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도검무안 41화]
第七章 가슴에 칼을 (3)
취화선개는 길가에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관도 위에 시신 열다섯 구가 널브러져 있다. 그 중 다섯 구는 반검문도의 시신이고, 나머지 열 구는 노도검문도의 시신이다.
야뇌슬을 걸음을 멈췄다.
그는 시신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꼽추가 부지런히 잔나무 가지를 모아온다. 그리고 어디서 토끼도 두 마리 잡아왔다.
저녁을 먹을 셈인 것 같다.
이놈들은 어찌된 놈들인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시신에서는 아직도 붉은 선혈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데 밥이 들어가는가?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에서 토끼구이를 해먹겠단 말인가?
취화선개는 혼란스러웠다.
야뇌슬을 좋게 봤다. 적암도에서 온 놈이지만 중원 무림에 해를 끼칠 인물은 아니다. 더군다나 한참 혈사(血史)를 써나가고 있는 도련에 반기를 들었으니 좋지 아니한가.
그러나 이건 아니다.
사람의 도리상 시신을 옆에 놓고 저녁을 먹을 수는 없다.
“흠!”
단황신개와 모용아가 가까이 다가오면 큰 기침을 했다.
“왔어?”
취화선개는 고개만 들어서 인사했다.
“술이 떨어져서 그러냐? 왜 그렇게 힘이 없어?”
“그러게. 술도 없고, 저 자식 하는 것 보니 정신도 없고…… 뭔가 빠져나가도 한참 빠져나갔다.”
“그럼 하나는 채워야지.”
단황신개를 호로병을 내밀었다.
취화선개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넙죽 받아서 마셨다.
꿀꺽! 꿀꺽!
호박색 액체가 슬슬 넘어갔다.
“크으! 좋다!”
근 반 병을 단숨에 마셔버린 취화선개가 얼굴을 활짝 펴면서 탄성을 토해냈다.
“역시 술이 좋지?”
“그래. 술이 좋다.”
“그럼 본격적으로 판을 벌려볼까? 히히!”
단황신개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둥에 매고 온 마대자루를 풀었다.
그 속에서 마개를 밀랍으로 봉한 호로병이 무려 십여 병이나 쏟아져 나왔다.
“이거 다 어디서 났어?”
“오면서 훔쳤다.”
“잘했어. 키키! 야, 이거 저 새끼 한 병 갖다 줘라. 핏물 더미 속에서 퍽퍽한 고기 먹느라고 고생께나 하시는데.”
취화선개가 비웃듯 말하며 호로병 하나를 들어서 걸개에게 던졌다.
걸개는 호로병을 받아서 후다닥 달려갔다.
모닥불을 피우고 솥을 걸던 꼽추가 호로병을 받아서 한 모금 마셔보고는 야뇌슬에게 건넸다.
“어쭈! 저거 시음까지 하네? 혹여 독이라도 탔을까봐?”
“키키키!”
“왜?”
“독은 아니지만 내가 뭔 짓 좀 했거든.”
“뭔 짓? 뭔 짓을 했는데?”
“천일취를 먹였지. 키키킥!”
취화선개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천왕구참도!’
모용아는 시신들을 살펴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시신은 잔혹하다. 피를 펑펑 쏟고 죽어서 여느 시신들보다도 더욱 처참해 보인다.
이것이 천왕구참도의 특징이다.
천왕구참도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몰아붙인다. 그야말로 힘으로 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그렇게 힘으로 다가서는 것은 병기를 밀어내는 데 까지다.
병기가 밀리면 강도가 들이닥치는데…… 목에 있는 동맥만 가위로 자르듯이 똑 따낸다.
자연히 피가 시냇물 흐르듯이 콸콸 쏟아진다.
죽음도 빠르지 않다. 아픔과 동시에 마비를 느끼고 쓰러진다. 곧 현기증도 찾아온다. 세상이 가물거리면서 고통이 극에 달한다. 신음도 격하게 쏟아낸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안타까울 정도로 긴 죽음이다.
야뇌슬도 그런 특징을 그려냈다. 분명히 의심할 여지없이 천왕구참도다.
그런데…… 목의 동맥을 잘라내기는 했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거칠다.
가위로 잘라내는 것처럼 정교하게 똑 끊어내지 못했다. 솜씨 없는 사람이 생선포를 뜨듯이 투박하게, 그리고 무지막지할 정도로 큰 칼질을 했다.
이런 칼질은 고통은 훨씬 더 심하다. 하지만 죽음은 그만큼 빨랐을 게다.
어쨌든 그동안 보아왔던 천왕구참도보다는 많이 떨어진다.
도련의 최대 장점이 무엇이냐면 싸움에 미숙한 자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암도만 해도 그렇다.
창암도는 광동(廣東)을 지배한다.
광동 문파 중 문도 수만 따져서 서른 명 이상인 문파는 모두 마흔 여섯 개다.
창암도는 그들 문파에서 고수들을 차출했다.
