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도검무안 128화]
第二十章 부화(孵化)를 위해 (7)
야뇌슬은 찰나의 빠름을 얻었다.
그 빠름은 모든 무공을 무력화시킨다. 오제의 정공, 그리고 비기를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킨다. 어떤 암수도 간파해 버린다. 그리고 무식한 방법으로 깨트린다.
깡! 깡! 깡! 깡!
그는 화륜 소리를 기억한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때 그 상황…… 야뇌슬에게 무너지던 상황이 생각나면서 몸서리가 쳐진다.
귓가에 화륜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검에 맞아서 땅에 떨어지던 화륜!
그는 화륜을 떨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때 그 모습…… 악귀 같은 모습…… 난생 처음 한 인간에게서 죽음의 어두운 면을 봤다.
놈의 무공 중에 비기에 속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적암도 무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초식들이다. 이십사 무동을 칠성 출관한 무인이면 모두 펼칠 수 있다. 그런 초식에 단지 찰나의 빠름만 덧붙였을 뿐인데…… 무적이 되었다.
자신도 찾아내야 한다.
불가능하지 않다. 안 되는 일이 아니다.
과거, 오제가 염왕을 무너트린 마지막 일수는 정공들을 가지고 만든 것이다.
비기는 당시에도 노출되지 않았다.
오제가 어떤 사람들인가. 자신만 알고 있는 암수를 드러낼 사람들이 아니다.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최후의 절토다.
그것을 내놓는 순간, 그는 오제 중에서 최하위로 전락한다.
그런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기를 내놓지 않는다. 염왕을 무너트리지 못하더라도 비기만은 꼭 간직한다.
정공…… 이 속에 답이 있다.
어쩌면 야뇌슬이 얻은 ‘찰나의 빠름’이 해답은 아닐까? 과거 오제는 그 수를 찾아냈던 게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야뇌슬이 정공 속에서 찾아낸 것이 그것이니, 그 찰나의 빠름이 염왕을 무너트린 마지막 수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가 찾아냈다면 자신도 찾아낸다.
그는 비급들 속에 파묻혔다.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잘 되는 놈을 길을 가다가도 돈을 줍고, 재수 없는 놈은 큰 길을 가면서도 똥을 밟는다.
그들 앞에 여러 장의 그림이 쫙 펼쳐졌다.
야뇌슬이 거지가 되었다는 소리는 들었다.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도 들었다. 시교혈랑대를 박살낸 영웅인데, 칼을 잘못 맞아서 정신이상자가 되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 소문들 중에 진실은 시교혈랑대를 박살냈다는 것밖에 없다.
그들이 듣기에는 그렇다.
그런데…… 정말 거지가 된 그림이 펼쳐졌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끄응! 이건가!”
노염백이 탄식했다.
미와빙이 펼쳐놓은 그림은 기가 질리게 만든다.
다른 사람이 보면 페인이 되어가는 모습이지만, 그들은 섬뜩함을 봤다.
이 그림은 너무 잔인하다.
그림에서 화공의 마음이 읽힌다.
화공은 그림을 그리면서 최대한 정성을 다했을 게다. 처음 붓을 잡을 때는 아무렇게나 야뇌슬의 모습만 그리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화선지에 먹물을 데는 순간, 그의 마음은 청정상태에 들어섰다.
야뇌슬이 모습이 그런 마음을 이끌어냈다.
한낱 화공의 마음조차도 움직였다.
“일심불광……”
“미치겠군.”
“어디로 쳐야 되는 거야. 도대체 틈이 없잖아.”
그들은 한 마디씩 중얼거렸다.
야뇌슬이 그림에 그려진 모습으로 검을 든다면, 마주서있다면 어디를 어떻게 쳐야 할까?
생각나지 않는다. 칠 곳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무인이다.
상대가 틈이 없어 보인다고 해서 물러선다면 검을 들 자격이 없다. 없는 틈 속에서도 허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살을 찢고, 뺘를 추려내야 한다.
무인이 싸우고 싶은 상대와만 싸우는 게 아니다.
어떤 때는 정말 싸우기 싫은 상대와도 싸워야 한다. 야뇌슬처럼 완벽해 보이는 무인과도 싸운다.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그때까지 틈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당한다.
“흠! 우리 같이 해보는 게 어때?”
노염백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군.”
미루극이 동조했다.
탁태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와빙은 먼저 일어서버렸다.
“난 노모보와 같이 있을래. 잘들 해봐.”
스스스슷!
그녀는 은밀히 스며들었다.
바람이 분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서는 바람이 일어나지 않는다.
개미가 땅을 기어간다. 사박사박 조그만 발로 꼬물거리면서 땅을 기어간다. 하지만 그녀가 내딛는 발걸음에서는 모래 떨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그녀는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음도를 행할 때는 그 좋아하는 향유도 삼가한다.
하루 이틀 삼가해서는 안 된다. 향유는 몸에 베이기 때문에 적어도 십여 일 전부터는 아무 것도 바르지 말아야 한다. 땀도 흘리지 말고 자연 상태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음도를 쓰는 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스으윽!
그녀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노모보의 등 뒤로 다가섰다.
스윽!
드디어 칼을 쓴다. 노모보의 등에 칼을 박는다.
