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도검무안 80화]
第十三章 진공(眞功) (3)
야뇌슬은 무엇을 내줄 것인가?
대화금장 장주의 입장에서 야뇌슬은 도련으로부터 자신의 딸을 구해준 은인이다. 그럼 그런 은인이 은혜를 이유로 성 하나 살 돈을 내달라고 하면 내줄까?
독고금이 말했다.
“정말 그만한 돈이 필요하세요?”
“중원에 아는 사람이 없소. 그래서 돈을 융통할 데가 없소. 성 하나는 고사하고 집 한 채 살 돈도 빌릴 수 없소.”
야뇌슬이 진지하게 말했다.
‘맙소사! 정말 돈을 빌리고 있어!’
모용아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만 할 말을 잃은 게 아니다. 노화자도 멍해졌다. 말을 듣고 있는 독고금도 장난스런 웃음기를 지웠다.
이 사람…… 정말 돈을 빌리고 있다.
야뇌슬이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공짜로는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고…… 대화금장 장주의 목숨을 살려주겠소. 그 정도면 돈을 빌리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요?‘
독고금의 안색이 서릿발이 맺혔다.
그녀의 눈가에 싸늘함이 서렸다.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독고금은 야뇌슬을 노려봤다.
이런 수단은 대화금장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대화금장에 손을 벌리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협박을 한다. 장주를 위협하기도 하고, 그녀를 협박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죽이겠다고 통보까지 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협박에 무릎을 꿇었다면 현재의 대화금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게다.
대화금장은 어떠한 협박에도 불응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장주의 목숨으로 그녀에게 협박해도 불응한다. 그녀의 목숨으로 장주를 위협해도 불응한다. 아예 불변의 규칙으로 규정시켜 놨다. 전 무림에, 만천하에 공표까지 한 상태다.
대화금장에 협박을 하지마라. 원한만 산다.
야뇌슬은 섬에서 왔기 때문에 그런 원칙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 장주의 목숨으로 협박을 하는 것이겠지.
아니다. 그게 아니다. 독고금이 오해했다.
모용아가 급히 일어나 야뇌슬 옆에 앉았다.
“누가 장주의 목숨을 노리는 데요?”
모용아의 말에 독고금도 야뇌슬을 쳐다봤다.
“련주가 노릴 거요.”
야뇌슬의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강렬했다.
“련주요? 호호호! 련주가 노리는 거라면 안심해도 되요. 그 정도는 생각하시고 계시는 분이에요.”
독고금이 자신 있게 말했다.
대화금장은 강북 무림에 있다.
련주가 강남무림을 틀어잡고 있지만 강북 무림까지 손을 뻗칠 수는 없다. 또 하나, 대화금장에는 강북무림의 군사인 추여룡이 있다. 추여룡에게 대화금장은 친정이나 다름없다.
련주의 입김이 닿을 수가 없다.
“흠! 그렇다면…… 아무래도 돈을 빌리기는 틀렸군.”
야뇌슬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야뇌슬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면벽수련에 들어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눕지도, 일어나ㅣ지도 않는다. 벽을 보고 앉아서 가만히 있는다. 석상이라도 된 듯 꿈짜ᅟᅥᆨ도 하지 ㅇ낳는다.
그는 세상과 담을 쌓았다.
모용아는 야뇌슬에게 말할 수가 없어서 마록타에게 물었다.
“련주가 대화금장 장주의 목숨을 노릴 거라는데…… 뭐 어디서 들은 소리라도 있는 거예요?”
“저놈이 노린다면 노려.”
마록타가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히죽 웃었다.
“그건 저도 알아요. 헌데 웬만한 근거가 있어야 이해하죠. 이해가 되어야 돈도 빌려주는 거고.”
“그건 주인한테 물어봐. 내가 저놈 머릿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그렇겠죠?”
“그래.”
마록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다. 모두들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해졌다. 야뇌슬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그의 말이 묵직한 납덩어리가 되어서 가슴을 짓눌러 온다.
야뇌슬은 굉장히 치밀하다.
어느 정도 앞날도 내다보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은 없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계획을 잘 세우다 보면 마치 앞날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야뇌슬이 그런 경우다. 그 정도로 머리가 좋다.
그런 사람이 대화금장 장주의 목숨을 거론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모용아가 말했다.
“그럼 다른 걸 물어볼게요. 도련이 사람을 보낸다고 하면 대화금장 장주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을까요?”
“키키키!”
마록타가 징그럽게 웃었다.
