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도검무안 99화]
第十六章 일어서는 자 (3)
추여룡의 안배다.
이번 일은 아마도 추군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 같다. 그가 죽기 전에 이미 사후의 일을 책정해 놓은 듯하다. 소림사에 가면 자세히 알겠지만, 꼭 그런 느낌이 든다. 이건 직감이지만 내기를 해도 좋을 만큼 자신있다. 그때,
두두두두!
멀리서 한 무리의 말들이 달려왔다.
새 번째 기마!
이번에는 말 두 필이다.
그들은 마차 곁에 달려와서, 능숙한 기마술을 발휘하여 펄쩍 뛰어내렸다.
“모용세가(慕容世家)의 기(淇)입니다.”
“모용군(慕容涒)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일신으로 방패막이를 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마차를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모용아가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으면서 반겼다.
“삼촌! 오라버니!”
그러나 두 사람은 웃지 않았다. 다만 입가에 가벼운 미소만 지어보였다.
‘잘 있었니?’
‘좋아 보이는구나.’
삼촌과 오라버니의 얼굴에 그들의 생각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 속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포권을 풀지도 않았다. 최대한 경의를 표해서 깊이 허리를 숙여보였다.
모용아가 눈만 꿈뻑거렸다.
삼촌과 오라버니의 행동…… 이것은 군사에 대한 예우다. 가족의 일원으로 맞아하는 게 아니라 군사로써 대하고 있다. 윗사람을 받들겠다는 뜻이다.
“숙경(宿警)이신가?”
취화선개가 높임말을 썼다.
원래 그의 배분이 두 사람보다 한 배분 높다. 평소에 만났다면 당장 하대를 했을 것이다. 더욱이 모용군은 취화선개의 눈으로 보면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풋내기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을 높인 것은 그들의 숙경일 것 같아서였다.
“영광된 일을 맡았습니다.”
모용기가 말했다.
군사의 가문에서 몇 사람이 차출되어 군사를 보필한다. 군사의 손발이 되어줄 사람들이다. 부임 초반에는 아무래도 일가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편안한 측면이 있다.
군사의 최측근이자, 복심(腹心)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을 숙경이라고 부른다.
취화선개를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큰 일을 맡으셨네. 잘 보필하시게.”
“명심하겠습니다.”
모용기가 읍을 해보인후, 날렵한 솜씨로 말에 올랐다.
“거봐. 축하해.”
독고금이 생긋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군사!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원 대무림의 군사가 되어 있었다.
사실 이 부분, 독고금이 될 줄 알았다. 그녀에게는 대화금장이라는 거대한 배경이 있다. 무림에 싱싱한 피를 제공할 수 있는 금원(金原)이 있다.
자신은 뛰어난 게 없다.
자신이 생각해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것 같은데, 여타 문파의 책사(策士)들에 비하면 크게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군사가 되었다.
“언니.”
“걱정하지 마. 동생을 잘 할 거야.”
독고금은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는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자신 없어요.”
“잘 할 수 있어.”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실래요?”
“호호호! 그럼.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
“진심이에요. 언니가 도와주지 않으면 정말로 어떻게 할 지…… 그냥 도망가고 싶어요.”
“호호호! 그러면 안 되지.”
독고금의 눈빛이 반짝였다.
모용아의 눈빛도 그 어느 때보다 맑게 빛났다.
군사라는 중임을 맡고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걱정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자, 말해봐. 무엇을 도와줄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단지 지나가는 말로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란 것을 안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묻는다. 무엇을 도와줄까?
모용아가 천천히 말했다.
“대화금장의 절반을 주세요.”
“절반? 호호호! 야뇌슬은 성 하나를 달라고 했는데, 동생은 절반이야? 대화금장의 절반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 하는 말이야.”
“알아요.”
“그런데 그 많은 돈을 달라고?”
“어쩌면 절반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대화금장이 망할 수도 있겠어요.”
옆에서 가만히 말을 듣고 있는 단황신개와 취화선개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눈만 끔뻑거렸다.
지금 눈앞에서 두 여자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하고 있다.
뭐? 대화금장의 절반을 달라?
그만한 돈이면 중원을 뒤집을 수 있다. 지금 대화금장의 한 마디에 강북 상권이 들썩이고 있다. 상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무인이고 일반인이고 가리지 않고 감시한다.
그런 힘들이 돈에서 나온다.
그것을…… 절반을 달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독고금이 말했다.
“동생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 알았어. 줄게. 절반. 정말 동생 말처럼 망할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뭐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니까……“
“대화금장이 망하면 언니 노후는 제가 책임질게요. 호호호!”
