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도검무안 121화]
第十九章 구한(仇恨)을 혈사(血死)로 (6)
“잘 치렀습니까?”
“네.”
“장주의 장례식이 가보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시교혈랑대를 잡아 주셨으니까요. 이보다 더 큰 부의는 없어요.”
독고금은 진정으로 고마워했다.
이제 그녀는 개안했다.
야뇌술이 도련에서 구해주며 한 말이 모두 이루어졌다.
그의 말을 무시한 결과는 매우 비참했다. 추여룡이 죽었고, 아버지를 잃었다.
추여룡은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다.
나중에야……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와 추여룡이 나눈 대화들, 추여룡의 장계(長計)……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런 것들을 봤다. 읽었다.
추여룡이 의도를 알았다.
아버지의 마음도 알았다.
묘한 것은 추여룡이 생각한 것과 야뇌슬이 생각한 바가 같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점을 봤다.
무림의 앞날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도련의 질주로부터 무림을 어떻게 막아내야 할 지 그 부분에 대해서 의견이 같았다.
야뇌슬은 자신을 빼낼 때부터 말했다. 추여룡이 죽은 다음에 모영아에에 군사를 맡으라고 했다. 그리고 독고금도 같이 가담해야 한다고 했다.
추여룡도 같은 조처를 취했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헌데 다른 점이 있다.
추여룡은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풍부한 견식을 기반으로 해서 그런 계획을 수립했다. 허나 야뇌슬은 단지 사람 몇 번 본 것, 그리고 들은 풍월만 가지고 그런 판단을 내렸다.
두 사람을 같은 말을 했지만…… 차원이 다르다.
야뇌슬은 천재다.
허면…… 추여룡은 왜 이 사내를 끌어들이지 않은 것일까? 왜 이 사내에게 군사를 맡기지 않은 것일까? 이것저것…… 자신의 죽음까지 설정할 정도의 천재가 이 사내 하나 요리하지 못한단 말인가.
맞다. 추여룡은 이 사내를 요리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 사내만은 논외로 했다.
그가 보는 것은 이 사내도 본다고 생각한 게다.
그렇다면 이 사내는 추여룡이 인정한 유일한 지자(智者), 참모(參謀), 군사(軍師)다.
모용아는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헌데 사람을 잘 보는 것으로, 인심술로 유명한 자신은 야뇌슬을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로 어찌된 영문인지 이 사내만은 읽히지 않는다. 이 사내만 보면 머릿속이 텅 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다.
그녀 자신이 읽는 것은 사람의 욕구다. 야망, 열정, 욕념…… 이런 것을 읽는다. 그런 것을 읽다보면 그 사람의 내면이 환히 보인다. 마치 횃불로 비춘 것처럼 명확하게 보인다.
이 사내는 그런 게 없다. 오직 하나, 복수에 대한 집념 밖에 없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복수에 대한 열망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는 태평스런 사람 같다.
이런 점들이 그를 읽지 못하게 하고 있다.
추여룡도 이래서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의 욕구, 욕망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건드릴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모용아에게 후사를 부탁한 것이다.
이 일만 해도 그렇다.
그는 천하제일미녀라는 자신에게 이런 임무를 맡기지 않고, 모용아에게 맡겼다.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이 맞았다.
자신은 야뇌슬을 밀어냈고, 모용아는 그에게 바짝 다가섰다.
“후우!”
독고금이 남모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교혈랑대, 나머지도 잡아주세요.”
야뇌슬은 고개를 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서 추여룡의 복수, 아버지의 복수를 들먹일 수 없다.
그는 부모의 원수, 누이의 원수인 노모보도 살려서 보냈다. 마지막 일검으로 심장을 찌를 수 있었건만, 옆으로 비켜냈다.
심모원려, 그는 먼 곳을 본다.
무림의 앞날을 본다. 그것 때문에 당장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를 살려서 보냈다.
노모보는 곡문권과 장타홀의 죽음에 비통해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갈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야뇌슬을 넘어서려고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도련에 내분이 생긴다.
야뇌슬을 그 부분까지 내다봤다.
이것이 그가 무림에 베푼 인사다. 그의 호의다.
이것도 모용아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뻔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갑자기 멍청이가 된 느낌이다. 머릿속에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시교혈랑대가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노모보와 미와빙이 도련으로 가야 한다. 도려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중원 무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성 하나 살 돈을 달라고 하셨죠? 드릴 게요.”
야뇌슬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이 친구가 군사이니까…… 이 친구에게 주면 됩니다.”
“피잇! 겨우 성 하나? 난 대화금장의 절반을 달라고 했는걸!”
“뭐!”
“뭘 그렇게 놀라?”
“여자가 너무 통이 커서.”
“통이 커야 너 술도 많이 사주지. 오늘 저녁에 어때? 옛날에 취화선개님한테 된 통 당했다며? 천일취 어때?”
