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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32화 (3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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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32화]

第五章 개방과의 인연 (6)

눈을 뜨니 별이 총총하다.

달의 위치를 보니 축시(丑時)를 넘어선 것 같다.

초저녁 술 한 병에 나가떨어진 것은 기억나는데, 자신이 어떻게 해서 모닥불 가에 누워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정신을 완전히 잃었던 것 같다.

천일취…… 독한 술이다.

한낱 술이 자신을 무려 세 시진 동안이나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만약 그 시간에 누가 급습을 해왔다면 어쩔 뻔했나.

사실 적은 코앞에 있었다.

취화선개는 적암도에 호의적이지 않다.

자신이 적암도에서 왔으며, 부도주의 적이라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제압할 수 있었다.

야복이 최대한 저항하겠지만 취화선개의 적수는 못된다.

취화선개가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먹었다면 야복도 잡히고, 자신도 잡혔을 게다.

좋은 경험 했다.

세상에는 주의해야 할 것이 많다.

술도 주의해야 하고, 여자도 조심해야 한다. 많은 영웅호걸들이 미인계(美人計)에 쓰러져 간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빈세백의 저술에서 이미 접한 바 있다.

술 조심해라.

여러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굳이 빈세백에게까지 의존할 필요도 없다. 성년이 되면 부모에게서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아마도 이 술 조심하라는 말일 게다.

알고 있으면서도 당했다.

세상에 천일취 같은 술이 있는 줄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실책이지만, 그래도 조심하지 않은 것은 자신 잘못이다. 그러다가 생포되거나 죽는다면 누굴 원망할 수도 없다.

초봄의 한기가 슬며시 스며든다.

그는 몸을 돌려 모닥불로 향했다.

마록타가 새우등을 하고 누워있다.

가뜩이나 등이 곱은 사람이 두 다리까지 가슴으로 끌어올려서 꼭 굼벵이가 몸을 둘둘 말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한동안 모닥불과 마록타만 쳐다봤다.

머릿속에 무엇인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 순간만큼은 아무 것도 허고 싶지 않았다.

부도주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구파일방(九派一幫), 오대세가(五大勢家)…… 심신유곡에 은거한 기인이사까지 모두 나와서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막강한 세력이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취화선개는 이길 수 있다. 이길 자신이 있다. 그와 손속을 겨뤄봤기 때문에 개방 장로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저울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으로 고작이다.

개방에는 취화선개 같은 사람이 여덟 명이나 더 있다. 용두방주(龍頭幫主)는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개방만 이 정도다.

소림사나 무당파에도 고수들이 득실거린다.

이 모든 사람들을 단신으로 꺾을 수는 없다. 그것은 기적이 열 번쯤 일어나도 안 된다.

그런데 부도주는 그러고 있다.

물론 부도주 혼자서 싸우는 것은 아니다. 수하들을 적절하게 잘 쓰고 있다.

그것이 그의 힘이다.

부도주의 무공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모보를 비롯한 사자들도 그의 힘이다. 그가 장악한 모든 조직이 그의 팔이며, 다리이며, 생각이다.

이 모든 게 총체적으로 합쳐져서 련주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부도주를 상대하는 게 아니다. 련주와 싸워야 한다. 도련이라는 단체를 뚫고 들어가서 섬의 주인인 도주를 죽여야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이것이다.

불가능……

취화선개가 입을 열기 전부터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마록타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순간부터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기분.

마음은 심하게 흔들렸고, 그래서 심등도 제 빛을 모두 토해내지 못했다.

천일취를 단숨에 들이켠 것도 그런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

“깼냐?”

마록타가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말해왔다.

“……”

야뇌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지금은 싫었다. 그냥 이대로 있고 싶다.

“답답해?”

“……”

“천일취가 남았는데…… 가져올까?”

“아니.”

“그럼 자자. 아직 한 밤중이야.”

마록타가 몸을 돌려 돌아누웠다.

그는 지금부터 잠을 잘 것이다. 자신을 지키느라 뜬 눈으로 밤을 새울 요량이었지만…… 주인이 깼고, 더 자지 않을 것 같으니까 편히 잠들 생각인 게다.

빈세백에 의하면…… 염왕을 따르던 야복은 신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결코 천하지 않았다. 몸을 보면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지만 실은 초강고수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주 강한 무인이었다.

동영의 무공을 섭렵했다. 천축(天竺)의 무공도 아는 것 같다. 남만(南蠻)의 독술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그렇게 배운 모든 무공을 오직 염왕을 위해서만 사용했다. 염왕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그가 단신으로 무림을 떠돌았다면 어땠을까? 오제처럼 백전백승(百戰百勝)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고절하지 못하다고 하자. 그래도 명성을 날리는 것쯤은 여반장(如反掌)이다.

그만한 고수가 오직 염왕만 쳐다봤다.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

마록타는 어떤가? 그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살펴보면 초대 야복이나 마록타나 다를 바 없다.

마록타는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일까?

자신이 염왕의 후인이라서? 자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미간의 금빛 광채, 일심불광 때문에?

설혹 자신이 염왕의 진전을 모두 이어받았다고 치자. 또 마록타가 야복의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하자. 그렇다고 마록타가 꼭 자신의 시종이 되란 법은 없다.

사대가 변했다. 삼백 년이 흘렀다.

자신이 염왕의 핏줄을 물려받았고, 마록타가 야복의 혈족이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 그런 일을 강요할 수도 없고, 통제할 만한 방법도 없다.

어머니의 은혜 때문에?

