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도검무안 61화]
第十章 너! (3)
익히지 않은 생살…… 그러나 아주 맛있게 씹어 먹는다.
“저게 맛있나?”
“맛있지.”
“먹어봤어?”
“꿩은 먹어보지 못했고, 비둘기는 먹어봤지. 히히! 가슴살이 야들야들한 게 아주 맛있어. 기름장이라도 있으면 금상첨화고. 캬! 술 생각난다.”
취화선개가 입맛을 다셨다.
“제길! 구해오는 김에 좀 많이 구해 와서 한두 점 주면 안 되나? 꼭 저희들끼리만 처먹고 지랄이야.”
“놔둬라. 배터지게 먹고 뒈지게.”
단황신개가 악담을 퍼부었다.
배터지게 먹고 뒈지게.
단황신개의 악담이 귀에 쏙 들어온다.
‘뒈지게…… 뒈지게……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길. 딱 한 번 밖에 들어갈 수 없는 길이라 이거지.’
야뇌슬에 눈가에 광채가 번뜩였다.
‘미련하게……’
문득 웃음이 치민다.
부도주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없다. 그러면 무공을 닦아야 하는 게 아닐까? 어디 깊은 심산유곡에라도 숨어들어서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든 무공을 통합시켜야 하지 않을까?
얼핏 생각하면 그 생각이 맞을 것 같다.
아니다. 틀린 말이다.
자신과 부도주는 이미 무공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다.
자신이 일척을 진행시키면, 부도주는 일장을 나아간다.
외공의 경우에는 무공 수련으로 격차를 좁힐 수 있지만, 내공인 경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벌어진다.
부도주를 잡으려면 먼 후일보다, 지금이 더 낫다.
자신의 무공으로 우염비를 쳤다. 왕린을 죽였다. 왕포도 비교적 쉽게 쓰러트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창암도주 미영추와 손속을 부딪쳤는데,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사주 십여 명에게 둘러싸이지 않았다면 승부를 결행했을 것이다.
무공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그가 모용아에게 련주를 죽이겠다고 말할 즈음, 이런 계산이 이미 끝나 있었다.
누가 봐도 부도주의 우세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도 믿을 수 있는 한 수가 있다.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해볼 게 없지만, 통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도련의 실체와 부딪치니,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이 생긴다.
이길 수 있나? 괜히 개죽음을 당하는 건 아닐까?
오래 전에 생각을 끝낸 부분들이 되새김되어 떠오른다.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이 무섭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이유를 들자면 수십 개도 말할 수 있지만, 결국 목숨이 아깝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했다면서……
파앗!
망설임 없이 심등을 밝혔다.
진기를 끌어올렸다. 가슴이 환해지고, 순식간에 미간으로 번진다. 미간에 투명한 밝음이 생긴다.
순간, 길이 보였다.
마을을 우회해서 들어가는 길목에 산천초목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감지된다.
모용아가 말한 감시초소다.
심등의 가장 큰 효능은 진위를 구분하는 것이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한다.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심등을 밝혀보면 안다.
‘하나, 둘, 셋……’
육안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으로 수를 헤아렸다.
감시초소는 끝없이 펼쳐진다. 마을에서 마을까지……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삼 장 간격으로 위치했다.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그는 일어섰다.
밤을 위해서 잠을 자둘 때다.
스으으읏! 스으읏!
마록타는 유령처럼 움직였다.
밤은 그의 친구다. 동굴 같이 어두운 곳, 칠흑같이 캄캄한 밤은 그에게 무한한 자유를 준다.
그는 어두운 산길을 탄탄대로처럼 움직였다.
‘하나!’
감시초소 하나에 한 명이 들어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원칙이 한 곳에 한 명인 것 같다.
‘지금 시간이 해시(亥時).’
해시라고 할 수 없다. 아직 해시인 것은 맞지만 곧 자시(子時)로 들어선다.
그런데 초소에 있는 무인들이 생생하다. 어느 누구 하나 자세가 흐트러진 자가 없다. 눈에도 졸음기가 없다. 졸음을 억지로 참기 위해 부릅뜨지도 않는다.
‘교대가 있겠군.’
자시 가까운 시간에 새카만 어둠 속으로 노려본다. 그런데 두 눈이 말똥말똥하다.
교대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곳을 소리 없이 뚫어야 한다.
단지 련주를 공격하는 것이라면 대충 뚫고 들어가도 상관없다. 어차피 련주의 근처에 이르기 전에 적암도부터 부도주를 호위하던 십교두(十敎頭)에게 가로막힌다.
십교두…… 적암도에서는 십교두라고 불렀는데, 여기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무공이 워낙 강해서 부도주의 호법 노릇보다는 적암도 청년들의 무공 교두 노릇을 더 많이 했다.
그들 눈을 속이고 잠입하기는 힘들다.
