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도검무안 120화]
第十九章 구한(仇恨)을 혈사(血死)로 (5)
까앙! 깡! 깡깡!
야뇌슬이 두 번째 화륜을 떨궜다. 이어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했고, 세ㅐ번제 화륜도 떨어져다.
첫 번째 화륜만 떨구고 나면 나머지는 문제가 안 된다.
여덟 번을 칠 수 있는 사람에게 일곱 번을 치라는 것은 그냥 가지라는 말과도 같다.
다섯 개, 여섯 개……
야뇌슬이 노모보와 검 하나의 거리를 두고 마주섰을 때, 노모보의 손에는 화륜 두 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졌다!’
이번 싸움, 완전히 졌다. 노모보가 야뇌슬에게 졌다. 이 어린놈에게 졌다.
“가랏!‘
야뇌슬이 처음으로 인간적인 말을 내뱉었다.
찬 한 잔을 마신 후에는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마음속 말을 쏟아냈다.
쒜엑!
화륜을 쳐내느라 이빨이 수북하게 빠진 검이 노모보의 심장으로 쏘아져 같다.
“같이 가야지!”
노모보도 화륜을 쳐냈다.
그는 자신이 당할 것을 안다. 하지만 최후의 발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동귀어진을 시도해본다. 놈의 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화륜으로 머리를 찍어본다.
푸욱!
야뇌슬이 검이 그의 심장을 파고 들었다.
까앙! 가앙!
그가 쳐낸 화륜은 왼손에 가로막혔다.
역시 동귀어진도 안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쒜에에액!
어디선가 화륜이 날아왔다. 노모보의 화륜처럼 화려하거나 빠르지는 않지만 몹시 위협적이다.
야뇌슬은 뒤로 물러섰다.
스으읏!
한 여인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노모보의 신형을 건드리는가 싶더니 이내 두 사람 모두 사라져버렸다.
음유신보!
미오빙이다.
***
곡문권과 장타홀이 죽었다.
곡문권은 심장에 정확하게 일발을 맞고 즉사했다. 그 전에도 고슴도치가 되어 있었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관통이다.
장타홀도 죽었다.
그는 머리에 화살 두 발이 꽂혔다.
첫 번째 화살 공격 때 날아오는 유시(流矢)를 피하지 못하고 당한 것 같다.
좁은 바위틈까지 내몰린 이상 죽음은 필연적이다.
그런 곳에서 집중적으로 화살 세례를 받으면 천하 그 누구라도 죽을 밖에 없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다.
아마도 도련이 무림에 나온 이후, 도주급 인사들이 한꺼번에 두 명이나 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게다.
그만틈 시교혈랑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속이 다 시원하네.”
“이놈들이 그놈들이었어? 어휴! 이놈 생긴 것 좀 봐. 얼굴부터 흉악하게 생겼잖아.”
“이게 언월도야? 아! 나는 들지도 못하겠네.”
“이놈이 그렇게 활을 잘 쏜다며?”
“잘 쏘면 뭘 해. 이미 뒈졌는걸. 칼 쓰는 놈 칼에 죽고 활 쏘는 놈 활에 죽는다더니 딱 그 짝이네.”
사람들은 두 사람의 죽음을 보고 속 시원해 했다.
노모보도 당했다.
시교혈랑대의 대주가 상처를 입고 쫓겨 갔다.
그녀를 구해간 사람이 대회금장 장주를 죽인 사람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노모보가 마지막에 치명적인 일격을 당한 터이라 목숨을 부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제발 죽었으면 좋겠는데.
시교혈랑대 그놈들 두 번 다시 꼴을 안 봤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이번 사건으로 한 사람을 주목했다.
야뇌슬! 그가 누구인가!
야뇌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서서히 풍문이 돌기 사작했다.
“야뇌슬도 적암도 출신이래. 어쩐지 날고 긴다 했지.”
“적암도? 그렇구나. 역시 적암도야. 노모보 같은 자를 물리칠 때 척 알아봤어야 하는데.”
“원래는 적암도 도주의 아들이었다지? 지금의 도련주가 반란을 일으켜서 적암도주를 죽였다나봐.”
“그럼 철천지원수네?”
“그렇지. 원래는 야뇌슬도 죽이려고 했는데, 노모보가 죽이지 못한 거래. 도련주가 뿔딱지가 나서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내돌리고 있잖아.”
“그래서 외지로만 도는 거야? 도련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쩐지 이상했어. 아무리 싸움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도 그렇지 저렇게 외곽으로만 나돌기도 힘들잖아.”
“야뇌슬이 도련주하고도 한 판 했다는 소린 들었어?”
“아! 그 소리! 듣기는 했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 생각 좀 해봐라. 도련주하고 파다닥 했는데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겠어?”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인가봐. 독고금이 잡혔을 때 있잖아. 그때 그녀를 구해준 게 야뇌슬이래.”
“그래? 허! 못하는 게 뭐야?“
사람들은 야뇌슬을 주목했다.
그는 당금 무림의 구성으로 단번에 부각되었다.
특히 도련주와 일장 격돌을 벌였다는 점, 도련 최중심처에 뛰어들어서 독고금을 구해왔다는 점이 크게 부각되었다.
