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도검무안 86화]
第十四章 잠입(潛入) (3)
그만큼 사기가 중요하다.
그렇다고 강북 무림부터 떨구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러면 련주의 성세가 드높아진다. 그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한다. 무공으로, 암계로…… 그 어느 것으로도 련주를 건드릴 수 없다.
양쪽의 기세를 동시에 누그러트려야 한다.
그 첫 번째 단추로 강북 무림에서는 추여룡을 제거한다.
그러면 이쪽에서도 추여룡에 비견되는 자를 쳐야 한다. 그 자는…… 빈산릉!
빈산릉은 촉수(觸手)가 많다.
강남 무림 곳곳에 자신만의 비선(秘線)을 깔아놓고 있다. 그들을 통해서 정보를 입수하고, 계획을 세운다. 불평불만이 있는 자들을 사전에 차단시킨다.
강남무림은 련주를 받들어 모시지만, 그들 마음속에 두려운 존재로 자리 잡은 사람은 빈산릉이다.
옛날, 적암도에서 련주가 했던 일을 그가 하고 있다.
빈산릉은 그런 점에서 제일 먼저 쳐내야 한다.
‘이런 일은 서둘면 안 돼. 천천히…… 천천히 다가가는 거야. 그러려면……’
사실…… 이런 계획을 오래 전부터 수립해왔다.
그녀에게는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이 나서서 구할 수는 없고, 자진해서 청해올 사람이.
노모보가 청해왔다.
그녀가 생각했던 여러 명 중에 최고의 사내가 왔다.
‘하늘에 주사위를 던질 시간이야.’
그녀는 가벼운 경장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허리에는 오랜만에 휴협도를 찼다.
그리고…… 일어섰다.
***
시교혈랑대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늑대와 닮았다.
늑대도 시교혈랑대처럼 떠돌지는 않는다. 그놈들도 자기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시교혈랑대는 임무를 찾아서 떠돈다.
어떤 때는 광동성에, 또 어떤 때는 강서성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언제나 주어지는 임무를 따라서 흘러 다닌다.
적암도 무인들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전장을 따라서 움직인다.
전선이 앞으로 나아가면 그들도 나아간다. 뒤로 물러서면 그들도 빠진다.
지금은 고착 상태다.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한 곳에 터를 잡고 앉아서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잠잔다. 시교혈랑대처럼 허름한 객잔에서 시간을 죽이지는 않는다.
덜컹!
미와빙이 닷새 만에 문을 밀치고 나왔다.
그녀는 지난 닷새 동안 하루에 네 번, 혹은 다섯 번씩 목욕을 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목욕을 한 것이 아니다.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면 뜨듯한 목욕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문을 밀고 나선다.
그녀가 객잔 한 가운데 앉자, 시교혈랑대가 모여들었다. 노모보를 필두로 모두 모였다.
“끝난 것 같은데…… 가능성은?”
“어차피 한 번은 죽는 목숨이잖아. 늙어서 추한 모습으로 죽기는 싫어. 해볼래.”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잘 됐군. 방법이 없으면 어쩌나 했어.”
탁태자가 말했다.
“흐흐흐! 방법이 없다면 평생 멍멍 짖다가 죽어야지 뭐. 련주님…… 우릴 너무 얕보신단 말이야.”
노염백이 씩 웃었다.
미와빙이 말했다.
“아니…… 당분간은 숨 죽여. 계속 시키는 대로 멍멍 짖어. 이 일은 천천히 진행시켜야 돼. 그렇지 않으면 적암도와 전면전이 돼. 그런 일은 바라지 않잖아?”
부모형제들과 싸울 수는 없다.
야망을 위해서는 형제 한두 명쯤 죽이는 게 능사인 세상이다. 하지만 가족들 전부와 싸운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때는 자신들이 한두 명을 죽이는 게 아니다. 저들이 툭 튀어나온 모난 돌을 정으로 쪼아서 쳐내는 것이 된다.
적암도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길게 가. 길게. 그러니까 그동안은 아무 소리 말고 짖어. 짖으라는 대로.”
“그런가. 그럼…… 짖으라고 했으니 짖어야겠지. 추여룡을 잡는다.”
“어차피 추여룡도 죽여야 할 자야. 빨리 죽일수록 좋지. 이번 기회에 정리해. 그를 죽이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야. 우리의 기나긴 장도(長途)가.”
“그럼 다른 일은 천천히…… 모든 역량을 추여룡 죽이는 일에 집중한다.”
노모보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역모를 말했으면서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한 장의 지도를 들여다봤다.
“하북(河北) 숭산(嵩山)까지는?”
“보름이 넘게 걸려.”
“너무 늦어.”
노모보가 고개를 내둘렀다.
아버지는 보름이라는 시간을 남기고 그에게 밀명을 내렸다.
추여룡의 목을 가져와라.
