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도검무안 44화]
第七章 가슴에 칼을 (6)
그들은 활기차다. 힘이 넘친다. 구릿빛을 넘어서 새까맣게 타들어간 살결은 건강의 상징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여인의 무공은 왠지 기피하게 된다.
부동명심공도 궁술을 기피하게 된 요인 중에 하나다.
움직이지 마라. 마음을 차분하게, 맑게 가라앉혀라. 조용히 세상을 보라.
이런 류의 내공심법이 역동적인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을 리 없다.
부동명심공과 비슷한 내공심법이 있다. 현현화륜 노광도의 현현무심공인데, 마음을 무심의 상태로 가라앉힌다는 점에서 부동명심공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면 현현무심공도 기피대상인가? 아니다. 현현무심공은 화륜이라는 역동적인 병기를 취급한다.
이는 현현무심공조차도 동적인 무공으로 보이게 만든다.
조용히 서서 바람을 계산하고, 거리를 측정하고,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렇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화륜을 던지고 받는다. 전장 속으로 뛰어들어서 격전을 몸으로 이끌어낸다.
지금에 와서는 장씨 성을 지닌 사람들도 흑조탄궁술을 수련하지 않는다. 기본 소양으로 활을 잡기는 하지만 독문무공으로는 다른 무공을 선택한다.
장설리의 흑조탄궁술은 쇠락했다.
적암도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중원 같았으면 배우지 못해서 안달을 했을 무공인데.
“둘이 좌우에서 쏘면 한결 낫겠지.”
사실 이런 말은 모욕이다.
한 사람만 나서도 충분하다. 흑조탄궁술은 화살 두 대를 용납하지 않는다. 화살 한 대면 한 생명을 떨굴 수 있다.
“놈을 어느 정도나 높이 치시는 겁니까?”
“련주.”
미영추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련주님이요? 하하! 그건 너무한데요. 이제 갓 출도한 풋내기를 련주님과 견준다는 건……”
“련주님을 죽이겠다고 나선 놈이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말뿐이 아냐. 직접 쳐나오고 있어. 자네 같으면 창암도를 상대로 활을 들 수 있겠나?”
사주들은 입을 다물었다.
누가 감히 창암도에게 활을 겨눌까?
한 명을 죽일 수 있다. 그 정도의 자신은 있다. 하지만 다른 자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가망은 없다.
련주 정도는 되어야 그런 짓을 할 수 있다.
미영추가 그들에게 말했다.
“좌우에서…… 가급적이면 동시에 쏘도록. 그래야 막기 힘들 테니까.”
“왕린의 복수를 왕포가 하는 건가? 아니면 도주의 복수를 자식이 하는 건가?”
“재수 없게 도주 이야기는 왜 해!”
사주들은 이번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야뇌슬을 상대하는 건 왕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흑조탄궁술을 수련한 두 명이 가세한다.
이만하면 필승이다.
상황도 상황이려니와…… 그들은 이번 기회에 섬전자창의 비기를 보고 싶었다.
야뇌슬이 강하지 않다면 백이십구신창술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강하다면 어쩔 수 없이 십이묘환법을 쓸 수밖에 없다.
진정한 십이묘환법을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흑조탄궁술이 가급적 늦게 발동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왕포가 위험하다고 생각될 만큼 충분히 늦춰야 한다.
그들이 나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야뇌슬을 죽이는 일은 힘은 많이 들면서도 인정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괜히 힘만 빠지는 일이다.
그들이 련주를 모르겠는가.
야뇌슬을 죽였다고 해도 크게 기뻐할 분이 아니다. 당연히 죽었어야 할 자를 죽였을 뿐이다.
왕포 선에 끝나는 게 좋고, 십이묘환법을 볼 수 있으면 더 좋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놈의 신뢰삼검은 완벽했어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게 그 부분인데…… 우리가 섬을 떠날 때만 해도 놈은 십이 무동을 출관하지 못한 상태였어. 그런데 일 년도 안 되서 초강고수가 된다는 게 말이 되나?”
“어쨌든 초강고수에요.”
“왕포가 진다고 보나?”
“우염비와 왕린이 죽었다면 십중팔구.”
“흑조탄궁술까지 넣었네.”
“노모보는 죽음의 사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야뇌슬은 장타홀의 화살을 두 대나 맞았다고 들었어요. 정통으로 맞았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고…… 맞은 척을 한 거죠. 놈은 흑조탄궁술을 읽어냅니다.”
미영추와 미시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심각하게 말했다.
미시완은 야뇌슬을 처음 봤을 때, 공격하지 않았다.
향주 두 명을 보내서 무공을 시험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그리고 야뇌슬의 무공을 본 결과, 물러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야뇌슬의 무공은 놀라웠다.
사주들이 야뇌슬을 너무 얕보고 있다.
