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도검무안 94화]
第十五章 애사(哀死) (4)
추여룡의 사망소식이 강북 무림을 강타했다.
“추군사가 죽었다!”
“시교혈랑대가 죽였다!”
잔혹한 소문이 날개라도 달린 듯 하루도 안 되어서 전 무림에 퍼져나갔다.
시교혈랑대는 단번에 강남 무림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다.
사주들이 제일 먼저 반겼다.
노모보는 강자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적암도 제일의 천재다.
그런 그가 시교혈랑대를 이끌고 무림을 떠돈다. 허드렛일을 하면서 풍찬노숙 한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련주는 용서를 쉽게 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기화로 화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추여룡을 죽인 공로를 생각해줘야 한다. 그 정도라면 야뇌슬을 죽이지 못한 죗값은 상회하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도련은 체면을 크게 구겼다.
도련은 독고금과의 혼사를 강남무림에 선포했다.
그런데 신부가 없다. 독고금이 사라졌다.
독고금을 도련 본단에 모셔놨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감쪽같이는 아니다. 많은 무인들이 지키고 있다가 야뇌슬에게 빼앗겼으니 눈 뜨고 놓쳤다는 편이 맞다.
그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이 소문은 도련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강북 무림으로 넘어간 독고금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련은 사건을 은폐하고 있었다.
또 한 군데, 도련만큼이나 망신을 당한 곳이 있다.
소림사가 온갖 힐문에 시달린다.
“무림의 태산북두? 태산북두 좋아하시네.”
“그렇게 자신없으면 모시지를 말아야지. 추군사를 그 따위로 모셔놓고 뭘 잘했다고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다녀! 그놈들, 앞으로 시주도 주지 마.”
소림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숭산을 찾는 향화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숭산으로 향하던 시주물도 방행을 틀어 되돌아갔다.
세상이 소림사를 등진다.
강북 무림의 태산북두와 강남무림 도련 본단이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시교혈랑대의 명성만 하늘 높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하! 우리가 해낸 게 맞아? 난 지금도 꿈만 같다니까.”
“맞다. 맞아! 하하! 야, 그런데 넌 뭐 그 따위 놈을 죽이면서 화살을 석대나 쏘냐? 한 방이면 되잖아?”
“후후!”
장타홀은 옅은 웃음을 흘렸다.
그는 필요할 때만 말한다. 필요할 때만 행동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늘 조용히 있는다. 하지만 그런 그도 추여룡을 죽인 일만큼은 흥분했는지 술을 마신다.
“추여룡이 얼굴이 박살났단다.”
“심장도 뻥 뚫렸다던데?”
“하하하! 그놈 그렇게 죽이면 안 되는데.”
어지간한 싸움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시교혈랑대가 하루종일 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 숭산으로 발길을 옮길 때만 해도 손에 잡힌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소림사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무 것도 모른 체 산을 올랐다가 추여룡의 목숨을 주워왔다.
소림사의 강력한 반격을 예상했는데, 그런 것도 없다. 숭산을 벗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추격하는 소리가 제법 거셌는데, 숭산을 벗어난 후에는 모든 잡소리가 뚝 끊겼다.
추여룡을 죽인 게 꿈만 같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 무사히 탈출할 수 있는 거야?”
“왜? 못할 겉 같아?”
“못하기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잡아먹으려고 우르렁 거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탈출할 수 있어.”
미와빙이 단호하게 말하면서 일어섰다.
“술들 조금만 먹어. 우린 참 많이 싸우면서 내려가야 해. 어느 쪽으로 가든 어렵기는 마찬가지고.”
련주가 말한 보름의 기한은 지킬 필요가 없다.
독고금이 탈출했다. 소문에 의하면 야뇌슬이 주도했다고 한다.
이건 대단하다. 본단이 사람을 빼앗겼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미와빙은 그 생각에 몰두했다.
그녀는 화전민촌을 가봤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검문을 몇 차례 당했다.
십교두의 벽이 너무 단단하다.
그곳을 힘으로 뚫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노모보도 해내지 못할 일이다. 시교혈랑대가 모두 동원되어도 불가능하다.
