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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73화 (7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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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73화]

第十二章 탈출(二) (3)

그 중에 사주는 두 명이다. 다른 자들은 낯설다. 많은 사람이 달려들고 있지만, 낯익은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 수라도에 충성을 맹세한 강남 무인들일 게다.

‘됐어!’

승부를 결행할만하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다. 마록타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는 안 되겠지만 한 번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

그는 손을 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지전 뭉치를 꺼내 허공중에 확 뿌렸다.

“피햇!”

저 멀리서 절곡 전체를 쩌렁 울리는 우렁찬 일갈이 터졌다.

수라도주가 달려오면서 내지른 일갈이다.

그러나 이들이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허공에 뿌려진 지전들이 낙엽처럼 나풀거린다. 천천히…… 땅으로 떨어진다.

왕소(王邵)가 창으로 지전들을 거둬내며 찔러온다. 미도명(米跳酩)이 대도로 천왕구참도를 전개하면서 뛰어든다. 그 두 사람의 뒤를 이어서 포위망을 구축한 자들이 대거 달려든다. 순간,

턱!

나풀거리며 떨어지던 지전들이 일제히 멈췄다.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중력(重力)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물체도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지전도 마찬가지다.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 땅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멈춰 선다.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사람이 들고 있는 것처럼 우뚝 멈췄다.

“……!”

달려들던 사람들은 이 기이한 현상에 심상치 않은 예감을 받았다.

뭔가 불길하다!

그들의 예감은 맞았다.

왕소가 창으로 지전을 거둬냈지만, 그의 창은 강력한 장벽에 막혀서 우뚝 멈춰 세워졌다. 지전을 친 것이 아니라 거대한 돌덩이를 친 느낌이다.

미도명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천왕구참도가 이어지지 않는다. 초식을 전개했는데, 지전에 가로막혀서 흐름이 끊긴다. 칼이 멈춘다. 순간,

파파파팟!

멈춰 섰던 지전들이 마치 거대한 폭포처럼 내리꽂혔다.

“악!”

“큭!”

달려들던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머리에, 어깨에, 팔에, 몸통에…… 온통 지전이 꽂혀있다. 한낱 종잇조각이 살을 꿰뚫었다.

그들은 온 몸으로 피화살을 쏟아냈다.

야뇌술은 혈우(血雨)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사방에서 수십 명이 피를 뿌려내는데, 그 사이로 지나가려니 피 비를 맞는다.

미도명을 봤다.

그의 눈에 불신이 가득하다. 목에 지전을 꽂고 있으면서, 이마에 지전이 박혀 이으면서…… 온 몸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왕소도 지나쳤다.

그는 창을 쳐다보는 중이다.

장창 한 가운데가 뚝 부러져 있다. 지전에 잘린 자국이다. 날카로운 단창처럼 잘려져 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그 모습을 쳐다본다.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그는 자신에게 묻는 듯하다.

그들의 신형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무너졌다.

쒜에에엑!

야뇌슬은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뒤를 보지 마라, 앞만 보고 달려라.

야뇌슬의 말이 이제는 절대적인 명령으로 각인되었다. 그 무엇에 앞서서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우뚝 멈춰 섰다.

뛰어넘기에는 너무 큰 강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련주!

그들은 한눈에 상대를 알아봤다.

련주를 본 적은 없다. 그에 대한 소문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가 한 일에 대한 소문은 차고 넘치지만, 그의 일신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련주는 잘 생긴 중년인이다.

머리를 도인처럼 틀어 올려서 위로 묶었다. 건(巾) 같은 건 쓰지 않았다. 맨 이마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마가 매우 크고 반듯하다. 광채가 절로 난다. 눈썹은 진하고, 눈동자는 강렬하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코는 장대를 세워놓은 것 같다. 매우 반듯하다. 턱수염을 가지런하게 길렀는데, 아주 정결해 보인다.

젊었을 적에는 여인께나 울렸을 법한 얼굴이다.

그는 뒷집을 진 채 그들을 기다렸다.

이 길로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너희들이 여기로 오지 않고 어디로 갈 수 있냐는 듯이.

야뇌슬은 무조건 달리라고 했다. 앞에 무엇이 나타나건 내처 뛰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멈춰 섰다.

“누군가?”

련주가 두 노화자를 보면서 말했다.

“크크큭! 냄새나는 비렁뱅이는 알아서 뭐하게? 길이나 비키셔!”

취화선개가 호로병을 꺼내 목을 축였다.

취화선개는 강적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신다. 강한 적일 수록 깊게 취한다. 술을 마시고 또 마셔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들이켠다. 그래야 개방 절기 중에 하나인 취팔선(醉八仙)이 터져 나온다.

련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취팔선개군. 그럼 그쪽이 단황산개?”

독고금을 안고 있는 단황신개가 눈을 끔벅였다.

