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7화
어린아이들에게도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것이 바로 그 신령석에 관해서다.
절대 손을 대지 말라고,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말이다.
그것은 이 마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이다.
“……갈 생각이군.”
갈지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거늘 야환은 그의 마음을 단숨에 알아챈 듯했다.
갈지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야환은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말릴 이유도 없었고, 설령 그런다고 해도 전혀 들을 자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술시 초에 안내해 주겠다.”
“그래.”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걸어야 하는 갈지혁도, 위험하다고 하는 야환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가량을 말없이 술을 마신 둘은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술시 초라면 시간이 남고도 충분하다.
평소 잠이 없는 갈지혁이지만 오늘만큼은 푹 쉬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화초를 찾으러 가는 길은 여태까지 겪었던 그 어떠한 길보다 위험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일전 사독문에 있을 때 절대극독을 직접 몸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고 온몸의 기혈이 역류했다. 몸속에서 연신 폭발하듯이 충격이 터져 나갔던 그날을 갈지혁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아니, 잊을 수가 없다고 해야 옳을 게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고통이 몸에 남아 버렸다.
단화초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그것 이상 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갈지혁은 눈을 감았다.
술기운도 있고 푹 쉬려는 생각에 억지로 잠을 청하던 갈지혁이 일어났다. 그는 머리를 긁으면서 중얼거렸다.
“잠도 오래 못 자겠군.”
오랫동안 익숙해진 몸은 그에게 긴 잠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독황독립문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사독문에 들어서면서부터 갈지혁에게 하루하루는 치열한 싸움이었다. 단 하루도 맘 놓고 잠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제 마시던 술 항아리가 그대로 있었다. 아직 야환은 일어나지 않고 잠에 빠져 있다.
갈지혁이 조심스럽게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병 하나를 꺼내 든 그는 말없이 그것을 바라봤다. 단화초를 찾기 위해 제작한 혈환액이다.
단화초의 주변에는 수많은 독성을 지닌 벌레와 동물들이 모여 있다. 아무리 갈지혁이 만독불침지체라고는 하지만 쉽사리 보기 힘든 것들이 많다.
더군다나 사방이 독기로 가득한 공간이라 갈지혁이라고 해도 버텨 낸다는 보장이 없다. 그만큼 단화초가 가지는 독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이 혈환액.
갈지혁이 부스럭거리자 야환도 잠에서 깬 모양이다. 그가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벌써 깼나?”
“원래 오래 못 자는 몸이라서.”
“그렇군.”
야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씻고 오지.”
야환은 어제 마신 술이 과했는지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야환은 자신의 창을 놓지 않았다.
방 밖으로 나간 그는 씻기 위해 집 뒤편으로 돌았다.
허리를 굽힌 그가 막 얼굴을 씻기 시작했을 때다.
“야, 야환!”
누군가의 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야환이 고개를 돌렸다.
리족 족장의 아들로 어릴 적부터 야환과 친했던 사내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그였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꽤나 다급해 보였다.
“무슨 일인가.”
“헉헉! 큰일났네, 큰일났어! 웅족 놈들이 화명이를…….”
“뭐? 제대로 말해 봐. 화명이가 어쨌다고?”
“자, 잡혀갔네.”
“뭐얏!”
쾅!
야환이 주먹으로 옆에 있던 바위를 후려쳤다. 그 커다란 바위가 반으로 쩍 갈라졌다.
화명이라면 리족 족장의 딸로 눈앞에 있는 자의 여동생이기도 했다.
야환은 두 눈을 부릅뜨고 급하게 말했다.
“어디냐?”
“뭐, 뭐가 말인가?”
“어디서 납치당했냐고!”
야환의 두 눈에서 살기가 인다. 그러한 그의 기세에 눌렸는지 사내는 손가락으로 급히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그는 급히 말했다.
“웅족의 거처에 끌려간 듯싶으이.”
“이 새끼들…… 죽여 버린다!”
그가 발을 박차면서 웅족의 거처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내가 급히 붙잡으려 했지만 야환의 움직임이 그보다 배 이상은 빨랐다.
“혼자 가면 죽어!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말을 채 끝맺지도 못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동생이다.
친혈육 하나 지켜 주지 못하다니…… 못나도 너무 못났다.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정면 대결을 한다면 리족은 분명 웅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더군다나 야환이 먼저 움직였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웅족의 무리 안에서 홀로 싸운다면 패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 후에 자신들이 몰려가 봤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지만 그래도 물러날 수는 없다.
그가 막 다른 이들을 모으러 가려고 할 때였다.
닫혔던 방문이 열리며 갈지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인의 모습에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최근 야환의 거처에 다른 자가 함께 있다는 것을 상기해 냈다.
“무슨 일이냐.”
자연스러운 하대. 그렇지만 자연스러워서인지, 아니면 너무나 정신이 없어서인지 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내 동생이 웅족에게 납치되었네. 그래서 저 녀석이 혼자 구하겠다고 간 게야.”
“혼자?”
“그러네.”
“어디냐?”
“어디냐니?”
“웅족의 거처가 어디냐고. 아니, 네가 안내해라.”
말을 마친 갈지혁은 방에서 내려와서 걷기 시작했다. 사내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등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갈지혁이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거냐?”
“우, 웅족의 거처에 우리 둘이 가자고?”
“그럼 야환을 죽게 할 셈이냐.”
