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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200화 (200/200)

# 200

25화

해남도 오지산.

단화초가 있던 곳이고, 단리문과 만나기로 한 곳이다. 이곳에 아마도 단리문이 있을 것이다.

해남도에 도착한 지 다소 시간이 흘렀다.

단리문은 조그마한 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해 상선에 끼어 이동을 했을 게다. 그에 반해 갈지혁은 무림맹에서 건네준 배를 타고 이동했다.

당연히 도착한 것은 갈지혁이 빠를 게다.

그래서 갈지혁은 여유 있게 오지산을 찾아갔다.

아직 일악천을 만나지는 않았다. 단리문을 꺾고, 그 후에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

사황을 어깨에 올려놓은 채로 갈지혁은 오지산을 오른다. 한동안 이 부근에 있는 리족의 부락에서 단화초를 찾겠다며 산을 이 잡듯이 뒤진 적이 있다.

그랬기에 오지산의 지리는 나름대로 훤한 편이다.

한 번 패했던 상대다. 그리고 단리문에게 패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발걸음에 여유가 있다. 다시 싸워서 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갈지혁이 가는 곳은 오문진이 펼쳐져 있던 곳.

어렵지 않게 신령석이 있던 곳을 찾아낸 그가 자리에 앉았다. 신령석이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술시초다. 아직 시간이 있다.

아마 단리문은 이 안에서 갈지혁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준비해 온 건량으로 대충 배를 채운 갈지혁은 나무에 기댄 채로 땅을 바라봤다.

꽤 긴 여정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이기도 하다.

눈앞에 갑작스럽게 돌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갈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돌을 손으로 비틀었다.

순간 눈앞에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진법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일부러 여유 있게 이곳에 나타났다. 단리문이 기다릴 시간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천천히, 그렇지만 주변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갈지혁이 걸었다.

안으로 들어서던 갈지혁이 발을 멈췄다.

단리문은 숨어 있지 않았다. 당당하게 갈지혁의 앞에 나타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서는 패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였겠지만 말이다.

반년 전에 쉽사리 이겼던 상대다. 그동안 아무리 실력이 는다고 해도 질 거라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아마 단리문은 아직도 갈지혁이 자신보다 한참 아래의 적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단리문이 돌 위에서 일어났다.

그의 입이 열렸다.

“용기가 가상하군.”

“뭐가 말인가.”

“혼자서 올 줄은 몰랐거든.”

단리문은 처음부터 하대를 했다. 그리고 예상처럼 갈지혁 혼자서는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굳이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하하!”

단리문이 시원하게 웃는다.

그렇지만 결코 즐거워서가 아니다. 이미 갈지혁을 보는 순간 단리문은 당장에 그를 찢어 죽이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외양으로는 갈지혁보다 겨우 몇 살 정도 위로 보이는 그이지만 단리문의 실제 나이는 사십이 훌쩍 넘었다.

“넌 나한테 졌어. 그것도 상대도 되지 않았지.”

“지금은 틀릴걸.”

“단화초의 독을 흡수했다 이건가? 하지만 이쪽도 단화초의 힘을 손에 넣은 건 매한가지야.”

물론 갈지혁의 것에 비하면 독성이 많이 약한 단화초지만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곳이 그의 무덤이 될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굳이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마찬가지다.”

갈지혁은 수투를 꺼내서 꼈고 단리문은 검을 뽑아 들었다.

갈지혁의 몸에서 녹색의 기류가 일렁이는 듯싶더니 그것은 금세 모습을 감췄다.

‘이놈…….’

단리문은 정말로 갈지혁이 그때에 비해 많이 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지만 그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승패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는지 단리문은 시작부터 절기를 펼쳤다.

무당의 십단금!

콰앙!

갈지혁은 질세라 손을 뻗어 독장을 휘둘렀다.

주변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수라독공의 기운이 손으로 모여들면서 쏘아졌다.

예전과 똑같은 상황!

그렇지만……

십단금을 부숴 버리면서 쏘아지는 갈지혁의 장법에 단리문은 기겁했다.

그가 급하게 땅을 구르면서 장법을 피해 냈다. 그렇지만 이미 그곳을 향해 갈지혁의 몸이 날아들었다.

퍽퍽!

팔을 급히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았지만 뒤로 밀려났다.

바로 갈지혁의 발이 그의 복부를 걷어찬다.

검의 손잡이로 쳐낸 단리문은 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렸다. 그의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이, 이럴 수가…….’

반년 전만 해도 십단금이 이겼다. 그런데 지금은 갈지혁의 장법이 오히려 십단금을 집어삼켰다.

내력이 변했다.

그 순간 헛것이 단리문의 눈에 보였다. 손바닥으로 태극을 그리는 갈지혁의 등 뒤에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추한 외모의 노인.

일악천.

‘그 망할 놈이……!’

상황을 알 것 같다. 지금 단리문은 갈지혁 한 명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의 뒤에는 일악천이 있다. 그의 내력이 갈지혁에게 전해져 단리문을 궁지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단리문은 무슨 독을 쓸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거뒀다.

지금의 갈지혁에게는 어떠한 독을 쓴다고 해도 통할 것 같지 않아서다.

단화초의 독을 흡수했다. 그리고 단접의 독분 아래에서 태연했던 자다.

대체 어떤 독으로 상대하란 말인가. 아마 세상 그 어떠한 독도 갈지혁을 중독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검으로 싸워야 한다.

무공…… 무공으로 승부를 낸다.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다시금 중원으로 가겠다.”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내보인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그러한 단리문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맞받아쳤다.

