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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189화 (189/200)

# 189

14화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 둔 독이 이곳에 모여 있다.

그것이 한순간에 화마(火魔)에게 먹혀 버린 게다.

절망감이 율개를 뒤덮어간다. 꽉 쥐어진 두 손이 덜덜거리면서 떨리기 시작한다.

파문을 시켰던 놈이다. 무공을 쓰지 못하게 몸에다가 벌레도 심어 버렸다. 평생 다시 볼일이 없을 놈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놈이 모든 걸 망쳐 놨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죽인다!”

율개가 그대로 갈지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쌍장에서 무서울 정도의 독장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장법이라면 갈지혁 또한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개방의 강룡십팔장이라고 해도 물러서지 않는다.

갈지혁의 두 손에서도 독장이 펼쳐졌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율개의 쌍장이 그대로 날아든다. 갈지혁은 질세라 자신의 손을 내뻗었다.

손바닥끼리 마주쳤다.

우드득!

기이한 소리와 함께 율개의 팔꿈치가 비틀렸다.

엄청난 고통이 온몸을 엄습하는 것과 동시에 갈지혁의 독기가 율개를 덮쳐 간다.

“아악!”

머리카락이 녹아 버린다. 동시에 몸속에 있는 모든 내장이 끊어지는 느낌이다.

입, 눈, 코, 귀…… 피가 쏟아져 나온다.

율개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독황독립문에서 알아주는 고수인 그가 갈지혁의 독장을 한 번 받아 내지 못하고 초라하게 나뒹굴었다.

율개가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갈지혁의 압도적인 무위는 모두의 움직임을 멈추게 해 버렸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분명 지금은 그렇게 악으로라도 상대를 제압해야 할 때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 머리를 채운다.

어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갈지혁이 몸을 돌린다. 하지만 아무도 쫓지 못한다.

그가 금구전장의 문을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덤비면 죽는다.

* * *

금구전장이 박살 났다.

전쟁 중에 그만한 상인 단체가 부서진 것은 큰일이 될 수 없다. 문제는 그곳이 바로 독황독립문의 생명줄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식량은 물론이거니와 독황독립문이 사용해야 할 독들이 모두 불에 타 사라져 버렸다.

지금 독황독립문에 남아 있는 독으로 싸움을 끝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운남에서부터 독을 가지고 온다 해도 그것들은 금구전장에 있던 것만큼 위력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또 시간도 한 달 이상은 걸릴 게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식량 줄이 끊긴 독황독립문의 세력들이 조금씩 각개격파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석에 앉아 있는 지대익의 얼굴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아래에 서 있는 수십의 수하들조차도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닫고 있다.

방책을 강구한다고 모였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지대익이 분에 못 이겨 소리쳤다.

“대체 아무런 생각들이 없는 건가!”

“그것이…….”

최근 지대익의 상태는 최악이다.

금구전장이 날아갔다는 말에 거의 혼절 일보 직전까지 화를 토해 냈던 그다.

금구전장이 너무 쉽게 무너졌다.

물론 갈지혁이 없었다면 별동대의 대부분이 죽었거나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독황독립문의 문도들은 독인이다. 그들의 주 무기는 바로 독이다. 한데 독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싸웠다. 그것은 내공을 쓸 수 없는 무인과 다를 게 없다.

압도적인 차이였다.

대충 상황은 알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독황독립문이 고립되어 패하게 된다. 시간을 끌면 이쪽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상황은 역전되어 버렸다.

이제는 독황독립문이 움직여야 할 때다.

“본진이 움직인다…….”

지대익은 결정을 내렸다.

별동대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다. 본진을 무너뜨리면 제깟 놈들은 집 잃은 신세가 되어 버릴 게다.

시간이 없다.

주어진 시간은 끽해야 한 달. 그 이상을 넘으면 독황독립문은 다시금 남만으로 철수해야 한다.

완전히 승산이 이쪽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전부 별동대의 그놈 때문이다.

지대익은 이내 누군가의 이름을 씹어 먹을 듯이 읊조렸다.

“갈지혁…… 갈지혁, 이노옴!”

그놈이 앞길을 막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갈지혁의 이름을 부르며 치를 떠는 지대익을 한 사내가 차분한 눈길로 바라봤다.

단리문이다.

그가 지대익의 발작에 가까운 행동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살아 있었다. 그놈이 살아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옷으로 가려진 그의 몸은 흉하게 일그러졌다. 갈지혁과 싸웠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썼던 초식인 혈해 때문이다. 스스로의 피를 쏟아 내 동귀어진을 노렸던 갈지혁이다.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갈지혁의 이름을 듣게 되니 기분이 색다르다.

‘살아 있어야지. 네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여야 하니까.’

최초로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게 한 놈이다.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을 상처까지 만들었다.

해남도에서도 자신의 계획을 망쳤던 놈이다. 그놈이 이제는 다시 중원에 나타나 또다시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당하지 않아.’

일악천의 도움을 다시 바라지는 못할 게다. 이번에 만나면 갈지혁은 죽는다.

그리고……

‘슬슬 준비를 해야겠군.’

독황독립문은 이제 필요 없다. 이들이 해야 할 것은 이제 시간을 끄는 것뿐이다.

준비는 대충 마쳤다. 단리문은 곧 이곳을 떠날 게다.

갈 곳은 정해져 있다.

광동성.

그곳에 단리문이 준비한 최후의 한 수가 있다.

