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검무안-8화 (8/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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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8화]

第二章 모두 떠나버린 섬 (1)

폭염이 내리쬔다.

잔혹한 살겁이 일어났던 해변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맑은 파도만 친다.

파도는 해변에 물든 핏물을 말끔히 씻어냈다.

세상을 쓸어버릴 듯 몰아치는 폭우는 자갈 사이에 파묻힌 원한까지 빡빡 쓸어냈다.

그리고 또 뜨거운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오늘도 또 공치는 건가.”

“이제 그만 떠나자고 해보지?”

“말 잘했다. 그 소리 네가 한 번 해봐라.”

“내가 그렇게 미웠냐?”

“무슨 소리야?”

“맞아죽는 꼴 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나보고 말하라고 해?”

“그럼 나는?”

“하하하! 넌 여벌로 목숨 몇 개 가지고 다니잖아. 하하!”

그들은 그늘에 누워서 한가로운 한 때를 보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들의 마음에서 경계심을 말끔히 지워내기에 충분했다.

적암도고 무인도고 사람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보름이 채 못 되서 유속이 느려지는 곳을 뒤졌다. 떠밀려온 시신이 둥실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시신은 떠오르지 않았다.

야뇌슬의 시신만 떠오르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 죽은 세 명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다.

적사해의 급류가 그들을 집어삼켰다.

그들은 벌써 고기밥이 되었다. 피를 흘리고 있었으니 상어에게 잡혀 먹혔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렇다면 뼈 한 조각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섬은 더 이상 뒤질 곳이 없다.

태어나고 자란 섬이지 않나.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섬이다.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다.

물살에 떠밀려 올만한 곳은 모두 뒤졌다. 살아서 숨어들만한 곳도 샅샅이 살폈다.

야뇌슬은 죽었다.

살이 있다면 적암도나 무인도로 기어 올라왔어야 한다. 상처 입은 몸으로 삼백 리를 헤엄쳐 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벌써 모습을 드러냈어야 한다.

삼백 리 떨어진 영어도(穎漁島)에도 사람을 보내봤다.

야뇌슬은 고사하고 그와 비슷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죽어서 떠밀러 온 시체도 없었다고 한다.

더 이상 찾아볼 곳도 없다.

“중원으로 들어섰겠지?”

“들어서고도 남지.”

“제길!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신이라도 한 장 보내주면 덧나나.”

“우리 생각이나 하겠어? 즐기기도 바쁜 판에.”

“난 잠이나 자야겠다. 딱 반각만 잘 테니까 깨워.”

“몰라. 나도 잘 거니까.”

그들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

철썩! 처얼썩! 턱!

파도가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위를 때릴 때, 물속에서 튀어나온 인형이 날렵하게 바위 뒤로 숨었다.

‘왕린(王璘), 미루극(米蔞剋).’

그는 해변 그늘에 누워있는 두 사람을 노려봤다.

장창을 품에 끼고 잠들어 있는 자가 왕린이다.

그는 뇌전자창 왕패의 진전을 이었으며, 창술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다.

미루극은 천왕구도의 진전을 이었다.

중원에서 태어나 천왕구도의 진전을 이어받았다면 천하가 좁다고 활개 쳤을 게다.

불행히도 이들은 적암도에서 태어났다.

오제의 무학이 중원에서는 태산(泰山)이지만, 이곳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구사한다. 금덩어리가 금강석(金剛石) 사이에 던져지니 보옥 구실을 못하는 격이다.

‘아직은……’

저들과 부딪칠 때가 아니다.

저들은 모두 이십사 무동을 칠성출동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진짜 싸움터에서 무공을 갈고 닦았다. 저들의 무공은 칠성 수준을 뛰어넘어 팔 성, 구 성으로 치닫고 있을 게다.

이십이 무동을 간신히 출동한 자신과는 비교가 안 된다.

지난 한 달간, 몸의 상처를 씻어내면서 진기 또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그는 혈우마검 탁발천의 신뢰신공(迅雷神功)을 내공의 기틀로 삼고 수련해왔다. 아마도 적암도 무인들 중에서 사 할 이상이 혈우마검의 신뢰신공을 택했을 게다.

신뢰신공에서 신뢰삼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공부는 다른 사제(四帝)의 무공에 비해서 단연 화려하고 강력하다. 초식을 전개하면 멋있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또한 신뢰신공은 병장기의 선택과의 연관성이 깊다.

적암도에서 검을 선택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혈우마검의 공부를 연성해야 한다. 적암도에서 가장 강력한 검초이기 때문에 다른 검법을 돌아볼 필요가 없다.

