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3화
물론 갈지혁이 점창파의 무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검백도 안다. 그렇지만 어차피 올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객잔 안에 있어도 될 것을 갈지혁은 굳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누가 갈지혁 정도 되는 고수에게 덤빌 것인가.
헛고생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말을 들을 위인이 아니다.
운하연과 풍객은 뭐가 그리도 바쁜지 이 마을에 와서도 이래저래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무엇을 하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일인 듯하다.
갈지혁을 바라보던 진검백은 이내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다섯 명의 무인이다. 삿갓을 쓴 다섯의 무인이 갈지혁의 앞에 섰다. 개중 가장 앞에 있는 자가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이내 빠져나온 손에는 동전 몇 닢이 쥐어져 있었다.
짤그랑.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갈지혁이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의 눈이 앞에 있는 다섯을 쏘아봤다.
“점창에서 왔다.”
“……늦었군.”
그 한 마디와 함께 갈지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섯 무인을 하나씩 살폈다. 그다지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자들이다.
갈지혁이 피식 웃었다.
“너희들은?”
“점창오룡이다.”
“킥, 용?”
사내가 자신 있게 말하자 갈지혁은 바로 비웃음을 흘렸다.
점창파에서 그를 얕본 모양이다. 얕봐도 너무 얕봤다. 점창에서 가장 강한 다섯을 보낸 것도 아니다. 그저 후기지수 중에서 강하다는 다섯 명을 갈지혁에게 보낸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어쨌든 도전을 한 이상 받아주지.”
어렵지 않은 상대들이다.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점창파가 자신을 이 정도로 판단했다면 그에 대한 대답을 해 줘야 한다.
갈지혁은 상대 다섯을 바라봤다. 그중 한 명만 남고 나머지 넷은 뒤로 물러섰다.
“붙어 보자.”
사내는 호쾌한 인상을 지녔다. 몸에 적당한 근육도 붙어 있는 것이 쾌검만이 아니라 무거움도 담은 검을 쓰는 자인 듯하다.
“혼자 덤비겠다고? 다섯이 함께 덤벼야 될 텐데?”
“같잖은 소리!”
그는 고함과 함께 검을 움직였다.
휘리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미 검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눈에 그것이 사일검(射日劍)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검은 빠르고 정확했지만 갈지혁의 눈에 그것은 그저 장난에 불과했다.
이미 사내가 넘어서기에 갈지혁은 너무나 큰 나무가 되어 버렸다.
퍽!
몸을 비트는 듯하더니 주먹이 바로 머리통을 내려쳤다. 독을 쓴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해서 정교한 초식을 펼친 것도 아니다.
그저 가볍게 피해 냈고 일격을 가했다.
사내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급기야는 피를 쏟아 냈다.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아마도 핏줄이 터진 듯하다.
그는 검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점창에서 알아주는 후기지수 중 하나다.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을 게다.
“너무 느려 터졌어. 점창의 검은 이렇게 느린가?”
“이, 이놈이!”
옆에서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던 사내 하나가 자신의 검을 들고 갈지혁의 앞으로 달려나왔다. 그는 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네놈이 이 검을 받고도 그리 말할 수 있는지 보자!”
빛이 터져 나왔다.
갈지혁과 사내 사이의 공간이 일순 빛에 덮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분광십팔수검(分光十八手劍)이다. 사내는 섬전분광(閃電分光)과 분광추영(分光追影)을 연속적으로 펼쳐냈다. 갈지혁과 사내의 사이가 모두 그의 것이 된 듯하다.
쏟아지는 검을 갈지혁은 빠른 발로 대응했다.
그런 갈지혁을 검의 그림자가 뒤쫓았지만 둘의 내공 차이는 상당했다. 검은 연신 허공을 그었고, 이내 갈지혁의 손이 움직였다.
퍼엉!
날아드는 독장을 사내는 검을 세워 막아 냈다. 그렇지만 그 위력은 너무나 컸다.
팔이 떨어질 듯한 고통과 함께 사내의 손목이 비틀렸다.
“크윽!”
사내는 급히 손목을 움켜쥐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듯하다. 아니, 퉁퉁 붓고 있는 손을 보니 뼈가 어떻게 된 듯하다. 이제 오른손은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장법이 이만한 위력이라니…… 할 말이 없다.