별동대는 현재 야산에 숨은 채로 기회를 엿봤다. 지금 노리는 것은 야산을 기점으로 진을 치고 있는 독황독립문 무리들이다. 독도 독이지만 무공에 능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별동대의 무인들은 품속에 여러 가지 해독약을 챙겨 놓은 상태다.

운하연이 만들어 놓은 해독약이다. 몇 번의 싸움으로 독황독립문 무리들이 지니고 있는 독을 파악했다. 그 종류에 맞는 약들을 만들어서 모두에게 건네준 것이다.

전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독을 사용할 확률이 크다.

3조를 제외한 인원 모두가 싸움에 끼었다.

인원은 몇 번의 싸움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은 자들을 뺀 오십 명가량.

독객과 갈지혁, 진검백 셋이 이들을 이끈다.

뽑아 든 검은 천으로 감쌌다.

어두운 밤이라도 달빛에 반사가 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은밀하게 몸을 감추고 있던 별동대는 독객의 손짓에 의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객은 숨을 죽이고 한 걸음씩 진영을 향해 다가간다. 피부가 꺼뭇꺼뭇한 남만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갈지혁과 진검백은 직감적으로 독객의 마음을 읽었다.

독객과 진검백의 손에서는 한 자루의 검이 날아갔고 갈지혁은 손가락 끝으로 한 명의 명치를 노렸다.

퍽!

세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뒤에 숨어 있던 육십 명의 무인이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외침과 함께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쩌엉!

앞장서서 뛰어 들어갔던 별동대의 인물이 그대로 곤죽이 되어 튕겨져 나왔다.

거대한 사내가 도끼를 든 채로 앞을 막아섰다. 그의 손에 들린 도끼에 피가 묻어나온다.

부웅부웅.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도끼가 재차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독객이 움직였다.

쾅!

괴력을 지닌 사내의 도끼질을 독객이 막아 냈다.

외팔이인 그가 힘으로 그 엄청난 도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이놈은 내가 맡지.”

한눈에 봐도 대단한 자다. 별동대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독객이 직접 나선 것이다.

“혹시 네가 남만의 혈부(血斧)?”

“곧 뒈질 놈이 궁금한 것도 많구나!”

퍽퍽!

발이 그대로 독객의 복부를 걷어찬다.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싶은 순간 거대한 도끼가 독객의 머리를 쪼갤 듯이 떨어져 내린다.

파앙!

검이 도끼를 쳐냈다. 얼얼한 충격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거구 사내의 표정이 변했다.

‘외팔이 새끼가 뭐가 이리…… 외팔? 독객!’

사내는 눈앞에 있는 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중원과 남만이 다른 세계라고는 해도 알 것은 다 안다.

독객은 남만에서도 유명한 자다.

“독객 비광백이냐?”

“그래.”

“크크크! 네놈의 이름은 많이 들었다. 네놈 말대로 내가 바로 혈부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이미 그리 답을 내렸었다.”

남만의 인물 중에 중원에 알려진 자는 몇 되지 않는다.

개중에 하나가 바로 눈앞에 있는 혈부다.

사람만 한 도끼를 휘두르며 그 힘이 가히 태산을 부술 정도라고 알려진 자다.

거기다가 손속이 잔인해서 반드시 머리통을 으깨고야 만다는 혈부의 이름은 중원에서도 꽤 알려진 편이다.

독객이 혈부를 막자 다른 자들은 급히 안쪽으로 뛰어들어간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별동대를 보면서 혈부는 막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독객에게 말했다.

“저놈들은 모두 죽을 거다. 안에는 그놈이 있거든.”

“혈부가 여기 있다면 안에는 비검(飛劍)과 웅도(熊刀)가 있겠군.”

“알면서도 그리 여유가 넘치느냐?”

“이쪽에도 인물은 있어서 말이지.”

갈지혁과 진검백이 있다.

비검과 웅도가 중원에도 소문이 날 정도로 빼어난 자들이기는 하지만 갈지혁과 진검백이라면 승산은 이쪽에 있다.

“어쨌든 다른 자들도 있을지도 모르니 서둘러 끝내지.”

그 둘이 아니더라도 별동대에는 인물이 많다. 특히 1조에 편성되었던 고수들은 대부분이 중원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자들이다.

더군다나 독의 갈지혁까지 있으니 싸움은 더 쉽게 끝날 게다.

여태까지 언제나 최소한의 피해로 싸움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갈지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혈부가 자신의 머리끝까지 도끼를 든 채로 옆으로 움직였다.

독객 또한 자신의 하나뿐인 손으로 검을 들고 혈부의 움직임을 쫓았다.

둘의 눈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혈부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도끼는 무거운 병기다. 한 번 움직이면 그 후에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난다. 더군다나 상대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독객이다.

그의 검이 혈부의 빈틈을 노릴 수도 있다.

시간이 지체되자 독객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검이 혈부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혈부의 커다란 주먹이 검날을 후려쳤다.

티잉!

검이 옆으로 밀려나는 순간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거대한 도끼가 휘둘러졌다.

쒜엑!

퍼억!

고개를 숙이면서 피해 내는 순간 그대로 옆에 있는 벽이 박살이 나 버렸다.

엄청난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독객은 곁눈질로 박살이 난 벽을 살피고는 이내 검을 고쳐 잡았다.

한 대만 정확하게 맞아도 죽는다. 그토록 강력한 부법(斧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파괴력.

하지만…….

‘내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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