을 건네왔다.
왕군이 짜증이 확 치밀었다. 무공 정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불청객까지 찾아오다니!
“노모보가?”
"네.“
“그놈이 여긴 뭐하러?”
“야뇌슬을 쫓아왔다고 합니다.”
“흥!”
왕군은 코웃음을 쳤다.
왕씨 일족 중에도 놈에게 달라붙은 놈이 있다.
왕린…… 그는 적암도에서 죽었다. 섬을 나와보지도 못하고 야뇌슬이라는 풋내기에게 죽었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노모보는 이쪽 땅을 밟으면 안 된다. 도련주의 명을 받들고 중원으로 들어갔으니 귀환도 그쪽으로 해야 한다. 강서성을 내버려두고 이쪽은 무엇하러 왔는가.
시교혈랑대는 중원을 쭉 가로질렀다. 하남에서 사천성까지. 그리고 남하하여 자신에게 왔다.
그 뜻이 뭔가? 야뇌슬이 왔다!
시교혈랑대는 야뇌슬을 상대할 만한 인물들이 아니다. 놈들은 야뇌슬에게 대들지도 못한다. 그럴 것 같았으면 진작 중원에서 끝장냈어야 한다.
놈들은 구경하러 온 것이다. 자신들과 야뇌슬이 어떻게 싸우는지, 누가 이기는지.
“그놈들은 어디 있어?”
“대청에 데려다 놨습니다.”
“거긴 왜?”
“만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내가 그런 비린내 나는 놈들을 왜 만나? 쓸데없는 일을 했군.”
“그래도 련주님의 자식인데……”
“필요없어! 빈 방 하나 내주고, 식은 밥이나 줘. 내 앞에 얼굴 비치지 말라고 해.”
“그렇게까지 ……”
“잊었나! 그놈은 왕린이 죽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놈이야. 자신의 명을 쫓다가 죽었으면 하다못해 지전(紙錢)이라도 한 장 살려줬어야 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내치신다는 것은……”
“쯧! 그런 놈도 련주의 자식이라고 대접을 해줘야 하나? 련주도 버린 자식을 내가 왜?”
“객잔을 잡아주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왕군이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