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왕전설-173화 (173/200)

# 173

23화

일악천이 단화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단화초는 각자 쓰이는 곳이 따로 있다.”

붉은색의 꽃잎, 줄기와 잎사귀는 검은색이다.

“꽃잎이 바로 네가 먹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줄기와 잎사귀는 독을 만드는 데 사용되지.”

“그렇군요.”

갈지혁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일악천이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좋아.”

일악천은 단화초의 붉은 꽃잎을 뽑아서 갈지혁의 손에 올려 주었다. 그가 말없이 단화초의 붉은 꽃잎을 바라본다. 마치 피처럼 붉은 꽃잎이 요사스러운 기운을 뿜어댔다.

“지혁아.”

“……?”

일악천이 갈지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걸렸다. 갈지혁을 바라보는 일악천의 눈빛은 안쓰러울 정도로 슬퍼 보였다.

“죽지 마라.”

“…….”

갈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갈지혁이라고 해도 슬쩍 굳어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일악천의 그 한마디에 싹 하고 사라져 버렸다.

힘겹게 내뱉은 일악천의 그 한마디가 갈지혁에게는 그 어떠한 말보다 용기가 되었다.

가부좌를 튼 채로 갈지혁은 눈을 감았다.

갈지혁은 먼저 병을 열었다.

일악천이 손수 만든 약재다. 이것이라면 단화초의 독기를 아주 잠시나마 약하게 만들 수 있었다.

병에 있는 약을 모두 삼킨 갈지혁이 붉은 단화초의 꽃잎을 들어 올렸다.

마치 음식을 먹는 것처럼 그는 꽃잎을 입 안에 넣었다. 동시에 거짓말처럼 단화초의 잎이 입 안에서 녹아 버렸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갈지혁의 몸 안에 있는 모든 내장이 사라졌다. 아니…… 그런 기분에 젖어 버린 것이다.

혓바닥이 사라졌다. 입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타버리는 것 같았다.

“커…….”

갈지혁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일악천이 급히 그의 어깨를 잡고 앞으로 쓰러지지 않게 했다.

“운기해라!”

수라독공을 이야기하는 게다.

갈지혁 또한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애초부터 수라독공을 운기했다. 하지만…… 안 된다. 단화초의 힘은 수라독공으로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때 갈지혁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크악!”

옆에 있던 일악천은 그대로 튕겨 나가 벽에 부딪쳤다. 그 또한 한 사발의 피를 토해 내며 땅으로 나뒹굴었다.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일악천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혁의 몸에서 폭발이 일고 있었다. 그의 살점들이 터져 나갔고, 입에서는 쉬지 않고 피가 꾸역꾸역 쏟아져 나온다.

‘이놈아! 지혁아!’

일악천은 그대로 몸을 날려 갈지혁의 등 뒤로 날아갔다.

위험하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그는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단화초의 위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이대로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다.

갈지혁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이 일악천을 휩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버텨 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꿋꿋하게 참아 냈다.

일악천의 손이 갈지혁의 등에 닿았다.

미친 짓이다. 지금 갈지혁의 몸 자체는 단화초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직접 손을 대다니…….

독기가 일악천에게로 파고들었지만 그는 입을 꽉 깨물었다.

‘난 일수만독이다!’

“크앗!”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독기가 단화초의 독기를 일순 밀어냈다. 동시의 그의 손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와 갈지혁의 몸으로 흡수되어 갔다.

일악천의 입에서도 피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갈지혁의 내공과 일악천의 내공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둘의 힘으로 단화초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갈지혁의 몸 안을 들여다본 일악천은 경악하고야 말았다.

‘이, 이 거대한 건 대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거대한 것이 갈지혁 몸 안에서 그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의 내공이 홀로 밀어내려 애쓰고는 있지만 거의 일방적으로 밀려가는 상황이었다.

일악천은 급히 자신의 내공으로 그 거대한 것을 감쌌다.

일순 일악천은 뒤로 튕겨져 나갈 뻔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방의 공간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죄인들을 가두기 위해 특수 제작된 창살도 마치 엿가락처럼 늘어져 버렸다.

일악천과 갈지혁의 옷도 녹아 버렸다.

이것은 인간의 몸으로 담을 수 있는 독기가 아니다.

‘실수했어. 이건 아니야. 차라리 독만 만드는 것이 나을 뻔했어.’

갈지혁이 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일악천은 눈을 찔끔 감았다.

죽게 할 수는 없다.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갈지혁만은 죽게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버렸던 일악천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던 놈이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놈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다.

일악천은 갈지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단화초의 독과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내공은 밀리면서도 끝까지 단화초의 독을 두드렸다.

일악천은 최후의 선택을 했다.

‘오냐, 해 봐라. 너를 믿어 보마.’

일악천의 양손에 엄청난 내공이 모이기 시작했다. 내공이 흐르기 시작한다.

일악천의 온 혈도를 돌아 갈지혁의 몸 안으로 무형의 기운이 쏟아져 들어간다.

내공을 전수하는 것이다.

일악천의 내공이 그의 손을 타고 갈지혁에게로 들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일악천의 얼굴이 점점 수척해져 갔다. 독에 대항하는 힘도 점점 약해져 갔다.

일정 수준에 이르자 일악천의 몸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퍽!

벽에 머리가 부딪쳤다.

그는 피를 흘리면서 엎어졌다. 일악천은 힘겹게 일어났다. 몸 안에 한 줌의 내공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공을 모두 갈지혁에게 준 것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고비에 선 갈지혁에게 무인의 생명이라는 내공을 모두 전해 줬다.

이제 일악천은 거의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는 장법도 펼칠 수 없고, 경공 같은 것을 쓰기도 힘들어져 버렸다.

