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도검무안 33화]
第六章 도검무안(刀劍無顔) (1)
철벅! 철벅! 철벅!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물 튀는 소리가 울렸다.
별도 많고 달도 밝지만 수림이 워낙 울창한 곳이라서 빛 한 점 새어들지 않았다.
“에이, 이놈의 거미줄!”
앞서가던 자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하! 왜 그래. 저도 먹고 살겠다고 죽을힘을 다해서 친 건데. 억울하면 그놈이 억울하지. 하하하!”
“그럼 네가 앞장을 서던가.”
“싫다. 오늘 선두는 너야.”
“그럼 말을 말던가.”
“싫다. 놀리는 재미를 왜 포기해.”
“따분하냐? 한바탕 놀아줘?”
“놀아주면 나야 좋지. 언제 놀……”
말을 하던 사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만 입을 다문 게 아니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재빨리 몸을 숨겼다.
사사사삭!
순식간에 짙은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후둑! 두둑! 훅……!
앞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땅을 파는 소리도 들렸다.
“제길! 멧돼지군.”
숨었던 자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영 꼴이 말이 아니란 말씀이야. 기껏 중원에 나왔더니 밤이슬이나 맡고 다니는 처지라니.”
“멧돼지에 놀라서 숨는 건 어떻고?”
“그러게 말이야.”
그들은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깊은 골짜기를 걸어갔다.
속도는 매우 느렸다. 물길을 따라서 계곡으로 걷기 때문에 발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다 왔어. 이제 내려줘.”
잡담들 사이에서 옥구슬 굴러가듯 영롱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여인, 그녀는 아름답다. 차갑고, 고귀하며, 이지적이다. 그러면서도 뇌쇄적인 유혹까지 풀어낸다.
“저긴가?”
사내가 등에 업은 여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조심해. 신주사창(神州四槍)은 양가(楊家) 창법(槍法)의 달인들이야. 잡히면 끝나.”
“후후후!”
사내들이 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들은 굶주린 늑대들이다. 피를 많이 봤지만, 아직도 갈증을 풀기에는 멀었다.
척! 척! 척! 척!
창이 겨눠졌다.
저들은 기습을 받았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창수(槍手) 네 명이 띠풀을 엮어서 만든 띳집에서 나와 기수식(起手式)을 취했다.
“지독한 놈들이군. 이곳까지 찾아오다니.”
“시교혈랑대(撕咬血狼隊)! 말은 많이 들었다. 네놈들의 무공이 어떤지 안목이나 넓혀보자.”
저들의 눈에 자신감이 넘쳤다.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인가. 패배가 명확한 싸움에 나서면서 저토록 자신만만한 눈빛을 흘릴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인원수로 보면 이쪽이 훨씬 낫다.
육남일녀, 일곱 명이나 된다. 반면에 저쪽은 네 명이다.
명성도 이쪽이 훨씬 높다. 시교혈랑대라고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 가로막는 것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조리 처단해 버린다는 죽음의 살귀가 아닌가.
도련의 별동대(別動隊)!
중원 무인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무인만 암살하는 척결대!
세상살이에 염증을 느낀 자가 있다면 가까이 다가오기만 하라. 가차 없이 베어주마!
저들, 신주사창의 별호는 인근 토박이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신주사창은 태연했다.
무공에 정말 자신을 가진 자들이거나, 아니면 겁을 상실한 풋내기이거나.
“내가 하지.”
시교혈랑대에서 한 사내가 나섰다.
휘릭! 휘릭! 휘리리릭!
그는 허리에서 혈륜을 꺼내 팽이 돌리듯 돌렸다. 두 개의 혈륜이 손가락 끝에서 팽팽 돌았다.
칼날 돌아가는 소리가 공기를 찢는다. 피를 부르는 섬뜩한 소리로 들린다.
“큭큭! 나 노염백이야. 들어봤지?”
노염백은 화륜 두 개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여유 있는 걸음으로 신주사창에게 다가섰다.
그때, 여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혼자서는 힘들 텐데.”
그 말을 들은 한 사내가 등에 맨 활을 풀어내며 말했다.
“한 명은 내가 맡지.”
“딱 한 명만 맡아라.”
“걱정마라. 손 놓고 있자니 심심했는데. 후후!”
활을 든 사내, 장타홀이 시위를 재며 말했다.
사사사사삿!
신주사창이 노염백을 에워쌌다.
그들은 장타홀의 활이나 미루극의 유엽도, 곡문권의 언월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상대로 나선 노염백만 노려보면서 창끝을 움직였다.
투둑! 투둑! 투두두둑!
창끝이 움직인다. 처음에는 파르르 떠는가 싶더니 이내 창대까지 휘청거린다.
양가창법은 창을 쓸 때 꼭 배꽃이 휘날리는 것 같다고 해서 양가이화창(楊家梨花槍)이라고 불린다. 양가를 빼고 이화창(梨花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 창수가 보이는 떨림은 꽃잎이 떨어지기 직전의 몸부림이다. 진기의 응집이다.
