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도검무안 5화]
第一章 기어이 네가 (5)
가슴에서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다. 힘이 쭉 빠지면서 정신까지 몽롱해진다. 위기고 뭐고 다 집어 치우고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가슴에 제대로 일격을 얻어맞았다는 증거다.
“그놈의 매형 소리 정말 지겹다. 네 누나라는 여자 말이다. 그 여자는 시비로 태어났어야 해. 얼굴이 예쁘냐, 몸매가 좋냐. 그저 곁에 두고 심부름시킬 정도지. 그런 여자가 언감생심 나를 옭아매? 내 씨를 가져? 그 얼굴로?”
노모보의 얼굴은 야뇌슬이 보아오던 강직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이 순간만은 비열하고 야비한 악마의 얼굴이었다.
그는 말만 한 것도 아니다.
꾸우욱!
중도(中刀)가 명치를 헤집고 들어왔다.
천천히, 천천히…… 고통을 최대한 안기면서 천천히 생명을 갉아먹었다.
‘죽는다!’
야뇌슬의 머릿속에는 단 한 생각, 죽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로 이 순간만은 그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다. 노모보가 누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남의 세계 이야기였다. 귓가에 들리지도 않았다.
- 통여신(桶如身), 수여심(水如心), 신약부동시(身若不動時), 통(桶) 자연정정(自然定定)……
순간, 어디에서 읽은 듯한 글귀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리고 머리가 글귀를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몸은 물건을 담는 통처럼 텅 비우고, 마음도 물처럼 여여(如如)하게,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자연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그리고 진기를 실은 듯한 안광이 발산되었다.
갑자기 세상이 뚜렷해진다. 흐릿해지던 정신이 명료해진다. 자신의 처지가 명확하게 읽힌다. 눈가에 힘줄이 곤두서는 게 느껴지면서 눈이 터질듯이 아프다.
파앗!
“엇!”
노모보가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서 멱살을 놓았다.
야뇌슬을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풍덩!
있는 힘을 다해서 적사해의 급류 속으로 몸을 날렸다.
“놓친 겁니까!”
“죽었다.”
“시신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만.”
“죽었다니까!”
노모보는 야뇌슬이 사라진 바다에 눈을 고정시킨 채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뇌슬은 신뢰삼검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가슴뼈가 갈리고, 내장이 끊어졌다. 심장, 폐, 비장…… 모두 베였다. 그런 상태에서 명치에 일도를 맞았다. 살을 찢고 들어간 도가 뼈를 잘라냈다.
그 감촉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있다.
‘죽었어.’
그렇다. 야뇌슬은 죽었다. 그런데 그 눈빛…… 마지막에 보여주었던 그 눈빛이 마음에 걸린다. 그 눈빛은…… 악마의 눈빛이었다. 눈빛 속에 영혼을 없는 악마가 보였다.
자신이 놀랐다.
죽어가는 사람의 눈빛 따위에 놀라서 멱살을 놓고 말았다.
그 눈빛…… 그게 뭔가.
노모보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죽었어! 그 상태에서는 살아날 수 없어. 도저히!’
***
쫘악!
볼에서 불이 튀었다. 얼굴이 확 돌아가고, 상반신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력한 따귀다.
“시체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더냐.”
부도주의 음성은 지독할 정도로 낮고 차분했다.
노모보는 어금니를 꾹 깨물고 침묵했다.
야뇌슬은 죽었다. 그가 천신(天神)의 아들이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다. 신뢰삼검만 해도 치명적이다. 오제 혈우마검 탁발천의 진신공부가 정확하게 가슴을 갈랐다.
놈의 상반신을 쪼개 버릴 수도 있었다.
그 짓을 하지 않고 약간의 명줄을 이어준 것은 한 마디, 죽기 전에 꼭 한 마디를 해주고 싶어서였다.
네 놈의 누이! 그 여자! 야리몌! 내게는 노리개였다!
죽는 놈에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또 놈이 야리몌 당사자도 아니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야리몌에게 직접 할 수 없으니, 놈에라도 해야만 했다.
가슴의 울분을 배설하는 기분.
적암도 제일의 기재라고 인정받으면서도 아비가 부도주이기에 형편없는 자들에게조차 머리를 조아렸던 세월. 정말로 꼭 시비나 했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여자가 치근덕거리는데도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가야 했던 입장.