시교혈랑대와 십교두의 무공을 동수라고 볼 때, 그들은 십 대 육의 결전을 치러야 한다.
패한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은 흠이 아닌가?
아니다. 먹고 먹히는 싸움에서는 숫자를 논하면 안 된다. 이쪽이 한 명이고, 저 쪽이 백 명이라도 지ᅟᅧᆫ 죽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는 침묵해야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그들과 반드시 부딪치게 되어 있다.
소림사에는 미약한 경계망이 있다. 노염백이 몇 번 건드리고, 그때마다 장타홀이 해결한 것 같은데……
도련에도 경계망이 있다.
소림의 경계망정도는 어린애 취급하는 아주 고도의 경계망이 있다.
야수! 야수의 직감! 야수의 영능!
어느 누구라도 산중턱에 있는 야수를 피해갈 수는 없다. 하늘을 나는 새도 야수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곳을 어떻게 뚫고 올라갔단 말인가.
야뇌슬이 한 일에 비하면 자신들이 한 일은 일도 아니다.
그녀는 소림사 전체보다 도련이 더 강하다고 봤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도련 십교두의 무공은 십대문파 장문인들에 버금간다.
소림사에는 소림 무승이 있지만, 도련에는 십대문파 장문인이 있다. 소림사에는 기관으로 된 경계망이 있지만 도련에는 야수가 있다. 아니다.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하자. 수라도주와 이십여 명의 사주들을 어떻게 뚫었나.
야뇌슬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
야뇌슬의 지혜는 어느 정도인가.
이 모든 게 신경 쓰인다.
문득 야리몌가 생각난다.
그 여자는 세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살았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녀야말로 뛰어난 재녀다.
그녀가 사내의 사랑에 속지 않았다면 눈을 크게 떴을 게다. 그리고 그랬다면 부도주의 반란도 사전에 탐지했을지 모른다. 노모보에게 시선을 빼앗기지만 않았다면.
그 전에…… 노모보의 선택도 그녀였다.
도주를 죽이는 일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녀와 함께 살고 있을 게다. 깨가 쏟아지게 살 것이다. 그런 연극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내다.
그녀의 머리를 빌리면 못해낼 일이 없다.
그럴 정도로 인정받은 재녀다.
그런만큼…… 그녀를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녀의 아비를 죽이는 만큼 그녀의 생명도 끊어야만 했다. 또 그런 맥락에서 야뇌슬의 목숨도 처리해야 한다. 죽여야 한다.
련주가 그토록 화를 내는 게 지극히 타당하다.
노모보는 그런 사내를 죽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사내를 놓고 섬을 떠나온 것이다.
솔직히 노모보가 자식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련주에게 무정하다고 하지만 그녀는 련주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야씨…… 그놈의 피는…… 징그럽다.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도주는 무공이 별 볼일 없었다. 송연부인도 마찬가지다. 야리메도 똑같다.
야뇌슬이라고 다를까.
다르다. 놈은 달랐다. 평범함을 넘어서서 천재 소리를 들었다.
야뇌슬은 머리도 좋다.
적송림 십이좌실에 틀어박힐 때부터 무(武)보다는 문(文)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놈은 머리가 아주 좋다.
도련 본단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은 무공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한 치 빈틈없는 행동들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그는 그런 일을 해냈다.
야뇌슬은 강적이다.
추여룡을 죽였다고 안심할 게 아니다. 빈산릉도 처리하겠지만…… 그 뒤에 또 한 명이 있다. 전혀 생각하지 않던 자, 야뇌슬까지 처리해야 한다.
‘복잡하게 됐어,.’
‘독고금……’
노모보는 미와빙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했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주먹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추여룡의 머리를 가져와라? 혼인예물을 가져와라?
기껏 그런 명령을 내렸으면 여자 한 명 정도는 잘 가둬놓고 있어야 하지 않나.
여자를 놓쳤다.
그 여자…… 독고금을 놓쳤다.
노모보는 독고금의 영상이 머릿속에 틀어박혀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예쁘다.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쁘다. 정이 떨어질 만큼 추한 모습을 봐도 예쁠 것 같다.
