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도검무안 138화]
第二十二章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 (4)
독고금과 모용아가 예상 밖으로 손발을 잘 맞추고 있다.
야뇌슬은 그런 점까지 신경이 돌아가지 않았다.
마차를 타고 사천성으로 가는 길…… 이 길 끝에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이 기다린다.
적암도 도민으로서 적암도 도민들을 죽여야 한다.
친구도 있고, 동생도 있을 것이고, 형처럼 따랐던 사람들, 숙부, 백부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이 길 끝에 있다.
싸움은 그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어머니를 죽였고, 누이를 죽였다.
섬사람들이 죽었다.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변가에서 무방비인 사람들을 도륙했다.
그들은 동족이기를 포기했다.
허나 그들을 죽인다는 건 여간 가슴 아픈 일이 아니다. 저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인가. 중원에서 누리는 약간의 행복을 위해서 적암도 형제들을 죽인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휴우!”
한숨이 새어나온다.
집중된 도련 무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보다도 아는 얼굴들, 친인척처럼 가깝게 지내온 섬주민들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몸에 검을 대야 한다는 사실이 괴롭다.
모르는 사람은 쉽게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그들과 함께 어울렸던 과거까지 모두 죽여야 한다. 마음 속으로는 그들과 연관되어 있는 모든 식솔들까지 베어내게 된다.
드르렁!
미록타를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잠들어 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마록타가 부럽다.
그는 적암도 사람들에게 미련이 없다. 죽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
인간적인 관계를 쌓지 않았다는 것…… 그런 점이 처음으로 부럽다.
***
산을 굽이돌고 강을 건너서 사천성에 도착했다.
“저곳이 사천성입니다.”
한 달 동안 마차를 몰고 온 마부가 말했다.
그는 지난 한 달 동안 딱 그에게 부여된 임무만 말했다.
도착했다. 쉰다. 음식을 준비했다. 필요한 게 무엇이냐? 이곳이 어디다. 등등등!
그 외에 개인적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그 먼 길을 이동하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고 시종 역할만 했다.
“저게 시종이야. 앞으로 저렇게 해.”
“제길! 꿈을 꿔라. 어떻게 저렇게 해!”
마록타와 이런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맡은 임무에만 충실했다.
마부가 마지막 목적지를 말했다.
“들어갈까요? 객잔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
“오늘 들어가지 싫으시면 야숙(野宿)을 준비하겠습니다.”
“……”
야뇌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형제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가. 아니면 설득할 공간이 남아있는가.
모조리 죽인다면 일이 조금 쉽다.
마록타가 그런 일을 잘 한다. 아직 시켜본 적은 없지만 그런 일에는 딱 제격이다.
남몰래 숨어들어간다.
한두 명씩 숨을 끊어놓는다.
그런 일이 뭐가 그리 어렵겠나.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쉽고, 단결을 무너트리기도 좋다.
상대가 도련이지만, 이쪽도 적암도 사람이다.
요리조리 적암도 도민들을 피해 다니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들의 눈길을 속여 왔다.
적암도 도민들을 상대하는데, 마록타처럼 적임자도 없을 게다.
도민들을 죽이지 않는 방법? 그것은 굉장히 어렵다.
저들 중에 한두 명 정도는 옛일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도련주와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저들을 설득해서 검을 내려놓게 만드는 일은 너무 힘들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먼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순서다. 자신이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단지 죽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저들을 설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과연 저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원혼, 어머니의 비통함, 누이의 애절함을 외면할 수 있을까? 저승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그분들의 영전에 술 한 잔 따라드릴 면목이 설까?
가족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도주의 아들 입장에서 섬을 떠난 사람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은 섬을 떠나면서 많은 도민을 죽었다. 자신들이 직접 자신들의 검으로 친구를, 형제를 찔러죽였다.
사람의 탈을 먼저 벗어던진 것은 저들이다.
이런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는 이 부분을 고민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저들은 당연히 죽여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죽인다.
우염비와 왕린을 죽였다.
그때는 자신이 훨씬 약한 상태였으니 그들을 죽인 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곡문권과 장타홀을 죽였다.
그때쯤은 상황이 역전된 상태였다. 자신이 저들보다 강했다. 겨뤄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고양이의 사냥감으로 전락한 쥐일 뿐이다.
그런데도 가차 없이 죽였다.
저들은 죽여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죽였다. 그런 행동에 일말의 가책도 없다.
헌데…… 심등을 완전히 밝히자 마음이 달라진다.
왠지 모르게 동정심이 생긴다. 하등 불쌍할 게 없는 사람들인데, 불쌍한 영혼들로 비쳐진다.
