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도검무안 16화]
第三章 죽음이 시작되고 (3)
중원제일의 신산자, 빈세백의 귀계는 사람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이 처음이자 끝이다.
사람을 알면 부릴 수 있게 된다. 사람을 부릴 수 있게 되면 요소요소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큰 계획은 굳이 힘들여서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
수백 권에 걸쳐서 많은 말을 했지만 결국은 그 말이다.
첫째, 사람을 파악하라!
둘째는 필요 없다. 첫째에서 모든 게 끝난다.
야뇌슬은 빈세백의 귀계를 처음으로 활용해 봤다.
노모보까지 여덟 명의 성격, 특성, 장단점을 깊이 생각했고, 그에 맞춰서 행동계획을 수립했다.
서적을 불태우기 시작해서 철시를 맞고 벼랑 밑으로 떨어지기까지, 그리고 마록타에게 구함을 받기까지…… 그 사에 벌어졌던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머릿속에서 그려놓은 계획과 딱 맞아떨어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계획이다.
이 계획은…… 마록타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마록타란 사람까지도 읽었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지금쯤 노모보는 밀실을 뒤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곡문권과 왕린의 협공을 뚫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합격은 완벽해서 두어 수만 공방을 주고받으면 그때는 빠져나가도 싶어도 나가지 못한다.
처음부터 물러서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무공은 아니다. 무공으로는 절대로 두 사람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경악성!
그렇다. 그들을 놀래켜야 한다.
무엇이 그들을 놀라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자신의 능력 중에서……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여양생술의 비기가 떠올랐다.
여여양생술에는 적엽비화(摘葉飛花)에 대한 글이 있다.
나뭇잎 대신 나뭇조각으로 대체해서 말했지만, 그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아! 적엽비화를 말하고 있구나!’하고 깨달을 정도로 흡사했다.
그 수법은 적암도 무인들이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그것을 써서 물러서게 만든다.
곡문권과 왕린은 낯선 무공을 접하고 물러선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무슨 무공에 당한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있다.
그 시간이면 노염백과 장타홀이 뛰쳐나올 게다.
장타홀…… 그가 있으니 노모보의 일곱 사자는 서둘지 않는다.
여기까지!
그들은 더 읽을 필요가 없다. 그 다음은 마록타에게 맡기면 된다. 유영에 능숙한 사람이니, 그리고 바다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니 바다에 빠지기만 하면 어련히 알아서 잘 구할 게다.
그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진 지금, 그들을 읽어본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곱 명의 사자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적암도를 뒤지고 있을 게다. 아니, 바다를 뒤지고 있을 것이다.
한 달 전, 적사해의 급류를 뒤지듯이 적암도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노모보는 밀실에 있다.
밀실을 가득 메웠던 검은 연기가 지금쯤에야 빠졌을 게다.
물론 노모보의 성격으로는 지금까지 참고 있지도 못한다. 자신이 바다에 빠질 때, 벌써 밀실로 들어서고 있었으리라.
그는 자신의 낯선 무공을 접하고 염왕을 떠올릴 게다.
염왕의 무공만이 오제와 겨룰 수 있다.
중원이라면 다른 무공도 얼마든지 있지만 적암도에는 염왕과 오제 밖에 없다.
자신이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무공을 펼쳤다.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당장 염왕을 떠올릴 것이고, 밀실로 뛰어 들어간다.
이 생각이 틀렸다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져도 좋다.
그가 건질 것은 없다.
서적은 모두 불에 타버렸을 것이다. 남아있는 집기들도 쓸 만한 것이 없다.
거기서 염왕의 단서를 찾을 수는 없다.
염왕 자체가 없는데, 무슨 놈의 염왕을 찾는단 말인가.
여여양생술? 노모보 같은 고수가 한낱 양생술 따위에 흥미를 가질 리 없다.
노모보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한다.
“후후후!”
야뇌슬은 쓰게 웃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상황이건만, 그래도 웃었다.
마지막 웃음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도주와 노모보를 척결하기 전에는 두 번 다시 웃지 않으리라.
지금까지 배운 모든 무공과 앞으로 수련할 무공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략을 그들에게 쏟아 부을 것이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저들과 자신!
그는 상처에 팔엽묘안초의 즙액을 발랐다.
고통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다. 그런 시간이 있으면 아직 깨닫지 못한 무공을 탐구해야 한다.
자신보다 훨씬 앞서 있는 저들을 능가해야 한다.
- 오제 두 명이면 필패, 세 명이면 동수
칠성출동은 의미가 없다.
칠성에 이르든 팔성에 이르든…… 무공 성취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싸움에 이겨야 한다.