칼도 무기다. 그리므로 살기를 띄운다. 예기도 흘러나온다. 쇠의 철기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기운을 죽인다. 아무런 기운을 내뿜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적이 없는 물체가 허공을 흘러간다. 일체의 파공음도 흘리지 않고 다가선다.
쉭! 탁!
노모보가 뒤돌아서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조심해야지. 잘못 했으면 손목을 부러트릴 뻔했다.”
“늦어. 많이.”
“그놈과 비교하지 마라. 많이 늦는 거 안다.”
“야뇌슬은 훨씬 빨랐어.”
“그렇게 비교하면 기분이 좀 풀려?”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마. 기분 풀려고 이런 소리 하는 거 아냐. 이걸 해보면 어때? 음도.”
“음도?”
“얼핏 생각해 본 건데…… 화륜의 기본은 무영신법이야. 무영신법을 바탕으로 화륜을 펼쳐야 돼. 화륜의 강함, 무영신법의 쾌속함. 이게 화륜을 구성해.”
“아!”
한 마디면 백 마디를 알아듣는다.
음도 자체는 별 것 없다. 그것으로는 야뇌슬을 무너트리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미와빙이 직접 부딪치면서 시험해 본 것이기 때문에 확인할 필요도 없다.
음도에 하나를 더한다.
무영신법을 버리고 음도를 취한다.
그렇다고 화륜을 취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음유구도의 기본은 무음(無音), 무성(無聲), 무형(無形)인데, 화륜은 소리를 낸다. 그것도 아주 강한 소리를 낸다.
미와빙의 음유구도가 실패한 것도 음유구도 속에 천왕구참도의 묘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둘은 양도와 음도로 구분된다지만,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천왕구참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신뢰삼검!’
노모보는 즉각 생각되는 게 있었다.
오제의 무공 중에서 소리 나지 않고 은밀하게 펼칠 수 있는 무공 중에 가장 빠른 공부는 혈우마검의 신뢰삼검이다.
천왕구도는 소리가 난다. 뇌전자창이 창법도 소리가 울린다. 현현화륜은 말할 것도 없다. 흑조탄궁술…… 생각도 말자.
신뢰삼검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검을 뻗어낼 때, 뇌성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신뢰’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맞다. 하지만…… 신뢰삼검에도 비기가 있다.
그는 신뢰삼검을 소리 나지 않게 펼칠 수 있다. 음유구도 속에서 도를 빼내고 검을 섞으면……
“음!”
‘가능성 있어!’
노모보는 방법을 찾았다. 될 지 안 될지는 수련을 해봐야 안다. 하지만 일단은 긍정적이다.
“음유구도는 미가(米家)의 비전인데, 괜찮겠어?”
“괜찮아. 이제 다시는 날 안 버릴 거잖아.”
“버리지 않아.”
“그럼 안아줄래? 잘 생각하고 안아. 한 번 안으면 절대 놓지 못하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노모보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안았다.
미와빙이 음도를 내놓는다. 미가의 비전비기를 내놓는다. 천왕구도 미립강의 공부 중에서 최고의 비기라고 여겨지는 것을 아낌없이 준다.
이것은 매우 큰 희생이다.
이로써 적암도 오가 중에 미가는 최하위로 전락한다.
이들이 비기를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이들의 비기를 절정으로 수련하면…… 최소한 미가는 노가의 하위에 속한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노가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미가가 되는 것이다.
미와빙이 지금 하는 일이 그것이다.
과연…… 미와빙이 그런 희생을 치를까?
후후후! 절대 그럴 리 없다. 미와빙은 절대로 손해를 보는 여자가 아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동귀어진을 할 수 있는 화살 한 대는 손아귀에 쥐고 있는 여자다.
그녀에게는 음도가 소용없다. 야뇌슬을 상대할 수 없는 공부는 모두 쓸모없다.
지금은 그렇다.
그녀는 음도에 신뢰삼검을 싣고 싶다.
정공의 신뢰삼검이 아니라 비기를 싣고 싶다.
그녀는 신뢰삼검의 비기를 찾아봤을 것이다. 그래서 발견했다면 그녀가 직접 수련했을 게다. 그러고도 남는다.
그녀는 비기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준다.
물론 음도를 내놓는 조건이 있다.
그녀는 노모보의 수련과정을 일일이 지켜볼 예정이다. 신뢰삼검의 비기를 달라는 소리다. 자신의 음도와 맞바꾸자는 얄미운 교환 제의다.
안아 달라.
이것이 그녀가 노모보의 곁에 있겠다는 신호다.
네 여자이니까 네 곁에 있어도 된다.
네가 설혹 폐관수련을 한다고 해도 같이 있겠다. 음도를 가져가려면 허락해라.
안아 달라는 말 속에는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노모보은 그런 점을 안다. 알면서도 그녀의 허리를 붙잡는다.
“우리 언제나……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
“사랑해야지. 널 사랑할 거야.”
“호호호! 우리 사이에 사랑…… 사랑은 없어. 육제척인 탐닉이 있고, 야망이 있고…… 그거면 되잖아? 지금은 무공애만 집중해. 아니다. 내가 실수했네. 지금 집중할 건 다른 거지?”
“그래. 다른 거야.”
노모보는 미와빙을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힘껏 빨아들였다.
그녀의 나긋나긋한 손이 온몸을 더듬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