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도검무안 113화]
第十八章 슬픈 해후(邂逅) (4)
대화금장으로써는 당연한 소리다.
장주가 운명했으니 여식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장례를 치러야 하다. 하지만 이 소식은…… 그에게는 좋지 않다.
시교혈랑대!
그들이 움직인다.
그들은 결코 피라미가 아니다. 그들은 용이다. 거룡이다. 한 명, 한 명이 무림절정고수들이다. 그 중에서 노모보의 무공은 감히 경시할 수 없다.
노모보는 독고금이 움직이는 즉시 그녀를 포기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노모보가 여색에 빠져서 미쳐 날뛰는 줄 알지만…… 그는 매우 냉철한 사람이다. 야망에 들뜬 사나내다. 오직 야망만이 그의 앞길을 비쳐준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이 독고금을 잃었다.
그런 그가 다음으로 챙길 사람은 미와빙이다. 미와빙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긴다.
‘흐음!’
그는 전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미와빙이 갈만한 길은 쉽게 찾아진다.
지도만 보면 어느 구석이 험한지, 어느 구석이 한가한지 한 눈에 들어온다. 미와빙 같은 여자가 좋아할 만한 길이 쏙쏙 들어온다. 다른 사람들은 찾을 수 없는 길들이다. 오직 적암도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찾아낼 수 있는 길이다.
미와빙에게는 미루극이 간다.
노모보와 미와빙 사이에는 차가운 기류가 흐른다.
노모보가 독고금을 원했다. 미와빙이 장주를 죽였다. 두 사람이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입혔다.
당연히 어색하다. 아주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 사이, 어색함을 채워줄 사람이 미루극이다.
노모보는 먼저 성의를 보일 것이다.
그는 그런 면에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체면이라거나 뻔뻔함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한다.
그는 자신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오른 손 탁태자를 보낼 것이다. 보내는 김에 노염백까지 보내서 그녀의 안위를 확실하게 보살피려고 할 게다.
물론 미와빙은 화해를 받아들인다.
그녀가 어찌 노모보의 속내를 모르겠는가. 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노모보는 어디로 갈까?
두말할 것도 없다. 곡문권과 장타홀을 구하러 간다.
그가 궁천문의 배후를 칠 게다. 그러면 궁지에 몰렸던 두 사람에게 활로가 생긴다.
군웅들이 활과 활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다.
그들이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도주가 일어나고 난 다음이다.
포위망이 확 뚫리면서 살 길이 생긴다.
야뇌슬은 짐짓 고민했다.
미와빙을 잡을까, 노모보를 쫓을까.
양쪽 모두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다. 어느 한쪽에만 집중해도 앗차 하는 순간이면 포위망이 찢어진다.
잡기 쉬운 쪽은 미와빙이다.
그들은 산길을 더듬어 갈 것이니, 함정을 파기가 쉽다.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지형이 몇 군데 보인다. 그곳에 포위망을 쳐놓으면 영락없이 잡힌다.
하지만…… 노모보 쪽은 희생이 많이 생긴다.
일단 궁천문이 당한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군웅들과의 다툼도 상당히 심할 것이다.
피, 피, 피!
시교혈랑대가 그려놓을 혈적이 눈에 읽힌다.
“노모보!”
그는 방향을 정했다.
쒜엑! 탁탁! 쒜에엑! 탁탁!
화살이 사정없이 틀어박힌다.
아침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화살이 날아온다. 손끝이라도 움직일 성 싶으면 어김없이 날아와 박힌다.
놈들은 무려 서른 명 이상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명궁이다. 지극히 뛰어난 궁술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쏘아댄다.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쏜다.
“저놈들 오늘 왜 이 지랄이야?”
곡문권이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투덜댔다.
“좋잖아.”
장타홀은 오히려 잘 됐다는 듯 빙긋 웃었다.
군웅들은 두 사람을 협곡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사방이 바위로 막힌 좁은 바위틈에 몰아넣고 옴짝달싹 못하게 화살을 쏘아댄다.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장타홀은 좋다. 이제야 비로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다. 손끝 발끝…… 움직일 필요가 없다. 그냥 바위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는다.
잠을 잔다는 것은 평화를 얻는다는 뜻이다.
잠속에 빠져드는 그 기분은…… 지금 당장 목숨이 위험해도 천 근 무게로 짓누르는 눈꺼풀은 이길 수 없다.
장타홀이 눈을 감았다.
“자지 마라. 자면 죽어.”
장타홍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
“자둬. 저놈들이 우릴 죽일 생각이었으면 벌써 죽였어. 그러니까 시간이 났을 때 잠이나 자둬.