자신이 육 성 밖에 깨우치지 못했어도 저들을 죽일 수 있다면 출동할 수 있다. 하지만 십성을 깨우쳤다고 해도 싸울 수 없는 상태라면 차라리 주저앉는 게 낫다.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는 무공을 발전시키기 위해 수련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부도주 노갹충을 죽이기 위해서 수련한다. 아니, 수련이라는 말도 사치다. 노갹충을 죽일 때까지 자신을 한 시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고달프게 싸운다.
최소한 그 정도는 이뤄야 나갈 수 있다.
푸우!
밖에 나갔던 마록타가 긴 숨을 뿜어내며 나타났다.
“왜 벌써?”
“됐어.”
“놈들, 너 찾느라고 난리다. 그래서 나도 위는 올라가보지도 못했다. 당분간 이놈으로 때워야 할 거야.”
마록타가 물고기 몇 마리를 흔들었다.
구워 먹거나 튀겨 먹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비늘만 벗겨내도 생으로 먹어야 한다. 그래도 물고기니 얼마나 다행인가. 고기 같았으면 정말 고역이었을 게다.
야뇌슬은 마록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시간까지도 아까웠다.
그는 눈을 감았고, 미간에 은은한 빛이 어렸다.
마록타의 얼굴에 언제나 웃음을 띄게 만드는 일심불광이다.
***
밀실은 새카맣게 타서 재가 되었다.
그걸 모르고 들어선 게 아니다. 알면서도 들어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유혹이 강했다.
염왕, 잊힌 이름!
언제부터인가 적암도 사람들에게 염왕이라는 존재는 완전히 잊혀 버렸다. 오제도 일 년에 한두 번쯤 거론할 뿐인데, 무공도 전승되지 않는 염왕이야 말해서 무엇 하나.
적암도 사람들은 무공만 말한다.
누가 어떤 무공을 남겼는지, 그들이 왜 적암도에 정착했는지는 관심사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노모보는 뜨거운 온기가 남아있는 잿더미를 움켜쥐었다.
검은 재가 와스스 부서져 나간다.
여기에는 어떤 글귀가 적혀있었을까? 염왕의 무공은 어떤 종류일까?
그는 주의 깊게 곳곳을 살폈다.
밀실이 무공을 수련하는 곳이라면 서고(書庫)나 벽 등에 타격 흔적이 남아있으리라.
그는 그것이 보고 싶었다.
흔적을 보면 위력이 짐작된다. 흔적의 결을 살피면 초식도 그려진다. 야뇌슬의 현재 내공을 감안해서 살펴보면 최상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그는 밀실을 뒤지다가 그을음에 뒤덮인 벽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이거야!’
벽에 함몰된 부분이 보였다.
다른 벽은 매끈한데, 오직 한 부분…… 자신이 보고 있는 곳만 움푹 파였다.
야뇌슬은 병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가 사용한 병기는 노염백의 화륜이다. 검이나 칼, 창……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면서, 어느 것 하나 쓰지 않았다. 만약 그가 그런 병기를 취했다면 빠져나갈 수도 없었을 게다.
하수가 상수에게 같은 병기로 싸우자고 덤비면 죽는다. 야뇌슬의 경우에는 삶을 구하기는커녕 퇴로까지 막힌다.
그가 쓸 수 있는 병기는 활과 화륜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매우 영리한 선택을 했다.
이곳에 들어올 때도 병기는 쥐고 있지 않았다. 일신에 쇠붙이라고는 단검 한 자루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벽을 함몰 시켰다.
권력(拳力)이 아니다. 권력은 벽을 균열시킨다. 각법(脚法)도 아니다. 찍어 차는 각법은 함몰이 아니라 파괴를 일으킨다.
‘기(氣)…… 형(型)…… 이었더냐!’
노모보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와 일곱 명의 사자들이 적멸 상태에서 들은 것이 바로 이 흔적을 만들면서 낸 소리였다.
벽이 울리는 소리!
기형은 일명 무형검이라고도 부른다. 또는 마음의 검이라는 뜻에서 심검(心劍)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를 응축시켜서 터트린다.
야뇌슬은 그 정도의 무공을 전개할 수 있다.
기형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중원 무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공부이지만, 도민 전체가 오제의 제자나 다름없는 적암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기형의 정도다.
벽이 함몰되었다. 함몰된 깊이가 전력으로 주먹을 뻗어낸 것과 비슷하다.
그는 함몰된 부위에서 또 다른 특징도 찾아냈다.
벽은 둥그렇게 함몰되지 않았다. 둥근 형태이기는 하지만 한 가운데가 조금 더 깊이, 마치 창으로 찔린 듯한 모습으로 찍혀있다.
어디서 많이 본 잔흔이지 않은가.
그렇다. 섬력쇄심을 썼을 때, 이런 검흔이 생긴다.
섬력쇄심에는 숨겨진 검이 있다. 검 끝의 검, 검에서 파생된 무형의 기형에 또 한 번 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