아마도 노도검문 문도들을 죽이면서 드러냈던 천왕구참도의 미숙함 때문인 듯한데…… 아주 큰 오산이다.
“지켜보세. 보면 알겠지.”
미영추가 웃으면서 말했다.
‘왕포 정도는 버려도 좋다는 심산……’
미시완은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은 서로가 보듬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아껴야 한다. 적암도 사람들끼리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나서면서 옆 사람을 배척하면 사분오열(四分五裂)한다.
지금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왕포는 양손으로 장창을 거머쥐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은 싸움의 결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십이묘환법에만 관심이 있다.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이들은 벌써 십이묘환법을 봤다.
야뇌슬이 반검문도를 죽이면서 사용한 것이 바로 십이묘환법이다.
자, 봤으니 어떤가? 알아볼 만하던가? 상대할 만하던가? 꺾을 수 있어 보이던가?
바로 옆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도 알 수 없는 게 십이묘환법이다.
파앙!
창끝이 야뇌슬을 겨눴다.
따라락! 따라라라라락!
그의 창은 강성한 진기에 힘입어 거센 울음을 토해냈다.
사실, 그의 창끝은 미세한 떨림을 보이고 있다. 벌새의 날갯짓처럼 너무 빨리 떨고 있어서 떨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십이묘환법 제구법(第九法) 일점무세(一點無世)!
한 점으로 세상을 감춘다.
처음에는 창끝만 보인다. 허나 점점 창끝이 커져서 봉이 되고, 바위가 되고, 집이 되고, 태산이 된다. 그리고 끝내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일점무세를 정점까지 펼쳐내지 못한다.
십이묘환법은 세 단계로 구분된다.
전사법(前四法)은 하법(下法)이다. 백이십구신창술을 칠 성 이상으로 수련한 자라면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중사법(中四法)은 중법(中法)이다. 오법(五法)부터 팔법(八法)까지는 상당한 수련을 필요로 한다. 후사법(後四法)은 상법(上法)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절공이다.
그는 제구법을 펼쳤다.
야뇌슬이 십이묘환법을 수련했다지만 수련기간이 일천하다. 상법까지 수련했을 리 없다.
실제로 그가 사용한 공부를 보면 하법과 중법에 치중되어 있다.
그는 복부를 공격하는데, 무인은 상단을 막는다. 상기허환술이다. 검을 쳐가는데,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옆으로 몸통 하나는 간격이 벌어진다. 이형환위다.
따라라락! 따라라락!
창끝이 점점 더 큰 소리를 냈다. 그때,
저벅! 저벅! 저벅!
야뇌슬이 검을 축 늘어트리고 완전 무방비 상태로 걸어왔다. 방어태세를 전혀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성큼성큼 걸어온다.
‘뭐야!’
왕포는 의문을 느꼈지만 곧 생각을 지우고 일점무세에 집중했다.
스윽!
야뇌슬이 검을 들어올렸다.
왕포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느낌을 감지했다.
검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들려진다. 일점무세에 현혹되지 않고 정확하게 자신을 겨눈다.
‘웃!’
그는 깜짝 놀라서 급히 창법을 변화시켰다.
십이묘환법이 깨졌다.
자신의 묘환법에 현혹되지 않는다. 진기의 파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그래서 감각의 흔들림을 차단했다.
십이묘환법이 안 된다면 정통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백이십구신창술로 승부!
쒜에엑! 쒜에에엑!
찌르고, 빼고, 후려치고, 거두고…… 한 자루의 창이 살아있는 비룡처럼 꿈틀거렸다.
파앗!
야뇌슬이 영활한 비룡을 앞에 두고 훌쩍 뛰어올랐다. 양팔을 좌우로 쫙 펼치고, 두 발은 한데 모아서 힘껏 도약한다.
‘환시대붕? 이런 말도 안 되는!’
야뇌슬은 상법을 깨트리고 중법으로 승부해온다. 헌데 상법을 전개한 자신은 중법을 깨지 못한다. 야뇌슬이 한 마리 대붕처럼 훨훨 날고 있다.
파라라라랑!
그는 위기를 느끼고 급히 팔방풍우(八方風雨)을 전개했다.
양겸창의 그의 주위에 빽빽한 창막을 세운다. 빗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도록 밀봉한다. 헌데,
스윽!
검이 너무도 수월하게 밀막을 뚫고 들어선다.
두부를 가르듯이…… 부드럽게 밀막을 뚫고 들어와서 그의 심장을 탁 건드린다.
“꺽!”
그는 눈을 부릅떴다.
십이묘환법 제십이법(第十二法) 완우기세(緩牛棄世)!
느린 소가 세상을 버린다는 환법인데…… 자신이 당한 게 과연 십이법인지는 모르겠으나, 문득 머릿속에 완우기세라는 넉 자가 스쳐지나간다.
쓱! 푸악!
야뇌슬이 검을 뽑자, 왕포의 심장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