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11화
‘스승님께서 저놈은 피하라고 했다.’
갈지혁은 그대로 통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단접이 날갯짓을 하면서 그의 뒤를 쫓는다.
그의 눈에 좀 전에 지나왔던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아까처럼 여유있게 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갈지혁이 잠시 망설일 때였다.
그런 그의 걱정이 단숨에 우습게 되어 버렸다.
사방으로 모든 독을 지닌 생물들이 갈라졌다.
일순 벌어진 일에 당황했지만 곧 왜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취했는지 알아차렸다.
갈지혁의 손에 들린 단화초 때문이었다.
소매 속에 있는 사황과 인면지주가 죽은 듯이 있는 것도 아마 단화초의 무시무시한 독성에 눌려서일 게다.
덕분에 갈지혁은 그대로 경공을 펼칠 수 있었다. 그의 몸이 화살처럼 입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에 질세라 단접은 갈지혁을 쫓아서 날아오고 있었다.
나비처럼 하늘거리면서 날고 있지만 그 날갯짓을 하면서 떨어져 내리는 가루에 독사들과 독충들이 모두 녹아 버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천 마리에 달하는 독충들과 독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왜 일악천이 단접만은 피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아무리 갈지혁이라도 저 정도의 독성을 띤 가루를 그대로 들이킨다면 제대로 거동할 수가 없을 듯했다. 그리고 약해진 틈을 이용해 단화초의 독기가 파고들 것이다.
버틸 수 없다.
‘네 개는 사문(死門), 단 하나만이 생문(生門)이다! 찾아야 해!’
오문진의 특성상 생문은 하나고 사문이 네 개다.
오행이라는 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를 이야기한다. 오행에는 상생과 상극이 있다.
수생목(水生木), 물에서 나무가 난다. 상생이다.
수극화(水克火), 물은 불을 이긴다. 상극이다.
오문진의 생문을 찾기 위해서는 오행의 상생, 상극, 그리고 동서남북과 중앙을 합친 오방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반 시진이 흘렀다. 그리고 아까 돌의 위치는 남동쪽…… 그렇다면?’
갈지혁은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자마자 주변을 쓱 하고 훑었다. 생각해 보니 바깥은 저녁 시간이었거늘 이곳은 밝다.
백색.
금문(金門)!
오행 중 금의 성질을 띤 곳이라면 바로 서쪽을 의미한다. 갈지혁은 뒤쪽에 바짝 쫓아오는 단접을 느끼며 그대로 경공을 펼쳤다.
뒤를 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비가 이토록 빠른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바짝 뒤를 쫓고 있었다.
더군다나 날갯짓을 할 때마다 떨어지는 어마어마한 독분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단화초의 독을 먹고산다는 나비인 단접을 이 오문진 안에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저러한 놈이 세상에 나가게 된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단접이 중원의 하늘을 덮는다면……
끔찍한 일이다.
끔찍하다못해 중원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도 피해 갈 수 없다.
돈이 많아도, 권력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단접의 죽음의 날갯짓에는.
물론 단접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그들의 생명인 단화초가 바로 그것이다.
단접의 독은 단화초가 있어야 가능하다. 잠시는 몰라도 단접의 독은 금방 떨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화초와 떨어진 단접은 숨을 다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오문진 밖으로 저 단접이 나간다면 오지산에 있는 많은 생물들이 목숨을 잃을 게다.
무조건 막아 내야 한다.
갈지혁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가락 끝에 까끌까끌한 무엇인가가 걸렸다.
독으로 상대하기는 버겁다.
상대는 단화초의 독을 먹고산 흉물스러운 놈이다. 독을 뿌린다고 해서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리고 있지만 뒤쫓아 오는 단접의 모습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려진다.
막 도약을 하던 갈지혁은 그대로 뒤로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 끝에 걸렸던 암기 하나가 단접을 노렸다.
쉬익!
막 암기가 단접의 몸을 뚫으려고 할 때였다.
스스스.
암기가 녹아 버렸다.
‘괴물이군…….’
보통의 쇠는 단접의 몸에서 나오는 독분에 채 닿기도 전에 녹아 버리는 듯했다.
정말로 괴물이 있다면 바로 저런 놈일 게다.
갈지혁은 괜한 공격을 퍼붓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단접은 지능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진법 밖으로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갈지혁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서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답은 서쪽에 있다.
서쪽으로 달리면서 갈지혁은 돌을 찾기 시작했다. 위치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오행의 원리를 이해하면 대충이나마 돌이 어디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구잡이로 찾는 게 아니기에 갈지혁은 금세 아까 전 보았던 돌과 같은 모양의 것을 발견했다.
‘찾았다!’
갈지혁은 망설이지 않고 돌을 향해 몸을 날렸다. 뭔가 절박함을 느꼈는지 단접의 날갯짓도 빨라졌다.
그가 돌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돌을 옆으로 밀면서 돌린 갈지혁의 눈에 날개를 활짝 편 단접이 들어왔다. 그리고 단접이 갈지혁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그의 몸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갈지혁은 일순 눈앞이 까맣게 변하는 듯싶더니 주변의 전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날개를 펴고 달려들던 단접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놈도 살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방금 전 그 일들이 거짓말이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 평안했다. 갈지혁은 갑작스럽게 변한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낯설기까지 했다. 단지 몇 걸음 차이였을 뿐인데 이곳과 그곳은 너무나 다르다.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아 있던 갈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단화초가 들려 있었다.
