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도검무안 77화]
第十二章 탈출(二) (7)
“자넨 오늘 실수를 세 번 했어.”
“세 번? 두 번이 아니고?”
우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두 번의 실수는 인정한다. 한 번은 마록타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또 한 번은 잘못된 방향으로 십교두를 이끌어서 추적을 못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무엇인가?
빈산릉이 말했다.
“방금 전, 련주와 놈이 싸울 때…… 자넨 제일 먼저 놈에게 달려들었어.”
“그거야……”
“모르겠나? 자네가 달려드니까 모두 달려든 거야. 자네의 느낌을 믿고 달려든 거지. 달려들면 잡을 줄 알고, 당연히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왜 그랬나?”
“……”
이번에도 야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느낌이 그랬다. 놈이 지전 뭉치 속으로 몸을 숨길 때, 이때 놈을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때가 아니면 놈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그러니 어찌 공격하지 않겠는가.
톡! 톡!
빈산릉이 야수의 어깨를 다독였다.
야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빈산릉은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는 느낀다. 그렇다. 야뇌슬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영능을 사용한다. 그의 방법이 훨씬 고명해서 자신이 휘둘렸다.
심력으로 심력을 조정한다.
그가 중얼거렸다.
“앞으로…… 야뇌슬 앞에서는 입을 다물어야겠군.”
모두들 빈산릉의 생각을, 야수의 생각을 읽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짐작해냈다.
야뇌슬은 세 가지를 갖췄다.
하나는 무공이다. 놈은 염왕의 무공을 이어받았고, 자신들과 손속을 겨뤄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고명해졌다. 더군다나 놈의 무공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게다.
두 번째는 영능을 지녔다.
무당인 야수가 쩔쩔 맬 정도로 뛰어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야수가 휘둘린 것만은 틀림없다.
세 번째로…… 이 부분은 아직 확정할 수 없지만…… 놈은 지략이 무척 뛰어나다.
놈은 침입부터 탈출까지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처음 시비를 걸어올 때부터 마지막에 벗어날 때까지…… 모두가 놈의 머릿속에서 놀아났다.
그렇다면 수라도주가 놈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바꿔서 말해볼 수 있다. 빈산릉이 수라도주의 포위망에 갇혔다고 하자. 탈출할 수 있을까?
탈출할 수 있다. 빈산릉리라면 얼마든지 탈출한다. 무공이 아니라 지략으로 탈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백 번이라도 탈출한다.
이게 빈산릉에 대한 믿음이다.
헌데 놈은 빈산릉이 감탄할 정도의 지략을 지녔다.
탈출한다. 수라도주는 막지 못한다.
빈산릉이 말했다.
“마록타…… 마록타를 찾지 못했어. 허허허! 놈은 벌써 빠져나갔겠지. 독고금에게 가있을 터인데…… 허허허! 야뇌슬, 놈이 이토록 영민한 놈이었나?”
“십이좌실에서 산 놈이니까.”
“야리몌를 보면 알지. 이런 말하면 그렇겠지만…… 적암도 제일의 머리는 야리몌 아니었어?”
빈산릉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 야뇌슬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겠어. 련주께서 이미 척살제일호에 올라있는 야뇌슬을 다시 언급한 것은 놈에 대한 정리를 똑바로 하라는 말씀이겠지. 야뇌슬에 대한 정보는 내가 모으지. 새로운 정리가 필요해.”
“독고금은 어떻게 하지?”
“일단은 빠져나갔다고 보고……”
“우리가 추적하면 안 될까? 아무래도 이대로 놓아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말이야.”
‘여기서 놓아준다고 강남을 벗어나는 건 아냐. 독고금을 제 발로 걸어오게 해야지.’
빈산릉은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다.
백 번을 말해도 이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지는 못한다. 쫓아가봤자 놀림감 밖에 안 되는데…… 그래도 가고 싶다면…… 나쁠 건 없으니까.
“그것도 좋겠지. 이번 기회에 놈의 재주도 조금 더 파악하고.”
빈산릉이 웃으면서 말했다.
야뇌슬은 해적선 이야기를 했다.
조심하라는 뜻이다. 매복이 있을 법 하다고 느껴지는 곳은 무조건 피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모용아는 다른 뜻으로 들었다.
망망대해에서는 어디서 모습을 드러내도 한 눈에 보인다.
지금 자신들의 처지가 그렇다. 망망대해에 모습을 드러낸 형국이다. 아무리 뛰어도 숨을 곳이 없다. 사방에 강남 무인들의 눈과 귀가 깔려있지 않나.
쫓고 쫓기는 데 하루, 이틀…… 길게는 한 달이 걸린다는 말도 자신들의 처지를 말한 게다. 다만 그가 말한 것을 정반대로 알아들으면 된다.
하루는 피할 수 있다. 이틀도 피할 수도 있다. 길게는 한 달까지도 피한다. 하지만 강남 무림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결국은 어떻게든 잡히고 만다.
야뇌슬의 말은 모습을 드러내면 잡힌다로 귀결된다.
그럼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숨어라!