“아니, 그건 필요 없고…… 내가 원하는 거 알지?”
“휴우!”
모용아는 대답대신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그녀는 시교혈랑대를 넘어서 도련 전체로 원한을 돌리고 있다. 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상인의 규칙을 어기고 적을 만들고 있다.
아니, 이것은 아주 큰 도박이다.
대화금장의 모든 것을 걸고 대화금장만한 것을 더 먹느냐, 아니면 전부 내놓느냐 하는 큰 판을 벌이려고 한다. 그 원인을 시교혈랑대가 제공했지만……
그녀는 추여룡의 복수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게 아니다.
아주 영리하고, 무섭고, 냉정하다.
모용아가 대답했다.
“알겠어요. 저도 할 수 있는 건 다할게요.”
***
평탄하게 나아가던 마차가 소양하(少陽河)에 이르자 멈춰섰다.
“워워! 워!”
마차를 멈추는 소리가 굵직하게 울려왔다.
히히힝! 히힝!
마차 앞에서, 좌우에서…… 거의 동시에 말들도 멈췄다.
무슨 일인가? 또 누가 찾아온 것인가?
이제 소림사가 지척이다. 시비를 걸어올 만한 사람은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시교혈랑대는 소림사까지 침입해서 추여룡을 화살 한 대로 떨궜다.
육매검, 삼청도인, 모용세가의 숙경…… 이들이 마중 나온 것도 그런 우려 때문이다.
커다란 소리는 울리지 않는다.
잠시 후, 조용한 말발굽 소리가 따각따각 들려왔다.
“대화금장 장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독고금 소저를 뵙고자 하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삼촌 모용기의 음성이다.
독고금과 모용아는 눈을 크게 떴다.
대화금장의 장주! 독고천(獨孤天)!
당금 중원을 먹였다가 살렸다가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거물!
곳간 문을 걸어 잠그면 풍년에도 아사자가 속출할 것이라는 불세출의 대상(大商)!
그가 왔다. 직접 왔다. 그리고 숙경을 통해서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딸을 만나는 일인데, 모용아에게 부탁하는 형식을 취한다.
모용아의 달라진 위상이다.
모용아는 이제 한낱 무림 여인이 아니다. 대중원의 군사다. 이적(夷狄)이라고 일컫는 도련을 몰아내고 중원 남부를 되찾아야 할 소명이 있다.
아니, 이것은 그가 모용아에게 베푸는 최대한, 최상의 예우다.
사실 그녀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대화금장의 장주와 견줄 수는 없다. 소림사 방장이라고 해도 대화금장 장주가 걸음을 했다고 하면 버선발로 뛰어나올 판이다.
한 나라를 주무르는 황제도 대화금장의 장주와는 두 손을 맞잡는다. 하물며……
“아버님이 오셨네.”
독고금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나보세요.”
모용아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장주가 직접 거동한 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장주는 모용아의 군사위임에서 아주 큰 기회를 찾은 듯하다.
대화금장의 절반을 달라는 말에 독고금이 선뜻 응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약간의 접촉을 원하는 것이다. 지금은 단지 안면만 익히는 정도?
독고금이 씁쓸하게 말한 것은 아버지의 속내가 너무 환히 읽혀서 민망했기 때문이다. 또 모용아가 웃으면서 말한 것은 그런 장주의 뜻을 알았다는 의미다.
“나갔다가 올게. 먼저 가도 좋고.”
“기다릴 게요. 대화금장의 절반을 받은 것보다 언니를 얻은게 더 기쁘니까요.”
모용아가 독고금의 두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대화금장의 장주 독고천은 풍채가 좋은 중년인이었다.
몸이 약간 뚱뚱하고, 머리가 절반쯤 벗겨졌으며 희끗희끗한 세치가 엿보였다.
무척 온화한 인상이다.
장주는 길가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큼지막한 수건으로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자 장주는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얼굴이 많이 안 됐구나.”
“추여룡이 죽었잖아요.”
“쯧! 아까운 사람이 죽었어.”
장주가 혀를 찼다. 그러나 크게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추여룡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어!’
무엇인가 이상하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일이 암중에 흐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추여룡와 아버지 사이에 무슨 일인가가 있었다.
장주가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이번 고행길에…… 야뇌술이라는 자를 봤을 텐데. 그래, 네가 보기에는 어떤 사람이더냐?”
‘역시!’
사람을 잘 읽기로 소문난 그녀다.
그 속에는 지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아버지와 추여룡도 그녀의 눈에 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눈에 띈다는 것은 성품이나 움직임이 읽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험한 사람이에요.”
그녀는 솔직히 말했다.
장주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흘깃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