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도검무안 112화]
第十八章 슬픈 해후(邂逅) (3)
“대화금장…… 장주가 죽어?”
노모보를 어금니를 부서져라 콱 깨물었다.
“네,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확실해!”
“제가 왜 그런 걸 거짓말 하겠습니까.”
잡혀온 사내는 부들부들 떨었다.
“확실해!”
“화, 확실합니다.”
“확실하냐고!”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거친 고함이었다.
“화, 확실합니다. 확실합니다.”
객잔 사내는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었다.
이들이 누구인가. 시교혈랑대다. 군사를 죽이고도 도주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잡아가겠다고 소림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들개들이다.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가 바들바들 떨면서 노모보의 눈치만 살폈다.
노모보의 눈동자가 시뻘겋게 충혈 되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살수가 떨어질 것 같았다.
대화금장의 장주가 죽었다. 시교혈랑대의 이름으로.
‘미와빙!’
노모보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녀가 순순히 물러갈 줄 알았다.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다. 태양 한 개를 떨군다는 말에 공감하고, 이제부터는 오로지 그 일에만 매진할 줄 알았다.
후후후! 그녀를 잘못 알았다.
그렇게 같이 살아오고도 그녀를 몰랐던가.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는 건 진작 생각했어야 할 일이 아닌가.
“이익!”
분노는 진기를 이끌었고, 강한 힘이 두 손에 집중되었다.
그는 잡혀온 사내의 머리를 꾹 짓눌러 버렸다.
퍼억!
“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내의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으깨졌다.
머리뼈가 가루처럼 부서졌다. 누런 뇌수가 꽈배기처럼 터져나가 비산했다.
그래도 그는 오지에 힘을 꽉 주었다.
으드득!
머리뼈가 부서지면서 살과 뼈와 뇌수가 손아귀에 한웅큼 쥐어진다.
이는 미와빙에 대한 분노다.
독고금을 차지했어야 한다. 그녀가 가진 대화금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온다.
여인을 갖기로 작심했으면…… 보는 즉시 취했어야 한다. 길게 끌 것이 무엇인가. 벌써 제 여인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이렇게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은 없었을 게다.
그때…… 아버지가 그녀를 보여주었을 때…… 그때 취했어야 한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동침할 구실을 찾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두 손안에 날아들었던 새가 훨훨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끝났다.
그녀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미와빙을 죽이면 어떨까? 아비의 복수를 해주면 마음을 돌릴까?
천만에! 그러면 더더욱 환멸 할 것이다. 여인 하나를 취하고자 같은 동족을, 같은 섬 사람을 죽였다고? 이 무슨……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욕도 안 나온다.
자신 같으면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한다.
복수를 해준 고마움 같은 걸 느낄 이유가 없다. 멸시하고 조롱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게 모두 미와빙 때문이다!
이 화풀이를 어떻게 해야 할꼬.!
할 곳이 없다. 분풀이를 할 데가 없다. 미와빙을 단숨에 때려죽이고 싶지만…… 독고금이 떠난 지금, 그의 편에서 움직여줄 사람은 미와빙뿐이다.
이제는 죽으니 사나, 싫으나 고우나 그녀와 함께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내를 죽였다.
그녀에게 화풀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애꿎은 놈이라도 죽여야만 했다. 이놈이라도 죽이지 않고는 정말 분이 풀리지 않아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
“미루극.”
그가 손에 묻은 머리뼈를 털어내면서 미루극을 불렀다.
“후후! 미와빙, 그 여자…… 대단하지 않나? 그 순간에도 머리를 썼어. 혼자서 장주를 죽였어. 후후후! 그녀에게 이런 수가 있다는 걸 진작 눈치 챘어야 하는데.”
“용서해 주십시오.”
미루극이 대신 머리를 숙였다.
“아니, 그렇다고 네가 사과할 건 없고. 하려면 미와빙이 해야지. 후후후! 하지만 그 여자 사과 같은 거 할 여자가 아냐. 알잖아.”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대도. 어쩌겠나. 이제는 싫어도 좋아도 한 평생 같이 갈아가야 할 사이인 걸. 넌 이 길로 미와빙을 찾아가. 찾을 수 있지? 찾아서 살려.”
“주공!”
“너희! 너희도 같이 가. 대화금장…… 이제 바싹 독이 올랐을 거야. 가는 길이 쉽지 않을 테니까 조심해.”
“같이 안 가십니까?”
“난 두 놈을 찾아야지. 그놈들도 지금쯤은 미끼가 될 걸 알았을걸? 후후후! 미치고 환장할 거야. 그것보다 아주 곤란한 지경일 텐데, 그놈들을 도와줘야지.”