헌데 도련 본단이 있는 형주부 남산에서부터 하북 숭산까지는 가는 데만 해도 보름이 넘게 걸린다.
가는데 칠 일, 오는데 칠 일, 안에서 일을 벌이는 데 딱 하루.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헌데 벌써 오 일을 까먹었다. 남은 시간을 열흘뿐이다. 그 안에 추여룡의 목을 가져와야 한다.
숭산에 가서 어떻게 추여룡을 치느냐 하는 문제는 아예 고려대상도 아니다. 지금 당장은 숭산까지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가느냐가 관건이다.
관도로 질주할 수는 없다.
말을 타고 달릴 수도 없다.
자신들의 모습만 봐도 뒤로 물러서고, 무슨 말이든 다 들어주는 땅에서 벗어난다. 새롭게 발을 디딘 땅은 그들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땅에는 오래 있지 못한다.
그 땅에서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편히 자지도 못하고, 숨 쉬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한다.
“밤에 움직이고 낮에 쉬고. 관도는 이용하지 못하고, 말도 쓰지 못하고…… 또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나?”
“산과 들과 강을 지나야 해.”
“그럼 시간이 열흘은 더 걸려.”
애당초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명령이다. 추여룡을 죽이는 것은 고사하고 숭산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오라는 명령도 이행하기 어렵다.
노모보가 미와빙을 쳐다봤다.
“구경만 할 거야?”
“호호호! 묻지도 않았잖아.”
“끙! 좋아. 방법이 없겠어?”
미와빙이 말했다.
“방법이 왜 없어. 방법이야 넘치고도 넘치지. 그냥 마차 타고 가. 뭘 어렵게 고민해?”
시교혈랑대는 오늘 밤도 움직인다.
쉬이익! 쉬익!
야밤에 달빛을 등불삼아 길을 밝힌다. 신형을 띄운다.
객잔에서 나와 산을 넘었다.
드디어 적의 땅으로 들어섰다. 지금부터는 만나는 사람 모두가 적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농부이거나, 어린아이이거나…… 이미 죽어서 관속에 들어간 시신까지도 적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산을 넘었다.
낯선 마을, 낯선 길이 나타났다.
원래 이 길은 객잔에서부터 이어진 길이다. 낯선 마을은 객잔에서 겨우 십 리 떨어진 이웃이다. 그들에게는 낯설지만 객잔 주인이나 점소이에게는 동네 이웃이나 다름없다.
저들에게 강남 무림, 강북 무림의 구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구분은 무인에게만 있다. 객잔에는 강남 무림의 눈이 있고, 낯선 마을에는 강북 무림의 세작이 있다.
그들이 오가는 무인을 살핀다.
남쪽에서 누가 오고, 북쪽에서는 누가 내려갔는지…… 무인의 동정을 세밀하게 살핀다.
이까짓 마을쯤은 산을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러라는 것이다. 관도로 들어서지 말고, 힘든 산길로 가라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막지 못하지만 버젓이 관도로 들락거리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노모보가 새벽어둠에 잠긴 마을을 쳐다보며 말했다.
“산 하나 더 넘어야지?”
“호호! 이왕 넘는 것 두어 개 더 넘지 뭐. 오늘 저녁부터는 편히 갈 수 잇잖아? 저녁부터는 푹 쉬면서 갈 수 있으니까 실컷 몸이나 풀어둬.”
“가지.”
그들은 다시 신형을 쏘아냈다.
진릉표국(鎭凌鏢局)은 성나(成那)에 근거를 둔 작은 표국이다.
보표 열댓 명을 두고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운송해 준다. 그래도 인근에 천석꾼들이 꽤 있어서 수입은 괜찮은 편이다.
커다란 표국이 건드리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들을 진릉표국 같이 작을 표국들이 차지한 것이다.
표국에 손님이 들어섰다.
오십여 가호(家戶) 정도 되는 작은 도읍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미인이다.
미인의 첫 마디는 경악스러웠다.
“나, 시교혈랑대야. 다 쓸어줄까?”
표국주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성나는 강남 무림을 지척에 두고 있다. 말을 타고 달리면 반시진도 안 되어서 도착하는 곳이다.
어쩌다가 이런 경계선에 서게 됐는지……
그래서 항시 도련 사람들이 들이칠 것을 염려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들이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게 현실적이다. 코 앞에 도련이 있는데 들이치지 않겠나.
그에 대한 대비책을 항상 생각해왔다.
당황할 일이 아니다. 평소에 생각한 대로 하면 된다.
“표국은 무림과 한 형제이나 하는 일이 다릅니다. 시교혈랑대가 쓸기에는 너무 보잘 것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은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사주란 자들이 오면 그들을 거론하면 된다. 강남 무인들이 오면 그들 이름을 집어넣으면 된다. 항시 생각했고, 미리 준비해뒀던 말이니 슬슬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