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도검무안 116화]
第十八章 슬픈 해후(邂逅) (7)
이번 중원행은 참 복이 많다. 독고금을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소독이 꽤 많다. 추여룡을 죽였다. 장주를 죽였다. 자신들의 농락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다.
그리고 또 …… 이놈을 잡는다.
“오랜만이다. 야뇌슬!”
그가 피 묻은 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나타난 자, 야뇌슬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궁천문주에게 포권지례부터 취했다.
“피해가 많습니다.”
“괘, 괜찮소.”
궁천문주는 눈앞에 있는 청년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적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가공할 무학을 지닌 것 같다. 궁천문으로써는 천사가 강림한 것이나 다름없다.
궁천문주는 최대한 예를 갖춰서 포권을 취했다.
야뇌슬이 바위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들에게 더 볼 일 있습니까?”
“아니, 저희는 없습니다만……”
“그럼 끝내주시겠습니까? 밤이 길면 꿈도 긴 법. 죽일 자들은 빨리 죽이는 게 낫지요.”
“알겠습니다.”
궁천문주가 굽혔던 허리를 폈다.
“후후후! 후후후! 후후후후!”
노모보는 웃기만 했다.
야뇌슬이 이토록 신속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다.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그가 나타난 것은 뜻밖이다. 그리고 나타나자마자 곡문권과 장타홀을 끝장내라고 말할 줄도 몰랐다.
실제로 그는 일 초식 만에 야뇌슬을 무너트릴 수 없다.
그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십여 초 이상은 겨뤄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이면 저 바위틈에 있는 두 사람은 끝난다.
노모보가 검을 들면서 말했다.
“널…… 반드시 죽여야겠구나.”
스릉!
야뇌슬도 검을 뽑았다.
“항상 죽이려고 했으니까. 적암도에서부터. 날 죽인다는 말…… 새삼스러운 것은 아냐.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내가 해야지. 그 말, 내가 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잖아. 노모보, 널 죽여야겠어.”
그들이 검을 겨눌 때, 살아남은 궁천문 궁수들이 죽은 궁수들의 원한까지 실어서 활을 들었다.
스으으읏!
그들의 활이 재차 허공으로 쳐들렸다.
第十九章 구한(仇恨)을 혈사(血死)로 (1)
파라락! 파라락! 파라라락!
심등이 마구 흔들렸다.
심등을 밝힌 심지가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강풍을 만난 듯 마구 펄럭거렸다.
드디어 만났다.
노모보는 부모님의 죽음과는 연관이 없다.
부모님의 죽음은 노갹충에게 따져야 한다. 그가 죽였다. 그의 아들이 반란에 가담했다고 해서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만든 죄까지 물을 수는 없다.
노모보는 자신에게 일검을 날렸다.
적사해의 굽이지는 물결 속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그 까짓것 다 용서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적암도에 남았다.
살아있다면 완전하게 죽인다. 두 번 다시 숨을 쉬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죽인다.
그와 일곱 명의 혈살귀!
그들 중 어느 한 명도 상대할 수 없는 처지인데, 여덟 명이 모두 남았다. 그만큼 완벽하게 자신의 뿌리를 뽑아내려고 했다. 말살, 말살 시키려고 했다.
그 까짓것 용서한다. 반란까지 일으켰으니 후환히 될 사람을 죽인다는 건 당연하다.
네가 어떻게 반란을!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사람은 욕구, 욕망이 다르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 일신의 향락을 위해서 배신하는 일도 숱한데, 이들은 중원 무림을 뒤집을 야망을 가졌다.
반란은 당연한 거다.
너무나도 의견차이가 컸고, 짓밟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처지였으니 십분 이해한다.
누이……
그 부분만큼은 용서하지 못한다.
장타홀의 활에 맞아서 누이의 무덤에 피를 흘렸다. 죽은 누이의 영혼마저 울부짖게 만들었다.
아이를 가졌다고 참 좋아했는데.
사랑하는 낭군, 노모보의 아이라고. 노모보이 피를 이어받아서 아주 강한 무인이 될 거라고. 문무겸전(文武兼全)한 최고의 아이를 낳을 거라고 마냥 들떠 있었는데.
노모보는 그런 가슴에 칼을 박았다.
자신을 죽이려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후환이 된다는 이유에서 자ᅟᅵᆫ의 아이를 가진 여자마저 무참하게 베어버렸다.
누이를 벨 때,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루만 지나면 누이를 죽여야 하는데,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으면서 노래를 불렀다. 적사해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하는 척 농간을 부렸다.
그때의 노모보를 기억한다.
죽어야 할 누이를 염려하는 표정은 전혀 없었다. 우울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 점은 용서하지 못한다.
이 점 때문에 너와 나,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너도 나를 살려줄 생각이 없겠지만, 나 역시 너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노모보…… 다른 건 몰라도 누이를 버린 것……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그 한 가지 때문에 넌 죽는다.’
