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검무안-117화 (117/160)

# 117

[도검무안 117화]

第十九章 구한(仇恨)을 혈사(血死)로 (2)

이게 뭐지? 차? 왜? 마록타, 뭐하는 짓이야?

살심이 사라진 자리에 엉뚱한 생각이 들어찬다.

이거면 충분하다.

스으으읏!

검끝이 가라앉는다. 조용하게, 무심하게……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됐어.’

원한은 사라지고 이성만 반짝거린다.

그는 노모보를 쳐다보지 않았다. 궁천문주에게 말했다.

“그쪽부터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아, 예.”

궁천문주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급히 대답했다.

궁천문주는 괴물처럼 생긴 마록타가 신기했다.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가 정신이 퍼ㄸㄱ 들었다.

결전 직전에 차를 가지고 온 사람, 이해되지 않는다. 뭐하는 거지? 그 차를 받아 마시는 사람도 이해되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싸울 태세였는데.

그는 자신이 할 일도 잊고 있었다.

그렇다. 이쪽에 있는 자들을 공격하는 건, 노모보를 자극한다. 그를 급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노모보를 흔드는 의미에서…… 자신이 먼저 움직이는 게 좋다.

슷!

그가 팔을 들어올렸다.

“쐇!”

파파! 파파팟!

화살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살아남은 자, 스물일곱 명이 쏘아낸 화살 스물일곱대가 허공을 빼곡하게 매웠다.

“멈췃!”

노모보가 쩌렁 일갈을 내뱉었다.

그런다고 멈춰지겠는가. 이미 죽이기로 작정하고 쏘아낸 화살인데, 활을 떠나버렸는데 멈춰지겠는가.

쒜에에엑!

노모보는 발작하듯이 검을 썼다.

신뢰삼검 중 경홍섬전이 터진다. 번개가 몰아친다. 검 한 자루가 빛이 되어서 심장을 노리고 쏘아온다.

스읏!

야뇌슬은 한 발 물어서며 검을 들었다. 유유히.

까앙!

두 검이 부딪쳤다. 그리고 그 순간, 두 검은 영성이 있는 뱀처럼 엉켜들었다.

쉐에엑! 쉐엑! 스읏! 슥! 쉐엑!

검이 기묘한 각도로 꺾이면서 상대의 검을 휘감는다. 손목을 베려고 한다. 목을 찌르려고 한다. 상대의 검신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검끝만 살짝살짝 움직이며 상대의 요혈을 파고든다.

야뇌슬의 검만 그런 게 아니다. 노모보의 검도 그렇다.

두 검이 서로 엉켜있다. 마치 손에 손을 맞잡고 아름다운 검무를 추는 것 같다.

일정한 운율이 일어난다. 밀고 당기고, 또 민다. 그러다가 찌르고, 또 살짝 검끝을 돌려서 베어낸다.

숨 한 번 몰아쉴 사이에 삼십여 초가 후딱 지나갔다.

“훗!”

“후웃!”

두 사람은 격한 숨을 토해내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깊은 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검초를 주고받는 동안 숨을 쉬지 않았다. 진기를 고장시킨 해 검만 움직였다.

숨을 쉴 틈도 없었다. 상대의 검을 받아내려면, 그리고 승기를 잡으려면 숨조차 멈춰야만 했다. 이미 끌어올린 한 줌의 진기에 의거해서 검을 쳐내야만 했다.

이것이 최선이다.

이것이 신뢰삼검 중 섬력쇄심이다.

“네가……!”

노모보가 눈을 부릅땄다.

그는 야뇌슬의 무공이 이 정도로 증진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도련에 뛰어들어서 난장 친 사실을 안다. 수라도주와 결전을 벌이고, 사주들을 죽이고…… 도련을 무인지경처럼 휩쓸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암도에 있을 때도 놈을 잡지 못했다. 적암도처럼 좁은 땅덩이, 모르는 구석이 곳에서도 놈은 용케 도망다녔다.

하물며 이곳은 중원이다. 사방이 탁 터졌다. 이런 곳에서 놈을 어떻게 잡겠는가. 여우처럼 뺀질거리면서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닐 텐데, 그런 놈을 어떻게 잡겠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니다. 놈의 무공은 이십사 무동을 구성이상 출관한 자와 비슷하다.

아까 놈이 발사한 흑조탄궁술,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놈은 혈우마검의 무공만 수련한 게 아니다. 다른 오제의 무공을 골고루 수련했다. 그것도 자신들과 필적할 정도로 깊이 있게 수련했다.

이놈…… 괴물인가!

아! 아까 그 화살!

노모보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위로 눈길을 돌렸다.

퍽퍽퍽! 퍼퍼퍽!

화살들이 비 오듯 내리꽂힌다.

이미 일차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이다. 아니, 주변에 화살들이 무수히 널려있는 점으로 봐서는 이차, 삼차 습격도 지나간 듯하다.

그리고 또 화살을 쏘아댄다.

쒜에엑! 쒜에에엑!

화살이 허공을 검게 물들인다. 저 속에서는…… 먼지처럼 피어나는 화살 무리 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미친놈들! 사람 살점을 아예 다 뜯어놓을 셈인가. 사람을 고슴도치로 만들 작정인가.

“끄으윽!”

곡문권이 비틀거리면서 걸어나왔다.

그는 정말로 고슴도치다.