그는 구파일방 장문인에 버금가는 고수로 알려졌다.
이번에 곡문권과 장타홀을 제거한 일은 궁천문의 역할이 컸다.
그들은 치밀한 계획하에 두 거물을 차근차근 유도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힘으로 시교혈랑대 거성 두 명을 떨궈냈다.
그러나 사람들은 궁천문의 이런 일조차도 야뇌슬의 공적으로 인식해 버렸다.
궁천문으로써는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했다고 나서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문이란 것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둬야 하지 않나.
등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다.
창자가 찢겨나갔다고 하지만 옛날 적암도에서 당한 상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클! 미련한…… 좀 살살 하지. 남는 게 시간인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이런 상처까지 입으면서.”
마록타가 못마땅한 듯 투덜댔다.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아야!”
야뇌슬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단숨에 승부를 보고자 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너도 생각해봐라. 모든 게 우리에게 유리했잖아. 시간, 장소, 주위 사람들…… 놈들이 함정에 단단히 걸려들었는데, 뭘 그렇게 죽자사자 달려들었냐고!”
마록타가 신경질적으로 팔엽묘안초의 즙액을 뿌렸다.
고통이 일시에 가라앉는다.
팔엽묘안초는 적암도에서만 자생한다. 하지만 응급약으로는 이만한 게 없어서 섬을 떠나올 때 상당량을 채취해왔다.
“모두 다 우리에게 유리했는데, 이곳은 우리 안방이나 다름없잖아! 뭐하러 설쳐대!”
“아야! 아파! 좀 살살해!”
“아프기는! 넌 좀 아파도 돼!”
그가 연신 궁시렁거렸다.
그의 말이 맞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군웅들이 운집한다. 그들은 시교혈랑대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들이다. 워낙 무공 차이가 커서 직접 검을 맞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상처 입은 늑대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굳이 이런 상처까지 입어가면서 결전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복수를 빨리 하고픈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조금만, 정말 조금만 시간을 늦추면 편히 잡을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치몰아갔다는게 이해되지 않는다.
“마록타…… 점점 말이 많아져.”
“한심하니까 그렇지. 무슨 주인이란 놈이 맨날 피나 철철 흘리고 사냐고!”
“하! 그 놈의 시종.”
“시종이 왜!”
“무슨 놈의 시종이 불평불만이 떨어지질 않아.”
“주인이라는 놈이 멍청하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시종을 바꿔야겠어. 말 잘 듣는 놈으로. 젊고 탱탱한 놈도 많은데 내가 왜 늙은이를 시종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이 고역을 당하는지 몰라.“
“그래? 그래라. 제발! 젊은 놈 많이 둬라. 키키키!”
마록타는 연신 투덜거리면서도 꼼꼼한 솜씨로 상처를 꿰매고, 금창약을 발랐다.
“독고금이 밖에 와있는데, 만나볼래?”
“글쎄…… 만날 일이 없는데.”
“모용아도 같이 왔다.”
“아!”
야뇌슬의 표정이 환해졌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너 모용아 좋아하지?”
“친구잖아.”
“친구는 무슨 얼어 죽을……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너보다 몇 십 년 앞서 산 경험으로 이야기 하는데, 내거다 싶으면 확 땡겨. 그게 상책이야.”
“아이구, 그려세요.”
야뇌슬이 비아냥거렸다.
마록타는 단 한 번도 여인을 사귀어본 적이 없다. 그러 사람의 말을 들어도 좋을까?
“그러나저러나 노모보 그놈, 이제 정말 큰일 났다. 괜히 이것저것 어느 떡이 더 큰가 기웃거리다가 절단 나고 말았잖아. 그 지랄을 하고 섬을 나왔으면 미와빙만 껴안고 있었어야지. 키키키!”
마록타가 눈치 없게 노모보, 미와빙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을 이야기하면 야리몌도 거론해야 한다. 그 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 하다.
그리고…… 노모보에 대한 부분도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부터 정말 독해질 거야. 노모보…… 나를 뛰어넘으려고 무슨 짓이든 할 걸. 아주 강해질 거야. 지금까지가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였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독수리가 되는 거지. 맹수로 변신할 거야. 후후! 후후후!“
야뇌슬은 웃었다.
독고금과 모용아가 같이 들어왔다.
모용아는 미미하게 웃었고, 독고금은 차디차게 안색을 굳혔다.
“나 군사 됐어.”
모영아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들었어. 축하해.”
“어! 많이 여유 있어졌네. 이젠 웃을 줄도 알고.”
모용아가 활짝 웃었다.
야뇌슬은 독고금을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에 슬픔이 감춰져 있다. 슬퍼서 죽겠는데,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아니,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미천한 세상에 내 슬픔을 드러낼 수 없다는 오기, 그런 오기가 발동한 듯하다.
독고금을 이해한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가 죽었을 때, 이런 슬픔을 맛봤다.
하늘이 무너지는 천붕(天崩)!
천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부모가 죽었을 때, 그 충격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는 눈인사만 했다. 눈으로 아픔을, 슬픔을 공감했다.
독고금은 눈빛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말로 하지 않고 마음으로 말해주는 게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