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도검무안 43화]
第七章 가슴에 칼을 (5)
누가 그에게 조언을 할 수 있나.
자신은 노도검문 문도들의 시신만 살펴보고 상대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싸움을 계속하면 죽는다고 말했다. 다른 식으로 싸우자고.
야뇌슬이 듣기에는 상당히 가소로웠을 것이다.
그가 전개한 천왕구참도도 일부러 초식을 비틀었는지 모른다. 그의 목적이 무림 군웅들의 공포심 조장에 있었으니 그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걸 보고 죽느니 사느니 충고를 했으니.
‘치잇! 한 방 먹었네. 재미있는 사람이야.’
야뇌슬 같은 사내는 처음이다.
그녀의 주변에는 영웅호걸이 들끓는다. 일파의 후기지수(後起之秀)라는 자들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그러나 썩 반갑지 않다. 딱히 싫은 것도 아니지만 썩 좋지도 않다.
그들은 그저 무림 동도일 뿐이다.
지자(智者), 현자(賢者)라는 자들도 많이 온다.
거의 대부분 신산여제갈이라는 별호에 도전장을 들이미는 사람들이다. 여자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 났느냐. 어디 한 번 내 병법(兵法)과 견주어 보자.
그들 중에는 말이 통하는 자도 있다. 정말로 병법이 뛰어나다고 감탄한 자도 있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들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두근거린다.
괜히 야뇌슬이 누워있는 쪽을 자꾸 보게 된다.
젊은 나이에 아무도 하지 못하는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감탄할 것일까? 아니면 그가 보여준 한 수의 지략에 마음 깊이 감복한 것일까?
눈을 떠서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본다.
- 야리몌를 닮았어.
그때는 그 말에 숨어있는 감정을 읽지 못했다.
지금은 읽힌다. 그 말을 할 때의 표정과 행동을 되새겨보자 진한 슬픔이 감지된다.
‘누나이거나 누이이거나’
그녀는 확신했다.
야리몌는 가족이다. 상당히 지혜가 뛰어난 여인이다. 야뇌슬 같은 자가 머리가 좋다고 말했다면 정말로 좋은 것이다. 그리고 변괴를 당했다.
지금은 추측일 뿐이지만 거의 확실하다.
그녀는 몸을 돌려서 야뇌슬이 누워있는 쪽을 바라봤다.
부스럭!
몸을 돌리면서 뒤척이는 소리가 울렸다.
“쯧! 속곳에 바람 든 계집처럼…… 그만 자. 내일 부지런히 쫓아다니려면.”
취화선개가 절반쯤 잠에 취해서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오히려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급하게 말했다.
“일어나요! 떠나는 거 같아요!”
마록타가 솥을 잘 씻어서 봇짐에 달아맸다.
그는 길을 오면서 사는데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준비했다. 쌀도 사고, 건포(乾脯)도 사고, 담요도 사고, 솥도 샀다. 그 모든 걸 봇짐에 싸고 묶고 해서 등에 짊어진다.
야뇌슬은 일절 거들지 않는다. 하다못해 자신이 깔고 잔 담요까지도 개지 않는다.
더욱 기가 막힌 일도 있다.
몸도 편치 않고, 나이도 훨씬 많아 보이는 꼽추가 이를 닦는 양칫물부터 세숫물까지 모든 수발을 들어준다.
야뇌슬은 꼽추의 수발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그들 사이가 주종간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헌데 둘은 친구처럼 말을 터놓고 지낸다.
야뇌슬이 예의가 없는 사람인가? 그렇지는 않다. 취화선개와 대화를 나눌 때는 깍듯하게 존칭을 썼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불을 피워서 건포를 구워먹었다.
“몇 시야?”
“인시(寅時)쯤 됐을 거예요.”
“재들 이 시각에 뭐하는 짓들이야?”
“일어나서 짐 정리하고 아침 먹어요.”
“허!”
취화선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모용아를 쳐다봤다.
그걸 몰라서 묻나? 왜 꼭두새벽부터 저 부산을 떠느냐는 말이지 않나. 그걸 그런 식으로 대답하나?
모용아는 품에서 벽곡단(辟穀丹)을 꺼내 씹었다.
“넌 뭐해?”
“아침 먹어요. 장로님도 대충 허기 좀 달래놓으세요. 지금 아니면 아침 먹을 시간도 없을 거예요. 아! 그리고 이거.”
모용아가 서신을 내밀었다.
“뭐냐?”
“전서 좀 보내주세요.”
취화선개는 모용아를 힐끔 쳐다본 후, 서신을 펼쳐서 읽었다.
“야리몌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중요한 여자인 것 같기는 한데…… 언질 좀 안 줄 거야?”
“먼저 갈게요.”
모용아가 일어섰다.
야뇌슬과 마록타가 모닥불을 발로 비벼서 끈 후, 길을 떠나고 있었다.
