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도검무안 131화]
第二十一章 겨울이 간 후 (3)
지금 이 순간, 심등의 진실을 깨우치지 않았다면 아직도 적엽비화가 염왕의 무학인 줄 알고 있을 게다.
적엽비화는 잊어도 좋다.
그것은 염왕의 대표적인 무공이 아니다.
염왕의 대표적인 무공이란 건 없다. 초식이이나 검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심법이나 구결이 따로 있지 않다. 가슴에서 일어난 빛을 따라가면 그것이 곧 염왕의 무학이다.
일심불광!
일심불광만 몸에 지니면 끝난다. 그 다음부터는 몸으로 표현되는 모든 움직임이 무공으로 표현된다.
길을 걷는다. 그것이 무공이다.
밥을 먹는다. 그것도 무공이다.
다른 사람이 행동하면 일상생활이 되겠지만, 그가 행하면 무공이 된다.
추측컨대, 아마도 염왕은 무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무공에 탐닉한 사람은 절대로 일심불광을 터득할 수 없다. 일심불광은 순순한 본성으로 알아채는 것이기 때문에 무학의 기존 틀에 얽매인 사람은 찾아낼 방도가 없다.
염왕은 일심불광을 습득했다.
어떤 이유로든 간에 일심불광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제를 만났다. 헌데 무공을 배우지 않은 그가 오제를 이겼다. 그들을 능가했고, 짓눌렀다.
삼백 년 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오제는 답답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들이 펼치는 모든 무공을 염왕도 펼칠 수 있다. 심등으로 밝히면, 어떠한 몸짓도 가능하기 때문에 따라서 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는 오제의 무공을 수련했다.
그렇다. 이게 순서다.
그는 일심불광을 배웠고, 오제의 무학을 염탐하면서 도둑 수련을 했다.
그 다음에는 능가했다.
오제의 무공을 알고 난 다음에는 자연히 파해법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장녀스럽게 파해할 수 없는 방법이 떠올랐을 게다. 그러니 그가 한 발 더 앞서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일이 그렇게 된 게다.
오제는 영원히 염왕을 따를 수 없다.
그들이 어떤 무공을 창안해내더라도 일심불광으로 올바름을 지켜보고 있는 한,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거짓된 행동에 속지 않는다.
진실된 행동만 읽는다.
천하의 모든 절기가 일심불광 속에 녹아있다.
헌데…… 그런면 마록타의 존재는 또 무엇인가? 염왕은 왜 마록타라는 보안 장치를 마련했을까? 자신이 잘못되면, 염왕의 길을 가지 않으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비장의 한 수는 무엇인가. 그런 수를 왜 남겨놓았을까?
과연 마록타가 알고 있는 비기는 무엇인가.
그것으로 자신을 해할 수 있을까? 지금 같아서는 해칠 수 없을 것 같다. 마록타가 아무리 뛰어난 은신술을 펼치더라도 그의 눈길을 속이지는 못한다.
심등, 일심불광은 모든 은신술을 찾아낸다.
마록타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
그런데도 염왕은 마록타라는 장치를 마련했다.
도대체 옆으로 빗나가는 일이란 게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은 없다.
삼백 년 전의 염왕이 정도를 걸었다고 해서, 그의 후인이 반드시 정도를 걸으라는 법은 없다.
후인 중에 마인이 나오면 어떤가?
일심불광은 마공도 재현해 낸다. 천하에서 가장 사악한 무공도 펼쳐낼 수 있다.
신뢰삼검으로 소림사 방장을 죽이면 신뢰삼검은 마공인가, 정공인가. 자신은 마인인가, 정도인인가. 그때는 자신만 마인이 되는 것인가. 신뢰삼검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인가.
혹여 나쁜 길로 들어서면……
그런 것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삼백 년 전에 죽은 사람이 후인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죽으면 끝이다. 이 세상과의 인연은 완전히 놓아야 한다. 그것이 일심불광이 가르치는 바이다.
마록타라는 장치는 심등을 완전히 파악하기 전까지만 유용하다.
어설프게 일심불광을 배워서 무공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지금 자신은 무공을 완성했다. 일심불광을 완벽하게 깨우쳤다. 온 몸이 일심불광으로 가득차 있다. 몸 뒤에 부처님의 광휘가 휘엉청 늘어진다.
마록타가 자신을 죽일 일은 없다.
정도가 아니라 마도를 가더라도, 지금부터 온갖 사악한 짓을 다 해도 죽일 수 없다.
또 자신이 염왕의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갈 이유도 없다.
