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도검무안 104화]
第十七章 역습(逆襲) (2)
멀리 있는 자들을 죽이는 데는 활도 있다.
저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려면 적어도 이십시(二十矢)를 받아내야 한다. 화살 한 대에 한 명…… 스무 명은 죽어야 가까이 근접할 수 있다.
그만하면 살상효과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최대한 많이 죽여. 지금부터는 오로지 죽이는 데만 집중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죽이고 죽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필사적으로 도주해.”
미와빙은 아무래도 복중검을 실행할 생각이다.
은밀한 살행은 오래 가지 않는다. 지금처럼 만인 앞에 노출된 경우에는 몇 명 죽이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럴 경우, 제일 먼저 공격받는 사람은 그녀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적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적은 몹시 무서워한다.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와.”
장타홀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데…… 그래도 그녀가 하겠다니 말릴 방도가 없다. 자신들 곁에 있는게 안전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잘 들어.”
미와빙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마. 오로지 자신만 생각해. 내가 발각되든 어쩌든, 위험에 처하든 어쩌든…… 일절 신경 쓰지 마. 오직 자신만 생각해. 그게 한 명이라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야. 우리 모두 살려고 하면…… 모두 죽어.”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되냐.”
곡문권이 투덜거렸다.
“나 먼저 가.”
그녀가 냉정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제일 먼저 다루에 들려서 차를 마셨다. 저잣거리로 나가서 물건들도 구경했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이 태연하게 걸었다.
“하하하! 이거 참 맛있군.”
덩치가 산만큼 큰 곡문권이 찐빵을 사먹으며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지금껏 먹어온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꿀맛이다. 찐빵 속에 들어있는 팥이 혀끝에 살살 녹는다.
“맛있어?”
“맛있지. 너도 먹어봐. 정말 입에서 녹는다, 녹아.”
“살이 괜히 찌는 게 아니라니까.”
그들은 농을 주고받았다.
무인들이 한 명, 두 명 늘어가기 시작한다. 그들을 힐끔거리면서 쳐다본다. 곁눈질을 한다.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슬금슬금 곁눈질만 한다.
“못난 놈들.”
곡문권이 찐빵을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중원 무림은 틀렸다. 너무 약해 빠졌다.
그들이 보기에 곁눈질을 하는 무인들은 검을 뽑을 자들이 아니다.
무림이 어떻게 되든 간에 일신의 안위만 보장받고 싶은 그런 부류들이다.
무공을 수련하면 힘이 된다. 그 힘으로 잘 살 수 있다. 싸움은 싫고 잘 사는 것은 좋고…… 딱 그런 부류다. 사문의 위엄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족속들이다.
무인이라면, 적을 발견했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당장 검을 뽑는 게 정상이지. 곁눈질은 왜 하는가! 자신들은 상대가 안 될 것 같으니까 무공이 강한 고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건가!
“우리가 먼저 시작할까?”
그가 언월도를 꾹 눌러 쥐면서 말했다.
그들은 긴장이 풀리는 게 싫다. 지금 상태 그대로 어떻게든 손맛을 보고 싶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이건 틀렸다. 손뼉이 마주쳐지지 않는다.
“기다려. 어차피 시작할 거.”
장타홀이 활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미와빙의 판단은 다르다.
‘움직이고 있어!’
무림 군웅들이 드디어 시교혈랑대를 찾아냈다.
찾지 못한다면 바보다. 무게가 육중한 언월도와 강철로 만든 활을 보고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눈을 뽑아버려야 한다.
곡문권! 장타홀!
두 사람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아예 내놓고 행동한다.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이곳이 도련인 것처럼 긴장을 탁 풀어놓고 쏘다닌다.
‘미안.’
그녀는 두 사람에게 일별을 던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두 사람에게 미안했다.
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싶지는 않은데…… 저들과 쌓은 친분이 적지 않은데…… 그래도 이제부터는 자신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고 앞만 보기로 했다.
노모보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미안해.’
그녀는 일어섰다.
“온다.”
“뭐가?”
“화살.”
순간이다.
쒜에엑! 타악!
날카로운 파공음이 귓전을 울린다 싶은 순간, 강전 한 대가 그들이 앉았던 자리를 강타했다.
“헉! 이런! 진작 좀 말해주지.”
곡문권이 감짝 놀라서 일어섰다.
드디어 공격이 시작되었다.
제일 첫발은 화살이다. 이쪽에 궁술의 달인이 있지만 저쪽에도 활을 쓰는 사람이 있다.
역시 위험부담 없이 공격하는 데는 화살이 좋다.
화살은 더 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대신
스르륵! 쿵!
멀리 삼십여 보쯤 떨어진 지붕 위해서 한 사내가 썩은 짚단처럼 흘러내렸다.
“귀신같은 솜씨군.”
