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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7화 (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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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7화]

第一章 기어이 네가 (7)

그는 눈을 뜨고 어찌된 영문인지 살펴보려고 했다. 꿈이 현실이라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니다. 현실일 리 없다. 전광천심을 맞고 살아날 순 없다. 그리고 명치를 뚫은 중도, 네 뼘 길이의 묵직한 칼날…… 그걸 맞고 어떻게 살아나나.

‘왜 이런 꿈을 꿨지? 적사도회에 대한 압박감이 컸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그는 눈을 살그머니 떴다.

햇살이 아프게 쏟아져 들어온다.

이곳이 어디인데 이토록 밝을까? 침상은 아닌 것 같고, 바깥인 것 같은데…… 왜 자신이 바깥에 있는 것일까? 바깥에서 잠을 잔건가? 그런 기억은 없는데……

그는 조금씩, 조금씩 햇살에 적응해 가며 눈을 떴다.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뜨고, 고개까지는 움직일 수 있는데, 목 아래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온 몸이 붕대로 칭칭 감겨 있다. 향긋한 풀냄새도 풍긴다. 적암도에서 자생하는 풀로 마취의 효과가 탁월한 팔엽묘안초(八葉猫眼草)의 냄새다.

팔엽묘안초는 웬만큼 상처가 깊지 않고서는 쓰지 않는다.

마취 성분이 너무 강해서 자칫하면 신경에 영구 손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서 중상을 입어서 죽기 직전인 사람이나 죽음이 확정된 사람에게만 지극히 제한적으로 쓴다.

온 몸에서 팔엽묘안초의 향기가 풍긴다.

전신이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꿈이 아니었어!’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친다.

매형이…… 장래 매형 될 사람이…… 사형(師兄)이 자신을 벴다.

몇몇 무인이 화살을 맞고 적사해에 빠져 죽은 것도 사실이다. 절대로 꿈이 아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사람이었다.

생각이 노모보에서 부도주 노갹충에게 이어졌다.

노모보는 반란을 주도할 만큼 담대하지 않다. 주민들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부도주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다면…… 정말 부도주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면……

‘아버지! 어머니! 누이! 누이!’

이를 꽉 깨물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얼마동안이나 누워있었는지 몰라도 검에 맞아 바다에 빠지던 그날, 일가족이 목숨을 달리했을 게다.

‘모두 죽었어.’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이를 더욱 꽉 깨물었다.

꽉! 꽉! 꽉!

어금니는 부서져도 좋다. 그러나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싫다. 부모와 누이를 위한 눈물이지만, 참고 싶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강해져야 하니까.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였다. 눈가로 또르륵 굴러 떨어졌다.

그는 외눈에 꼽추다. 키는 어린아이처럼 작고, 바짝 말라 뼈만 보인다. 길게 자란 머리칼은 굽은 허리 때문에 머리 밑으로 흘러서 땅에 닿는다.

그는 다리도 불편한 것 같다.

청죽(靑竹)을 지팡이 삼아 짚고 걷는데, 걸음을 뗄 때마다 오리처럼 뒤뚱거린다.

“키키! 아파?”

올빼미 우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용모로도 구분할 수 없고, 음성으로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도주는 무사하십니까?”

“네 놈이나 걱정해.”

“돌아가셨습니까?”

“네 놈을 죽이려고 노모보의 사자들이 눈이 벌개가지고 온갖 곳을 뒤지고 있어. 정신 집중해서 운기요상(運氣療傷)이나 해.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는 게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누구십니까?”

“그놈 빨리도 묻는다.”

“죄송합니다.”

“말끝 꼬박꼬박 가로채는 거 보니 죽지는 않겠다. 이제 쓰잘데기 없는 즙액은 바르지 않을 테니까 이 악물고 버텨. 비명이 새어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키키!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지. 살고 싶은 마음이야 네놈이 더 간절할 테니까.”

“누구신지 존함이라도……”

“왜? 이름은 알아서 뭐하려고? 큰 절이라도 할래? 어차피 아무 짓도 못하고 주둥이로 나불거릴 것 아냐.”

“고맙습니다.”

“됐다. 그런 인사 받으려고 급류 속에 뛰어든 거 아니다. 즙액을 안 바르면 고통이 극심할 테지만…… 아파야 빨리 낫는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버티고.”

그는 뒤뚱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엄청난……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통이 밀려왔다.

아파야 낫는다. 아니다. 아파야 낫는 병은 없다. 제대로 아파야 한다는 말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는 사지를 쭉 펴고 누운 채 와공(臥功)을 끌어냈다.

적벽 이십이 무동에는 와공이 없다. 오제의 무공은 강공일변도여서 느긋하거나 편한 것이 없다. 하지만 십이좌실에는 있다. 도인(道人)들을 위한 수행법이 있다. 적암도 무인들이 보기에는 어린애 장난 같은 운기호흡법에 불과하지만.

후우우……!

숨을 길게 내쉰다. 끝까지 내뱉는다. 뱉고 또 뱉는다. 뱃속에 있는 숨이 바닥날 때까지 느리고 길고 가늘게 내뱉는다.