그럼 기껏해야 산 중턱까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뿐인데, 그 정도를 위해서 은밀히 숨어들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건 독고금을 위해서다.
이번이 아니면 그녀를 탈출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리고 그녀의 탈출이 련주와의 싸움에 하등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은밀한 잠입을 시도한다.
스읏! 스읏! 스읏!
감시 초소 안에 있던 자들이 손을 움직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초소 안쪽에 밧줄이 매여져 있다.
‘약 일다경이 한 번씩. 이거 힘들겠는데……’
저들을 죽이고 잠입해봤자 기껏 움직일 수 있는 한계가 일다경이다.
일다경이면 어디쯤 올라가고 있을까? 산 중턱까지는 절대로 올라가지 못한다.
스으으으……
그는 근 두 시진동안 더 지켜본 후, 은밀히 몸을 물렸다.
“넷은 죽여야 해.”
“그럼 넷을 죽이는 데만도 일다경이 걸려.”
“밧줄은 한 번만 당기면 되나?”
“아니. 약속이 정해져 있나봐. 어떤 때는 한 번, 어떤 때는 세 번. 종잡을 수 없더라고.”
“해치우기도 어렵고…… 해치워봤자 효과도 없고…… 아니지. 해치우면 오히려 더 빨리 발각되지. 그럼…… 은밀히 잠입하는 수밖에 없는데…… 거리가 십 장이라.”
“초소와 초소 사이에도 뭔가가 있더라. 얇은 세사(細絲) 같은데, 건드리면 금방 알게 되나봐.”
“세사라면 바람에도 흔들릴 텐데?”
“몰라. 저놈들만의 방법이 있을 테지.”
“그럼 은밀히 침입하는 것도 불가능한 건가?”
“한 마디로 방법이 없어.”
모용아와 두 노화자는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고 있었다.
감시초소가 그렇게 많다는 것이 놀랍다. 그 많은 초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기막히다. 더욱이 그들의 초소 운영 형태를 들어보면 숨까지 막힌다.
야뇌슬이 말했다.
“그럼 방법은 한 가지뿐이군. 푹 자 둬. 내일 간다.”
“내일? 어떻게?”
모용아가 급히 물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어쨌든 내일 시작할 테니 푹 자둬.”
야뇌슬은 그동안 제법 친근해졌는지, 모용아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
모용아가 눈을 떴을 때, 야뇌슬과 마록타는 이미 움직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마록타가 뜨거운 같이 모락모락 나는 솥을 들고 왔다.
“많이 먹어둬. 어쩌면 마지막 이승 밥이 될 지도 모르니까.”
“이게 아침부터 재수 없게 왜 지랄이야? 임마, 누가 네 밥 먹겠데? 일 없다, 이놈아!”
단황신개가 마지막 이승 밥이라는 말에 발끈해서 말했다.
“이거 어떻게 만드셨어요? 불 피울 수 없었을 텐데?”
모용아가 호기심에 가득 차서 물었다.
연기 안 나는 나무를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을 피우고 밥을 지으면, 냄새가 풍긴다.
밥 냄새는 향이 아주 강해서 산속처럼 청정한 곳에서는 아주 널리 퍼져 나간다.
“크크!”
마록타는 웃기만 했다.
“많이 먹어둬. 배가 든든해야 부지런히 움직이지.”
그는 단황신개가 시비를 걸었는데도 대꾸하지 않고 먹으라는 말만 했다.
긴장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무섭게.
단황신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더 이상 시비 걸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때 같았으면 손도 대지 않았을 그의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진흙!’
솥뚜껑에 진흙이 묻어있다.
솥 전체를 진흙으로 감싸고, 작은 불씨만으로 밥을 해냈다.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정성을 기울였다는 뜻이다.
솥에는 밥을 푼 흔적이 없다. 완전히 새 밥이다. 이 솥 밥은 마록타가 온전히 자신들을 위해서 해 온 것이다.
흔히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고 하던데…… 오늘이 그런 날인가.
“크크크! 준비됐냐?”
마록타가 취화선개에게 거침없이 말을 놨다.
“허! 미치겠네. 이놈이 누구에게 탁탁 말을 놔!”
“따라와라.”
취화선개는 시비를 걸려고 말을 한 게 아니다.
논ㅇㅇ을 하는 그의 얼굴에 웃음기기가 머문다. 그 동안 불편했던 관계를 이런 식으로 무마시키려는 것이다.
헌데 마록타는 그런 농담까지도 받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신이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어서 받을 정신이 없는 것이다.
단황신개와 취화선개는 더 이상 농을 걸지 않았다.
“그 사람은요?”
모용아가 물었다.
야뇌슬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밥을 가져올 때부터 주위를 살펴봤는데, 없다. 혹여 정찰을 나간 게 아닌가 싶었다. 아침 일찍 도련의 동태를 살피러 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출발할 즈음까지도 돌아오지 않는다.
“먼저 갔어.”
마록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