그런 여자가 품에 안겼다가 떠나갔다.
자신의 여자가 될 뻔 했는데, 영영 이루어지지 못할 관계가 되어버렸다.
아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여자, 자신이 되찾으면 된다.
‘독고금을 다시 잡아 간다면……?’
그는 미와빙을 힐끔 쳐다봤다.
그녀가 도와주면 된다. 이번처럼…… 추여룡을 죽일 때처럼 대화금장에 쳐들어가서 그녀를 납치해가면…… 신주사창과 일시관중을 죽이고 납치할 때와 무엇이 다른가.
‘다르지 않아. 똑 같아. 후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루극이 옆으로 다가왔다.
“독고금?”
노모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든지 터놓을 수 있는 오른팔.
“그 여자는 독(毒)인데…… 포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말투가 좋다.
미와빙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 여자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그녀가 위험한 여자, 골치아픈 여자이기 때문에 포기하란다. 다른 부분은 이해한다는 뜻이다.
“그게…… 안 된다.”
노모보는 고개를 내둘렀다.
“그럼 할 수 없죠. 취해야죠.”:
미루극이 노모보의 생각을 읽고 말했다.
이래서 오른팔이다. 이래서 뜻을 같이 한다.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어주니 얼마나 편한가.
“저 애는 제가 설득해 보죠.”
“그래줘.”
노모보는 미안하다는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는 독고금을 원한다. 대화금장을 원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조건을 보고 만났다. 야리몌와 살을 섞으면 적암도를 통치할 수 있다. 미와빙과 살을 섞으면 그녀의 머리를 이용할 수 잇다.
물론 그녀들이 여자로써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미와빙은 적암도 제일의 미녀다. 강남 무림에 와서도 그녀만한 미모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야리몌는 약간 부족하다. 그렇다고 추녀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래도 평범한 축에는 속했다.
독고금은 그녀 자체만 생각난다.
대화금장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배경이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대화금장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확실히 이건 적암도의 방식이 아니다.
혼인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녀를 만났을 때, 그 날…… 그날 그 여자를 취했어야 한다. 자신의 씨를 뱃속에 남겼어야 한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았으리라. 탈출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게다.
아버지 때문에……
‘독고금을 찾아간다. 그리고 아버지…… 정말 이렇게 실망만 안겨줄 거요?’
그는 아버지가 싫었다.
미와빙과 반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치밀었는데, 지금은 미움이 싹튼다.
아버지가, 도련 련주가 싫다. 모든 면에서 싫다.
미루극은 미와빙을 한적한 곳으로 불렀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뇌물 받았어?”
“그래, 조금 받았다.”
“돌려줘. 독이 될 뇌물이야.”
“와빙아.”
“독고금을 데려가겠대?”
“알고…… 있었니?”
“아직도 몰랐어? 내 모든 게 저 사람을 향해서 열려 있잖아. 저 사람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모른다면 말이 안 되잖아.“
“너…… 괜찮니?”
“그 부분은 양해한다고 했어. 어쩔 수 없더라고. 저 바보 같은 남자…… 여자를 한 번 보고 사랑에 빠져버렸네. 호호호호!”
“와빙아, 내키지 않으면……”
“아니, 괜찮아. 독고금을 잡아가는 것도 큰 수확이야. 시교혈랑대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게기가 될 수 있어.”
미와빙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지 않다.
사내가 딴 여자를 바라보는데 기분 좋을 여자가 어디 있나. 그런 여자는 한 명도 없다.
이 사내, 자신을 이용한다. 필요하면 여자를 잊겠다고 하고, 볼일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 속 여인을 찾는다.
그런 면이 좋다.
그런 면이 없으면 세상을 휘어잡지 못한다.
어차피 사내는 바람을 피운다.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 여자 저 여자를 기웃거린다. 그럴 바에는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이용하는 편이 낫다.
아니다. 그건 머릿속에서 하는 말이고…… 세상 모든 여자를 죽여서라도 저 사내의 눈길을 나한테만 쏠리게 하고 싶다.
이게 진실이다.
하지만 이미 사랑에 깊이 함몰되어버린 사내……
“휘우우.”
그녀는 한숨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