갈지혁은 연속적으로 공격을 펼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거뒀다. 갈지혁이 천천히 말했다.
“다 같이 덤비라니까. 너희들과 일일이 손을 나눌 정도로 난 시간이 넉넉지 않거든.”
“웃기지 마라! 겨우 독인에게 우리가 모두 덤빈다면 그건…….”
“알량한 정파의 자부심인가?”
옛날부터 그랬다.
정파인들에게 합공은 모욕적인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얕보는 살수나 독인들에게는 더 더욱 그랬다.
일대일로 그들이 갈지혁을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합공을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섯이 함께 덤볐다고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임에도 말이다.
갈지혁은 독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자들을 상대로 독을 쓸 필요도 없다.
“지겨운데 이만 끝내지.”
“얕보지 마랏!”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다섯이라는 숫자를 모두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일 다경도 되지 않았다. 갈지혁은 무덤덤한 눈으로 그 다섯을 바라봤다. 모두 땅에 쓰러져 신음성을 토해 내고 있다.
그들은 갈지혁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저놈들, 어떻게 할 거야?”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갈지혁은 고개를 들었다.
창문 틈으로 진검백의 얼굴이 빠져나와 있다. 아마 아까부터 구경하고 있었을 게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내가 집을 찾아줄 필요는 없지.”
“그건 그렇지. 이거야 원, 점창파가 사람 볼 줄을 모르는군.”
이미 주변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점창파의 무인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날개 달린 듯이 퍼졌고, 마을에 있던 사람들 중 다수가 구경을 온 것이다. 그렇지만 화끈한 싸움은 보지도 못하고 다섯이라는 숫자가 갈지혁 앞에 그대로 무릎을 꿇는 것만 제대로 보았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듯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에 바로 구경 왔지만 이미 싸움은 끝나 있다. 더군다나 큰 부상을 입을 거라고 생각했던 갈지혁이 너무나 멀쩡하다.
싸움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행색이다.
“기다리기 지치는군.”
“이제 어떻게 할 건데?”
“그쪽에서 오길 기다렸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다음에 또 누가 올지 모르겠어.”
“그 말은?”
“찾아가야겠다. 이쪽에서.”
갈지혁은 직접 점창파로 찾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진검백은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럴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탓이다.
“짐 쌀까?”
“그래. 바로 출발하지.”
사람들은 갈지혁의 말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듣고 있었다.
지금 그가 말했다. 직접 점창으로 가겠다고. 그건 곧 정면으로 점창파에 도전하겠다는 말이 된다. 모두의 관심이 쏠릴 만하다. 아마 이 말은 곧 무림으로 퍼질 게다. 그만큼 요즘 무림은 갈지혁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조용한 무림에서 갈지혁이라는 인물은 눈길을 끌 만한 존재다.
갈지혁은 쓰러져 있는 다섯 무인을 다시금 살핀 후 몸을 돌려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점창은 갈지혁을 얕봤다. 겨우 이런 조무래기 다섯 명이 갈지혁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음을 그쪽에서 몰랐던 모양이다.
이제 알려 주면 된다.
그랬기에 직접 점창파로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시끄러워질 게다. 점창파를 쓰러뜨린다는 건 여태까지의 행동과는 견줄 수 없는 일이었다.
점창파는 구파일방 중 하나니까.
운남성(雲南省) 점창산(點蒼山).
그곳은 사람의 발길이 꽤나 많은 산이다. 점창파가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 무리에 섞일 수도 있었지만 갈지혁은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고 있다.
소문이란 빠르다. 갈지혁이 점창파와 싸우러 간다는 건 이미 사방으로 소문이 났을 게다.
일전에 마을에서 점창파의 무인들과 싸운 적이 있다. 그러곤 진검백과 점창파로 직접 찾아가겠다고 대화를 나눴다. 숨길 생각이 없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소문을 냈다.