“주공, 저희도……”
“아니, 미와빙이 혼자서 장주를 죽였으니 나도 혼자 하는 일이 있어야지. 하하하! 걱정하지마라. 가. 도련에서 보자. 미와빙이 날 찾아오겠다면 하면 찾아와도 좋고. 하하하!”
노모보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화가 다 풀린 표정이었다.
***
야뇌슬은 주인이 아니다. 지인도 아니다.
그는 그저 방문객이다. 방명록에 이름도 기재하지 않은 특이한 방문객이다.
그는 객사(客舍)에 있다.
“안 돼! 소저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해!”
일도살쾌는 분명히 거절했다.
“내가 책임진다.”
석전검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후후후! 네 목숨값이 몇 푼이나 된다고, 그 목숨으로 책임 운운하는 게야.”
“일도살쾌, 넌 장주님을 지키지 못했다.”
“뭐야!”
“나와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물러서라. 내 머릿속에는 장주님에 대한 복수밖에 들어있지 않다. 그것을 방해하는 자는 누가 되었든 베고 넘어간다.”
석전검사도 단호했다.
“후후! 저놈에게 단단히 꽂혔군. 뭐에 그렇게 반한 거야?”
일도살쾌가 음성을 누그러트렸다.
그는 석전검사의 무공을 안다. 그래서 그와 부딪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상가의 무인이란 일에 따라서 팔리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장주를 호위해야 할 무인이 임무를 망쳤다. 장주를 죽음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당연히 대화금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허니 이대로 물러나면 그는 영원히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한다. 장주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항상 쫓아다닌다. 결국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그가 아직까지 대화금장에 붙어있는 것은 나갈 때는 나가더라도 장주의 복수는 하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꼬리표를 떼어내고 나가야 한다.
헌데 석전검사가 그가 봐야할 정보들을 모조리 방문객에게 보여주겠단다. 그에게 먼저 보여주고, 그가 필요 없다고 판단한 자료만 보란다.
그로써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하지만 석전검사가 검까지 들먹이니 생각이 달라진다.
그렇다. 야뇌슬은 적암도 출신이다. 적암도 무인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를 먼저 통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일에서 자신을 소외시키지만 않는다면.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알겠다.”
석전검사가 일어섰다.
“이번 일…… 나에게도 몫은 주겠지?”
“주지. 몫을 줄 때 물러서지나 마라.”
“후후! 날 완전 폐인……”
쾅!
석전검사는 그가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나가버렸다.
대화금장으로 전해지는 모든 정보가 야뇌술에게 건네졌다.
대화금장의 일급비밀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무림의 대소사도 염탐할 수 있다.
몇몇 정보는 정말 고급이다.
그가 읽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무림명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몇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대화금장은 정보 취급자를 지극히 제한한다.
눈으로 본 정보는 크건 작건 간에 일체 발설되면 안 된다. 영원히 함구하고 비밀 속에 묻어두어야 할 비밀이 너무 많다.
그런 정보들이 거름망 장치 하나 없이 건네진다.
고스란히 내놓는다.
석전검사가 검을 걸고 말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야뇌슬은 대화금장의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켰다.
그는 다른 정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시교혈랑대에 대한 소식만 찾았다. 하다못해 도련에 대한 소식조차도 한켠에 밀쳐놓고 보지 않았다.
시교혈랑대…… 시교혈랑대……
그는 적송림 십이좌실에 있을 때처럼 각종 서신들 속에 푹 파묻혔다.
“전서들을 읽다보니까 궁천문(弓天門)이라는 문파가 자주 거론되더군요. 어떤 문파입니까?”
“명궁이 많기로 유명한 문파입니다. 소저를 모셨다가 장타홀에게 죽은 일시관중 장건우기 궁천문 출신입니다.”
“그렇습니까.”
야뇌슬은 미간을 찌푸렸다.
궁천문 궁사들이 본격적으로 복수에 나섰다.
그들은 곡문권과 장타홀을 노린다. 일시관중이 장타홀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벼른다.
야뇌슬은 지도를 펼쳤다.
곡문권과 장타홀이 쫓기고 있는 곳…… 다시 말해서 궁천문 궁사들에게 밀리고 있는 곳……
지도를 살펴보면 앞날이 그려진다.
‘걸려든다!’
그는 곧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해냈다.
장타홀은 마지막 발악을 할 것이다. 그의 화살에 적어도 십여 명 이상의 명궁이 나가떨어진다. 장타홀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무공을 지녔다.
불행히도 곡문권은 언월도를 쓰지 못한다.
이 싸움은 활과 활의 싸움이다.
궁천문이 자파의 명예를 걸고 나선 이상, 근접전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가 언월도를 쓰려면 누군가가 다가와야 하는데, 그런 일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없을 것이다.
그때, 그의 귀에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소저께서 소림사에서 출발하셨답니다. 늦어도 내일 저녁에는 도착하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