“오늘 네가 이 자리에서 살 수만 있다면.”

“죽엇!”

단리문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무공.

무당파의 태극혜검이다.

그의 검이 매섭게 쏘아져 나온다. 갈지혁은 두 손을 휘저으면서 수라독공을 운기했다.

‘독은 마음.’

마음이 따른다면 언제든 중독이 가능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

다가오던 단리문은 갑작스러운 폭발에 몸이 흔들렸다. 갑작스럽게 내장이 진탕이 된 듯이 내력이 빨려 나간다.

고통이 온몸을 휩쓴다.

‘이게…… 뭐야?’

갈지혁은 심독(心毒)의 경지.

마음이 이는 순간 모든 것을 중독시킬 수 있는 지고지존(至高至尊)한 독의 경지다. 그 누구도 오르지 못했던, 그리고 꿈도 꾸지 못했던 그러한 경지.

갈지혁이 단리문을 중독시키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그는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믿을 수 없지만 그것이 바로 독왕이 된 갈지혁의 경지였다.

태극혜검이 채 펼쳐지기도 전이었다. 달려들던 그대로 단리문은 땅에 처박히듯이 쓰러졌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눈에 갈지혁이 보인다.

이길 수 없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억지로 남은 힘을 쥐어짜면서 물었다.

“널 중독시키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게…… 다라고?”

“그래.”

담담하게 말했지만 누가 듣는다고 해도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문제다.

“검을 펼치는 자들은 심검을 꿈꾸지. 그것과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어처구니가 없군. 너 같은 햇병아리에게…….”

중독시키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수라독공의 힘이 자연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갈지혁의 독이 그대로 단리문에게 흡수되어 버렸다.

그것이 바로 단리문이 중독된 심독.

단리문은 검을 꽉 움켜쥐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검을 쥐었던 그의 손아귀의 힘이 점점 풀려간다.

해남파에서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던 일악천은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았다. 갈지혁을 본 일악천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갈지혁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자를 왜 그리 보십니까.”

“……내 내공을 훔쳐 간 도둑놈을 보는 것이니 표정이 무슨 상관이냐.”

말과는 다르게 일악천의 표정은 그러한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일악천이 차 한 잔을 가져와 그에게 건넸다.

그러한 모습에 갈지혁이 놀라 물었다.

“차까지 타십니까?”

“독 탄 것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이놈! 독초를 만지작거리다가 이렇게 차를 타니 이것도 나름 재미가 있더구나.”

말을 마친 일악천은 자신 앞에 놓아두었던 차를 홀짝였다.

그의 얼굴이 참으로 편안해 보인다.

그렇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가 내린 일악천이 지나가듯이 물었다.

“단리문은?”

“죽었습니다.”

“그래?”

해남도 바깥일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한 것은 굳이 물어볼 생각도 없다. 갈지혁이 단리문과 싸우기 위해 해남도로 왔다는 것도 소식을 통해 들었다.

들은 자만 해도 만 명이 넘는 일이다.

이미 무림에 몸담고 있는 자 중에서 갈지혁이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 해남도로 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시 동안 침묵하던 일악천이 다시금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게냐.”

“남만에 갈 겁니다.”

“남만에?”

“어머니를 모셔와야지요.”

“건방진 놈! 독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게냐?”

갈지혁이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는다. 독왕이 된 후에야 어머니를 뵙겠다던 그가 지금 남만에 간다고 한다. 대답하지 않아도 대충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한번 정한 뜻을 꺾을 사내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일악천이다.

알면서도 일악천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놈은 아직 멀었다!”

“알고 있습니다.”

“귀찮은 놈!”

“그것도 압니다.”

일악천이 갈지혁을 바라보면서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여태까지 그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들었는지 안다. 지금 중원에서 갈지혁이라는 존재가 어떤 위치인지도 잘 안다.

“……그래도 널 내 제자로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일악천은 찻잔을 들어 올렸다.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앞만 바라보며 찻잔을 기울인다. 갈지혁은 차를 다 마시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야 할 때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냐.”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네놈보다 오래 살 테니 걱정 붙들어 매거라.”

갈지혁이 몸을 돌려 걸어간다.

문을 통해 그의 모습이 사라진다. 일악천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해남도의 날씨는 참으로 좋다.

“심심한데…… 제자나 하나 더 들여 볼까? 이번엔 귀염성 있는 놈으로 말이야.”

일악천이 중얼거렸다.

해남파를 나가려던 갈지혁은 문 앞에서 기다리는 낯익은 얼굴들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문 쪽에 있던 자들도 갈지혁을 발견했는지 몸을 돌려 그를 기다린다.

진검백과 운하연, 그리고 운하연을 따라다니는 풍객도 이곳에 있다.

갈지혁이 그들에게 다가가면서 입을 열었다.

“왜들 여기에 있는 거지?”

“장문인께서 아직 젊으니 십 년가량은 하고 싶은 대로 유랑을 다녀도 된다더군. 그래서 찾아왔지. 네놈을 따라다니는 것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진검백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갈지혁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운하연을 쳐다봤다.

진검백은 그렇다고 쳐도 이 여인은…….

“남자끼리만 다니면 삭막하잖아요.”

갈지혁이 묻기도 전에 운하연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것도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그러한 것을.

풍객은 갈지혁이 자신을 바라보자 급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은 어차피 운하연을 따라다니는 덤이잖아.”

“뭐야!”

“하하하!”

갈지혁의 말에 풍객이 발끈했다. 그러한 모습이 우스웠는지 진검백이 웃음을 터뜨렸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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