갈지혁과 점창파의 싸움은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사방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고, 그 탓에 오히려 점창파를 찾는 자들까지 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싸움으로 쏠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답은 나왔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갈지혁의 승리를 점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것이다. 점창파와 단신으로 싸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물론 갈지혁이 장강수로채와 단신으로 싸워 이겼다는 소문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이다. 그리고 장강수로채라는 수적 집단과 점창파가 같을 리가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재미있을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싸움을 놓칠 수 없는 운곽이 점창파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림사괴의 하나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다. 한동안 무림에서 사라져 죽었다는 말까지 나돌던 운곽이 갈지혁과 점창파의 싸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옆에는 다소 젊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있다.
운곽은 돌 위에 걸터앉아 산 위를 올려다봤다.
꽤 먼 곳이긴 하지만 윤곽 정도는 살필 수 있다.
웅장한 건물. 점창파다. 운곽은 품 안에서 돌멩이 두 개를 꺼냈다. 두 개의 돌멩이를 손에 쥐자 손바닥이 꽉 찬 느낌이다. 그는 그 두 개의 돌멩이를 마치 호두처럼 비비기 시작했다.
껄그럭 하는 소리와 함께 돌이 손바닥 위에서 왔다 갔다 했다.
“점창의 검은…… 자유가 있었지.”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사내가 묻자 운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본다면 빠르다는 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점창의 검에는 커다란 돌멩이가 매달렸어. 잘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겠군.”
“누구한테 거실 겁니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 명이 점창파 자체를 흔드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운곽은 씨익 웃었다.
재미있는 일에는 언제나 내기가 걸린다. 이번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점창에 걸었다지만 그만은 달랐다.
“네놈은 점창에 걸어. 하지만 말이야, 뻔한 내기는 재미가 없지 않아? 누군가가 갈지혁에게도 걸어야 내기가 성립되지 않겠어? 난 놈에게 걸겠다. 이풍이 선택했다는 갈지혁이라는 놈에게.”
“이번 내기에 지시면 확실히 하는 겁니다?”
“걱정 마라! 네놈 돈 떼어먹을 생각 없으니까!”
운곽은 장난스럽게 소리치고는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알고 있다. 이풍과 갈지혁이 어떠한 거래를 했다는 것을. 물론 그 사정까지는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풍이 갈지혁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무슨 일인가 있었다.
알 순 없지만 운곽은 확신했다. 적어도 이풍을 그만큼 잘 아는 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일행은 네 명이다.
원래 같았다면 갈지혁과 진검백 둘만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두 명의 꼬리가 붙어 버렸다. 운하연과 풍객이 그 꼬리다.
갈지혁은 막지 않았다. 그 둘이 따라오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실제로 갈지혁은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그 둘에게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단화초를 포기시키기 위해서는 그 단화초의 다른 의미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운하연이 우려하는 일이 바로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이야기 할 생각이다.
“헉헉! 좀 쉬, 쉬었다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쉬자고 말을 하려던 풍객은 운하연과 눈을 마주하자 입을 다물었다. 이곳에서 가장 내공이 약한 풍객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지쳐 버렸다.
원래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던 그이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걸어 본 적은 없다. 잘 때나 먹을 때를 제하고는 쉬지 않는다. 무슨 동물도 아니고 인간이 이 같은 행동을 한단 말인가.
‘젠장!’
운하연과 눈빛을 마주하자 힘들다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서질 않는다.
그가 지켜야 할 존재가 운하연이다. 물론 어릴 때의 이야기지 지금은 자신보다 운하연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운하연은 풍객에게는 딸 같다.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지켜야 할 자가 지켜야 할 상대보다 먼저 지쳐 헉헉거리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풍객은 숨을 진정시키며 다시금 무거운 발을 움직였다.
운하연이 앞장서서 갈지혁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좀 쉬었다가 가죠.”
“그러지.”
갈지혁 또한 풍객의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쉽사리 승낙했다.
쉬자는 말에 풍객은 그대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엉성한 식사를 한 지 오 일이 지났다.
코앞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점창파가 가까워졌지만 풍객은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운하연이 말을 해 줘서 이렇게 쉴 수 있는 것이지 평소엔 이러지도 못한다.
“흐으, 흐으.”
풍객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챙겨 온 물을 마셨다. 그의 눈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짐승 같아 보였다. 그 먼 거리를 걷고서도 표정들이 멀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