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도검무안 27화]
第四章 중원(中原)으로 (7)
거지들의 일과는 무료하다.
거의 대부분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누워서 빈둥거린다. 잠도 자고, 이도 잡고…… 동냥을 얻어오는 자들도 있지만 빈 몸으로 왔다갔다하는 자들이 더 많다.
야뇌슬은 눈을 감고 잠들었다.
긴 시간을 보내는 데는 잠드는 것이 최고다.
아니다. 그는 잠들지 않았다.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또렷하게 보고 있다.
자신이 보는 게 아니다. 그는 눈을 감고 있다. 아무 것도 보는 게 없다. 하지만 장님이 세상을 보듯이 육감이 세상을 보고 느낌을 말해준다.
심등이 켜졌다.
심등을 지켜보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심등을 지켜보는 동안에는 잠도 오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다.
전혀 피곤하지 않다.
그는 해가 질 때까지 근 두 시진 동안을 꼼짝도 하지 않고 눈만 감고 있었다.
‘상쾌해. 개운해.’
고통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다.
몸과 마음을 잊으면 고통, 고난, 불행이 씻은 듯이 가신다. 권태, 외로움, 원한 같은 감정들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등을 쳐다보면 그런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야뇌슬은 눈을 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아침에는 중원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해돋이를 봤고, 저녁에는 아름다운 일몰을 본다.
“괜찮군.”
야뇌슬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흐흐흐! 뭐가 괜찮다는 게냐!”
예닐곱 장 떨어진 곳에서 쇠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뇌슬은 그의 등장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몰만 쳐다봤다.
“해는 똑 같은데…… 산이 있구나. 땅도 있고…… 산이 검어지는군. 그것 참…… 같은 일몰이나 다른 일몰. 어느 쪽이 좋다고 할 수는 없고…… 다 좋군.”
그가 황홀한 듯 눈을 좁히며 감탄했다.
“누구냣!”
“어떤 놈이 감히! 엇! 장로님!”
“자, 장로님께서 직접! 여,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장로님!”
소란스러움을 감지한 개방도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들은 꾀죄죄한 노인을 보자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기에 급급했다. 반면에 야뇌슬을 보고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랬다.
“엇! 저놈이 어떻게?”
“클클! 아는 놈이더냐?”
“오늘 아침에 아이들 셋이 현현비격술에 당했습니다요. 그런데 그놈들이 죽자마자 저놈하고 해골뼉다귀 같이 생긴 놈이 나타나서는 이것저것 살피는 겁니다요.”
“너는 가만히 있었고?”
“예? 아…… 저…… 그때는 도귀(島鬼) 녀석들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럼 저놈은? 저놈은 도귀 녀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서 죽은 네 수하들을 살폈잖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즉시 나가려고 했는데……”
걸개 우두머리는 꾀죄죄한 노인에게 쩔쩔 맸다.
“바보 같은 놈. 꼴 보기 싫다. 저리 꺼져!”
“네. 네.”
걸개 우두머리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사이, 개방도들은 야뇌슬을 빙 둘러 포위했다.
야뇌슬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가 정작 신경 쓰는 사람은 새로 나타난 노인이다.
노인은 중원 무학이 결코 허접하지 않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우쳐 주었다.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처음 나타날 때부터 지금까지 몸의 중심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내부에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느 한 부분에서 절정을 맛 본 고수다.
야뇌슬은 그의 존재를 이십여 장쯤 접근했을 때 눈치 챘다.
심등에 그가 비쳤다.
무풍비류에 버금갈 정도로 은밀한 신법을 구사하면서 조용히 접근하는 자.
야뇌슬은 그의 무공을 노로곤과 버금가는 정도라고 판단했다.
그는 십여 장쯤 다가온 후에야 자신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가 깜짝 놀랐다. 그의 경기(驚氣)까지 읽었다.
그의 신법이 더욱 은밀해졌다.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고 무진 애를 쓰는 듯했다. 그러다가 예닐곱 장 정도 접근 했을 때, 자신이 발각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그의 은밀한 신법이 멈췄다. 그리고 강력한 예기를 풍겨냈다.
눈을 떠라. 어떤 놈이냐!
그가 도전해왔다.
야뇌슬이 심등에서 깨어나 노을을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장로…… 개방의 장로…… 그렇다면 칠결(七結) 매듭인가?
야뇌슬은 노을에서 눈길을 거뒀다. 그리고 꾀죄죄한 노인의 허리춤을 훑었다.
