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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125화 (12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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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125화]

第二十章 부화(孵化)를 위해 (4)

때 되면 온다!

이 말은 많은 질문을 남긴다.

무슨 때? 당장 그가 말한 때가 무슨 때인지 궁금하다. 그가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독고금과 모용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야뇌슬이 때를 이야기했다.

그 때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도련과 중원 무림의 평화와 관계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일에 관한한 아직은 그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시교혈랑대가 사라졌다.

그도 움직일 때가 아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잘 생각해보면 그가 말한 때라는 것이 대충 짐작된다.

시교혈랑대가 다시 나타날 때!

그동안 중원 무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도련이 급박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지금 이 상태에서 크게 변동될 여지는 없다.

아마도 지금 이 상태로 고착되기 십상이다.

“후우!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

“이 직책 정말 못해먹을 일이에요.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요? 나 두 번 다시 군사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그런데 왜 한다고 했어?”

“정보 좀 편하게 보려고요. 호호! 정말 치기였다니까요.”

“잘하고 있는데 뭘.”

“잘하기는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했는데요. 그런데 언니는 왜 안 도와줘요?“

“말해.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게.”

“돈은 아직 괜찮고요. 필요할 땐 언제든지 옆에 있어준다고 약속해요.”

“호호호! 내가 동생 연인이라도 돼?”

“약속해요.”

“그래, 약속해. 호호호!”

독고금이 환하게 웃었다.

모용아는 대화금장의 금력을 이용해서 정예무인들을 양성할 생각이었다. 사천당문의 온갖 영약과 독물을 투입하고, 무림문파의 절기를 이용하고, 모용가문에 전해지는 철시공(鐵尸功)을 이용해서 도주들을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을 길러낼 심산이었다.

그 모든 계획을 일단 중지한다.

그 문제는 야뇌슬을 만나서 상의해야 될 것 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고, 또 돈도 너무 많이 들어간다.

“이제 그 사람 만나러 가야겠어요. 얄미워서 안 가봤는데…… 같이 가요.”

“둘이 즐겨. 난 할 일이 있어.”

독고금이 돌아섰다.

‘휴우!’

모용아는 그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어찌 독고금의 심경 변화를 어찌 모르겠는가.

야뇌술을 바라보는 독고금의 눈빛을 어찌 모르겠는가.

이미 호기심을 넘어섰다. 눈길에 진한 정념을 담기 시작했다. 추여룡이 죽었을 때부터 지나치게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해서, 장주가 죽는 시점부터는 확 바뀌었다.

야뇌슬을 사내로 보고 있다.

여인은 여인이 안다.

여인의 직감은 그 어떤 증거보다도 강하다.

독고금이 야뇌슬을 마음에 두고 있다면…… 노모보가 그녀를 얻고자 했던 이유, 세상을 움켜쥘 수 있는 힘이 야뇌슬에게 쥐어진다는 뜻이지 않나.

야뇌슬을 일약 무림 제일의 사내로 둔갑시킬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

‘그럼 나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안다.

그와 같이 지낸 게 벌써 석 달이 넘어선다. 백일이 훌쩍 지났다.

그가 마음속에 들어와있다.

‘휴우!’

한숨만 나온다.

***

석전검사는 야뇌슬이 눈을 감고 앉아서 묵상중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그의 상태를 아주 좋게 말한 것이다. 듣기 좋으라고 거짓말을 살짝 보탰다.

야뇌슬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은 맞다.

그는 두 발을 쭉 뻗고 누워있다. 더러운 저자거리…… 구정물이 흘러서 질퍽거리는 땅바닥에 아주 편하게 누워있다.

씻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머리는 봉두난발이고, 대화금장에서 입고 나온 옷은 땟국이 자르르 흐른다.

영락없이 거지다.

모용아는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뭐해?“

야뇌슬은 그녀의 말에 응답을 하지 않는다. 잠을 자는지 숨결이 매우 고르다.

모용아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응?”

야뇌슬은 그제야 눈을 부스스 떴다.

무인이…… 몸을 흔들어 깨울 정도가 되어서야 눈을 뜬다는 것은…… 이렇게 긴장을 풀고 있어도 되는 건가? 아니면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건가?

몸이 아픈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할 정도로 야뇌슬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왔어?”

야뇌슬이 귀찮은 듯 힘들게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여기서 뭐해?”

“잠 자.”

“잠? 그래. 집에 가서 자.”

“집 없어.”

“집 없는 건 알아. 내가 잠 잘데 알아봐줄게. 거기서 자. 이런 데서 자면 입 돌아가.”

“하하하! 농은 여전하구나.”

야뇌슬이 활짝 웃었다.

“다시 물어. 여기서 뭐해?”

그녀의 표정이 진지했다.

“알아볼 게 있어서.”

“뭘 알아보는데. 이 꼴로 알아볼 수 있는 게 뭔데?”

모용아의 말투가 거칠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배시시 웃고 있다. 속상하지만 억지로 참고 있다는 투다.

말 그대로다. 야뇌슬의 모습이 속상하다.

피부에 더러운 때가 달라붙었다. 잔뜩 찌들어서 갈라지기까지 한다. 목에도 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입 냄새도 난다. 아니, 몸 전체에서 마치 쉰 듯한, 썩는 듯한 냄새가 풍긴다.

사람이 악취에 찌들어가고 있다.