먼저 마흔 여섯 개 문파 중에서 열네 개 문파는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사주가 직접 문파를 방문했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자들을 뽑아갔다. 스무 명의 사주가 열네 개 문파를 돌면서 많은 인원을 차출해 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열네 개 문파에게는 창암도에 상주할 무인들의 명단이 하달되었다. 적게는 열 명에서 많게는 서른 명에 이르기까지 차출했다.
두 번째로 스물세 개 문파를 선정했다.
그들 문파는 무인 차출을 거의 당하지 않았다.
일부 사주가 와서 무인 한두 명을 뽑아가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상황파악만 하는데서 그쳤다.
그들에게도 유사시 명단이라는 게 배포되었다.
유사시에 창암도에서 무인을 차출할 때, 보내야 할 무인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아홉 개 문파가 남는다.
창암도는 그들 문파는 상황파악조차도 하지 않았다. 유사시 명단이라는 것도 주지 않았다. 아예 창암도와는 상관없는 문파인 것처럼 쳐다보지를 않았다.
문파의 입장에서는 후자가 제일 좋다.
가장 많은 무인을 차출당한 열네 개 문파 같은 경우에는 정작 자신들의 문파는 텅 비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헌데 이것이 광동 무림의 세(勢) 가름이 되었다.
상(上) 십사(十四), 중(中) 이십삼(二十三), 하(下) 구(九).
창암도가 많이 차출하면 차출할수록 강한 문파라는 것이다.
다른 도(島)도 같은 인적 구성을 채택한다.
세를 늘리되, 강한 자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자신들 스스로에게도 그런 법칙을 적용시킨다. 적암도에서 나온 사람은 많지만 병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은 이백 명 안짝이다. 나머지는 안전한 곳에서 무공수련에 매진한다.
병기를 들고 싸우겠다고 나선 자, 물어볼 필요도 없다. 강자다.
야뇌슬의 천왕구참도는 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많이 미흡해. 이 사람, 당하겠어.’
모용아는 고개를 저었다.
반검문도를 거침없이 죽일 때만 해도 좋은 보물이다 싶었는데, 노도검문도를 죽인 모습은 기대 이하다. 아니, 도련 사주들과 비교가 딱 된다.
싸우면 당한다!
보물인 줄 알았는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천방지축이었나.
모용아는 시신들 사이를 걸어갔다.
신발에 피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잠깐 앉아도 되요?”
야뇌슬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솥을 걸어놓고 물을 끓이던 마록타도 흘끔 쳐다봤다.
‘악마가 노려보는 것 같아.’
모용아는 마록타의 눈길에 움찔 거렸다. 하지만 곧 평정심을 유지하고 야뇌슬 곁에 앉으며 말했다.
“취화선개님과 일행이에요.”
야뇌슬이 움찔거리더니 슬그머니 옆으로 피해 앉았다.
“여…… 자?”
“절 남자로 보는 사람은 없답니다.”
야뇌슬이 어색한 표정으로 불을 바라봤다.
모용아도 꼽추를 봤다.
보아하니 저녁을 길에서 해결할 모양인데…… 아예 솥을 올려놓고 물을 끓인다. 토끼 구이를 해먹는 게 아니다. 탕을 끓여서 먹으려고 한다.
“열 발자국?”
“……?”
“시신하고의 거리요. 바람이 불 때마다 피냄새가 풍기는데…… 비리지 않아요?”
“……”
“비위가 좋은 거예요? 아니면 감성이 무딘 거예요? 아무래도 이런 데서 탕을 끓여먹기는 그런데.”
“크크크!”
마록타가 눈을 치켜뜨며 노려봤다.
모용아는 마록타의 눈길을 무시했다.
한 번, 두 번 보면 그 사람의 고벽(痼癖)을 알 수 있게 된다.
눈을 위로 치켜뜨면서 노려보는 건 마록타의 고벽이다. 일부러 노려보는 게 아니라 그저 쳐다보는 것이다.
‘숙맥?’
모용아는 야뇌슬에게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원석을 봤다.
다른 부분은 모르겠다.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자에 대한 부분은 완전 숙맥이다.
‘여자를 어떤 식으로 대할지 몰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눈길도 다른 데만 쳐다보고 있고, 그러면서도 옆에 앉아있는 걸 신경 쓰고……
‘신선한데?’
그녀는 야뇌슬에게서 호감을 느꼈다.
나이 이팔만 되어도 여자에게 눈을 뜨는 중원 사내들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다.
“적암도 사람들은 주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져요?”
“……”
“중원과 다른 풍습이 있나 해서 물어본 거예요.”
“……”
“그렇게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사람 무안하잖아요. 흠! 좋아요. 우리 처음부터 시작해요. 제 이름은 모용아라고 해요. 그쪽 이름은 뭐예요?”
“알고 있잖소.”
“어멋! 말할 줄 아네요? 그럼 다음은 나이. 전 금년에 스물이에요. 그쪽은요?”
“스…… 물.”
“앗! 그럼 우리 동갑이네요. 흠!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난 내 밑인 줄 알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