“킥킥! 자신은 있는 거야?”
“왜? 불안해?”
“불안하지. 저놈들도 오제의 무공을 칠성 이상 수련한 놈들이잖아. 미영추 같은 경우에는 병기고를 관장할 정도였어. 잘 생각해서 행동해. 그 계집 말대로 다음 기회로 미루던가.”
마록타가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원 문파에서 병기고 담당은 중책이 아니다. 거의 한직(閒職)이라고 할 수 있다. 할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병기고라고 해봐야 거의 수련용 도검을 보관하는 곳이니 크게 중요하지도 않다.
적암도는 다르다.
병기고에는 적암도 모든 주민들의 병기가 보관된다.
중원 무림처럼 개개인이 휴대하지 않고, 병기고에 넣어놨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 쓴다.
개인이 지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암도 병기고 담당은 무공을 인정받은 자가 맡는다.
미영추는 강자 중에 강자다.
야뇌슬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 없으면 시작도 안 했어. 후후!”
***
십이묘환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왕씨 후손들만 그것도 지극히 제한된 몇몇 사람만 아주 극비리에 전수받았다.
그런 묘법을 야뇌슬이 사용한다.
‘적암도에 왕린이 있었다.’
그렇다. 왕린도 십이묘환법을 전수받았다. 그를 선택해서 십이묘환법을 알려준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다. 그런 까닭에 왕린의 십이묘환법이 어느 정도인지는 자신처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왕린이 죽었다.
십이묘환법이 깨졌다. 왕씨 성을 지닌 자가 아닌 외인, 야씨 성을 지닌 자에게 졌다.
가문의 절기가 외인에게 흘러나간 것만 해도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할 판인데, 외인에게 죽음까지 당했다.
그는 양겸창(兩鎌槍)을 움켜잡았다.
왕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선택된 몇몇 사람만이 양겸창을 쓴다. 바로 십이묘환법을 전수받은 사람들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외날창을 쓴다. 일겸창(一鎌槍)이라고 부르는데, 창날에 겸이 하나만 달렸다.
그런 구분을 아는 사람도 왕씨들 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은 겸 하나 더 있고 없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 취향에 따라서 겸날을 선택하는 줄 안다.
휘릭! 휘리리리릭! 쒜엑!
창을 돌리고, 찌르고, 당겼다.
묵직한 창의 무게가 기분 좋게 전해져 온다.
중원에는 많은 창법이 있다.
대문파 중에서는 소림창법(少林槍法)과 아미창법(峨嵋槍法)이 뛰어나다.
하북소림(河北少林), 파촉아미(巴蜀峨嵋)다.
그 외에는 모두 가문을 토대로 해서 번성한다.
양가창(楊家槍), 석가창(石家槍), 사가창(沙家槍), 마가창(馬家槍), 라가창(羅家槍)……
하지만 이 모든 창법에 쓰이는 기법들은 모두 유사하다.
찌르고[刺], 휘두르고[圈], 누르고[搭], 찍고[點], 돌리고[攔], 비틀고[纏]…… 등등 십삼자결(十三字訣)에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하는 찰창법(札槍法)으로 무엇을 쓰든, 방어하는 초식으로 옆으로 흘리는 란창(攔槍)을 쓰든 감는 나창(拏槍)을 쓰든…… 조합은 다르지만 근본은 같다.
뇌전자창의 백이십구신창술은 신법 무풍비류를 근간으로 한다. 그래서 나아가고 물러섬이 신속하고, 공격의 변화가 빠르다. 찌를 때는 강맹하고, 물러설 때는 유연하다.
창법 자체만으로도 백이십구신창술은 창술지왕(槍術之王)이다.
이 점은 이미 지난 일 년간의 싸움에서 증명되었다.
십이묘환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중원 창술과 겨뤄서 백전백승했다.
중원 창술의 대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들 말대로 하면 왕가창(王家槍) 앞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거기에 십이묘환법까지 더하면 무적이다.
적암도는 그동안 승리만 쟁취한 게 아니다. 이백여 명 중에서 마흔 명 가량이 죽었다. 군대 용어로 말하면 이 할 가까운 병력이 손실되었다.
그런데 왕씨 중에서 죽은 자는 없다.
오제의 무공 중에서도 뇌전자창 왕패의 창술은 가장 강하다.
휘리리리릭!
그는 힘껏 창을 휘두른 후, 부드럽게 거뒀다.
밤새도록 창을 휘두른 그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창암도에는 궁술을 수련한 사람이 둘이나 있다.
일시탈백 장설리의 궁술은 적암도 사람들에게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무공이다.
일단 사조가 여인이다.
적암도 주민들의 일상은 활기차게 바다에 뛰어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망질에 힘을 쏟는 가운데, 살은 뜨거운 태양 볕을 받아서 이글이글 타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