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도검무안 140화]
第二十二章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 (6)
어쩌자는 말인가.
미와빙이 노모보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야뇌슬이 여기 온 것은 도련을 상대하기 위해서야.”
“안다.”
“우린 막을 수 없어.”
“안다.”
“하지만 지켜볼 수는 있어.”
“……!”
“놈이 도련을 아작내는 모습, 지켜볼 수 있어. 어떻게 무너트리는지 볼 수 있단 말이야.”
미와빙은 도련이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놈과 도련이 어떻게 싸우는지 지켜봐. 우린 보기만 하면 돼. 도련이 주는 밥을 먹으면서, 편하게 지켜보면 되는 거야. 그러면서 전략을 짜야지. 놈을 어떻게 무너트릴 수 있는지 허점을 찾아야 돼. 지금은 그 수밖에 없어.”
그녀가 조용조용히 말했다.
무림이란 곳은 무공이 강해도 무너지는 곳이다.
미와빙은 그런 말을 하고 있다. 야뇌슬이 무공이 강하지만, 허점은 반드시 있다. 그곳을 찾아서 쳐야 한다. 죽은 사람들의 복수는 그렇게 하자.
“후후! 와빙이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린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 저놈 결국은 도련과 싸우려고 할 테니 우리는 먼저 가서 기다리면 되겠군. 도련이 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미루극이 말했다.
“도련에 가서 기다린다 이거지? 도련이라고는 해도…… 그 사람들 우릴 반겨줄 리 없잖아? 후후후!”
노염백이 노모보처럼 야뇌슬을 쏘아보면서 말했다.
“그래도 따뜻한 밥은 주니까.”
“그 밥이 잘도 넘어가겠다.”
“호호호! 그런 자존심이 있으니 안 되는 거야.”
“지존심?”
“내 말 못 들었어?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쓰레기를 주면 쓰레기를 먹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숨죽이고 살아. 그래야 돼. 그럴 각오가 아니면 도련에 가지 마.”
미와빙이 차게 말했다.
그녀의 염려는 당연하다. 적암도 사람들은 시교혈랑대를 우습게 여긴다. 촌수로는 조카뻘 밖에 되지 않는 젊은이들이기에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한다.
시교혈랑대는 실수도 많이 했다.
물론 그들은 무림 한복판에 뛰어들어서 적의 군사를 죽였다. 도련과의 혼약을 파기한 대화금장의 장주도 죽였다.
이 두 가지 사건만으로도 시교혈랑대의 위상은 한 없이 높아진다.
도련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자신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해낸 일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다.
시교혈랑대는 여전히 야뇌슬을 죽이지 못한 바보들일 뿐이다.
도련에 간다? 가도 딱히 반겨줄 사람이 없다.
미와빙이 말했다.
“모두들 우리가 무슨 꼴을 당할지는 짐작하고 있을 테니까, 하늬나 충돌 일으킬 생각 하지 마. 그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야. 내가 그만 웅크리고 있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 그만 일어서라고 할 때까지…… 손톱 발톱 다 숨기고 살아.”
노모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귀가 있으니 미와빙이 하는 말을 모두 들었다.
미와빙의 주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야뇌슬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잘 살피자는 것이다. 그가 도련과 충돌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무공이 적나라하게 노출될 것이다.
또 하나는 빨리 음도를 깨우치라는 것이다.
그녀가 모든 것을 내주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모두 내주고 있다.
그녀는 예전처럼 노모보를 이용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그녀밖에 모른다. 그녀가 노모보 곁에 있는 게 단순히 그를 사랑해서 있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한 만큼 어떤 목적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도 목적을 위해서 다른 여자를 용납하던 그때의 그녀가 아닌 것도 확실하다.
그녀가 모든 것을 내주고 있을 때, 음도를 깨우쳐야 한다. 자신의 무공에 음도를 섞어야 한다. 쾌속하고, 위맹한 검공을 쳐내면서 은밀한 살수가 터져나가야 한다.
미와빙이 어떤 계략을 짜든, 결국 야뇌슬을 죽이는 것은 인간의 손이다. 검이다.
인간이 그를 치지 않으면 결코 죽일 수 없다.
그때를 대비해서 최강의 무공을 연성해 놓아야 한다.
노모보가 야뇌슬에게서 눈길을 거뒀다.
“도련의 멸시는 문제가 안 된다. 모두들 사촌지간 아닌가. 삼촌이 사촌이 질책을 한다한들 어때. 그런 건 마음에 담아둘 필요도 없지. 신경 쓸 것 없어.”
“그럼 도련으로 가는 거야?”
“가자며?”
“가는 게 제일 좋아. 아! 시원한 목욕이나 했으면 좋겠다.”
