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검무안-123화 (12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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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123화]

第二十章 부화(孵化)를 위해 (2)

야뇌슬이 모용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 머물지. 단, 상처가 낫는 동안만.”

상처가 낫는 동안만 대화금장에 머문다.

야뇌슬이 대화금장에 기숙하는 조건이다.

대화금장이 조건까지 내걸린 사람을 접대하기는 처음이다. 누구든 대화금장에 머물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판이다. 대화금장이 사정사정해가며 머물러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나왔다.

대상인도 아니고, 이름을 사해만방에 떨친 무인도 아니다. 이제 갓 약관을 넘겼음직한 풋내기 무인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 그것도 장주가 직접 했다.

이것이 객관적인 사실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야뇌슬은 이제 결코 풋내기가 아니다.

대화금장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머리를 숙인다.

독고금이 매일 아침 들려서 차를 마신다. 석전검사가 시중을 직접 든다. 그의 시중을 드는 괴물은 따로 있지만, 대화금장이 해야 할 일을 그가 맡는다.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밖으로는 대화금장이 야뇌슬을 상처를 치료해준다는 소문이 퍼졌다. 야뇌슬이 시교혈랑대를 쳤고, 그때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대화금장이 보은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림과 일정한 선을 긋고 있던 대화금장을 자연스럽게 무림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무림 군사인 모용아가 머무는 것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대화금장은 현 무림의 최중심처가 되었다.

“통문(通文) 돌려요. 시교혈랑대에 대한 신고를 전면 거두세요.”

“그건 안 됩니다!”

일도살쾌가 제일 먼저 반대했다.

“장주를 해한 계집이 시교혈랑대에 있습니다. 그 여자가 노모보도 데려갔잖습니까! 시교혈랑대를 잡아야 합니다!”

그는 의기에 차서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했다.

독고금이 차분하게 말했다.

“일도살쾌, 해임입니다. 짐 꾸려서 나가주세요.”

일도살쾌가 가장 염려하던 부분이다.

무림 문파 같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실수를 저질렀어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상계란…… 장사치들이란…… 그리고 돈에 팔리는 무인이란……

“가더라도 장주님의 복수나 하고……”

“지금 가주세요. 장주님의 복수를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희 대화금장의 이름을 걸지는 말아주세요. 반각 후부터 저희는 일도살쾌님을 모릅니다.”

독고금에게 양해를 구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음성이 너무도 차분하고 맑다. 분노가 아니라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 내려서 결정했다는 뜻이다.

“으음!”

일도살쾌가 신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고 걸어 나갔다. 남은 사람들도 그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이후로, 일도살쾌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 적어도 대화금장의 공적인 임무 면에서는.

일도살쾌가 나가자 독고금이 다시 말했다.

“시교혈랑대에 대한 신고를 거두세요. 그들에게 걸었던 현상금도 돌리세요. 시교혈랑대에 대한 모든 눈과 귀를 거둬들입니다. 이제부터 그들에 대한 말이 내 귀로 들려오지 않게 해주세요.”

독고금은 복수를 일체 중지했다.

세상을 향해 풀어왔던 이목도 거둬들였다. 시교혈랑대를 보는 즉시 전갈을 보내라는 연락도 취소시켰다.

그녀는 야뇌슬의 복안에 동의한다.

그의 복안을 상세히 물러본 적은 없다. 모용아로부터 개요만 설명들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도 앞뒤 정황을 살피기에는 충분하다. 그녀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시교혈랑대를 살려서 보낸다.

장주를 죽인 미와빙도 살려서 보낸다.

야뇌슬도 노모보를 살려서 보냈다. 무림의 앞날을 위해서 자신의 복수를 기꺼이 뒤로 미뤘다.

그녀도 뒤로 미룬다. 잊은 게 아니다. 뒤로 미룬다.

“자, 오늘부터 장사 시작하세요. 가급적이면 무림에 깊이 간여하지 말고…… 우린 장소만 제공한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죠? 우리가 집중할 건 장사예요.”

대화금장 장주로 새로 부임한 독고금의 특명이다.

모용아는 숨돌릴 틈도 없이 바빴다.

추여룡은 이런 일을 어떻게 버텼을까? 처음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급해진다. 잠시 허리를 펼 시간조차도 없다.

사방에서 정보가 날아든다.

어디서 누가 누구와 충돌을 일으켰다. 어디서는 누가 싸웠고, 또 어디서는 도련의 누가 시비를 걸어왔고……

무림사건만 수백 가지에 이른다.

도련과 충돌을 일으킨 사건만 추려내도 하루에 십여 건은 넘는다.

그 많은 사건들 속에서 일관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찾아내야 한다. 사건이 한 줄로 쭉 이어질 때, 도련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도련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개방이 일차적인 분석을 해준다.

독고금도 나름대로 챙긴 정보를 내놓는다.

무림의 정보망과 상계의 정보망이 모용아의 손에 집중된다. 그리고 정리된다.

