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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35화 (3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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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35화]

第六章 도검무안(刀劍無顔) (3)

그때, 야뇌슬이 거절하는 야복의 등을 탁 치면서 말했다.

“깎자고. 머리도 깎고, 옷도 새 것으로 갈아입고. 호의를 마다할 필요는 없잖아?”

마록타가 무슨 소리냐는 듯 입을 쩍 벌리면서 어이없어 했다.

그가 눈으로 물었다.

‘너 방금 전에 싫다고 고개 내둘렀잖아!’

야뇌슬도 웃으면서 눈으로 말했다.

‘내가 언제?’

개방이 유화적인 행동을 취해왔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개방이 자신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쁜 의도는 없는 것 같다. 취화선개가 말한 대로 적암도의 무공을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의 의도는 그것뿐이다.

또 자신들을 적으로 돌려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공을 알고자 하는 일은 자칫 서로의 감정을 틀어지게 만들 수 있다.

사실 말이 안 되니까.

그 일을 두 번, 세 번 고집하면 좋았던 감정도 나빠진다.

개방은 목적을 말하면서도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한다.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내려올 때만 해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유화적인 움직임을 받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빈세백은 이런 것을 일컬어 속심(俗心)이라고 했다.

***

개방도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욱 발 빠른 자들이 있다.

“적암도 맞지?”

“맞아. 틀림없이 적암도야.”

“적암도는 텅 비었다고 했잖아?”

“음…… 이건 보고해야겠어.”

창암도는 도읍 곳곳에 눈과 귀를 깔아두고 있다.

그들이 제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자들이 바로 개방도다. 아니, 걸개들이다.

광동성(廣東省) 혜주부(惠州府)에 중원 무인들은 없다.

검을 차고 칼을 찬 무인들은 있지만 그들은 중원 무인들이 아니다. 태어나기는 중원에서 태어났지만, 적을 섬으로 옮겼다. 그래서 지금은 창암도 사람이 되었다.

솔직히 그들은 섬[(島)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창암도는 하나의 기구조직일 뿐이다.

도주니 뭐니 하고 부르는 것도 섬놈들이 제 멋에 겨워서 괜히 멋을 부리고 있는 게다.

중원은 죽었다 깨어나도 중원이다.

말을 바꿔서 하자.

광동성 해주부에는 도련 소속 무인들만 있다. 도련에 반대하는 무인들은 모두 척살되거나 쫓겨났다.

헌데 유독 개방만 쫓겨나지 않았다. 놈들은 개방도가 아니라고, 단순한 거지일 뿐이라고 읍소하면서 버티고 있다. 얼굴을 알고 있고, 허리에 매듭까지 둘렀으면서 뻔뻔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놈들이 개방 무공을 쓰기만 하면 당장 도륙해 버린다. 그때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즉참이다.

거지들도 그런 점을 알고 감시의 눈이 있을 만한 곳에서는 무공을 쓰지 않는다. 매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무공만은 펼치지 않는다.

아주 지독한 놈들이다.

도련 창암도 무인들은 개방 걸개들을 잡아 죽이는데 맛 들렸다.

한 놈, 두 놈 찾아서 때려죽이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그러던 차에…… 적암도 옷을 입은 자들이 걸려들었다.

저 옷, 잊을 수 없다.

바로 자신들이 상관으로 모시는 적암도 주인들이 입었던 옷이기 때문에 잊을 수 없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모습도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옛날이라고 해봐야 겨우 일 년도 안 된 일이지만……

지금도 적암도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나?

적암도 사람이 왜 개방 걸개와 어울릴까?

“가서 보고해.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알았어.”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미시완(米翅莞)은 창암도 두 번째 사주다.

그는 아내의 패옥을 사러 저잣거리를 거닐다가 급하게 달려오는 향주를 만났다.

‘저 자 이름이 뭐더라?’

이름 같은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솔직히 중원인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 자가 급히 와서 읍했다.

“음. 급한 일이 있나 보군.”

“저, 상도님!”

향주는 자신이 본 일을 급히 고했다.

말을 다 듣고 난 미시완은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적암도에는 사람이 남아있다. 텅 빈 게 아니다. 노모보의 사자, 죽음의 사자가 두 명이나 남아있다.

우염비와 왕린!

시교혈랑대의 무서움을 한층 강화시켜줄 보배 중에 보배!