개방 거지들도 이렇게까지 더럽지는 않다. 그들도 씻지 않고 아무 곳에나 누워서 잠들지만, 야뇌슬을 그들보다 훨씬 심하다. 완전 상거지 중에 상거지다.

“알아볼 거 알아보고…… 힘들면 갈게.”

“같이 가.”

“이곳은 발길이 가장 빨리 닿은 곳이야. 무슨 뜻인지 알지? 현명하니까 이곳에 머물렀어. 그렇지 않았으면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갔을 거야. 그러나 저러나 네 얼굴 보니까 좋다.”

“정말?”

“응. 좋아.”

“그럼 같이 가.”

“뭐? 하하하하! 너 그런 표정으로 말하니까 꼭 누님 같다.”

“그 누님…… 못 생겼다며?”

“누가 그래?”

“마록타가.”

“하! 무슨 놈의 시종이란 자가 뒤에서 주인 욕이나 하고……

”야뇌슬이 궁시렁거렸다.

이런 모습을 보니 다소 안심은 된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거 나쁜 일은 아니지?”

“걱정 마. 말해줘도 몰라. 말할 수도 없고. 말할 수 있으면 말해주겠는데, 말할 수 없는 거라서 말 못하는 거야., 안심하고 가. 난 정말로 괜찮아.“

“목욕물 언제 준비해 놔?”

“글쎄…… 아직은 이대로 있고 싶어.”

모용아는 야뇌슬이 건강하다고 판단했다.

몸이 건강하다는 말이 아니다. 몸은 망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건강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야뇌슬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건강한 상태다.

그녀는 백합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 또 와?”

“오지 마. 소식 전해 듣잖아.”

“오니까 얼굴 보고 좋다며?”

“좋기는 한데, 오지 마. 한 번 왔다 가면 마음이 싱숭생숭 해져. 오늘도 오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네가 가고 나면 한동안 이상할 것 같아.”

“호호호! 그거 사랑 고백으로 들어도 돼?”

“……”

야뇌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모용아라는 여인을 사랑해도 될 것 같아서. 아니, 무엇보다도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서.

예쁘다. 사랑스럽다.

“고마워.”

모용아가 그의 두 손을 잡았다.

땟물이 자르르 흐르는 그의 손과 티 한 점 없이 맑은 섬섬옥수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거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데, 빨리 끝내고 와서 나 좀 도와줘. 너무 힘들어서 미치겠어.“

“후후후!”

야뇌슬은 웃었다.

그의 눈이 샛별처럼 맑게 빛난다.

‘아!’

모용하는 탄식을 토할 뻔했다.

그녀는 진정 이토록 맑은 눈동자를 본 적이 없다.

야뇌슬의 눈동자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맑다. 부드럽다. 빛이 반짝반짝 난다.

‘깨끗해.’

이상하다. 야뇌슬은 더없이 지저분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 깨끗함을 보았다. 그의 곁에 앉아있기도 불편할 정도로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는데, 그런대도 깨끗한 모습이 비친다.

역시 이 사람,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 여기 조금 더 있다가 갈께.”

모용아가 그의 곁에 앉았다.

노모보와 싸우면서 아주 큰 깨달음을 얻었다.

도련주와 싸우면서 얻은 것만큼이나 큰 깨달음이다. 자신의 정신세계를 확 바꿔놓을 정도로 획기적인 깨달음이다.

소리를 듣는다.

소리 속에 자신을 맡긴다.

세상은 많은 말을 한다. 온갖 말들은 한다.

만두 사세요., 총각, 배추 사요, 무 사요…… 그 사라들의 소리가 칼이 되고, 화살이 되어서 날아든다.

귀로 소리를 듣는다.

저 소리와 자신은 상관없다. 진정코 아무 상관이 없다.

만두를 사라? 자신은 만두를 사먹지 않는다. 그러니 만두 파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만두 사세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만두장사가 말하니 귀에 들린다. 그리고 마음이 즉시 반응한다. ‘만두’라는 말만 듣고도 입에서 군침이 돈다.

돈이 없다.

돈이 있어서 언제라도 사먹을 수 있는 사람 같으면 만두라는 말에 군침이 돌지 않는다. 사먹을 수 있는 사람이 사먹지 않는 것과 사먹을 수 없는 사람이 멀거니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 많이 다르다.

그는 사먹을 수 없다.

자신을 사먹을 수 없는 상태에 놓았다.

어떤 것도 사먹지 못한다. 하다못해 돼지 뼈다귀를 고운 국 한 그릇 사먹지 못한다.

저잣거리에는 먹을 것이 많다. 너무 많다. 하지만 그 중에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먹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든 말이 자신과는 상관 없다.

귀로 들리는 모든 소리를 무시해도 좋다.

다른 장사도 마찬가지다. 옷? 사 입을 수 없다. 헝겊 한 조각 사지 못한다.

옷 장사가 하는 모든 말도 무시한다.

자신과 무관한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자신의 세계다. 저들은 말하지만 자신은 반응하지 않는다. 듣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듣지 말라. 반응하지 말라.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눈에 보이고…… 오감으로 전해지는 인간 세상의 모든 현상들이 자신과 일체 상관없다.

자신이 상관할 것은 입고 있는 옷 한 벌, 그리고 공기.

이것 밖에 없다.

욕구를 무공으로 억누르지 마라.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 두라. 억지로 진기를 이끌어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두면서 무관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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