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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124화 (12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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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124화]

第二十章 부화(孵化)를 위해 (3)

안주도 좋고 술도 좋고…… 취하면 두 발 쭉 뻗고 잠들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대화금장 사람들 모두가 야뇌슬은 안다. 마록타를 안다. 그들의 위치를 안다.

독고금의 엄명에 따라서 최고의 신분으로 대접받고 있다.

없는 게 없어서 하루하루가 즐겁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쓰레기나 주워 먹던 적암도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놓고 간다.

“넌 여ㅑ기 있어.”

“정말? 정말 그래도 되냐?”

“당분간 싸움이 없을 거야.”

“뭐? 그건 무슨 소리야?”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렇게 말해.”

“웬만하면 여기 있지 그래? 여기, 좋잖아. 키키키!”

“내 거취는 매 시간마다 보고로 접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술 너무 먹지 마. 술에 너무 정들면 저승가기 힘들어.”

“별 걱정을 다. 키키키키!”

“저놈의 종복!”

“키키! 주인놈아, 잘 가라!”

마록타가 술독을 입에 물었다.

그가 야복의 신분을 잊은 것은 아니다. 술이 아무리 좋아도 야복을 잊지는 않는다.

지금은 야뇌슬을 놓아줄 순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야뇌슬은 그를 뒤로 하고 휘적휘적 걸었다.

대화금장을 떠나는데 굳이 인사 같은 것을 할 필요는 없다.

마록타에게 말했듯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대화금장에 보고된다. 어디를 가나 항시 눈이 붙어 다닌다.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는 행동과 동시에 알려질 게다.

그는 대문을 벗어났다.

***

“이봐, 만두 좀 사. 아주 맛나다고!”

만두장사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만두로 유혹한다.

그냥 지나쳤다.

수중에 돈이 없다. 대화금장을 나오면서 동전 한 닢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봇짐도 없다. 손에 든 것 자체가 없다. 입고 있는 옷 한 벌 만 달랑 걸치고 나섰다.

“이봐, 총각! 이리와. 내가 잘 해줄게.”

얼굴에 붉은 물감을 잔뜩 칠한 듯한 여인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녀가 옆에 서자 지분냄새가 확 풍겼다. 술냄새 같기도 하고, 퀴퀴한 이부자리 냄새 같기도 한 묘한 냄새도 풍겼다.

그는 씩 웃었다.

여인은 그냥 손을 놓아버렸다.

여인은 그의 웃음 속에서 백수의 냄새를 맡았다. 땡전 한 닢 없는 빈털터리의 냄새란 아주 무미건조하다.

이런 여인들은 그 냄새를 아주 잘 맡는다.

“에잇, 재수 없어.”

뭐가 재수 없다는 걸까?

여인은 인상을 확 구기면서 멀어져갔다.

그는 저잣거리를 구경했다.

돌로 만들 패옥들을 구경한다. 머리빗도 구경하고, 좋은 옷감들도 살펴본다. 무나 배추 같은 야채도 구경한다. 강에서 잡아온 잉어가 아주 크다. 아직도 살아서 큰 눈으로 애처롭게 바라본다.

한 바퀴, 두 바퀴.

저자거리를 빙 둘러보다가 드디어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구석진 곳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저자거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좋군.’

그는 그곳에 앉았다.

“저 새끼는 뭐야!”

“새로 온 놈인가 본데.”

“흐흐! 새로 왔으면 자릿세를 내야지. 아무 데나 털퍼덕 앉아있으면 어떻게 해. 우린 뭐 땅 파먹고 사나.”

파락호들이 건들거리면서 다가왔다.

그때, 그들 앞에 걸인이 불쑥 나섰다.

“뭐하려고?”

파락호들이 걸인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이내 순한 강아지처럼 순해졌다.

“아! 분타주님! 분타주님이 여긴 어쩐 일로?”

그들은 두 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개방 분타주…… 저자거리에서 자릿세나 뜯어먹고 사는 파락호들이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다. 이 사람을 건드리면 자릿세마저 뜯어먹지 못한다. 아니, 자칫하면 팔다리가 부러진다. 평생 불구가 될 지도 모른다.

“어른이시다. 방해하지 마.”

“네? 아, 저 놈…… 아, 아니. 저 분이……”

“방해하지 말고 가!”

“네, 네. 알았습니다요.”

파락호들이 황급히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분타주도 야뇌슬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장터에 앉아있습니다. 오늘로 닷새째입니다.”

석전검사가 야뇌슬에 대해서 보고했다.

“장터에서 뭘 하는데요?”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자 두 눈 크게 뜨고 해답을 찾았다.

답이 없다.

“아무 것도…… 하! 뭘하는지 찾아봤습니다만 지난 닷새 동안 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하는 일이 없어요?”

“없습니다.”

“그럼 하루 종일 뭘 하면서 지내요?”

“그냥 거지처럼 앉아있습니다.”

그가 느낀 대로 말했다.

야뇌슬은 그냥 앉아있다. 하지만 그냥 앉아있는 게 아니다. 정말 거지처럼 앉아있다. 씻지도 않고, 머리도 감지 않고…… 누웠던 자리에 부스스 눈을 뜨면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멍한 표정으로 시장 구경만 한다.

영락없이 거지다.

“식사는요?”