강북 무림에서 개방 노화자 두 명이 사라졌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련주의 눈길이 모용아에게 흘렀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쳐다봤다.

여인의 몸으로 유삼을 입고, 유생 흉내를 낸다.

“아름다운 몸이군.”

련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아름다운 몸이다.

일면 도색적인 언사이지만……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분하다기 보다는 공포가 일어난다.

련주는 음심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몸인데, 안타깝다는 뜻이다. 육신을 땅에 뉘어야 하니 애석하다는 뜻이다. 그의 말은 생사판관이 죽음 직전에 내뱉는 살명(殺命)이다.

모용아는 무심결에 뒤를 쳐다봤다.

야뇌슬은 무엇을 하고 있나. 련주가 앞을 가로막았는데, 방책이 없는 건가. 계속 앞만 보고 달리라고 해놓고…… 그 말은 포위망 안에서만 한정된 소리였나.

그녀의 눈에 포위망을 돌파하는 야뇌슬이 잡혔다.

“아!”

그녀는 련주가 앞에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단황신개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급히 뒤돌아봤다. 취화선개도 호로병을 입에 문채 뒤돌아봤다. 독고금도 그녀가 탄성을 토한 곳에 눈길을 주었다.

“아!”

“엇!”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토해냈다.

혈우가 뿌려진다. 마른하늘에 피비가 내린다. 세상이 피로 만든 안개에 갇힌다.

야뇌슬이 그 속을 뚫고 나온다.

야뇌슬은 혈인이 되었다. 피로 범벅이 되었다. 옷에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얼굴도 피로 물들었고, 들고 있는 검에도 피가 한 가득이다.

그는 혈귀가 되어서 뛰어온다.

“저, 저게…… 저게 인간의 무공인가!”

취화선개가 호로병을 뚝 떨어트리면서 말했다.

너무 놀라서 그 귀한 술이 담겨있는 호로병조차도 놓쳐 버렸다.

야뇌슬의 무공은…… 직접 눈으로 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그가 창암도와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혈귀다.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고, 잔인해졌다. 아니…… 이건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저런 무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저게 뭐죠?”

모용아가 얼핏 알아채지 못하고 물었다.

허공을 부유하는 물체들…… 낙엽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강판(鋼板)이 되어 내리 꽂힌 물체들.

“그, 글쎄……”

단황신개도 그 물체가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분명히 어떤 암기인 것 같은데, 그의 머릿속에는 저런 암기가 새겨져 잇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암기다.

“하하하! 지전이다.”

모용아의 궁금증을 련주가 풀어주었다.

“지, 지전? 종이?”

단황신개가 무슨 말이냐는 듯, 어이없다는 듯, 실성하지 않았냐는 듯 온갖 감정을 드러내며 련주를 쳐다봤다.

종이로 사람을 살상할 수는 없다. 아니, 있기는 있다. 종이에 진기를 실어서 날리면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정도의 암기가 된다. 그러나 한 장, 두 장에 국한된다. 내공이 아무리 절륜해도 저런 식으로 수십 장의 암기를 쏘아내지는 못한다.

련주는 부언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가 무엇 때문에 설명을 해주겠는가. 그는 기다렸다. 야뇌슬이 다가올 때까지.

그의 이런 태도는 그의 말이 확실하다는 반증이다.

“맙소사! 정말 종이?”

“지전을 저런 식으로 쓰는 공부가 뭐지?”

“저, 적엽비화?”

“……”

그 순간, 모두들 말문이 막혔다.

적엽비화를 안다. 얇디얇은 나뭇잎, 조금만 힘 있게 쥐어도 바삭거리며 부서지는 나뭇잎에 강성한 진기를 싣는다. 그리고 허공에 날린다. 사람을 살상한다.

이것이 적엽비화다.

그럼 나뭇잎 수십 개를 동시에 날리는 건 어떤가?

수리검을 던지듯이 일직선으로 쏘아내는 게 아니다. 먼저 몇 개 던지고, 나중에 몇 개 던지는 것도 아니다. 암기를 던져내는 방법에는 수백 가지가 있지만, 그 어떠한 방법에도 들지 않는다.

나뭇잎 수십 개를 동시에 허공에 띄운다.

둥실둥실…… 떠오른다.

그리고 개개의 나뭇잎이 마치 생명이라도 달린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강성한 진기를 싣고 주변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살상한다.

자, 이런 공부는 어떤가?

말도 안 된다. 그런 절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야뇌슬이 그런 절기를 썼다. 그가 허공에 띄운 게 정녕 지전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그런 공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련주의 표정을 보라.

그는 야뇌슬의 무공을 인정하고 있다.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적암도에 이런 무공이 존재한다는 거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존재했던 무공이다.

아! 적암도!

그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숨도 쉬지 못했다. 야뇌슬이 지척에 이를 때까지 멍한 표정으로 그가 달려오는 모습만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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