염왕의 길이란 게 공명정대한 길인 이상 옆으로 빗나갈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마록타가 나서기 전에 일심불광이 먼저 제동을 걸어올 것이다.
잘못됐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됐어.’
그는 손에 든 나뭇가지를 버렸다. 그리고 다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않았다.
멀리서 깨알 같은 점이 달려온다.
마록타일게다. 시장에서 개방도가 재빨리 달아나는 것을 봤다.
"후후! 술 에 취해 있다가 벼락 맞았겠군.“
마록타는 어떤 심정으로 소식을 전해 들었을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는 웃었다.
***
“점심은 어떻게 할까?”
오랜만에 만났다. 한 계절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보냈다. 하지만 첫말은 평범했다.
마음 속에는 수만 마디의 말들이 맴돈다.
원망이나 푸념도 있다.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뭘 이루기는 한 것인지…… 물어볼 것이 태산처럼 많다.
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지난 일에 대해서 일체 함구했다. 야뇌슬이 얻었을 무공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얼굴을 봤다.
고뇌의 흔적이 없다. 근심걱정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편안한 얼굴이다. 사람을 쳐다보는 눈길도 온화하다. 벼슬을 곤두세운 투계(鬪鷄)의 사나운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엿볼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야뇌슬의 성취를 엿볼 수 있다.
굳이 입 아프게 물을 필요가 무엇인가. 그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만으로도 알 수 있는데…… 세상사가 꼭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목욕부터 하고 오지.”
야뇌슬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목욕?”
“냄새가 너무 나.”
“목욕!”
마록타가 언성을 높였다.
“술 냄새, 음식 썩는 냄새…… 어휴! 그동안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산거야?”
“목욕!”
마록타가 더욱 크게 언성을 높이며 한 걸음 다가섰다.
“허! 사람 치겠네.”
“지금 목욕할 사람은 누군데 그래! 허! 나보고 뭐? 목욕!”
“냄새가 난다니까.”
“지금 누구보고 목욕하래! 한 계절을 온이 시장바닥에 누워있던 놈이 누구야! 그동안 씻은 적 있어! 냄새가 나면 누가 더 나겠냐고! 토악질이 치미는 걸 간신히 참아주니까 뭐가 어째!”
“하! 무슨 놈의 종이……”
“종은 말도 못하냐!”
마록타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는 아침부터 만취한 상태였다.
여아홍을 두 단지나 마셨고, 취화선개가 보물처럼 여기는 천일취도 한 병이나 들이켰다. 허나 취기는 엿보이지 않았다.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푹푹 풍기고 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그럼…… 날도 좋고 하니 같이 하지 뭐.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시끄럿!”
마록타가 빽! 성질을 부렸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짓거리를 하면 주공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아!”
마록타는 시종 역할을 충실히 했다.
두 사람은 냇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야뇌슬만 옷을 벗었다. 마록타는 옷을 벗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더욱 진중해져서 시중을 들었다.
촤악! 촤아악!
야뇌슬이 시원하게 물을 끼얹는다.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을 쳐다보면서, 해풍에 단련된 단단한 근육을 환히 드러내놓고 알몸으로 목욕을 한다.
마록타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두 귀를 활짝 열어서 반경 십 장 안의 모든 동식물을 살핀다.
그는 언제든지 퉁겨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다.
주공이 목욕을 한다. 이 시간…… 목욕을 하는 이 시간만이라도 마음 편해야 하지 않나.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홀가분하게 한 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마록타는 그런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리고 또 이런 것이 바로 종복의 역할이다. 그는 주공이 잠을 편히 잘 수 있도록, 편히 쉴 수 있도록 보좌한다.
야뇌슬도 마록타를 간섭하지 않았다.
지금 마록타가 하고 있는 행동은 그가 가장 편하게 여기는 행동이다. 다른 어떤 행동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마록타에게는 가장 행복하다.
그는 염왕의 시종이었을 때 행복하다.
마록타로 존재할 때는 행복하지 않다. 야뇌슬이라는 한 인간의 친구일 때도 행복하지 않다. 술에 취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늘 늘어져 있다. 술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나뒤굴며 잠만 자고 있다.
그는 세상에 흥미를 잃었다.
염왕의 시종이 아닐 때,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
염왕의 시종으로…… 야뇌슬의 몸종으로 다시 돌아와 제 자리를 지킨다.
촤아악!
“아직 물이 차네.”
“물을 끓일까?”
“그 정도는 아니고.”
“그럼 따뜻한 차라도……”
“"좋지.”
“하!”
“또 왜?”
“차를 끓이려면 몸을 움직여야 되는데……”
마록타가 등 뒤를 흘낏 움쳐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