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검무안-75화 (75/160)

# 75

[도검무안 75화]

第十二章 탈출(二) (5)

좋다! 허점을 찾지 못해도 상관없다.

지전 공격은 방위를 가리지 않는다. 검이나 칼처럼 한 곳만 치는 것도 아니다. 수십 명이 빙 둘러서서 일시에 검을 쳐낼 때처럼…… 하늘에서 내리꽂힌다.

‘좋아! 그럼 무식하게…… 치고 또 친다!’

쉐에에엑!

생각이 끝나자마자 지전들이 내리 꽂혔다.

왕소와 미도명을 죽였을 때처럼 지전이 날카로운 강판이 되어서 들입다 내리박혔다.

스읏!

련주의 검이 첫 번째 변화를 그려냈다.

검선(劍先)아 지전 한 가운데를 짚었다. 그리고 광대가 접시를 돌리듯이 빙글빙글 돌리더니 옆으로 쳐냈다.

한 장, 두 장…… 련주의 검은 눈부신 속도로 번뜩였다.

지전들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지전과 지전이 부딪치면서 같이 떨어졌다.

‘음!’

야뇌슬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주위에 사람들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산에서 내려온 십교두가 멀찍이 떨어져서 에워쌌다.

그것보다…… 자신의 지전이 이런 식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지전은 한 장도 련주를 가격하지 못했다. 부딪치는 것은 모두 싹둑 잘라버리는 강기를 지녔는데…… 련주는 부딪치지 않는다. 검을 지전 밑면에 대고 내리꽂히는 힘을 이용해서 흘려버린다.

련주가 검초를 변화시켰다.

이번에는 강검이다.

련주의 검과 지전이 맞부딪친다.

헌데 잘라지는 것은 지전이다. 련주의 검이 싹둑 잘라져야 하는데, 지전이 쭈욱 베인다.

속도로, 강함으로 완벽한 패배다.

련주의 검초가 또 변화했다.

파파팦팟!

련주는 검을 천수여래(千手如來)처럼 휘둘렀다. 순간, 그의 몸 주위로 빽빽한 검막이 쳐졌다.

타타타타탕!

내리꽂히던 지전들이 검막에 퉁겨진다. 헌데 퉁겨진 지전은 더 이상 강기를 띄지 않는다. 평범한 지전으로 변해서 나풀나풀 떨어진다.

‘안 되는가!’

절망감이 전신을 뒤덮는다.

련주가 펼쳐 보인 검공 정도는 자신도 펼칠 수 있다. 자신에게 죽은 왕소나 미도명도 펼칠 수 있다.

련주의 검초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다만 검에 깃든 진기가 문제다. 검의 진기가 지전에 깃든 강기를 능가한다. 그 한 가지의 차이가 적엽비화를 평범한 지전으로 몰락시켜 버린다.

야뇌슬은 진기를 탁 풀었다.

지전들이 힘을 잃고 떨어졌다.

더 이상 련주를 공격하는 지전은 없었다.

***

싸움은 련주가 이겼다.

서로 공수를 주고받은 것은 없다. 야뇌슬이 공격했고, 련주가 막아냈다. 단 한 차례의 접전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서로간의 무공 차이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억울하군.”

“살아온 세월의 무게라고 생각해라.”

“보여준다는 삼초가 그건가?”

“이숙으로서 배려는 끝났다.”

“바라지도 않은 배려였지. 사실 그 말…… 웃기는 말이지 않아? 고양이가 쥐를 잡고 놀려대는 것과 뭐가 달라? 세 번 도망가 봐라. 그건 너에 대한 배려다. 그 다음에 잡아먹지. 하하하! 네가 생각해도 우습지?”

야뇌슬은 패한 사람답지 않게 여유 있었다.

련주를 쳐다보는 눈길에서 패한 사람이 흘려낼 법한 답답함이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얻을 것을 다 얻은 사람의 만족스러움이 느껴진다.

“마지막 일초로 네 생명을 끝낸다고 했다.”

“병신.”

그는 련주에게 ‘병신’이라는 말을 썼다.

단순한 격장지계(激將之計)는 아니다.

격장지계에는 목적이 있다. 상대가 흥분해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게 만들 요량이다.

지금은 그런 목적이 아무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의 무공 차이가 워낙 현격하게 벌어진다. 련주가 흥분해서 달려들더라도 야뇌슬이 득을 보기는 어렵다.

격장지계가 아니라 정말로 련주를 모욕하는 소리다.

련주가 옅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후후후! 도주가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을 텐데…… 도주란 사람도 자식을 잘 몰랐군. 누구나 죽을 자리에 서봐야 진심이 나오는 법이지. 너는…… 약하구나.”

“병신, 꼴값하고 있네.”

