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검무안-42화 (42/160)

# 42

[도검무안 42화]

第七章 가슴에 칼을 (4)

야뇌슬이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도귀들하고는 철천지원수다. 중원에 들어온 적암도 사람은 팔백이십구 명. 그 중에서 내가 죽여야 할 자는 이백하고 한 명. 그들은 내 방식대로 죽인다.”

시를 읊듯이 담담한 말이었다.

“어멋! 그랬군요. 그런데 왜 말 놔요?”

“우린 동갑끼리 말 논다. 너도 말 놔.”

“그래, 그럼.”

모용아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유삼을 입고 유건을 썼지만, 그녀의 웃는 모습은 활짝 핀 나팔꽃 같다.

“취화선개가 적암도 무공에 대해서 궁금해 하더군. 너도 그래서 말을 건 것 같은데…… 말해줄 수 없다.”

“아니, 그것 때문에 말 건 거 아냐.”

“……”

“네 방식대로 이백하고도 한 명을 죽이는 건 좋은데…… 나중에 싸워. 이런 식으로 싸우지 마. 너 죽어.”

야뇌슬이 고개를 돌려서 모용아를 봤다. 그리고 픽 웃었다.

“너…… 야리몌 닯았다.”

“야…… 리몌?”

“시신을 검수하는 거 봤다. 꼼꼼히 살피더군. 그리고 인상이 구겨졌고. 안색 변화가 팔색조(八色鳥)야. 후후후! 그만큼 생각이 많다는 거지.”

‘이 사람!’

모용아의 눈이 퉁방울만 하게 커졌다.

거리가 가까우니 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 정도까지 생각해 냈다는 건……

야뇌슬이 말했다.

“저기 같이 온 사람은 취화선개 못지않은 고수군.”

“단황신개라고 해.”

“중원 무림의 풍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개방 장로하고 같이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지. 나와 동갑이라고 했나? 그 나이에 개방 장로하고 동행이라. 이미 강호 무림에 명성을 떨쳤다는 건데, 무공으로 떨친 것 같지는 않고…… 이게 뛰어나군.”

야뇌슬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모용아는 숨이 막힐 듯이 놀라고 있었다.

“여긴 취화선개만 오는 것으로도 충분했어. 헌데 단황신개까지 같이 왔다는 건 나 때문이고…… 머리 좋은 여자와 같이 왔으니 날 설득하거나 유인할 생각이군.”

“……”

이번에는 모용아가 말을 못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 마치 귀신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야뇌슬이 다시 픽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리몌가 그랬어. 아주 뛰어났지. 사람 보는 눈은 개떡이면서 머리만 좋았어. 후후!”

“야리몌가 누구예요? 연인?”

“큭큭!”

마록타가 키득거렸다.

‘연인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 야뇌슬, 야리몌…… 혹시?’

야리몌가 누구이든 야뇌슬에 대한 정리를 다시 해야 한다. 이 자는 무서운 자다. 아주 무섭다.

‘사람을 아주 잘못 봤어. 이 자…… 나를 능가해!’

***

마록타는 정말 토끼 탕을 끓였다. 그리고 둘이 솥에 얼굴을 박고 아주 맛있게 먹어댔다.

“양념도 없고, 소금도 넣지 않고…… 저렇게 끓이면 비려서 어떻게 먹지?”

단황신개가 중얼거렸다.

“비위 하나는 정말 좋은 가봐. 야, 너는 저렇게 먹을 수 있냐?”

취화선개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걸개를 걷어차며 말했다.

“뭐, 뭐를요?”

“됐다, 이놈아! 잠이나 퍼 자라!”

취화선개는 호로병을 들었다. 허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술 열 병이 모두 동났다.

“쳇! 술도 떨어지고……”

투덜거리던 취화선개의 눈이 모용아에게 꽂혔다.

그녀는 야뇌슬과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야! 넌 뭐 좀 얻어낸 거 없어?”

“……”

“야!”

취화선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모용아는 놀라지도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귀 안 먹었어요. 다 들려요.”

“그런데 왜 대꾸도 하지 않고 지랄이야!”

“저 사람의 의도가 궁금해요.”

“의도? 뭔 의도?”

“주검 옆에서 저렇게 태연히 탕을 끓여 먹는 의도요.”

“의도는 무슨…… 야만인들이 다 그렇지 뭐. 얌마! 졸지 말고 가서 술이나 얻어와!”

취화선개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걸개에게 발길질을 했다.

저벅! 저벅! 저벅……!

한 밤중에 무인들이 횃불을 들고 걸어왔다.

야뇌슬은 누워있었다. 토끼 탕을 만들 때 피워놓은 모닥불이 불씨만 남고 꺼졌다. 하지만 아직도 작은 불똥들은 숨이 붙어서 빨간 꽃처럼 피어난다.

야뇌슬의 눈이 불똥을 지켜본다.

그들은 야뇌슬 앞에서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시신을 가져가고자 하오.”

“……”

“허락해 주겠소?”

“가져가.”

야뇌슬은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불똥만 쳐다봤다.

