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도검무안 11화]
第二章 모두 떠나버린 섬 (4)
후회도 치밀고, 죄책감도 들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누이가 한시라도 빨리 복수해 달라고 절규하는 것 같았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좋은데 갈 생각도 못하고 구천만 맴돌고 있을 것 같았다.
‘이십삼 무동과 이십사 무동은 최상(最上). 오의(奧義)의 무공이다. 잡념을 가지면 한 치도 못 나간다. 무심으로…… 집중으로……’
그는 집중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자 불이 켜졌다. 가슴에서 환한 불이 피어나더니, 미간으로 올라왔다.
두 눈이 밝은 빛을 본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더없이 평화로워진다.
무서에 적힌 글자들이 각인되듯이 뇌리에 박히기 시작했다.
이십삼, 이십사 무동의 상승무공을 단시일에 터득할 방법은 없다.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심등도 진기를 배가시키지는 못한다. 심등이 새로운 주천법(周天法)을 찾아냈다고 하지만, 조금 더 효율적인 길을 찾았을 뿐이다.
육체 밖으로 표출되는 위력 면에서 차이는 미미하다.
향후, 발전가능성을 논한다면 고유의 내공심법보다 훨씬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로써는 비슷한 정도다. 옛 그릇에 새로운 물을 담은 것과 마찬가지이니 오히려 이질감이 생기지 않은 점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대체로 이런 경우, 옛 무공의 위력은 절반 이하로 급감한다.
소림사의 내공심법으로 화산파(華山派)의 매화검법(梅花劍法)을 펼친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무공에는 최적의 내공심법이 있다.
초식만 안다고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위력을 떨칠 수 있게끔 최적의 내공심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오제의 무공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내공심법으로 오제의 무공을 모두 펼칠 수는 없다.
혈우마검은 신뢰신공을 바탕으로 한다. 천왕구도 역시 구중미천공(九重彌天功)이라는 독문심법이 있다. 구중미천공으로 펼치는 신뢰삼검과 신뢰신공으로 펼치는 신뢰삼검은 위력 면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야뇌슬의 심등은 그런 측면에서 살펴볼 때, 무림사를 새로 고쳐 쓸 만큼 획기적이다.
심등을 밝히면, 모든 무공을 펼칠 수 있다.
혈우마검의 신뢰삼검, 현현화륜의 현현비격술, 일시탈백의 흑조탄궁술까지 모두 전개할 수 있다.
위력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한 가지 내공심법으로 오제의 무공을 모두 펼칠 수 있으니, 무림사를 다시 쓰고도 남을 대심공이다.
이 보옥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그에게 달려있다.
츠으읏!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가 순식간에 상단전(上丹田)에 집약된다. 그리고 또 찰나 만에 사지백해로 퍼져나간다.
츠읍!
생각을 일으키자, 오른손에 진기가 응축된다.
‘섬력쇄심(閃力碎心)!’
꾸르르르릉!
손바닥에서 은은하게 우렛소리가 일어난다.
탁발천에게 혈우마검이란 별호를 안겨준 신뢰삼검 제일초다.
‘발(發)!’
쒜엑!
손에 검이 들려 있지 않다. 아무 것도 쥐지 않고, 단지 검이 있다고 생각하고, 텅 빈 허공을 움켜잡았다. 자신만의 무형검(無形劍)으로 섬력쇄심의 검초를 터트렸다. 순간,
꽈르르릉!
강기(罡氣)를 두들겨 맞은 석벽이 미미한 진동을 일으켰다.
‘굉장한…… 심법이다!’
야뇌슬은 비로소 심등을 인정했다.
심등을 비무나 결전에 사용해도 될 것 같다는 안심이다.
심등은 정말 엄청나다.
심등을 밝힌 후에 신뢰신공을 일으키면 강물이 바다로 모여들듯이 환한 빛무리 속에 스르륵 녹아든다.
구중미천공도 마찬가지다.
패도적인 면에서 신뢰신공과 쌍벽을 이루는 역공(力功)이지만 심등의 빛무리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진기가 신뢰신공이나 구중미천공의 운기법을 무시해 버린다. 의념으로 운기를 이끌어도, 오로지 빛만 보고 달려간다. 빛이 이끄는 대로 끌려간다.
심등도 자신이 일으킨 것이요, 의념도 자신이 일으킨 것이다.
심등은 본성(本性)에 해당하는 것이고, 의념은 의식(意識)에 연관된다.
조금 더 깊은 부분에서 일으킨 심등이 의식적으로 일으킨 의념을 빨아 당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점을 알면서도 여타의 신공들이 심공에 흡수되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야뇌슬은 벽을 뒤흔들었던 손을 내려다봤다
생각 같아서는 신뢰삼검을 마저 펼쳐 보이고 싶다. 하지만 제이초 전광천심을 펼치기 위해서는 높은 하늘이 필요하다. 신형을 허공으로 높이 띄워 올려야 한다.