“장이 파하고 나면 야채 부스러기 같은 것을 주워서 먹습니다.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어요.”

왜 그러고 사는지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야뇌슬이 하는 짓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그는 전중원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대화금장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지금은 그가 말한 성 하나 살 돈이 아니라 대화금장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내놓는다는 입장이다.

그 말은 모용아에게 했지만, 야뇌슬에게 한 말과도 같다.

그런 그가 거지가 되어가고 있다.

하루 종일 시장 바닥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면, 밤이 이슥해서 세상이 모두 잠에 들면 그제야 어슬렁거리면서 일어난다.

그는 아무도 없는 시장을 산책한다.

야채부스러기를 주워 먹기도 하고, 썩어서 버린 과일을 집어들기도 한다.

석전검사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지닌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여 무공 수련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저런 무공 수련은 없다.

그는 독고금이 묻는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모용아도 말을 잊었다.

야뇌슬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모용가문에서 그녀를 보살피려고 찾아온 오라버니 모용군이 항상 그를 지켜보고 있다. 물론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그가 무엇을 하는 지는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안다.

이해가 안 된다. 지금 야뇌슬이 하는 행동을 보고 흔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지가 되고 싶은가 보지.”

취화선개가 한 말이다.

“저 정도라면 우리 개방에 입문시켜야겠어. 키키! 장로 자리 하나 준다고 하면 입문할까?”

그런 정도의 말밖에 나눌 수 없다.

그는 하루 종인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지낸다.

독고금도 그녀에게 채근한다.

“정말 몰라?”

“몰라요. 저도 속상해요.”

“허!”

독고금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뇌술은 추여룡이 인정한 사람이다.

그가 직접 입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그가 행한 모든 일을 봐서 그런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다.

헌데 그런 사람이 정말 엉뚱한 짓을 한다.

이게 뭔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이유 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텐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동생은 그 사람이랑 잘 통하니까 무슨 말이라도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흥! 그 사람, 아주 못된 사람이에요. 여길 떠나면서 저에게 일언반구 말 한 마디 안 하고 떠났다니까요.”

모용아는 야뇌슬의 행동이 약간 섭섭했던 모양이다.

하기는 독고금도 섭섭하다. 한 마디 말 정도는 하고 갈 줄 알았는데 낯모르는 사람처럼 무심히 떠나갔다.

물론 그는 지척에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사람에게는 지척이나 먼 곳이나 문밖으로 발을 디디면 똑 같은 것이다. 마음에서는 이미 대화금장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가 뭘 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모용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소림사에 연락을 넣어봤다.

야뇌슬이 하는 행동을 소상하게 말했다. 혹여 불가의 선승들 중에 이런 고행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해서다. 그렇다면 깨달음과 연관이 있지 않겠나.

무당파에 연통을 넣었다.

도가에는 비전이 많다. 비술이 많다. 그 많이 비방들 중에 야뇌슬의 행동을 설명할 만한 것은 없나.

취화선개도 그런 맥락에서 만났다.

거지들은 어떤 마음으로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나. 어떤 심정으로 썩은 사과를 씹어먹나.

어느 쪽에서도 야뇌슬을 설명할 수 있는 답변은 해오지 않았다.

“휴우! 참 난감한 사람이네. 동생 힘들겠어.”

“그렇죠? 고생길이 환히 보이죠? 우리 마록타에게 가봐요. 그 사람은 뭔가 알고 있을 거예요.”

모용아가 환히 웃었다.

마록타는 술에 취해서 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술에 파묻혀 산다. 마록타처럼 술에 맛을 들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취화선개조차도 혀를 내둘렀을까.

“저러면 폐인 되지.”

취화선개의 말이 단순한 우려가 아니다.

마록타의 모습은 영락없이 술주정뱅이의 모습이다. 술에 중독되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술을 가져다주면 좋아하고, 가져다주지 않으면 훔쳐서 마신다.

그렇다. 훔쳐서 마신다.

그가 용한 것은 술을 주지 않아도 절대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만다. 하지만 언제 어디를 들락거렸는지 벌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는 아무리 취해도 행동에 변함이 없다.

화를 내지 않는다. 술주정도 하지 않는다. 술에 취하면 아무 곳이나 네 활개를 쭉 펴고 자는 버릇이 있지만, 그것 이외엔 특이한 주정이 없다.

술을 마신다. 그리고 취한다.

“야뇌슬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모용아가 물었다.

“몰라.”

“그 사람 저자거리에 있어요. 여기서 멀지 않아요.”

“그래서 뭘 어쨌다고? 귀찮아.”

마록타는 정말 귀찮은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같이 안 가볼래요?”

“안 가. 그놈의 주인…… 때 되면 온댔어. 찾아갈 필요 없어. 술이나 줘.”

“때요? 무슨 때요?”

“나도 몰라. 그놈이 한 말이니까. 꺼억! 술 좀 달라니까!”

모용아가 술 한 독을 내밀었다.

여아홍이다. 꽤 독한 술인데…… 그는 독째 입안에 퍼붓는다.

“크윽! 때 되면 온다고 했다니까. 그 전까지는 나도 몰라. 술이나 마시고…… 꺼억! 잠이나 자고…… 꺼억! 아, 취한다.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마록타가 술독을 내려놓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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