확신에 가득 찬 웃음이다. 도련이 움직이면 그 누구도 죽일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마록타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내가 숨어있으면서 들은 소린데…… 시교혈랑대가 명을 받았다는군. 저 여자와 혼인하는 예물을 준비한다나? 저 여자와 연인설이 나도는 추여룡 목을 베어오라고 했다지? 키키키! 어때? 어떨 것 같아? 시교혈랑대가 그 일을 할 것 같아?”
“그건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시교혈랑대라고 해도…… 에이, 그런 말도 안 돼요.”
모용아가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추여룡을? 호호호!’
독고금은 속으로 웃었다.
추여룡의 목숨이 노린다고 노려질 목숨인가.
그는 강북 무림의 군사다. 철통같은 경비 속에서 수많은 무인들의 호위를 받고 있다.
그런 사람은 암살해?
참 정말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자신이 화전민 촌에서 오제의 무공을 보고 있을 때, 노모보는 혼인예물을 준비하려고 강북으로 뛰어들었구나.
련주…… 참 대단한 사람이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사지나 다름없는 곳에 던질 수 있을? 아무리 자신의 미색에 반한 상태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미인계가 무섭긴 무섭다.
추여룡의 목숨을 가져오라는 명령은 가서 죽으라는 말과 같다.
시교혈랑대…… 그러잖아도 정도 무림의 골칫거리였는데, 그들을 이제야 잡는다.
그녀의 눈에 자신을 잠입시키기 위해 기꺼이 죽어간 신주사창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시관중의 당당하던 모습도 그려졌다.
그들을 죽인 게 시교혈랑대다.
비겁하게 암수를 쓰지는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무공으로 승부를 겨뤘다.
그런 점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약간은 위안이 될 게다. 아니, 더 억울하려나?
그녀가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마록타가 말했다.
“내가 그 말을 저놈에게도 똑 같이 했거든. 그러니까 저놈이 뭐라고 말했냐면……”
모두들 귀를 쫑긋 세웠다.
야뇌슬은 시교혈랑대를 가장 잘 안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 사람이 판단한 말이다. 뭐라고 했을까?
“가능하대.”
“가, 가능해요? 그게? 말도 안 돼!”
모용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난 몰라. 저놈 말이야. 가능하대. 노모보만 있다면 불가능하겠지만 미와빙이 있어서 가능하대. 키키키! 추여룡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놈, 죽은 목숨이야. 틀림없어.”
정도의 횃불, 정도의 군사…… 마록타가 그를 이미 죽은 사람처럼 말했다.
***
련주의 무공을 봤다.
십교두의 무공도 적의 입장에서 살펴봤다.
예전까지는 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무공은 그들 것이고, 자신의 무공은 자신 것이다. 서로 겨룰 일도 없고 상관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절공을 수련한들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제는 다르다. 서로 죽여야 할 상대적인 입장이니 신경써야 한다. 알만큼은 알아야 한다. 어떤 무공을 어느 정도 수련했는지 최대한 깊숙이 알아내야 한다.
많은 것을 봤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마도 자신이 본 것 보다 보지 않은 것이 훨씬 많을 것이다.
머릿속에 그들의 무공을 담아둔다.
그럼 그들의 무공에 견줄만한 무공도 구비해야 한다.
심등을 다시 일으킨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충분한 것은 없다. 밥 짓는 일에서부터 사람 죽이는 일까지 충분하거나 만족스러운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이이잇!
심등에 불을 켰다.
지금까지 심등은 진기를 밝히는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바뀌어야 한다. 보다 직접적으로 초식을 전개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럴 필요가 있다.
그에게는 불행히도 심등에 관한 구결이 많지 않다.
사실 그것이 염왕의 무공인지도 알지 못했다.
마록타가 일심불광이라니 그런 줄 알지만,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심등을 무공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어디엔가 방법이 있을 게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적암도로, 먼 옛날로 돌아갔다.
쏴아아아!
바닷바람이 후덥지근하게 밀려온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은 약간 답답한 듯 하지만 바닷사람들에게는 정겹기 이를 데 없다.
적송림으로 들어서면 후덥지근한 기운이 많이 가신다.
시원한 솔 향이 온 몸을 정화시켜준다. 머릿속을 맑게 해주고, 번잡했던 마음도 고요하고 평온하게 유지시켜준다.
불가의 최고 목표가 열반적멸(涅槃寂滅)이다.
열반은 잘 모르겠으되, 적멸은 알 듯하다.
적송림에 있다 보면 고요해진다. 평온해진다. 송림 밖에서 있었던 일들이 일체 생각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