“하, 하하!”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단화초를 구하는 것도 성공이다. 물론 진짜 고비는 지금부터다.
단화초를 구하는 것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몇 갑절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토록 구하려고 했던 단화초가 손에 들려 있다.
아무리 무뚝뚝한 갈지혁이라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기분 좋은 얼굴로 단화초를 바라보던 갈지혁이 고개를 흔든다.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는 절대극독을 먹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을 맛봐야 한다.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이제 갈지혁의 옆에는 일악천도 없다.
이제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소리다.
주변에 적당한 곳을 찾아서 단화초를 섭취하고 운기에 들어설 게다. 성공만 하면 갈지혁의 피는 세상 그 어떠한 것보다 위력적인 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독의 새로운 경지에 들어설 게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경지에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독왕의 경지가 될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운 경지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레는 자신을 보며 갈지혁은 한편으로 우스웠다.
막 그가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걸 받아야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 있던 갈지혁이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뒤가 아니다.
‘위!’
갈지혁은 그대로 뒤로 몸을 던졌다.
쾅!
동시에 매서운 속도로 누군가가 떨어져 내리며 갈지혁이 있던 땅을 후려쳤다.
땅바닥이 움푹 파이더니 그 안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갈지혁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알아차리지 못했어.’
아무리 긴장을 풀고 있었더라도 이토록 가까이 있는 상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건 그만큼 상대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소리였다.
파인 땅에서 걸어나온 자는 사내였다. 그것도 갈지혁과 크게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곱상했고, 웃는 얼굴은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도 같이 해맑았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극도로 긴장했다.
이렇게 상대를 앞에 두고 굳어 버린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피했군요. 단 한 수로 끝내려고 했는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성공했을까요?”
“네놈은 누구냐.”
웃으면서 존대를 내뱉고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더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고 실력을 안으로 숨긴다고 해도 적당히 드러나는 기세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자에게는 그러한 조그마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또 모른다.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아니었다. 기척을 숨기고 다가왔고, 단 일장으로 엄청난 위력을 쏟아 냈다.
“아,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 정도는 해야겠군요. 단리문이라고 합니다.”
“단리문?”
생소하다.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름이다. 대체 왜 이런 자가 이곳에 나타났는지도 의아했다.
목적은 대충 알겠지만…….
“제 이름은 처음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잘 알죠.”
여전히 웃는다.
말투는 마치 오래된 벗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친근하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다.
역겹고 구토가 올라올 것 같다.
놈의 몸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한다. 독 냄새도 난다.
이놈은…… 싸워서는 안 될 상대다.
이 정도로 지독한 시체 썩은 내는 생전 처음이었다.
단리문이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 예상 밖이네요. 당신이 이처럼 강할 줄은 몰았습니다. 그 탓에 여러 번 보낸 제 선물이 망가져 버렸으니까요.”
“선물?”
“무엇보다…… 흑풍을 이길 줄은 몰랐습니다.”
가볍게 내뱉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 한 말까지 생각한다면 대충 답이 나왔다.
갈지혁은 눈앞에 있는 단리문이라는 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설마…….’
갈지혁은 흑풍이라는 말에 문득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확인하듯이 물었다.
“네놈이 그들의 수장이냐?”
“뭐, 그렇지요.”
“단화초를 노리고 온 게 분명하군.”
“당신에게 볼일이 그럼 무엇이겠습니까. 단화초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죽어도 예전에 죽었을걸요.”
단리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갈지혁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다.
만약 단리문이 죽이려고 했다면 갈지혁은 이곳까지 몸 성하게 오지 못했을 게다.
어떠한 자인지는 모르지만 여태까지 벌어졌던 그 모든 일의 흑막이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단리문이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단화초를 주시지요.”
“못 준다.”
“그리 말하실 줄 알았지요. 당신이라는 사람 꽤나 고지식하니까.”
내밀었던 손을 들어 올리며 그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손가락을 휙휙 흔들며 단리문이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갈지혁, 당신에게서 두 가지만 받아가겠습니다.”
“……?”
“단화초, 그리고 당신의 목숨.”
“쉬울 거라고 생각하나?”
“생각하기 나름이겠지요. 어쨌든 그 두 가지를 거두어 가야겠습니다.”
지금 단리문은 상당히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몇 십 년을 기다리던 바로 그날이 지금이었다. 어찌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르릉.
검을 뽑아 들었다.
무당을 능멸하였고, 천하를 뒤집어 버릴 단리문의 검이다.
갈지혁은 단화초를 품속에 넣고 빠르게 수투를 꼈다.
검을 겨눈 채 단리문이 슬쩍슬쩍 움직인다.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단리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갈지혁에게서 빈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단합니다. 어떻게 흑풍을 이겼나 했는데 역시 요행은 아니었나 봅니다. 큭큭, 지운경이 언제나 당신을 죽인다 어쩐다 하기에 겨우 그만한 수준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지운경을 가까이서 본 듯한 말투군.”
“물론. 지운경뿐만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인 지대익도 잘 알지요.”
“독황독립문의 문도인 것이냐?”
“푸하하!”
재미있는 농이라도 들은 것처럼 단리문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그 와중에서도 선공을 펼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