아무래도 그 영향이 큰 것 같은데……

‘아무 생각도…… 아무 생각도 없이…… 오늘 하룻밤만이라도……’

그는 눈을 감았다.

촤아아아……!

진기가 일어난다. 심등이 밝혀진다.

그 순간, 그는 진기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른 무인들 같으면 의념을 더욱 강화할 테지만, 그는 정반대로 놓아버렸다. 진기를 버리고 심등만 쳐다봤다.

육신이 사라진다.

생각도 사라지고, 감정도 사라진다.

오직 밝게 빛나는 빛무리만 쳐다본다.

***

취화선개가 날려 보낸 전서는 두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그들 손에 쥐어졌다.

“도귀의 무공을 쓰는 놈?”

“그렇다면 적암도에서 왔다는 말인데…… 도귀들의 무공을 알아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일단 좋게 협조를 부탁해 보고, 안 되면 무력이라도 사용해야죠.”

“취화선개는 무력이 통하지 않을 놈이라고 본 것 같은데.”

“세상에 몽둥이를 이겨내는 인간이 어디 있습디까? 내가 처리하지요. 내 손으로 잡고, 내가 알아내면…… 향후, 이 일로 인해서 무림의 지탄을 받을 일이 생기면 기꺼이 감수하리다.”

“진인(眞人)의 말뜻을 어찌 모르겠소. 하지만…… 휴우!”

“우린 놈들의 무공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어요. 물론 조금씩 알아가고는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나가는 동도가 있어요. 그들을 생각하셔야지요. 인의(仁義)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진인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인의를 버려야만 할 때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겝니까?”

“허어!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지만 이미 결론이 정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적암도의 도귀들은 강하다. 그리고 독하다. 그들은 절대로 생포되지 않는다. 기껏 함정을 파서 생포할 기회를 만들어도 산 사람을 잡아본 적이 없다.

수십 명이 죽고 한 구의 시신을 얻는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

놈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하다. 젊은 놈, 늙은이 가릴 것 없이 모두 일파의 장로쯤은 가볍게 상대한다.

오제의 무공이 그토록 가공했던가?

사람들은 그제야 오제에 대한 기록을 다시 살펴봤다.

백전백승!

그들 말고도 백전을 치른 사람은 많다. 전승(全勝)을 거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절대자는 아니다. 초강고수이기는 하지만 절대 무인으로는 부족한 감이 많다.

지금까지 오제는 그 정도의 무인들로 생각해 왔다.

오제의 기록을 다시 살펴보면서…… 무림은 깜짝 놀랐다.

오제가 싸웠던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자들이 아니었다. 아무하고나 검을 맞대지도 않았다.

일파의 장문인이라는 말은 설명이 안 된다.

오제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강한 자,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자, 절대자라고 인정받고 있는 자……

그들은 최강들하고만 싸웠다.

그들의 백승은 여타의 무인들이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명승부라면서 말하는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무림은 오제의 무공을 다시 인식했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무공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적이었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중원의 무공도 오제의 무공에 못지 않다. 아니, 이미 수백 명이 수천 번에 걸쳐서 입증한 무공이다. 그런 무공을 논한다는 자체가 모욕이다.

다만…… 언젠가는 있을 승리를 조금 앞당기고 싶을 뿐이다.

오제의 무공을 세밀하게 파악한다면 지금이라도 가능하지 않겠나. 그래서 도귀를 생포하려고 했던 것이고.

그런데 그런 일을 해줄 수 있는 자가 제 발로 찾아왔다.

그 자를 잡아야 한다.

설득이 통하면 좋지만, 통하지 않으면…… 무당파(武當派)의 현수진인(玄水眞人) 말대로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무력을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현수진인이나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이나 내심으로는 결국 그런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놈이 있는 곳은 절강(絶江) 서안(瑞安)이네. 놈들의 심장부를 뚫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데…… 길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현수진인이 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도귀의 눈을 피해서 최남단 절강 서안으로 간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개방은 그 일을 해냈다. 바로 취화선개가 산 증인이다. 그가 도귀의 칼날을 피해서 절강 서안까지 내려갔다.

개방이 길 안내만 해준다면 서안까지 가는 건 문제가 없다. 또 개방도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걸인, 개방의 장로인 단황신개(蛋黃神丐)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한쪽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젊은 서생이 입을 열었다.

“사냥이란 말입니다…… 후후! 호랑이를 잡으려고 산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올가미를 매놓은 곳까지 끌어오는 방법도 있는 것이지요. 그 자의 무공은 취화선개께서 압도하지 못할 만큼 강합니다. 그런 자를 어찌 적지에서 요리하시려고요.”

“그럼 자네 의견은?”

“제가 가지요. 제가 가서 이곳으로 데려오겠습니다. 후후후후! 이곳까지만 오면 이야기는 끝난 거지요.”

젊은 서생이 활짝 웃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났다.

오뚝한 콧날은 조각도로 깍은 것 같고, 물기를 담은 눈동자는 맑고 영롱하게 반짝거린다.

모용세가(慕容世家)의 일점혈육이자 무남독녀인 모용아(慕容娥)다.

그녀는 여인의 몸이지만 지략이 탁월하여 군사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다. 남장을 좋아하고, 사내로 대해주기를 좋아해서 무림 명숙들도 그리 해주고 있다.

“자네가 직접?”

“길 안내는 부탁드려야지요. 해주시겠죠?”

모용아가 단황신개를 쳐다보면서 예의 박꽃 같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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