미와빙이 기지개를 쭉 켰다.
그들은 몸을 돌려 떠나갔다.
먼 길을 따라오면서 야뇌슬을 살폈지만, 기회를 엿봤지만…… 결국 그들은 빈손으로 떠나간다. 야뇌슬에게 검 한 번 들이대보지 못하고 물러선다.
뚜벅! 뚜벅! 뚜벅!
노모보는 힘 있게 걸었다. 하지만 그의 어깨를 축 쳐지고 있었다.
저들은 옛날에도 그를 찾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저들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염왕은 다르다. 염왕은 한 눈에 찾아낸다. 그의 이목을 속이고 십 장 이내로 들어서는 건 불가능하다.
저들은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있건만 옆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야복의 은신술을 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선대 야복은 이러한 은신술에 절대적인 자부심을 가졌다. 그래서 염왕도 죽일 수 있다는 광오한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또 사실이기도 하다.
염왕이 야복을 죽이고자 하면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다. 반대로 야복이 염왕을 죽이고자 하면 어림잡아서 하루, 하루만 기회를 노리면 죽일 수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그렇다.
이들과의 관계도 다를 바 없다.
자신이 이들 중에 누군가를 죽이고자 한다면 죽일 수 있다. 또 이렇게 숨어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저들 중에 어느 누구도 상대할 수 없다.
숨어있을 때는 왕이 될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면 누구에게든 잡아먹히는 표적이 된다.
야복은 무림에 살지만 무인이 아니다. 누구든 죽일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죽을 수 있다.
이 점을 잊으면 불행해진다.
그는 이런 점을 잊지 않았다.
침묵한다. 숨죽인다. 저들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날이 새고, 달이 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조심성이 그를 지켜왔다.
저들이 떠나간다.
야뇌슬도 저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눈치 챘는데, 야뇌슬이 눈치 채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노모보는 누이의 원수가 아닌가. 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흉이지 않나.
자신 같으면 백 번이라도 죽인다. 기회가 없어서 죽이지 못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기회도 닿고 무공도 준비되었으면 당장 쫓아나와 칼부림을 한다.
헌데 야뇌슬은 침묵한다.
무엇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염왕이 되고 난 후에 뭔가 많이 달라졌다.
스읏!
그는 몸을 일으켰다.
노모보, 미와빙, 탁태자, 미루극, 노염백…… 그들이 멀어져 간다.
***
쉬익! 쉬익!
야조 두 마리가 객잔 밖으로 빠져나왔다.
객잔 밖에는 무인들이 수십 명이나 숨어있다. 횃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둠을 환히 꿰뚫어보는 안광으로 객잔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야뇌슬이 묶고 있는 방은 바늘만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고 부심한다.
그런데도 야조는 객잔을 벗어났다.
쉬익! 쉬이익!
야뇌슬과 마록타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치달렸다.
“어휴! 이쪽에 험산이 많다기에 제까짓 게 많으면 얼마나 많으랴 싶었더니만……”
마록타가 혀를 내둘렀다.
험산협곡(險山峽谷) 그리고 잔도(棧道).
사천성을 일컫는 말치고 이처럼 정확한 말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는 게 모두 험산 사이에 나있는 잔도다. 그렇지 않은 곳도 많지만 사람이 모여 사는 도읍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즉시 산이 나타난다.
산도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바위산이 많다.
사방을 둘러보면 높은 산들로 이루어졌는데, 황량하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두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 내처 달렸다.
“우리 맞게 가는 간기?”
“그건 내가 물을 말 아냐? 시종이 뭐하는 거야?”
“하!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 이거지. 길을 아는 척 한 건 누군데? 정말 길 잃은 거야?”
“따라오기나 해.”
그나 마록타나 사천땅이 낯선 건 마찬가지다.
두 사람 모두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다. 중원도 낯선 곳인데 하물며 사천은 오죽하랴.
하루종일 사천 지도를 쳐다봤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험산을 가로질러 간다는 게 여간 만만치 않다.
사실 자신들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확신도 없다.
야뇌슬도 마록타도 길에는 모두 자신 없다. 그러면서도 무조건 발을 떼어놓는다.
그만큼 무림인들이 그들에게 쏟고 있는 관심, 기대, 희망이 부담스러웠다.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싶다.
이 싸움에서 중원은 제 삼자다. 그들의 조언을 받을 일도 없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하지도 않는다.
저들과는 하등 상관없다. 그러니 떠난다.
두 사람이 밤길을 재촉한 것은 중원으로부터 훌훌 떠나고픈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객잔을 벗어나 험산을 달리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제야 비로소 자유를 얻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