양가창의 진수(眞髓)는 쾌(快)다.
무척 빠르고 강하며, 현란하다. 무엇보다도 승승추격(乘勝追擊)에 강하다. 스치던 맞던 일격이 성공하면 곧바로 다음 창이 물밀듯이 일어난다.
양가창법은 ‘한 번의 우세는 곧 승리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여인이 잡히면 끝난다고 말한 것도 이 부분이다. 몸뚱이를 잡힌다는 말이 아니라 우세를 내주면 끝장난다는 말이다.
“이제 죽고 사는 문제만 남았군. 큭큭! 너희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난 죽기 싫으니 너희가 죽어라!”
쒜에에엑!
그의 손에서 화륜이 번뜩였다.
화륜 한 개는 빙글 한 바퀴 원을 그리면서 일시에 네 사내를 노렸다. 그리고 또 다른 화륜 한개는 하늘로 솟구치는 듯 하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쒜엑! 쒜에엑!
화륜이 연속으로 쏟아졌다.
한 개는 곧장 쏘아져 나고, 다른 한 개는 땅으로 떨어지는 듯 하더니 뱀이 머리를 들듯 살포시 솟구친다. 그리고 수직으로 날이 세워지더니 맹렬하게 달려든다.
까앙! 깡깡! 까앙!
신주사창은 창대로 화륜을 후려쳤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서 가격해 낸다.
일촌경타(一寸硬打)!
쭉 뻗은 창대에는 진기가 응집되어 있다.
창대의 떨림은 진기가 과도하게 밀려드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창대 주의의 경기(勁氣)를 감지하기도 한다.
곤충의 더듬이처럼 창대로 밀려드는 힘을 감지한다.
그러면 창대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이물질을 튕겨낸다. 화륜이 되었든, 검이 되었든 창대 안으로 들어선 물체는 모조리 감지해내고, 받아친다.
양가창법 중에서 일촌경타라는 수비식이다.
“호오!”
노염백이 감탄한 듯 경탄을 터트렸다. 그 순간,
쒜에엑!
하늘로 솟구쳤던 화륜이 맹렬한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창수가 수직으로 쏘아져 오는 화륜을 쳐내는 순간, 하늘로부터 벼락이 뚝 떨어졌다. 그때,
쒝!
띳집 지붕이 들썩인다 싶더니 섬전이 번쩍 터졌다.
까앙! 깡!
하늘로부터 떨어지던 화륜은 띳집 지붕에서 터진 섬전에 격타당해 멀찍이 퉁겨졌다.
“호호! 일시관중(一矢貫中) 장건우(張健羽). 내가 뭐랬어? 저 자가 있을 거라고 했지?”
여인이 깔깔 거리며 웃었다.
“장타홀!”
“후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활에 시위를 매긴 채 묵묵히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장타홀이 왼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띳집 위로 올라선 자도 활을 들었다.
그가 천천히 어깨 뒤로 손을 뻗어서 화살을 꺼낸다.
장타홀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활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띳집 위만 본다.
일시관중 장건우라고 불린 자가 활에 화살을 재웠다. 그리고 장타홀처럼 왼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비스듬히 섰다.
“하하하! 숫자는 내가 세지. 하나!”
신주사창에게 에워싸인 노염백이 화륜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신나게 소리쳤다.
그도 일시관중 장건우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하다.
“둘!”
패애애애앵!
화륜에서 칼바람 소리가 울렸다. 칼날 수십 개에 일시에 내리쳐지는 소리다.
장타홀은 여전히 활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일시관중 역시 마찬가지다. 장타홀만 노려 불 뿐 활은 화살을 먹인 채 땅을 바라보면서 축 쳐져 있다.
“셋!”
노염백이 셋을 셈과 동시!
패애앵! 꽈르르르릉!
화륜 십여 개가 일시에 쏟아져 나갔다.
탕! 탕탕탕!
신주사창이 일제히 창을 휘둘러 화륜을 떨궈냈다.
장타홀과 장건우는 노염백의 ‘셋’이라는 구령을 기화로 일제히 활을 들어올렸다.
일시일관(一矢一貫) 백시백관(百矢百貫)!
백 발을 쏘면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명중시킨다는 일시관중 장건우.
무영일살(無影一殺) 천강백살(天降死矢).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죽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화살!
중원에 일시일관이 있다면 도련에는 천강사시가 있다.
타앙! 쒜엑!
화살과 화살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퍼억!
먼저 나가떨어진 사람은 일시관중 장건우다.
그는 화살을 쏘아내자마자 강력한 철시에 몸이 관통 당했다. 너무도 빠르게 다가온 죽음, 그러나 그는 죽음도 알지 못했다. 철시가 머리를 으깨버렸기 때문이다.
퍼억! 툭!
머리는 철시와 함께 뒤쪽으로 날아가고, 머리 잃은 시신만 띳집에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