파라라락!
심등이 금방이라도 꺼질듯이 펄럭거렸다.
오랜 수련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련주와 일장 겨룸을 하고 난 끝에 극상의 무리를 얻었다. 기연이라고 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헌데 그 모든 깨달음이 노모보를 보는 순간 깨져버린다.
파라랑!
검도 떨린다.
검을 힘주어 잡지도 않았는데, 검 끝이 바람에 밀리는 문풍지처럼 떨어댄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격랑이 심등을 위협하고 있다.
심등은 고요한 바다처럼 잔잔해야 제 빛을 뿜어낸다. 바다에 파도가 치면 하늘에 떠있는 달빛을 비추지 못한다. 달빛 모양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버린다.
심등도 이와 같다.
마음속에서 파도가 일어나면 불빛이 흔들린다. 파도가 거세지면 심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고요, 적막, 평화…… 심등은 이런 잔잔함 속에서만 피어난다.
노모보와 일 대 일.
죽이고 싶다. 죽일 수 있다. 죽일 수 있는 무공을 수련했다. 누이의 원혼을 지금 이 순간에 풀어줄 수 있다.
파도가 가라앉지 않는다.
츠으으읏!
신뢰신공이 검에 집중되었다. 그때다.
“에고, 에고, 에고!”
등 뒤에서 다 죽어가는 음성이 들려왔다.
야뇌슬은 둔기를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
‘마록타! 그렇군!’
마록타의 등장은 노모보를 만난 것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다. 아주 충격이 커서 온 몸에 찬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자르르르!
전율이 흐른다. 눈앞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처럼 모골이 쭈빗 선다.
‘그래, 그래!’
그가 눈빛을 빛낼 때, 야복 마록타가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그는 두 손에 찻잔을 받쳐 들고 있었다.
“에고! 이 나이에 차 시중이라니. 이거 뜨거워서 빨리 달릴 수도 없고. 에고!”
야복은 오리처럼 뒤뚱거리면서 달려와 찻잔을 내밀었다.
“키키! 자, 차부터 한 잔 드시고.”
그가 차를 내밀었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찻잔이라.
기형적인 사람, 사람 같지도 않은 괴물이 건네는 찻잔.
모두들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하던 일도 멈추게 되어 있다.
결전과 차.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말인가.
노모보가 마록타를 알아봤다.
“후후후! 병신, 너도 왔군. 저놈을 주인으로 모신 건가? 하하하! 어지간히 먹고 살기 힘들었나보군.”
마록타가 노모보를 향해 씩 웃었다.
“키키키! 쪼다. 오랜만이야.”
“쪼다? 후후후! 병신이 꼴값한다더니. 중원에 쓰레기가 넘쳐나는구나. 악취가 너무 심해.”
“남말 하고 자빠졌네. 짐승도 제 새끼를 벤 놈은 물어죽이지 않는다더라. 넌 뭐냐? 주인도 물고, 마누라도 물고. 이리저리 이빨만 드러내고 다니면서 얻은 게 뭐야? 병신.”
누런 이빨에 경멸이 스몄다.
그는 노골적으로 노모보를 비웃는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예전 같으면 적암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남아야 하니 눈치를 봤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서로 적이다. 적을 대하면서 옛날처럼 기죽을 필요는 없다.
“키키키!”
마록타도 독오른 독사처럼 화나 있는 노모보를 보면서 즐거운 듯 웃어댔다.
촤와아아아!
야뇌슬은 마록타가 건네 준 찻잔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바람이 가라앉는다. 노모보를 한 증오, 원한, 살심이 흔적없이 사라진다. 바람이 잦아진다.
심들이 활짝 피어난다.
심지의 불꽃이 일직선으로 곧게 피어오른다.
꼭 이럴 것 같았다. 아무래도 노모보를 만나면 이성이 흔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럴 경우를 대비했다.
머릿속으로는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특별하게 차 한 잔을 주문해 놨다.
눈에 보이지 마라.
눈에 안 보여야 한다. 눈에 보이면 자신이 한 말을 상기하게 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충격이지 상기가 아니다. 상기는 지금도 한다. 머릿속으로 온갖 말을 늘어놓는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하게 정리된다.
이러한 상기들은 노모보를 보는 순간 흔들린다.
어떠한 상기도 마찬가지다. 단숨에 흩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증오와 원한과 살심이 들어찬다.
마록타가 충격을 안겨줘야 한다.
그래서 그를 떼어놓았다.
가까이 오지 마라. 항상 숨어서 있어라. 그리고 노모보를 만날 때 나 좀 웃겨봐라.
이것은 충격으로 작용한다.
낯선 장소에서 마록타를 만날 때, 그가 현재 상황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때, 지금처럼 결전을 해야 하는 마당에 엉뚱하게 차를 건넬 때…… 살심이 순식간에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