이 모든 걸 한꺼번에 쏟아내야만 했다.
무인이란 것들이 학문이니 어쩌니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고기 한 점과도 바꾸지 못하는 시를 읊어대고, 그림을 그려대고, 한가하게 피리나 불어대면서…… 꽃이 어떻고, 바람이 어떻고, 바다색이 어떻고……
선단을 움켜쥐기 위해서 그 모진 굴욕을 참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한 놈이라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도 확실했다.
칼 맞은 놈을 붙잡고, 명치를 끊어놓았다. 그리고 적암도 사람들이 모두 알아주는 죽음의 덫, 적사해의 급류에 휘말렸다.
여기서 어떻게 살아나나?
악마가 환생을 한다고 해도 놈은 살릴 수 없다.
“가라. 가서 놈의 시신을 가져와라. 적사해에서 놈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온 바다를 뒤져서라도 가져와라.”
“겁나십니까?”
노모보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버지는 ‘강자존’을 입에 달고 산다. 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적암도에서 아버지를 능가할 무인은 없다. 그 점은 중원 무림에 나가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원 무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검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분이 왜 애송이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가.
시신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것이지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나.
완벽함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로 한다. 무엇인가 잘못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려는 게다.
잘못되면 어떤가. 놈이 부활해서 복수의 검을 든다고 치자. 그게 뭐 어떤가. 그런 놈 하나 처리할 자신이 없으면서 강자존을 입에 담을 수는 없다.
부도주가 눈살을 가늘게 좁히고 아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 겁난다. 그놈은 이 애비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이 뭔지를 알게 해준 놈이다. 놈을 볼 때마다 섬뜩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반란의 성패는 그놈을 죽이는 것이라고. 난 네게 그 일을 맡겼던 것이다. 이번 반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순간, 노모보는 야뇌슬이 죽기 전에 보여준 눈빛을 떠올렸다. 아니, ‘섬뜩’이란 말을 듣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그 눈빛이 머릿속을 휘어 감았다.
아버지의 심중을 알 것 같다.
놈이 자라면서 보여준 천재성은 같은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자신마저도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놈의 수련 진도는 항상 빨랐다.
자신이 일동을 간신히 벗어날 나이에, 놈은 이동을 출관했다. 모든 게 그런 식이다. 놈은 이십이동까지 출관하면서 자신이 세운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십사동 최연소 출관기록이 깨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더군다나 놈은 무공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한가롭게 서적까지 들썩인다.
놈이 나이가 어렸기에 망정이지, 평배(平輩)였다면 자신은 그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을 게다.
놈과 언젠가는 승부를 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도주와 부도주라는 직위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리라고 다짐하면서 수련에 매진했다.
놈은 확실히 두려운 구석이 있다.
“가서 그놈 시신을 찾아와라.”
아버지의 음성이 한결 차분해졌다.
울분을 꾹 억누르고 내뱉은 차디찬 음성이 아니라 자신을 완벽하게 절제시킨 강자의 음성이다.
“알겠습니다.”
노모보는 두 손 모아 읍했다.
섬 주민들은 모두 이주 준비에 한창이다.
적암도는 개벽(開闢)했다.
삼백 년의 역사를 종지부 찍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더군다나 새로운 세상은 젖과 꿀이 흐르는 대륙이다. 꿈과 희망이 가득찬 곳이다.
그들은 지배자가 될 것이다.
평생 고기나 잡다가 죽을 운명에서 벗어난다. 타인을 지배하고, 호령할 것이다. 적암도 무공의 매서움을 온 세상에 알릴 것이다. 천외천(天外天)이 지상으로 내려간다.
적암도 주민들의 이주 준비는 여타의 이주 준비와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가축을 거두지 않았다. 이부자리 같은 것도 싸지 않았다. 한 끼 식사조차도 챙기지 않았다.
가져갈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적송림으로 달려가서 십이좌실을 불태웠다.
삼백여 년에 걸쳐서 선조들이 끌어 모았던 경전 진본들이 활활 불살라졌다.
경전은 머릿속에 담겨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구해서 보면 된다. 가는 곳이 중원이다. 없는 것이 없는 중원이다.
경전은 짐만 된다.
적벽 이십사 무동도 무너졌다.
무동 안에 있던 무공비급은 새카만 재가 되어 휘날렸다. 적벽에 새겨진 무공도해(武功圖解)들로 철퇴의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부셔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