정말 칠결, 일곱 매듭이다.
책에서 개방에 대해 읽었을 때는 장난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로 허리매듭으로 신분을 구분한다.
하기는 문도가 십만이나 되니 이런 장치가 없으며 위아래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야뇌슬은 생각난 김에 걸개들의 우두머리도 살폈다.
그의 허리 매듭은 세 개다. 삼결(三結)…… 삼결이 뭐더라? 분타주(分舵主)라고 들었는데…… 그럼 이곳이 분타였나? 그렇군. 분타였군. 찾아오긴 잘 찾아왔군.
나머지 개방도들은 매듭이 한 개 내지 두 개다. 매듭이 전혀 없는 자도 있다.
그는 이제야 개방도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분별 방법을 배웠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에 눈길이 간다.
이들은 손에 몽둥이를 들었다. 타구봉(打狗棒)이다.
‘정말로…… 개 잡는 몽둥이를 병기로 쓰는 사람들이 있었군. 설마 했는데.’
야뇌슬은 꾀죄죄한 노인에게 말했다.
“적암도 무인들에 대해서 낱낱이 알고 싶습니다.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第五章 개방과의 인연 (1)
꾀죄죄한 몰골의 노인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야뇌슬을 쳐다봤다.
“끌끌끌. 네 놈은 존장에 대한 예의도 없군.”
“……”
“끌끌! 요거 요놈 아주 수상한 놈이네. 그러니까 아침에 이놈 애들이 도귀들에게 죽었는데, 그 자리에 네 놈이 나타났다 이거지. 그리고 이놈들이 이곳으로 왔는데, 네 놈이 뒤따라 왔고. 병신…… 미행도 눈치 채지 못했더냐?”
마지막 말은 분타주에게 말했다.
“저, 저, 저……”
분타주는 쩔쩔 맸다.
분타로 돌아오면서 수십 번에 걸쳐서 확인했다. 그런데도 미행을 당했다니.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찌하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제 네 놈이 말해봐라. 아침에 그 자리에는 왜 나갔는고?”
“우연히 봤습니다.”
“우연히?”
“믿으셔야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내 마음이고…… 그럼 이 작자는 왜 미행했는고?”
“적암도 무인들이 중원에 들어왔습니다.”
“왔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들이 무얼 하고 있고,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야뇌슬은 최대한 진지하게 말했다. 또 사실이기도 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지금 이 말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런데 그 말에 꾀죄죄한 노인은 피식 웃었다.
노인뿐만이 아니다. 다른 개방도들의 얼굴에도 비웃음이 가득 떠올랐다.
“그러니까 네놈 말은 도귀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작자를 미행했다 이거지? 그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너, 언제 왔냐?”
분타주에게 한 말이다.
“점심 조금 지나서 왔습니다.”
노인은 분타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야뇌슬을 쳐다봤다. 뭐 할 말이 없느냐는 투다.
야뇌슬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가 노인이고, 개방 장로라는 신분이어서 최대한 존중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제 슬슬 지루해진다. 금쪽같은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도주에 대해서 아는 대로만 말해주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야뇌슬이 말이 없자, 노인이 말했다.
“네놈은 정오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건데…… 이놈아, 솔직히 말해봐. 네놈 무공으로 이놈들쯤 건드리는 건 일도 아닐 것이고…… 네 꿍꿍이가 뭐냐? 뭣 땜에 이곳에 숨어있었던 거야?”
이야기의 방향이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
노인은 자신을 추궁하고 있다. 아군 쪽이 아니라 적군 쪽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야뇌슬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솔직히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적암도 무인들에 대해서 물으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우선 제가 누군지 밝혀야 할 테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많을 것이고…… 많이 귀찮죠. 그래서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저 자를 납치할 생각이었습니다. 그게 더 쉽고 빠를 것 같아서요.”
야뇌슬이 분타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뭐, 뭐! 이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분타주가 발끈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잖아도 열불이 치솟는 판에 자신을 마치 주머니 속에 든 물건처럼 취급하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장로는 말리지 않았다. 아니, 등을 떠밀기까지 했다.
“저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애송이가 아니다. 노부도 상대하기 겁날 정도로 강한 놈이야.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게다. 저 놈 병기 봤지? 검이다. 자칫하면 일 초에 뎅겅 모가지가 날아가.”
이제는 싸우기 싫어도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