“천왕구참도에는 은밀한 도법이 없는 데 말이야. 저런 솜씨는 어디서 배운 것일까?”
두 사람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화살을 날린 자가 죽었다. 복중검에 당했다. 미와빙이 움직였고, 은밀하게 제거했다.
미와빙은 제 할 바를 다하고 있다.
어쨌든 그녀가 제거해주니 편하기는 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장타홀이 화살을 날렸어야 할 텐데.
장타홀이 가둥에 박힌 강전을 뽑아서 허리춤 요대에 찔러넣었다.
화살을 한 대라도 아껴야 한다. 적의 화살이라도 수거해야 한다. 이 한 대가 사람 목숨 하나다.
곡문권이 언월도를 들고 일어섰다.
“보아하니 우린한테도 손님이 온 것 같은데…… 그만 일어서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 대신 탁주 한 사발 먹을 걸 그랬나?”
“아! 탁주! 제길! 그런 말을 왜 해! 하려면 진작 하던가.”
“하하하!”
그들은 다루를 나섰다.
쉬이익! 쒸이이익!
여기저기서 하루살이들이 날아다닌다. 그들을 포위하는 무림 군웅들의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시교혈랑대를 잡았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후후후!”
장타홀이 활에 화살을 재우며 웃었다.
‘마안, 미안, 미안……’
그녀는 지붕 위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 봤다.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저들의 의심을 풀었다.
이제는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수많은 군웅들이 공격할 터이니 뒤에서 누가 제거되었는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다.
이제부터는 저들 자신도 자기 목숨은 자기가 보존해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달아나라!
‘살아나기 바래.’
그녀는 발길을 돌렸다.
삶을 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싸움에 끼지도 않는다. 그러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태양 하나를 떨구는 일…… 그 일을 시작한다.
***
시교혈랑대가 나타났다!
소문이 바람을 타고 단숨에 천 리 밖까지 전해졌다.
그 어떤 말보다, 그 어떤 중요한 소식보다도 가장 빨리 알아야 될 귀중한 소식이다.
추여룡 군사를 죽인 놈들!
당장 그들의 등 뒤에 진한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개방, 하오문 그리고 각 문파의 눈과 귀라는 조직들이 발 빠르게 달라붙었다.
그들은 두 명을 찾아냈다.
언월도를 쓰는 곡문권과 활을 쓰는 장타홀!
두 사람의 신분이 사방팔방에 알려졌다. 그들의 무공이 천왕구도와 흑조탄궁술이라는 사실도 퍼져나갔다.
무공이 상당한 고수들이다.
웬만한 무인들은 가까이 근접도 하지 못한다. 멀리서 지켜보다가 꼬치가 되어버린 무인도 다수다. 어쩌다가 기습에 성공했어도 천력으로 휘두른 언월도에 두 동강이 나버린다.
그들의 몸에 검을 대기가 쉽지 않다.
중원 무인들을 서둘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 하남에서부터 도련까지 도주하려면 장장 한 달 이상이 걸린다. 그 먼 길을 밤잠 한 숨 자지 못하고 쫓긴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놈들은 결국 잡힌다.
가까이 다가설 필요가 무엇인가?
멀리서 화살을 쏘아댄다. 필사적일 필요는 없다. 단지 쉬지 못하게 하는 차원에서, 계속 몸을 움직이라는 뜻에서 채근하는 화살만 쏘아낸다.
이것은 장타홀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는 화살이 없다. 겨우 수중에 쥐고 있는 스무 시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화살이 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군웅들이 꾸준히 제공해 준다. 그러니 살맛난다.
군웅들도 그런 점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안다. 하지만 ‘그래, 그 정도는 가져라’하는 심정으로 쏘아낸다. 한 번에 수십 명이 일사불란하게 쏘아내고 숨는다.
수십 자루가 비 오듯 쏟아지면 아무리 장타홀이라고 해도 몸을 숨길 수밖에 없다.
그가 수십 자루 화살을 모두 챙길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필요한 만큼만 챙기게 되어 있다.
줄 건 주면서 이득을 취한다.
밤새 한 줌 자지 못하도록 틈이 날 때마다 화살을 쏘아댄다.
과연 두 사람은 서서히 지쳐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밥 한 끼 먹을 틈을 주지 않았다.
화살이 날아들지 않는 곳으로 숨으면, 불화살을 날렸다. 화살 끝에 기름주머니를 붙인 불화살을 쏘아내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불길이 확 퍼진다.
사과 한두 개 들고 다니면서 씹어 먹는 게 고작이다. 찐빵이나 만두 같은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라. 편하게 앉아서 먹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잠? 잠은 물론 못 잔다. 앉지도 못하는 판에 어딜 눕겠다고 하는가. 잠도 그냥 서서 자라.
어디……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야밤도 대낮처럼 밝다. 그들이 있는 곳에 화린(火燐) 섞인 화살을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