일악천은 한 번에 팍 늙어 버린 기분이었다. 눈이 점점 감기고 온몸에 힘이 쑥 하고 빠진다.

그렇지만 버텼다. 갈지혁이 어떻게 되는지 그 모습만은 끝까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설령 지금 이 순간이 끝이라고 해도 눈을 돌리지 않을 게다.

갈지혁이 죽으면 이곳에서 일악천은 같이 죽는다.

내공이 거의 없는 일악천으로서는 폭주하는 단화초의 독기를 버텨 내기 만무하니까 말이다.

모든 것을 주었다. 이제 일악천은 갈지혁을 도울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저 갈지혁을 믿어 주는 것밖에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실상 갈지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처음 단화초가 입에서 녹는 순간부터 머리가 둔기로 맞은 것처럼 휙 하고 돌아 버렸다.

몸 안에서 이는 폭발에 피를 토하고, 몸의 살점들이 찢어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몸을 뒤덮었다.

반쯤 정신을 잃고 쓰러지던 와중에도 갈지혁은 수라독공을 운기했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정신을 잃고 그대로 죽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일악천이 만든 약재는 그 짧은 순간이나마 갈지혁의 운기를 도왔다.

그 덕분에 갈지혁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수라독공을 운기해도 이 지독한 단화초의 독기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포기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익숙한 기운이 갑자기 나타나 단화초의 독기를 감싸 안았다.

또다시 시간을 벌었다.

정신이 나간 와중에도 갈지혁은 그것이 일악천의 내공임을 알았다.

짧았지만 그는 다시금 내공을 움직일 기회를 벌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강하게 두드려도 단화초의 독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일악천의 내공이 아무리 돕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계였다.

그나마 잡고 있던 의식이 끈이 끊어지려고 할 때였다.

‘아랫배가…….’

무엇인가 아랫배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따뜻한 기운이 단전을 휘돌더니 이내 온몸으로 퍼진다. 몸의 구석구석 모든 신경들이 곤두선다. 이토록 자신의 몸이 완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체 무엇이…….

‘아!’

내공이다.

내공이 그의 몸에 충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갑자기 내공이 확 하고 늘어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원래 갈지혁 본인이 지니고 있던 것을 훨씬 웃도는 내공이 몸 안에 생기고 있는 것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황하던 그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가는 한 인물이 있었다.

‘스승님!’

아, 맙소사.

갈지혁의 몸 안에 생기는 새로운 내력은 바로 일악천의 것이었다. 단지 갈지혁의 운기를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기를 모두 뽑아서 전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일악천은 평범한 노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일수만독이라는 별호로 온 중원을 뒤흔들었던 그가 힘조차 제대로 쓰기 어려운 몸이 된다는 소리다.

무공을 익혔던 자가 자신의 내력을 잃었을 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세상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것과 비견될 정도다.

그런데도 일악천은 그러한 무인의 생명을 아낌없이 퍼주고 있는 것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이 괴롭다. 그렇지만 지금 그렇게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살아야 한다.

지금 일악천은 본인의 모든 것을 갈지혁에게 주고 있었다. 이대로 갈지혁이 이겨 내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거야말로 그를 우스꽝스러운 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갈지혁 본연의 내력과 새롭게 충당되는 내력으로 단화초의 독기와 싸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강해진 내력이지만 역시 단화초의 힘은 너무나 강대했다. 갈지혁은 그렇게 반 시진가량을 몸속에 쌓여 가는 단화초의 독기와 싸우기 시작했다.

밀리지는 않지만 이기지도 못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힘이 다한 갈지혁이 단화초의 독기에 집어삼켜지고 말게다.

‘젠장!’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일악천의 내공이 갈지혁의 몸으로 전해지면서 건드린 혈도에서 조그마한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갈지혁이 얼마 전에 중독되었던 단화초의 기운이었다.

비록 미약하기는 했지만 갈지혁은 단리문과 싸운 후 단화초의 독기에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몸에 품었던 그 독기가 일악천이 전수해 준 내공의 자극으로 인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독이라고 하지만 이미 갈지혁의 일부가 된 것이다. 단화초는 특성상 먼저 자리 잡은 것에 힘을 빼앗긴다.

그랬기에 단화초는 언제나 한 송이가 먼저 피고, 그 한 송이가 사라진 후에야 나머지가 동시에 만개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였다. 먼저 몸 안에 자리한 단화초의 기운이 다른 것들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다소 작은 힘이기는 했지만 단화초의 독기가 빠르게 흔들렸다.

가뜩이나 백중세를 유지하던 차에 이러한 조그만 움직임은 갈지혁에게 기회를 줬다.

‘지금이다!’

갈지혁의 내공이 휘몰아치며 단화초의 독기를 갈기갈기 나눠 버리기 시작했다.

독기는 피로 변했다. 점점 갈지혁의 몸에 쌓여져 갔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던 일악천은 갈지혁의 몸에 변화가 생겼음을 눈치챘다.

갈지혁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더니 이내 그의 몸에서 황금색의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갈지혁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한데 이내 피가 흐르던 몸이 점점 멀쩡하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화, 환골탈태?’

아니, 환골탈태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그의 몸이 천천히 회복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천천히 밖으로 마구 쏟아지던 힘들이 점점 갈지혁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주변이 조용했다.

일악천은 그대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죽지 않았다. 갈지혁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광채도 점점 사그라진다.

성공이다.

갈지혁이 단화초의 독을 이겨 낸 것이다.

설마 했거늘 결국은 해냈다.

눈을 감고 앉아 있던 갈지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일순 그의 눈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