“아이구, 허리야!”

그녀는 굽어진 허리를 쭉 폈다.

하루 종일 서신에 파묻혀서 살다보면 어느 새 해가 진다.

“벌써 해가 지네.”

그녀는 창밖으로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일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낮 동안은 쌓인 문서를 읽고, 지금부터는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모종의 회답을 내려줘야 한다. 자신의 회답을 고대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적절한 대응책을 알려줘야 한다.

사천성(四川省)에서 아미파(峨嵋派)가 곤란을 겪고 있다.

도련이 조금씩 산을 넘어오는데, 효율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계속 밀린다.

아미파는 사천(四川) 당문(唐門)에 협조를 구하고자 한다. 또 청성파(靑城派)와 곤륜파(崑崙派)에도 도움을 청했으면 한다. 그리고 묻는다. 자, 너의 생각은 어떠냐.

물론 이런 일에 그녀가 나설 필요는 없다.

이 정도의 일은 문파들 스스로 알아서 한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사천 당문에 협조를 구할 것이며, 청성파에도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할 것이다.

적은 당장 눈앞에 출몰하는데, 멀리 하남에 있는 군사의 작전지시를 기다린다는 것을 비효율적이다.

전서구를 최대한 동원해도 사나흘을 족히 걸리니, 서신을 보내고 답을 받기까지는 무려 십여 일이 소요된다.

그 시간동안 손 빨고 있다가는 목이 달아난다.

모두 스스로 사는 법을 강구해야 한다.

모용아는 그들의 방책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세밀한 부분까지 끼어들 틈이 없다. 대신 도련의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고 , 그에 맞는 대책을 강구한다.

도련이 서남쪽의 세를 강화하기 위해서, 동남에 있는 아미파를 건드린 것이라면 북쪽에 있는 청성과 곤륜을 아미로 보내면 안 된다. 꾹 눌러 참고 대기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결단을 그녀가 내린다.

그렇다고 아마파가 죽으며 안 된다. 아미파도 혼자서 버틸 수 있는 대책을 안배해 주어야 한다.

그녀가 결정할 문제가 무척 많다.

힘들다. 군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휴우!”

그녀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렇게 힘들어?”

“말도 마. 너무 힘들어 죽겠어. 나 좀 도와줘.”

“내가 도와줄 게 있어야지.”

“친구 사이에 너무한 거 아냐?”

“잘 하고 있는데 뭘.”

“도련이 조용해.”

“……”

“왜 그런지 이유를 말해줄래?”

“군사는 너야. 군사가 범인에게 그런 걸 묻는 거야?”

“말해줘. 난 모르겠어.”

모용아와 야뇌슬은 격의 없이 어울렸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다. 당황하기도 했다. 침소에 들었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찾아오는 그녀나 맞이하는 야뇌슬이나 느닷없는 방문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모용아가 그렇게 길들여놨다.

그녀가 말했다.

“너 뭔 꿍꿍이 있지?”

“무슨 말이야?”

“도련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지?”

“허! 생사람을 잡네. 난 이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간 적 없다.”

“넌 나가지 않고도 수단을 부릴 수 있잖아.”

“내가 귀신이야?”

“넌 귀신보다도 더 해. 밥 남은 거 있어? 저녁을 굶었더니 배고파 죽겠어.”

“밥 같은 거 없는데……”

“없으면 찾아주면 안 돼! 어디서 갖다 주거나. 휴우! 내가 왜 이런 사람에게 매달리고 있을까? 제 여자 하니 챙겨주지 못하는 사내를. 내가 미쳤지. 흥!”

“제, 제, 제 여자?”

야뇌슬이 말을 더듬었다.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내가 네 여자 되는 거 싫어?”

“어휴!”

야뇌슬이 기가 막힌 듯 손을 들어서 이마를 탁 쳤다.

“중원 여자들이 다 그런 거야, 아니면 너만 그런 거야?”

“뭐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 하는 거.”

“나만 그래. 다른 여자가 그러면 안 되지. 잘 명심해 둬. 그런 말 하는 여자 있으면 좋게 타일러서 보내. 안 그러면 나한테 죽는다고, 전하고.”

모용아가 작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 여자, 예쁘다.

배시시 웃으면서 말을 하는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엽다. 사랑스럽고, 편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모용아는 군사라는 직책에 잘 적응해갔다.

야뇌슬의 상처는 잘 아물었다. 상당히 중한 상처였지만 적암도 사내들에게는 그리 큰 상처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 정도의 상처는 늘 안고 산다.

“가야겠다.”

“왜? 난 여기가 좋은데.”

마록타는 초저녁인데도 벌써 얼큰하게 취했다.

그에게는 이곳이 지상낙원일 것이다.

원하는 대로 술을 가져다준다.

술 이름만 말하면 천하명주라도 구해온다. 대화금장에서 구하지 못할 술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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