대답은 마록타가 대신 했다.

무인들은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해 보인 후, 시신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이거였어.”

모용아가 머리를 탁 쳤다.

야뇌슬이 노린 것은 사주가 아니다. 중원 무인들이다.

‘이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어!’

그녀는 시신을 거두고 있는 노도검문 문도들을 쳐다봤다.

그들도 개방 문도를 봤다. 개방 장로들도 보고, 그녀와도 눈길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은 죽었다.

싸움을 하고자 하는 투지가 일어나지 않는다. 암울한 눈길로 시신만 거두고 있다.

이것이었다. 이들에게, 창암도 상주 무인들에게 최대한 공포심을 심어주는 게 목적이다.

반검문 무인들은 최대한 빠르게 격살했다.

너희 다섯 명?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빠른 순간에 죽여주지.

그들은 그런 쾌검에 죽었다.

노도검문 문도들은 노도망절을 펼쳤다.

광동 무인들치고 노도망절을 모르는 자도 있던가? 격체전공으로 검력(劍力)이 네다섯 배나 증가한다. 진기가 증가한 만큼 초식은 빨라지고 강해진다.

저들 열 명과 일시에 부딪친다고 생각해 보라.

그만한 검력을 상대하려면 능히 일갑자(一甲子)의 내공은 있어야 한다.

노도망절을 정면에서 격파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광동 무인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적암도 도귀가 그런 일을 해냈다.

시신을 보라. 끔찍하다. 목을 잡아 뜯듯이 베어 놨다. 검에 베인 게 아니라 녹슨 칼날에 썰린 것 같다.

빠름으로도 힘으로도 상대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놈은 심성도 악귀다. 놈에게 자비를 구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놈과 부딪치면 빨리 죽느냐, 살점이 뜯겨서 죽느냐 하는 선택만 남는다.

‘사백 명이 아니라 사천 명이 달려들어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이런 놈과는 싸울 수 없다고.’

노도검문 문도들은 사형제를 죽인 적에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시신을 거둬갈 테니 허락해달라고 양해까지 구했다.

적에게 사정한 것이다.

그런데 적은 응답하지 않는다. 대꾸도 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봐도 볼품없는 꼽추가 건방지게 말한다.

가져가!

이것은 한편의 연극이다.

야뇌슬은 악귀로 분신한다. 마록타도 죽음을 피워낸다.

시신 곁에서 태연하게 토끼 탕을 끓여먹는 야만인. 무공이 엄청나게 높은 악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나?

그렇다. 이런 광경은 적암도 도귀들이 중원 땅을 밟았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적암도 사람들은 촌스러웠다. 하는 짓이며 행동들이 품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생선을 잡아서 내장을 쑥 훑어내고는 날로 씹어 먹었다.

그 모습은 야만인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무공은 엄청나게 높았다. 명망을 날리던 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 연수(聯手)도 해봤고, 절진(絶陣)도 펼쳐보고, 독도 살포했다.

적암도 도귀들은 무적에 가까운 무공으로 밀어붙였다.

야뇌슬의 지금 모습은 그때의 적암도 도귀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광동 무인들은 사주들에게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야뇌슬을 더 두렵게 여긴다. 그때, 이것저것 다 해봤기 때문에 지금 쉽게 포기해버린 것이다.

야뇌슬은 노도검문 문도들을 친 후, 움직이지 않았다.

곧바로 창암도로 쫓아갈 기세였는데, 탕까지 끓여먹으면서 느긋하게 쉬었다.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계산된 연극이다.

“저 사람 말이에요. 왜 여기서 탕을 끓여먹었는지 알아요?”

“뭔 쉰 소리야?”

“야만인. 악마…… 이런 걸 떠올리게 만들려고 그런 거예요. 아까 말하셨죠? 양념도 안하고 끓이기만 한 걸 비린내 나서 어떻게 먹냐고. 억지로는 먹을 수 있죠. 이를 악물고 먹었을 거예요. 그렇게 먹으면 야만인으로 보이잖아요.”

그녀는 주절주절 생각을 말해나갔다.

두 노화자는 누워서 심드렁하게 듣다가 자신들도 모르게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모용아가 말을 마칠 무렵쯤에는 입을 쩍 벌린 채 눈만 끔뻑거렸다.

찌릭! 찌릭! 찌리릭!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모용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오지랖이 넓어도 너무 넓었다.

적암도 사람들의 무공은 야뇌슬이 가장 잘 안다. 도귀들과 야뇌슬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다. 한때는 서로 웃고 떠들면서 좋게 지냈을 게다.

어떤 이유에서 서로 등을 돌리게 됐는지는 몰라도 도귀들의 무공을 야뇌슬만큼 잘 알 수는 없다.

사실 단황신개와 자신이 광동에까지 잠입한 것도 모두 야뇌슬을 회유하기 위해서이다. 무엇 때문에 회유하나. 오제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다.

야뇌슬이 오제의 무공을 잘 알고 있다고 전재했다. 또 사실이 그렇다.

그런 그가 사주들과 싸우려고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