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도검무안 71화]
第十一章 탈출(一) (7)
야수는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말하려는가? 빛이라니? 무슨 빛을 본 것인가.
“컥!”
야수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곁에서 말을 거는 것은 상관없지만, 몸에 손을 대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면 영기가 흩어진다.
야수는 한참동안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야수의 어깨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뭐냐?”
빈산릉이 심상치 않은 예감을 받고 물었다.
“없어. 방향을 잘못…… 찍었어. 크크크!”
야수의 눈길이 산 밑으로 향했다. 두 노개가 도주한 곳이 아니라 야뇌슬이 싸우고 있는 곳……
“빛이라는 말을 하던데?”
“나도 몰라. 너무 강렬한 빛이어서…… 그 빛이 나를 막는다. 내 머리를 하얗게 탈색시킨다. 저놈…… 야뇌슬…… 부탁하는데, 저놈 좀 죽여줘.”
야수의 몸이 뒤로 서서히 쓰러졌다.
정신을 잃고 혼절해 버린 것이다.
“뭐야? 혼절이야? 야수가 심력(心力)을 고갈당해? 허!”
빈산릉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늦었지만…… 련주님께서 산 밑에 계실 것…… 모두 가서 돕도록 하고…… 두 사람은 가서 수라도주를 도와줘. 야수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무언가 있는 거지. 야뇌슬 저 놈은 오늘 반드시 목숨을 끊어야 해.”
그가 궁수가 대도를 든 자에게 말했다.
그는 일심불광을 이용하지 못한다.
어쩌다가 소 뒷발에 쥐 잡는다는 식으로 한두 번 무공에 응용되기는 하지만 주로 심공(心功)으로 운용할 뿐이다.
심등은 감각을 최고조로 높여준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집중력이 최고조로 활성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집중력으로 몰아(沒我)가 나온다.
한 점에 너무 깊이 집중하면 주변을 잊는다. 주변에서 살인이 일어나도 알지 못한다.
그런 일이 심등에서 벌어진다.
그는 집중한다. 집중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거의 결전이지만…… 그러면 싸움을 할 때만은 거의 초감각 상태로 들어선다.
이것이 심등을 이용하는 모든 방법이다.
심등을 밝힌다.
야수에게는 더 이상 심들을 밝힐 필요가 없다. 생각을 산정에 두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눈앞에 있는 상대, 수라도주에게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쏴아아아아!
심등의 불빛이 검으로 흘러들었다.
“음!”
수라도주가 옆은 신음을 토해냈다.
야뇌슬의 몸이 신비로운 광휘로 휘감긴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지만, 그런 착각이 든다.
이것도 환상인가? 십이묘환법의 일종인가?
‘최후!’
야뇌슬이 마지막 일전을 준비한다는 것만은 알겠다.
촤아아아!
그도 진기를 극강으로 일으켰다.
손에 들린 화륜에서 빛이 뿜어진다. 짙은 살기가 뭉클뭉클 흘러나온다.
“타앗!”
야뇌슬이 일갈을 버럭 내지르며 신형을 띄웠다. 헌데!
파아아아앗!
환상?
야뇌슬이 사라졌다. 산도 들도 나무들도 사라졌다. 세상이 온통 하얀 지전(紙錢)으로 가득하다.
“염왕!”
수라도주가 경악성을 토해냈다.
야뇌슬은 노름방의 골패처럼 작게 쪼갠 나뭇조각을 날렸다. 암기처럼 쏘아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염왕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의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보지는 않았다. 막연하게 그럴 수 있겠다는 추측만 했다.
이제는 확실하다.
지전에 실린 진기는…… 극강이다. 어떤 병기든 무너트린다.
화르르릉!
수라도주는 화륜을 날렸다. 전신 진기를 모두 쏟아 부은 후, 힘차게 쏘아냈다. 그리고 자신은 반사적으로 신형을 날려 오 장 밖으로 물러섰다.
오 장! 무려 오장이다.
그 정도는 물러서야 지전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 그 순간,
꽈지지직!
수라도주의 모든 것이 담긴 화륜이, 하늘도 쪼갤 수 있는 화륜이 한낱 지전에 잘려나갔다.
第十二章 탈출(二) (1)
야뇌슬이 사라졌다.
수라도주와 두 사주는 나풀나풀 떨어지는 지전 너머로 멀어져가는 야뇌슬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전이 힘을 잃지 않고 세 사람을 가로막았다.
창을 든 수십 명의 병사가 앞을 가로막을 때처럼…… 뚫고 나갈 수 없는 엄밀한 장벽을 느꼈다.
- 비목경기만천하(飛木驚氣滿天下), 마검분절초탈심(魔劍分節超脫心)
염왕은 나뭇조각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혈우마검의 검을 잘라냈다.
적엽비화(摘葉飛花)!
나뭇잎에 진기를 불어넣어서 사람을 살상하는 암기수법.
암기의 명가들은 적엽비화를 대단한 것처럼 떠벌린다. 또 사실 대단하기도 하다.
한낱 나뭇잎으로 사람을 살상한다는 생각을 해보라.