망망대해라서 배를 숨길 곳이 없어 보이지만 섬도 있고 바위도 있다.
자신들은 포위망에 갇혀 있다.
수라도주가 이미 포위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점점 그물을 좁혀온다.
빠져나갈 곳이 없다. 아니, 없어 보이는 것뿐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면 숨을 곳이 반드시 있다.
그녀는 일행을 멈춰 세웠다.
“숨어야 해요.”
“야뇌슬이 달리라고 했잖아!”
단황신개가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달아나야 하는데 이렇게 서서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냐는 뜻이다.
모용아는 자신이 느낀 바를 말했다.
해적선에서부터 섬이나 바위 이야기까지 자신이 어떻게 들었는지 말해주었다.
“그게…… 그런 뜻인가?”
취화선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용아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 듯하다. 사실…… 야뇌슬이 자신들에게 해적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다. 당시 상황으로는 빨리 도주하라는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때,
“키키키!”
오 장 쯤 떨어진 나무 위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놈!”
취화선개가 반가운 듯 활짝 웃는 얼굴로 나무 위를 쳐다봤다.
웃음소리로 단번에 한 인물을 떠올렸다.
마록타! 그만이 이렇게 웃는다.
“부리나케 도주하는 모습하고는…… 주인 놈이 널 너무 높게 평가한 것 같네. 이런 말은 벌써 했어야지 이제야 하는 거야?”
마록타가 나무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언제부터 쫓아온 거야?”:
단황신개도 반갑게 맞이했다.
마록타에 뒤를 밟힌 일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는 그럴만한 사람이다. 도련도 자유자재로 들락거리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 뒤 좀 밟혔다고 해서 뭐가 부끄러운가.
“아까부터. 세상에…… 뭐가 그리 급하다고 쉬지도 않고 달리는 거야?”
“마! 그 놈이 달리라고 했어!”
단황신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가 빨리 말했어야지!”
마록타가 단황신개로부터 받은 신경질을 모용아에게 터트렸다.
“지, 지금 말하잖아요!”
“너무 늦었잖아! 그놈은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말할 거라더만. 머리하고는……”
모용아는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잃었다.
‘그 사람이 바로 말할 거라고…… 그랬다고?’
“하하! 저 당황하는 모습 봐라. 급습을 당하니 천하에 모용아도 어쩔 수 없구나. 하하!”
단황신개가 즐거운 듯 웃어댔다.
“그러게. 이렇게 되면 저 계집도 이제 임자를 만난 건가? 마록타가 모용아의 숙적으로 등장, 뭐 이런 거야?”
“낄길. 그러게.”
두 노화자는 모용아가 마록타의 일갈에 할 말을 잃은 줄 안다.
그게 아니다. 취화선개와 단황신개는 마록타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진의를 알지 못한다. 자신이 그까짓 일갈에 할 말을 잃었겠는가.
아니다. 그런 말뜻이 아니다.
마록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대단하다.
야뇌슬은 련주와 싸울 것을 예상했다는 뜻이다. 도련에 침입하는 순간부터 결국은 련주와 부딪칠 것을…… 아니, 자신들이 련주에게 길을 가로막힐 것이고, 뒤따라온 그가 또 한 번 탈출 기회를 준다는 것까지 모두 생각했다는 말이다.
인간의 머리로 이런 계획을 짤 수 있나?
야뇌슬과 마록타는 오늘 새벽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산정 화전민 촌에서 마록타와 헤어진 적이 있지만, 그는 십교두를 유인하기에 바빴다. 그러니 이런 말도 어제 했다.
어제…… 오늘 일을 정확히 예견했다.
야뇌슬, 그는 어떤 인간인가? 천재인가?
“입 다물어라. 입 다물어. 그러다 침 흘릴라.”
마록타가 모용아를 놀렸다.
모용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야뇌슬이 놀라운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 보니 새삼 대단하다. 그라는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인식된다.
적암도에서 중원으로 흘러들어온 외톨이 늑대.
이게 어제까지의 그였다.
하늘도 시샘할 천재.
이게 지금 이 순간에 그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야뇌슬……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던 거야?’
모용아의 눈가에 맑은 빛이 번뜩였다.
“우리 다 빠져나온 건가?”
취화선개는 모용아를 내버려두고 기대에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
마록타가 다시 나타났다. 도련을 무인지경으로 휩쓸고 다니던 자가 길안내를 하려고 왔다.
탈출은 이미 성공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도련 무인들에게 포위되어 있어도 안심이 된다. 또 사실 지금 포위되어 있는 형국이고.
마록타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빠져나오기는…… 애가 방금 말했잖아. 숨으라고. 따라와. 내가 두더지처럼 숨을 수 있는 곳을 알지. 히히!”
마록타도 모용아를 ‘애’, ‘제’하며 불렀다.
그래도 투덜대거나, 예의 없다거나 기타 등등 기분이 불쾌해서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하루 사이에 십 년은 사귄 십년지기처럼 가까워졌다.
“두더지면 어때? 술만 마실 수 있으면 되지. 키키!”
노화자들은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