“여자가 술도 센 모양이네.”
“그놈의 여자 타령 그만하고 일어서.”
모용아가 야뇌슬을 등을 탁 때렸다.
“앗! 이, 이봐! 나 화륜에 찔린 사람이야! 방금 꿰맸다고!”
야뇌슬이 비명을 내질렀다.
독고금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들의 관계는 이미 알고 있다. 이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묘한 불길이 당겨진다. 일종의 상실감? 섭섭함? 또는 질투?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묘한…… 좌우지간 좋지는 굉장히 서운한 느낌이다.
“휴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
시교혈랑대의 전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추여룡을 죽였다. 그리고 대화금장의 장주를 죽였다.
이 두 가지 사건만으로도 시교혈랑대의 공적은 도련의 그 누구보다도 작지 않다. 아니, 가장 우수하다.
돌아오는 와중에 두 사람을 잃었다.
우염비, 왕린에 이어서 곡문권과 장타홀까지 잃었다.
노모보를 종복처럼 따르던 분신이 네 명이나 떨어져 나갔다. 일곱 명 중에서 네 명이 사라져갔다.
그래도 공적은 남는다.
원래, 이번 일은 불가능한 일로 취급되었다.
시키는 사람이나 명을 받은 사람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었다.
하다말겠지.
하는 척만 하고 돌아가면 되겠지.
제 아무리 시교혈랑대라고 해도 추여룡을 죽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무림 군사를 소림사 안방까지 쳐들어가서 죽이고 오라는 게 제정신으로 할 소리인가.
그런데 해냈다.
대화금장의 장주도 마찬가지다.
장주를 노린 사람은 많다. 하지만 죽인 사람은 없다.
그 일도 해냈다.
찬하에게 가장 죽이기 힘든 두 사람, 세상의 판도를 단숨에 바꿔놓을 수 있는 두 사람을 죽였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시교혈랑대는 아주 잘했다. 두 명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래도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비정상인 것이다.
이번 싸움은 시교혈랑대의 승리다.
“아플 겁니다..”
“빨리 해.”
스읏! 스으읏!
가슴에 박힌 검이 뽑혔다.
들어갈 때 썰고, 나올 때 썬다. 들어갈 때는 순식간에 당해서 펄쩍 뛸 정도로 아팠지만, 뺄 때는 전신 살점을 조각조각 썰어내는 느낌이라서 숨조차 쉴 수 없다.
노모보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꾹 다문 입술을 뚫고 새어나올 비명 따위는 없다. 안색도 변하지 않았다. 활활 타오르는 눈길이 얼굴 근육을 죽여버렸다.
탁태자가 급히 상처를 지혈시키고 금창약을 발랐다.
“하나 더 합니다.”
미루극이 냉정하게 말했다.
가슴에 이어 배에 박힌 검도 빼내야 한다. 상처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감염이 문제다.
쓰으으윽!
배에 박힌 칼이 빠지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상처는 매우 위중하다. 치료를 잘 받는다는 전제 하에 적어도 두어 달은 운신을 하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탈출로는?”
“그건 걱정하지 마.”
미와빙이 말했다.
걱정하지 않을 게 아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서 본격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중원 모든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녀도 두렵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길이 있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 짐승조차 발길을 끊은 곳만 골라서 다닌다. 그들은 그런 곳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을 수 있다.
물속 깊이 잠수해 들어가면 시커먼 어둠뿐이다.
물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말을 아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깊은 곳에 들어가면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 수압에 뇌가 혼란을 일으켜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게다.
이리저리 갈 곳을 모르고 발버둥 치다가 위로 솟구칠 시간을 놓치고 만다. 나중에야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히 위로 솟구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위로 오르는 도중에 정신을 잃어버린다.
물속에서 죽는 것이다.
길이 있다, 없다. 어디로 가야 산다. 한 발 더 나아갈까, 말까.
적암도 사람들은 이 모든 판단을 물속에서 배웠다.
중원 땅에서도 그런 능력은 대단히 쓸모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죽은 길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런 곳만 골라다녀도 중원 전체를 쏘다닐 수 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
자신들에게만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놀면서 쉬엄쉬엄 다닐 수 있다.
헌데 그렇게 다니는 놈이 또 있다.
야뇌슬은 그런 움직임을 안다. 놈도 적암도 출신이리서 적암도 사내들의 움직임을 환히 꿰뚫어본다.
놈이 포위망을 형성하면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다. 놈이 적극적으로 저쪽 편에 선다면 도련까지 가는 길이 혈로(血路)로 변할 것이다. 곡문권이나 장타홀처럼 어처구니없게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미와빙은 아주 편하게 말했다.
“지금은 좀 쉬어. 며칠 이러고 있는다고 목에 칼 들어오지 않아.”
“후후! 솜씨 좋더군. 끄응!”
노모보가 몸을 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