“우릴 죽여? 저놈들이? 하하하! 너 어떻게 된 거 아냐? 저놈들이 감히 우릴……”
곡문권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미쳤냐는 뜻이다.
장타홀은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화살이 이리로 날아오면 꼼짝 못해. 우린 걸려든 거야. 그러니 잠이나 자자고.”
장타홀은 곧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코를 골았다.
드르렁!
“허!”
곡문권은 기가 막혀서 말을 잊었다.
사실은…… 그의 말이 맞다. 이미 걸려들었다.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뻥 뚫린 하늘!
허공으로 화살이 쏟아진다면 막을 방도가 없다.
“그래, 잠이나 자자. 자.”
그도 눈을 감았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화르륵!
어김없이 불화살이 솟구친다. 화린을 실은 불화살이라서 사방 삼십여 장은 환하게 밝힌다.
“지독한 놈들. 정말 찰거머리처럼 끈질기네.”
“하하하!”
장타홀은 곡문권의 말을 들으며 화살을 점검했다.
화살이 전통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짬이 날 때마다, 화살이 날아올 때마다 주워서 채워놨기 때문에 근 스무 시 정도는 채워져 있다.
‘스무 명……’
이것이 그가 죽일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다.
헌데 문제가 있다. 상대를 볼 수 없다는 단서가 붙는다. 고개를 들지 못하기 때문에 직감으로 죽여야 한다. 그럴 때는 이시일살이다. 화살 두 개에 한 사람을 죽인다.
그러면 최대 열 명이다.
그 이상을 어찌할 방도는 없다. 운이 좋아서 이십 시를 날리기 전에 공중 공격을 받지 않기만 바란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고작 한 명 정도 죽이는 것으로 그칠 게다.
“죽을 준비 됐냐?”
“제길! 난 뭐야!”
곡문권이 언월도를 만지면서 투덜거렸다.
그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도 싶어 한다. 한바탕 언월도를 휘둘러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싸움이 일어날 리 없다. 개죽음밖에 없다.
“후후!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나나 도와줘.”
“어떻게 도와줄까?”
“화살소리를 들어야겠어.”
“미끼가 되어달란 소리야?”
“잠깐이면 돼.”
“쳇!”
곡문권이 혀를 끌끌 찼다.
***
곡문권이 얼굴을 내민다.
저쪽에서는 당연히 화살을 쏘아댈 게다. 안에서 꿈쩍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온다.
장타홀이 그 소리를 듣는다.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탁! 하고 시위가 퉁겨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쏜다.
그가 고개를 내밀면 이번에는 화살이 그를 향해 쏘아진다. 그래서 고개를 내밀지 않고 쏜다. 사실, 고개를 내밀 필요도 없다. 그럴 것 같았으면 곡문권에게 부탁도 하지 않는다.
그는 하늘을 향해서 쏘아 올린다.
하늘로 솟구친 화살이 힘을 잃고 뚝 떨어진다. 그런데 화살끝은 소리가 울린 곳을 향한다. 정확하게 상대를 보고 쏘아낸 것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향해 쏜 것처럼 엄청난 빠름으로, 강함으로 벼락같이 들이친다.
그는 그러한 궁술을 지니고 있다.
화살이 빠를까, 느릴까?
말할 것도 없이 무척 빠르다. 하지만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무인의 눈썰미라면 화살이 활을 떠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
화살을 피하는 것은 가능하다.
검으로 쳐낼 수도 있고, 신법으로 피할 수도 있다.
화살의 속도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화살이 날아오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피하지 못한다.
먼 거리에서 화살을 날릴 경우, 보통 사람들도 화살이 날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순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너무 짧게 보이기도 하지만 보이기는 한다.
헌데 몸이 얼어붙는다.
화살이 날아온다고 생각하면서도 피하지 못한다.
흑조탄궁술은 이러한 육안의 관찰까지도 무력화시킨다. 그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화살이 겨눠지는 것은 볼 수 있다.
그게 마지막이다. 퉁겨지는 순간에서부터 꽂히는 순간까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탁! 소리가 들리면 화살이 꽂힌다.
스읏!
장타홀의 오른손이 검게 변색되었다.
‘흑조!’
드디어 흑조탄궁술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장타홀이 준비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곡문권은 즉시 바위 위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었다. 적들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아주 살짝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쒜에에에엑!
허공을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들린다.
등골에 전율이 자르르 흐른다. 머리칼이 쭈삣 선다.
그는 즉시 머리를 수그렸다.
타타타타탁!
머리를 숙이자마자 머리위에서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화살에 부셔진 돌조각이 작은 모래조각이 되어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후우! 됐어?”
곡문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까딱 잘못했으면 머리가 벌집이 될 뻔하지 않았나.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