그가 길을 오는 내내 고민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 저들이 불쌍하다.
그들이 저지른 죄는 죽어 마땅하나 죽음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사죄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저들이 그런 것을 받아들인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안 되겠지?’
이것도 자신만의 생각이다.
저들은 이미 권력을 맛봤다.
무공이 강한 자는 도주가 되어서 일개 성을 다스리고 있다. 또 그렇지 못한 자도 제각기 수하들을 거느리고 중간 두목 역할을 하고 있다.
중원인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한다.
중원에 있는 온갖 기진이보가 마음만 먹으면 수중에 들어온다.
황제도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다시 적암도로 돌아가서 숨죽이며 살아라? 그럴 수는 없다. 죽음? 죽여라. 다시는 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야뇌슬은 적암도 주민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 했다.
“어서 오시게.”
도복(道服)을 입은 사람이 반겼다.
“어서 와요.”
허리춤과 어깨에 비수를 차고 있는 여인이 말했다.
야뇌슬은 중원의 예법에 따라 포권지례를 취했다.
도복을 입은 사람은 청성파의 고수다. 사천성에서는 거의 제왕이나 다름없는 초절정 고수다.
장문인의 사제 명하(明荷) 진인(眞人)!
허리와 어깨에 비수대를 차고 있는 여인은 사천여호(四川女虎)라고 불린다.
여자가 호랑이라고 불린다.
사천당문의 안주인으로 싸울 때의 모습이 사내들보다 더 사납다.
이들은 서무림의 지존들이다.
이들은 청해, 사천, 귀주, 운남으로 이어지는 서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절정고수들이다.
자신의 말이 곧 법인 사람들이 야뇌슬의 주위를 에워쌌다.
“맹으로부터 연락받았네. 군사의 편지도 접했고. 도련주와 싸워본 경험이 있다고?”
여장부가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녀의 눈길은 매우 차갑다. 싫고 좋은 느낌이 일절 배제된 일명 ‘죽은 자의 눈길’이라서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싸워본 경험이라기보다는 죽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도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솜씨”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안다.
중원 무인들은 한결 같이 오제의 무공을 궁금해 한다. 이들처럼 무공이 절정에 달한 사람일수록 어떤 식으로든 겨뤄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호승심을 사천무림에서까지 볼 줄은 몰랐다.
이들은 도련과 싸우고 있지 않은가. 도련 무인들의 무공을 신물 나게 겪지 않았나. 그런데 또 무슨 무공을 보고자 하는가. 더 고절한 무공을 보여주면 상대할 수 있는 파해법이 즉각 떠오르는가?
야뇌슬은 피곤함을 느꼈다.
이들과 교분을 나누자고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서 도련을 물리쳐줄 사람인가 아닌가 점검받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다. 앞으로 도련과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도움을 빌릴 경우는 전혀 없다.
즉, 이들과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다.
솔직히 말하면 마중이랍시고 나오지 않는 게 더 좋았다. 그냥 조용히 혼자 있게 해주는 게 좋았다. 어차피 더 이상 볼 사람들도 아닌데 무엇 하러 왔는가.
이들은 자신이 서무림과 함께 도련을 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당신들과 함께 도련을 칠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도련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
죽더라도 자신의 손에…… 도주의 아들 손에 죽어야 한다. 그래야 구천 원혼들의 한이 풀린다.
야뇌슬은 즉시 포권을 취했다.
“죄송하지만 먼 길을 와서 몸이 영 좋지 않습니다. 오늘은 여장을 풀고 푹 쉬었으면 합니다.”
“허허! 무인이 그까짓 여정가지고……”
명하진인은 놓아줄 생각이 없다.
야뇌슬이 소문처럼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고수다운 면모가 전혀 읽히지 않는다.
이 자가 하늘도 움직일 수 있다는 바로 그 야뇌슬이 맞는가.
구파일방 장문인들이 하남에 모여 있다. 거기서 군사 모용아와 함께 무림대사를 논의한다. 실행한다. 그런 사람들이 야뇌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바로 그 젊은이가 맞는가.
야뇌슬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무인의 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다 못해서 젊은 결기마저도 엿보이지 않는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 같다.
이것이 심등의 효과다.
심등은 그를 자연인으로 변모시킨다.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으로, 그런 성격으로, 그런 인상과 풍모로…… 내면에서부터 외면까지 모두 바꿔놓는다.
심등을 깨우친 지 이제 겨우 한 달, 그 한 달 동안 그는 무인의 때를 완전히 벗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