암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암기로 둔갑한다.
적엽비화는 나뭇잎만 말하고 있지만, 이는 염왕이 나뭇조각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뭇잎을 암기로 쓸 수 있으면 기타의 물건들도 암기가 된다.
적엽비화는 나뭇잎처럼 연약한 물체에 강건한 힘을 불어넣는 무공들의 총체적인 이름이다.
적엽비화는 절공이 아니다. 내공이 깊은 자는 누구든지 시전할 수 있다. 특별하게 수련을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약간의 수련은 필수 불가결하지만 고난도의 수련은 아니다.
내공이 관건이다.
염왕의 적엽비화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적엽비화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
나뭇잎을 단지 날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나뭇잎을 연(鳶)처럼 사용한다. 마치 끈이라도 묶여 있는 듯 허공에 띄운 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적엽비화를 두고 내공이 관건이라고 했다. 내공이 충분해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허면 어떤 물체를 허공에 띄우고 자유자재로 이동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적엽비화의 최상위에 있는 것이 염왕의 무공이다.
야뇌슬은 나뭇조각에 이어서 지전을 사용했다.
지전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사용할 목적으로 지전 한 묶음을 샀을 게다.
적엽비화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야뇌슬이 염왕의 무공을 사용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믿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저 놈…… 오늘 놓치면 큰일 나겠군.”
수라도주가 강렬한 눈빛을 쏘아냈다.
야뇌슬의 무공은 완성된 게 아니다. 아직도 발전 중이다. 그가 사용하는 오제의 무공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제의 무공이 나름대로 균형 있게 발전하기는 했지만, 최상은 아니다. 절정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발전 소지는 무궁하다.
오제의 무공이 그렇다면 염왕의 무공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디서 염왕의 무공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염왕의 무공은 오제의 무공보다도 훨씬 더 수련하기가 어렵다.
오제의 무공은 많은 사람이 수련했다. 적암도 주민에게 한정된 이야기지만,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연구하고 발전시킨 부분도 많다.
어떤 식으로 수련해야 빨리, 정확해야 수련하는지 어느 정도 길이 닦여 있다.
염왕의 무공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
완전히 생소한 무공이다. 삼백 년이라는 시간동안 세상과 단절되었던 무공이다. 그가 얻은 것이라고는 순전히 비급에 불과할 터인데…… 글줄 몇 자 읽어서 무공을 수련해낸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는 무공 수련에 앞서서 복원부터 해야 한다.
글을 읽고, 자료를 찾고, 수련방법을 찾고,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는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가 얻은 것은 옛날, 염왕이 오제를 눌렀을 때의 그 무공이 아니다. 비급은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거의 십 분지 일도 터득하지 못했다.
야뇌슬은 그런 무공으로 자신의 발을 묶었다.
지전을 날려서 허공을 강기로 가득 채웠다. 따라올 수 없게끔 방어벽을 형성시켰다.
그가 나머지 무공을 모두 수련한다면, 옛날 염왕의 무공을 제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오늘 죽여야 한다. 오늘 놓치면 천추의 한이 된다.
“포위망은?”
“완벽하게 형성됐습니다.”
“완벽함은 없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잘못 말씀드렸습니다.”
“포위망을 사천중(四穿中)으로 변경한다.”
“알겠습니다.”
스으읏!
명을 받은 사주가 기척없이 물러갔다.
사천중은 네 겹의 포위망으로 강자를 대비해서 창안되었다.
어느 한 군데가 돌파당해도 곧 다시 메워진다. 한군데가 뚫리면 뚫린 곳을 중심으로 해서 즉각 거대한 원형의 포위망이 형성된다. 사천중이 방원진으로 변형된다.
모두를 죽이지 않는 한, 포위망을 돌파하지 못한다.
문제는 인원이다. 같은 인원으로 사천중을 형성하면 지금보다 포위망이 느슨해진다. 일렬로 늘어선 사람을 네 겹으로 나눠서 줄 세우면 빈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천중이라는 게 줄을 서듯이 나란히 서는 게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줄을 세워보면 알겠지만 옆으로 한 걸음씩만 밀려서 서면 바람도 빠져나갈 수 없는 오밀조밀한 막이 형성된다.
수라도주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에는 아직도 홍연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빈산릉이 실수를 했다. 야수가 잘못 파악했다.
한 사람이 잘못해도 충격적인 일인데, 두 사람이 동시에 실수를 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실수를 한 사람은 세 사람이다.
자신도 실수했다.
야뇌슬 정도는 간단하게 잡았어야 하는데, 놓쳤다. 그가 염왕의 무공을 수련했다는 건 이유나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럼 알지 못하는 무공을 수련하면 모두 놓쳐야 하는가?
야뇌슬은 강하지 않다.
그가 염왕의 절기를 펼쳐보였지만…… 다시 한 번 그 적엽비화를 펼친다면 뚫고 나갈 수 있다. 그럴 자신이 충분하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을 방금 전에는 하지 못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다.
오늘은 모두 실수투성이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한 것.’
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