그의 커다란 몸뚱이에 화살이 적어도 십여 대 이상 박혔다.

장타홀은 나오지도 못했다.

쏟아져 내리는 화살을 생각하면 기어나오지도 못할 정도로 중상을 입은 것 같다.

궁천문주가 활을 들었다. 그리고 쏘았다.

쒜에엑! 퍼억!

그가 쏜 화살이 정확하게 곡문권의 심장을 꿰뚫었다.

펄쩍!

곡문권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

곡문권은 손가락도 꼼지락거리지 않는다. 신음도 흘리지 않는다. 커다란 몸뚱이에서 붉은 피만 줄줄 흘려낸다.

퍽! 퍼퍽! 퍽!

그의 몸에 화살 몇 대가 더 꽂혔다.

궁천문도의 용서 없는 화살이 한 사람의 영혼은 완전히 말살시켜 버렸다.

궁천문도들이 바위 틈으로 걸어갔다.

활에 화살을 재워서 팽팽하게 당긴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하지만 바위틈을 들여다본 그들은 이내 활을 내려버렸다.

끝났다.

저들의 모습만 보고도 알 수 있다.

궁천문도 몇 명이 바위틈으로 움직이더니 축 늘어진 장타홀을 질질 끌고 나왔다.

곡문권과 장타홀이 죽었다.

이들의 무공은 도련 사주들을 훨씬 뛰어넘는다. 도주들의 무공과 견주어도 하등 손색이 없다. 다시 말해서 이들 두 명을 죽였다는 것은 도련 도주 두 명은 죽인 것과 같다.

도련 도주들을 바위틈으로 몰아넣고 화살을 쏘아서 고슴도치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보다 통쾌한 일이 어디 있는가.

반대로 도련 입장에서 보면 이것보다 가슴 아픈 일도 없다. 통쾌하게 싸우다가 죽었으면 한이라도 없다.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처럼 이리저리 몰리다가 겨우 궁천문도 두어 명 죽이고 죽었다.

이건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어떻게 이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방심했다. 아니, 방심이라기보다는 큰 착각을 했다.

장타홀에게 활이 있다. 그가 활을 쏘는 한 가까이 접근 할 수 있는 자가 없다.

자신들을 칠 생각이라면 스무 명 이상이 목숨을 내놔야 한다.

가장 먼저 그 일부터 하라. 목숨부터 내놔라. 그 다음에 어찌되는지 보자.

그들의 생각은 일면 옳다.

하지만 그들에게 달라붙은 사람은 검사가 아니가 궁사다.

여기에서 그들은 더 안심했다.

활이라면 장타홀이 신이다. 궁천문도 따위가 쳐다볼 사람이 아니다.

궁천문도가 화살 한 대를 쏘면, 그는 십여 대를 쏠 수 있다. 궁천문도가 그를 노리려면 삼십 장 거리로 들어서야 한지만, 자신은 사십 장 밖에 있는 매미도 맞춘다.

활이라면 더 상대가 안 된다.

헌데 결과는 그렇지 않다. 곡문권은 제 무공을 써보지도 못했고, 장타홀의 활도 제 위력을 드러내지 못했다.

왜!

무리! 무리의 힘이다.

그가 아무리 명궁이라고 해도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쏘아대는 화살 무더기를 접하면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 한다. 그가 한꺼번에 십여 대를 쏠 수 있다고 해도, 저쪽에서 백 명이 이상이 쏘아내는 데는 방법이 없다.

물러선다. 물러선다. 또 물러선다.

그들은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고 계속 물러서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착각했다. 언제든 뛰쳐나가기만 하면 이까짓 포위망쯤은 뚫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쪽이 승부를 걸어오는 건 다수의 힘이니, 기습이나 야습을 감행하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와빙이 옆에 있었다면 방법을 찾아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무공을 과신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착각이 결국은 죽음까지 불러왔다.

시교혈랑대는 일 대 일의 싸움에 능하다. 그런 싸움에서는 패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패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무리 대 개인의 싸움에는 취약하다.

그들은 소림사에서도 밀렸다.

장타홀이 추여롱을 쏘지 않았다면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소림백팔나한진에 밀렸다. 자칫했으면 큰일 날 뻔 하기도 했다.

무리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취약점들이 모이고 모여서 그들을 죽게 만들었다.

“후후후! 후후후후!”

노모보가 쓰게 웃었다.

그의 눈앞에서 수하 두 명이 죽었다.

자신이 두 눈 빤히 뜨고 있는데, 수하들의 죽음을 말리지 못했다. 그것도 한낱 화살에 꼬치처럼 꿰어서 죽었다.

“너! 잔인해졌구나.”

노모보가 이를 부드득 갈면서 야뇌슬을 봤다.

야뇌슬은 예전 적암도에 있을 때의 야뇌슬이 아니다. 그때보다 훨씬 냉정해졌다. 차분해졌다. 독해졌다.

야뇌슬은 무덤덤했다.

“똑같은 입장 아닌가. 너도 날 살려줄 생각은 없을 텐데? 후후! 나도 너희들 용서할 생각이 없다. 너의 살수만 용납된다는 오만한 생각…… 그 생각부터 버리는 게 좋아. 그래야 조금 있다가 찾아올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스으읏!

야뇌슬이 검을 들어올렸다.

‘자, 우리도 빨리 끝내지’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너는 내게 잡혔어’하는 자심감도 단단히 읽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