‘야뇌슬을 끝내고 돌아왔군. 후후!’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자. 반가운 사람들이다. 하하! 중원 사정에 어두워서 걸개들의 농간에 휘둘린 모양인데. 하하하! 안내해라. 하하하!”

하지만…… 미시완은 더 웃지 못했다.

‘야뇌슬! 마록타!’

폐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모습은 분명히 야뇌슬과 마록타다.

야뇌슬의 모습을 어찌 모를 리 있겠는가. 적암도 제일의 기재인 노모보와 쌍벽을 이루던 자인데. 마록타의 모습을 어찌 모르겠는가. 적암도 제일의 괴물을.

‘우염비와 왕린이 당했다!’

이건 정녕 믿지 못할 일이다. 그 두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데 한낱 풋내기에게 당할까.

그러나 그럴 수 있다. 야뇌슬이라면……

‘알아봐야겠어.’

그는 옆에 있는 향주에게 말했다.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나?”

“방(方) 향주도 같이 있는데요.”

“어디…… 저놈 무공 좀 보자. 많이 늘었을 텐데, 궁금하군. 둘이서 급습해봐. 걸개들은 무공을 사용하지 못할 테니까. 꼽추는 신경 쓸 것 없고.”

“전력을 다합니까?”

“전력을 다해? 후후후! 너희들의 무공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강했던가?”

“아, 죄송합니다.”

향주가 얼굴을 붉히며 급히 물러났다.

퍽! 퍼억!

향주 두 명이 신뢰삼검의 전광천심에 가슴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급습을 가하자마자 장난감처럼 내동댕이쳐졌다.

‘저놈!’

미시완은 숨어있던 곳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그가 보여준 한 수는…… 자신조차도 막을 수 있을까 염려될 정도로 고절했다. 눈부시게 빨랐고, 매서웠다. 금강처럼 강했다. 돌기둥이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우염비와 왕린이 당했다. 저 정도 무공이면 당할 수 있어!’

그는 슬며시 자리를 떴다.

***

중원은 광활하다.

대해(大海)도 끝 간 데 없이 넓지만, 중원도 끝을 보지 못할 정도로 넓고 크다.

고수 이백 명이 무림에 나왔다.

그들의 힘이면 단숨에 중원을 초토화시킬 줄 알았다. 또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생각했던 대로 중원 무공은 약했다. 툭 밀치기만 해도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싱겁게 지배영역을 확충시켜 나갔다.

그런데…… 고민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곳에서 터졌다.

영역은 확충되는데, 다스릴 사람이 없다. 괜히 싸움만 걸고 빈껍데기만 얻는다.

광대한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중원인을 거둬야 한다.

도련은 잠시 주춤했다.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난 후, 약 이삼 년간 충성스러운 수하들을 만드는데 주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결정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얼떨결에 뺨을 얻어맞은 중원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가해왔다.

이번 싸움은 팽팽하다.

도련이라고 해도 감히 방심하지 못할 정도로 숱한 고수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그들은 도련을 이방인으로 생각한다. 아니, 아예 해적쯤으로 격하시켜 버린다.

남해안 일대가 해적에게 침공 당했다.

련주는 그들과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이백 명의 도민 중 가장 강한 자 열 명을 선발해냈다.

그들이 열 명의 도주다.

그들에게 마음에 드는 도명(島名)을 짓게 하고, 뜻이 맞는 자 열아홉 명을 거두게 했다.

이렇게 해서 열개의 섬이 탄생했다.

현재 두 개의 섬이 귀주성에 가있다.

그들은 사천당문(四川唐門)과 아미파(峨嵋派), 청성파(靑城派)를 맞이해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두 개 섬이 호광성(湖廣省) 접경 지역에, 또 두 개는 복건성에 있다.

이들은 소강상태다.

한 때는 호광성 접경에 다섯 개 섬이 머물 정도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서 숨만 고르고 있다.

열 대의 섬 중 세 개가 강서성(江西省)에 투입되어 있다.

이곳은 지금도 치열하게 싸운다.

중원 무림인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강서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무인들이 밀고 내려온다.

오죽했으면 노모보가 섬에서 나오자마자 강서 쪽에 투입시켰을까? 다른 때 같았으면 야뇌슬의 시신을 내놓으라고 뺨이라도 몇 대 후려갈겼을 게다.

여러 곳에서 싸움을 치르는 동안 무적일 것 같던 적암도 도민도 많이 죽어나갔다.

장정 이백 명 중에 마흔 명이 요절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년들이 무공을 수련하고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적암도 사람들의 마음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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