그도 그랬다. 평생을 함께 할 병기로 검을 선택했고, 그러다보니 혈우마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 한 달 동안, 신뢰신공을 버렸다.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것이 아니다. 아픔을 잊기 위해서 심등을 밝히는데 주력했고, 어느 덧 한 달이란 시간이 흘러서 상처가 아물었다. 마록타(瑪綠駝)의 지극한 돌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그제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기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기가 신뢰신공의 경맥을 타지 않는다.

단전에서 진기를 일으키면 그가 한 번도 시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로 움직이다.

그 길이 나쁘지 않다. 나쁘다고 판단되었으면 억지로라도 신뢰신공으로 되돌아갔을 터인데, 나쁘기는커녕 전화위복(轉禍爲福) 오히려 더 좋은 것 같다.

진기를 이끌고 나면 전신이 상쾌해진다.

운기행공을 하고 난 후에 느끼는 일반적인 상쾌함이 아니다. 전신을 탈태환골(奪胎換骨)한 듯한 느낌, 완전히 새로워진 나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신공은 운기할 때마다 매번 그런 느낌을 준다.

단언컨대 이십사 무동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운기행공이다. 십이좌실에서도 이런 행공을 기재해놓은 비급은 없었다.

적암도에 없는 새로운 신공이다.

심등을 밝힘으로써 자신 스스로 얻은 자신만의 신공이다.

그는 아직 신공의 이름도 짓지 않았다.

이 신공으로 어떤 초식을 뻗어낼 수 있는 지도 알지 못한다. 새로운 진기로 혈우마검의 신뢰삼검을 전개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 보지 않았다.

원수가 눈앞에 있어도 싸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러나 분노까지 참을 수는 없다.

파아앗!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독배를 마셨다. 그런 후 목이 잘려서 대나무 장대에 꽂혔다.

누이도 죽었다.

노모보 그 자식은 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까지 무참하게 죽였다.

삭초제근(削草諸根)이라. 풀을 베려면 뿌리까지 완전히 캐내야 한다지만 그렇다고 누이까지 죽이나.

복수!

복수하고 싶어서 치가 떨린다.

부도주를 죽인다. 노모보를 죽인다. 노모보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는 저들…… 저들 일곱 명도 같은 하늘을 이고 공존할 수 없는, 자신이 반드시 죽여야 할 필적(必敵)이다.

꾸욱!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잇몸이 짓무르려질 정도로 꽈악 깨물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은 바위에 바짝 밀착시켰다. 바위의 차디찬 기운이라도 접해야 들끓는 분노를 억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희…… 반드시 죽인다!’

그는 맹수의 눈으로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쏘아봤다.

그렇다고 살기를 발산할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다. 그럴 정도였다면 다짜고짜 기습을 가했을 게다.

몸에서 일어나는 기운을 철저히 죽였다.

저들은 잠들어 있지만…… 저 상태에서도 이기(異氣)에 즉각 반응한다. 바로 곁에 전갈이 기어가기라도 하면 즉각 짓눌려버린다.

그는 일시탈백 장설리의 부동명심공(不動明心功)을 암송했다.

부동명심공은 심공(心功)이다.

몸을 고요하게, 마음도 차분하게, 무풍(無風)의 느낌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무념(無念)으로 기다린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흑조탄궁술은 그 후에 전개된다.

사실 일시탈백 장설리의 궁술은 심공에 요체가 깃들어 있다. 흑조탄궁술은 철시(鐵矢)를 쏘아내기 위한 수단, 도구일 뿐이다.

부동명심공과 심등은 연관성이 있다.

아니, 오제의 모든 무공이 심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오제의 무공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그 속에 심등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심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무공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만류귀원(萬流歸元)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그의 암송은 부동명심공에서 자연스럽게 여여양생술로 넘어갔다.

두 공부가 똑같다.

각기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요체는 하나다.

하나는 강을 말하고, 하나는 바다를 말하지만, 결국은 물이다. 또 강과 물은 만난다. 바다가 변해서 강이 되고, 강이 흘러서 바다가 된다.

다 똑같은 말이다.

그는 들끓는 기운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자신에게 기운이라는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죽였다.

그런 다음 움직였다.

스으읏!

두 발은 무영신법(無影身法)의 법리(法理)를 따른다. 하지만 가슴에는 심들이 밝혀져 있다.

현현화륜 노광도의 현현무심공(玄玄無心功)으로 펼치는 무영신법이 아니라 심등으로 펼치는 무영신법이다.

그래도 통한다. 심등으로 무영신법이 펼쳐진다. 전신에 새로운 진기가 충만하지만 밖으로는 퍼져나가지 않는다. 자신 안에서만 소용돌이친다. 심등 주변에서만 맴돈다.

저들이 이목은 십 장 밖에서 기어가는 개미 소리도 파악해 낸다.

은밀히…… 은밀히…… 모래를 밟으면 족적(足跡)이 새겨지니 바위를 골라서 소리 나지 않게 은밀히……

그는 해변을 지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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