“……”

“내가 말했지. 날 죽이겠다는 놈은 많다고. 하지만 죽인 놈은 없다고. 너도 마찬가지야. 죽이겠다고 엄포만 잔뜩 늘어놓지 죽인 게 없잖아. 뭘 죽였는데?”

“죽음을 재촉하는군.”

스읏!

련주가 검을 들어올렸다.

그는 야뇌슬의 하대에, 조롱에, 멸시에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무심하다.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야뇌슬도 검을 들었다.

지전 공격을 이어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검이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라.”

련주가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병신, 넌 정말 말을 못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뭔데? 후회란 게 죽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건데, 검을 들면 후회하고 지전을 들면 후회하지 않나? 살 수 있어? 살려줄래? 병신…… 그러게 너보고 병신이라고 하는 거야.”

“도주에 대한 도리는 다 했다. 너에 대한 배려도 끝났다. 우리는 초면으로 돌아갔고, 널 죽일 일만 남았군. 후후후!”

련주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렇다. 련주도 사람이다. 아무리 원수라지만 조카라고 생각했던 어린아이에게 계속해서 반말을 듣고, 조롱을 당한다는 건 견딜 수 없을 게다.

최대한…… 최대한 멸시하고 조롱한다. 그래야 실낱같은 삶의 기회가 생긴다.

련주를 안다. 련주를 읽었다. 그렇기에 련주가 독고금의 앞을 가로막을 것도 예상했다. 자신과 겨룰 것도 알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화를 낼 것도 짐작했다.

그가 끝까지 냉정했다면 살 길은 없다.

생각을 하게 만들면 안 된다. 지금 당장 손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쒜에엑!

드디어 련주가 신형을 띄웠다. 그가 원한대로 생각을 하지 않고 즉각 공격을 해왔다.

‘됐어!’

야뇌슬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련주의 무공은 최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를 죽여야 하는 게 숙명이라면 그가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 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 기회가 마련되었다.

모용아가 독고금을 구해달라고 했을 때, 잘하면 련주의 무공을 견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의리라거나 도리 같은 것이 있다.

나중에, 자신이 조금 더 도련을 괴롭힌 후에는 그런 게 없어진다. 다짜고짜 목을 쳐온다.

련주의 무공을 보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그래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부딪쳤다. 련주와 싸우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독고금을 구출하면 반드시 충돌하게 된다.

충돌이 없으려면 이번처럼 자신이 미끼가 되어서 나서면 안 된다. 은밀하게 잠입해서 은밀하게 빼내는 방법을 강구했어야 한다.

련주를 죽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노모보 정도라면 모를까 련주를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은 아직 멀었다.

그 정도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 뛴 게 아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적과 싸우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

도련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 아니, 몰라도 상관없다. 그런 것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련주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련주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 하는데…… 그 방법이 이것이다.

련주의 무공을 봤다.

련주의 검학까지 봤다.

심등의 불빛이 반으로 갈라진다. 쭈욱 쪼개진다.

맞부딪치면 어김없이 베인다. 용서가 없는 검에 즉사한다. 요행도 바랄 수 없는 죽임이 펼쳐질 게다.

그는 즉시 두 손에 진기를 운집했다. 그리고 손에든 장검에 집약시켰다.

쉐엑!

철강장검에 흑조탄궁술이 실렸다. 천지를 쪼갤 듯 강렬한 기세를 담고 허공에 떠있는 련주를 향해 쏘아져 갔다.

야뇌슬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손을 즉시 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지전 뭉치를 꺼냈다.

확 쏟아내? 아니다. 그런 식으로는 열 걸음도 가지 못하고 척살 당한다. 십교두를 얕보지 마라.

쒜엑! 쒜에엑!

지전 십여 장이 암기가 되어 쏘아졌다.

련주가 가볍게 쳐낸 지전, 하지만 십교두에게는 그리 가볍지 않다. 신법을 전개해서 피해야 할 만큼 강한 강기가 담겨져 있다.

련주를 향해서 격장지계를 펼칠 때부터 읽고 있었던 수순이다. 공격방법이다.

“하하하! 어림없는!”

“드디어 탈출인가? 하하하!”

십교두가 야뇌슬의 행동을 짐작하고 비웃었다. 순간,

파라라라락!

야뇌슬은 막 신형을 솟구치며 비웃음을 토해낸 교두를 향해서 손에 들린 지전 뭉치 전부를 던졌다.

“엇!”

교두가 다급히 몸을 되튕겼다.

야뇌슬도 신형을 쏘아냈다. 자신이 던진 지전 뭉치 사이로 몸을 숨겼다.

까깡! 까까깡! 쒜엑! 까앙!

지전뭉치들이 검과 칼과 창과 화살을 막아주었다.

십교두가 일시에 공격해 왔는데, 그런 모든 공격을 모두 철벽이 되어버린 지전이 차단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