그래서 혈우마검의 검공은 작은 석실에서 수련하지 않는다. 대자연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들이마시며 수련한다.
‘됐어. 이 정도만 해도.’
꾸르르르릉!
미미한 진동이 일어났다.
노모보는 눈을 번쩍 떴다.
일곱 명의 사자들도 동시에 눈을 떴다.
“흐흐흐! 십이좌실!”
“정확히 팔좌실!”
“그곳에 쥐새끼가? 미치겠네. 거긴 벌써 수십 번도 더 뒤진 곳이잖아. 어떻게 거기 있을 수 있지?”
그들은 서둘지 않았다.
때에 따라서는 급히 잡아채야할 먹잇감도 있지만, 느긋하게 즐기면서 사냥해도 좋을 먹잇감도 있다.
마록타는 후자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만…… 놈도 숨는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지. 십이좌실 어느 구석에서 어떻게 숨어있는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
“땅을 파고 숨어 있어도 청음공은 피하지 못해. 그럼 그 이상이라는 건데. 하하하!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어찌된 영문인지 가서 보자고.”
그들은 병기를 들고 일어섰다.
“내기는 아직 유효한 거다. 아마도 우리 일곱이 거의 동시에 살수를 쓸 것 같은데, 제일 정확히 사혈을 치는 놈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 어때?”
“흐흐흐! 가장 정확한 죽음이라 이거지. 이것도 재미있겠는데?”
목을 쳐낸다? 확실한 죽음이다. 심장을 찌른다. 확실한 죽음이다. 허리를 반으로 가른다? 확실한 죽음이다.
육체적으로 큰 손상을 일으키지 않는 죽음도 있다.
인체의 십이사혈(十二死穴)을 노리면 침 한 대로도 죽일 수 있다.
모두가 확실한 죽음이다.
누가 어떤 곳을 공격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야뇌슬은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밀실을 둘러봤다.
이곳에 있는 경전들은 모두 머릿속에 들어있다.
확실히 무공보다는 글이 좋다. 무서는 급하게 익힐 생각이 안 드는데, 빈세백이 쓴 글들은 손에 잡았다 하면 놓을 수가 없다.
이곳에서 밤을 꼬박 새운 날도 많다.
밤에 잠을 못자서 부스스한 눈으로 아침 수련에 참가한 적도 많다.
그가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무동 두 곳의 비기를 마저 익히기 위해서다. 아니, 외우기 위해서다. 우선은 머릿속에 담아두고, 안전한 곳에 가서 차분히 수련할 생각이다.
야뇌슬은 삼백 년이나 지난 고서들을 쓰다듬었다.
무동의 무서는 소의 가죽에 적어놓았는데도 너덜너덜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새까맣게 때가 탔다. 하지만 이곳의 경전들은 삼백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그만큼 들춰본 사람이 없었다.
일맥비전(一脈秘傳)!
경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오의는 사부에게서 일인제자에게 구전(口傳)으로 전수되었다.
빈세백의 학문은 하늘을 뒤집을 정도로 무섭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염왕오제를 이간질해서 서로 상잔(相殘)케 할 수도 있었다. 오제의 소원이 성취되게끔 그들을 도와줄 수도 있었다. 외딴 섬, 절해고도에 둥지를 틀었지만 이곳에서만 나는 특산물을 이용해서 큰 장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야뇌슬은 그가 침묵했던 이유를 안다.
어머니로부터 삼백년 전, 그가 감수해야 했던 아픔을 들었기 때문에 잘 안다.
이곳의 학문은 사장(死藏)되어야 한다.
오제의 무공을 수련한 사람들이 이곳의 학문까지 섭렵하면 그때는 정말 중원에 피바람이 분다.
그만큼 밀실의 학문은 무섭고 두렵다.
빈세백은 자신의 학문을 남겨놓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제로부터 경계심을 받지 않으려면 자신이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샅샅이 토해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빈세백은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진정한 오의를 숨겼다. 오직 구술로만 대를 이어가게끔 진정한 현자를 골라서 전수했다.
야뇌슬의 사부는 어머니, 송연부인이다.
빈세백의 뜻을 안다. 어머니의 뜻을 안다.
두 분의 뜻을 이어가자면 밀실을 불태우고 떠나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삼백 년의 정화를 불살라버릴 수는 없다.
남겨 놓고 떠난다.
출입 방법을 모르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어머니의 기관진학이 밀집된 곳이라서 통풍이며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대로 놔두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버틸 수 있을 게다.
어떤 자가 있어서 이곳에 들어서면 엄청난 기연(奇緣)을 얻으리라.
그가 착한 자이면 세상을 구할 것이고, 그가 악인이면 세상이 피로 물들 것이다. 간사한 간계, 뛰어난 머리로 세상을 뒤흔들게다.
그것은 세상 몫이다. 세상이 감당해야 한다. 같은 물로 사슴이 먹으면 피가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된다.
모든 건 인연에 따라서 처리되리라.
‘후후! 잘 있어. 이놈들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제 자리에 놓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