이윽고 뱃속이 텅 비었을 때, 숨이 들어온다.

들어오는 숨은 볼 필요가 없다. 비워진 그릇에 물이 들어찰 때처럼 자신의 그릇만큼 채워진다. 숨을 내뱉은 만큼 들어온다. 순식간에 들어오든 반각에 걸쳐서 들어오든 똑같은 양이 들어온다.

내뱉는 숨만 본다.

아주 간단하다. 그저 숨만 내보낸다.

이러니 적암도 무인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야뇌슬은 이런 단순함 속에서 이십이 무동의 모든 무공과 합일되는 부분을 찾아냈다.

모든 숨이 다 나갔을 때, 단전이 울린다.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득 찼을 때, 단전이 울린다.

양쪽의 울림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하나는 생명의 울림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울림이다. 생과 사가 한 호흡 사이에서 모두 일어난다.

이것을 수련하라. 불사(不死)를 얻으리라.

여여양생술(如如養生術)이라고 적힌 비급을 수련했다.

그러고 보니…… 죽음 직전에 떠올랐던 심공도 여여양생술에 적혀 있던 글귀들이지 않나.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양생술이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모보의 칼날이 심장을 꿰뚫고, 허파까지 베어냈으리라. 생명 잃은 몸뚱이를 고기밥으로 내던졌으리라.

양생술…… 생기를 기르는 도인법(導引法).

적암도라서 아니고 무가의 무인치고 양생술을 기웃거리는 사람은 없을 게다. 무공을 모르는 노인들이나, 시골 촌부들이 건강삼아 수련하는 공부를 기웃거려서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그 공부가 또 한 번 도움을 준다.

심등을 켜라.

심법(心法)을 운기하며 심등을 지켜봐라.

영혼과 육신을 밝음으로 가득 채워라. 어두움을 밀어내고 밝게 빛나게 하라.

스스스스스!

단전에서 진기가 일어나며 전신을 휘돈다.

그는 자신이 진기를 일으켰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심등을 쳐다보면 그렇게 된다. 대주천(大周天)이나 소주천(小周天)도 의미가 없다. 임맥(任脈), 독맥(督脈)도 구분치 않는다. 경맥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다.

진기는 저절로 일어난다.

진기 순환을 지켜볼 필요가 없다. 마음속에 밝혀진 환한 불빛만 쳐다보면 된다.

“후우우우우……”

깊이,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쯤이면 됐나? 이제 바깥세상으로 나가도 되나?

그는 심등에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육신을 의식했다. 순간,

“끄으으으으……!”

그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간신히 참았다.

너무 아프다. 온몸이 절구로 짓이겨지는 것 같다. 끓는 기름 속에 빠진 것처럼 뜨겁기도 하고, 누군가가 작은 칼날로 창자를 토막토막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후웁! 후웁! 후웁!”

그는 고통을 참기 위해서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효험이 있을 리 없다. 팔엽묘안초가 그립다. 지금 당장 마초(魔草)의 즙액을 바르고 싶다.

‘심등!’

고통을 피할 곳은 안으로 들어가는 길뿐이다.

육체를 잊고 가슴 속에서 피어난 등불 속에 안주한다. 그것만이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후우! 후우! 후우우우우……!”

짧게 숨을 몇 번 쉬고, 그리고 길고 긴 숨으로 연결시켰다.

심등이 켜졌다.

“끅…… 끅……”

꼽추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야뇌슬이 펼치고 있는 와공은 염왕(閻王)의 일심불광(一心佛光)이 틀림없다.

야뇌슬의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 정중앙에서 은은한 금빛 광채가 감돈다.

삼목(三目)에 불이 켜졌다.

송연부인이 염왕의 진전을 이은 자가 있다기에 믿지 않았더니, 정말로 그런 자가 나타났다.

‘됐어. 됐어. 된 거야.’

그는 단숨에 달려가 야뇌슬을 껴안고 싶었다.

묻고 싶은 게 많다. 염왕의 진전은 어디서 찾았으며, 어떻게 수련했는지. 지금 어느 정도의 단계를 밟고 있는지. 아니, 가장 궁금한 것은 염왕의 무공이 어떤 종류인지 묻고 싶다.

검을 쓸까? 칼을 쓸까? 창을 쓰지는 않겠지?

염왕, 염왕, 염왕……

염왕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라고는 염왕이라는 두 글자 밖에 없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아니, 한 가지 더 있다. 그를 만난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

하지만 딱 한 사람…… 염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염왕의 시종(侍從)이었다. 염왕이 무림에 나설 때부터, 적암도에 들어설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옆에서 소상히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딱 한 마디만 남겼다.

- 염왕의 무공은 일심불광이라고 한다. 일심불광이 무엇인지는 묻지 마라. 보면 알 것이다. 일심불광을 보는 순간, 이것이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봤다. 그리고 단숨에 느꼈다.

그는 격동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 오랜 기다림인지라, 그 끝을 자신이 맞이했는지라 저절로 울음이 흘러나왔다.

‘됐어. 됐어. 됐어. 된 거야.’

그는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리고 입으로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마음껏 울었다.

일심불광!

일심불광을 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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