사내는 갈지혁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용기로 이러는지 모르겠다. 분명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무인인데…… 그리고 야환이 자신보다 강한 자라고 슬쩍 말까지 건네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갈지혁이 웅족 전원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알면서도……
“가자. 그놈이 죽으면 리족도 없어.”
족장의 아들은 리족의 사내들을 끌고 가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그가 급하게 소리쳤다.
“이봐! 당장 젊은 사내들을 모아 웅족의…….”
“됐다.”
족장의 아들이 쳐다보자 갈지혁이 대답했다.
“나 혼자면 충분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시간없으니까 넌 길 안내나 해.”
갈지혁은 슬슬 짜증이 치미는지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그는 슬쩍 옆을 지나가던 사내에게 눈짓을 하더니 갈지혁의 앞에 가서 섰다. 길을 안내해 주려는 모양이다.
“그럼 가겠네!”
말을 마친 그가 신법을 펼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무공을 익혔다는 거다. 비록 갈지혁의 눈으로 보기에는 볼품없다고 해도 말이다.
갈지혁은 앞장서서 달리는 자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야환을 죽게 놔두지는 않을 게다.
신령석의 위치도 위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이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신령석의 존재를 안다.
찾는 거야 어렵지 않을 게다.
다만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신세를 진 이상 그것만큼은 갚아주고 싶은 갈지혁이었다.
야환은 갈지혁에게 쉴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술 한 동이를 풀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싸워야 할 이유로는.
야환은 눈이 해까닥 뒤집혔다.
다른 이도 아닌 화명이에 관련된 일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했기에 친남매 이상으로 깊은 사이가 되어 버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랑하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쑥스러워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리족 최고의 전사라는 야환이지만 그런 방면에서는 숙맥이었던 게다.
웅족은 정벌자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여인을 한 인격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집에 두고 다니는 물건처럼 대한다. 그들이 화명 같은 여인을 잡아갔다면 무슨 짓을 하려고 할지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다.
화명은 리족 최고의 미녀다.
웅족 사내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여인이 아닐 수 없을 게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는 놈은 사지를 찢어 버리겠다!’
평소 냉정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야환이거늘 이 순간만큼은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져 버렸다.
단신으로 웅족의 거처로 뛰어 들어가 그녀를 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알지만……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웅족의 부락이 어디 있는지 야환은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싸움을 벌여 왔던 자들이다.
단번에 웅족의 부락이 잘 보이는 높은 곳에 도달한 야환은 눈을 빛냈다.
단숨에 최단거리로 달려왔다. 화명을 붙잡은 자들 중에 무인이 아닌 자들도 섞여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운이 좋다면 비슷한 시기에 웅족의 부락에 도달했을 게다.
망설일 것도 없다.
‘난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안다. 알면서도 야환은 웅족의 부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모습이 보인다.
‘속전속결(速戰速決)!’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이쪽이다. 상대는 부락 전체이고 이쪽은 야환 단신이다.
야환의 몸이 땅을 박차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비상하는 매처럼 쏘아져 올라간 야환이 손에 들린 창을 그대로 찔러갔다.
비연십팔련(飛燕十八連)!
갈지혁을 구하기 위해 산에서 펼쳤던 바로 그 무공!
문을 지키고 있던 자들은 갑작스러운 야환의 공격에 그대로 온몸을 난자당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야환은 너무나 정직했다. 그는 당당하게 정문 쪽으로 치고 들어갔고, 지금 시간은 늦은 밤도 아니었다.
점심 시간이 다소 지난 정도.
웅족 부락의 모든 이들이 이 안에 있을 게다.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빠르게 벴지만 자신을 본 자들이 너무 많다.
“리족의 야환이다!”
“야환?”
“저 미친놈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야환은 그대로 웅족 부락 안으로 뛰어들었다.
리족의 화명을 잡아갔다면 가장 먼저 그녀를 끌고 갔을 법한 곳은…… 웅족의 우두머리인 우콴의 거처다.
머리는 답을 내렸고, 몸은 그러한 생각에 맞게 움직였다.
이들과 다 싸우다가는 우콴의 거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죽는다.
그는 용천혈에 내공을 집중시키고 쏘아 오르듯이 한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저곳!’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의 눈에 어떠한 집의 모습이 뚜렷하게 들어온다.
더는 망설일 것도 없었다.
그는 창을 들어 그대로 앞으로 내질렀다.
창끝이 맹렬하게 휘돌더니 이내 벽의 일부를 날려 버렸다.
콰콰쾅!
안으로 뒹굴면서 들어간 야환의 눈에 세 명의 모습이 들어왔다. 살이 찐 돼지 같은 모습의 자.
우콴이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호리호리해 보이지만 날카로워 보이는 자가 우콴의 오른팔이라는 모구령이다.
마지막으로 반쯤 찢겨진 옷을 걸치고 있는 여인은…….
“우콴…… 널 죽이고야 말겠다!”
“큭큭, 기막힌 순간에 나타나는군. 막 즐기려고 하는데 흥을 깨버리다니.”
“야, 야환!”
울고 있던 화명은 반항을 하다가 얻어맞았는지 입술이 터져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무공도 모르는 여인이 우악스러운 사내의 손에 연신 두드려 맞고 멀쩡할 수는 없다. 한데 그 와중에도 야환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어떠한 공포 속에서 떨고 있었는지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
“화명아, 기다려라. 곧 구해 주마.”
말을 마친 야환은 창을 수평으로 세웠다. 당장이라도 우콴의 뚱뚱한 배를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