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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88화 (88/200)

# 88

13화

손목뿐만이 아니다. 손목에서부터 어깨까지 온 부위가 욱신거린다. 마치 팔에 있는 뼈가 모두 부서진 듯한 충격이다.

아마 조금만 늦게 손을 뗐어도 정말로 팔에 있는 뼈가 모두 날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구명이 물러나는 순간 후개가 움직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타구봉과 흡사한 몽둥이를 움직였다.

막 손을 움직였던 갈지혁은 가슴을 노리고 날아드는 봉에 가슴을 맞아 버렸다. 다행히 뒤로 물러났기에 위력은 줄였지만 당연스럽게 눈이 후개에게로 돌아갔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번뜩이는 눈을 마주하는 순간 후개 또한 자신의 눈을 빛냈다. 남루한 행색의 둘이다. 그렇지만 그 눈빛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갈지혁은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어리지만 강해.’

자신과 비슷한 연배에서 이만한 실력자는 진검백 이후 처음이다.

개방의 후개라더니 과연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갈지혁은 가슴의 타격을 회복할 여유조차 없었다. 비록 구명이 잠시 숨을 돌린다 하지만 나머지 넷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육결제자 둘의 합공이 시작됐다. 둘은 마치 짜져 있는 춤을 추는 것처럼 근접전을 펼치면서 손과 다리를 움직였다.

손을 막을라치면 다른 쪽에서 발이 날아든다. 방향도 너무 틀리다. 한 손으로 두 번의 공격을 막아 내는 건 힘든 일이다.

팔과 다리를 합치면 도합 여덟 개다. 거기다가 머리통, 팔꿈치, 무릎 등을 합치면 공격할 수 있는 부위는 열 개가 훨씬 넘어선다.

만만한 상대라면 모르지만 이 둘은 완벽하게 호흡이 맞는다. 몇십 년을 맞춰 온 호흡인 듯하다.

갈지혁이 그냥 독인이었다면 벌써 싸움은 끝난 지 오래일 게다.

일악천의 아래에서 무공 또한 절정의 수준 이상으로 익혔기에 지금처럼 맞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공격을 막아 내던 갈지혁의 손이 앞으로 뻗어지더니 뒤로 바로 당겨졌다.

뻗어졌던 주먹이 앞에 있던 걸인의 얼굴을 쳤고 뒤로 빼는 순간 팔꿈치가 가슴을 때렸다.

두 명의 걸인이 양방향으로 쓰러져 버렸다. 갈지혁의 공격에 둘이 넘어지는 순간 걸왕이 움직였다.

어느새 코앞까지 왔던가.

그의 손이 움직였다.

동추수(銅錘手)라는 금나수다. 걸왕의 손이 정확하게 갈지혁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후개가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쪽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손에 엄청난 내력이 집중됐다. 보고 있던 진검백의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 안 돼 저건!’

싸움에 임하고 있던 갈지혁이 후개가 펼치는 무공이 뭔지 모를 리가 없다.

말로만 들었던 무공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 무공이라면 그것이 확실하다.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

갈지혁의 단전에 후개의 손이 닿았다.

갈지혁의 몸이 번쩍 들렸다. 장법이지만 그 위력은 가히 다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만약 걸왕이 몸을 잡고 있지만 않았다면 사오 장은 날아가 처박혔을 게다.

땅에 다시 발이 닿는 순간 갈지혁의 입에서 피가 푸욱 하고 터져 나왔다.

무림에 나온 이후 이만한 고통은 처음이다. 갈지혁은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손은 무릎을 짚었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가 이내 노랗게 변했다. 엄청난 고통이다. 이것이 강룡십팔장인가 하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걸왕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갈지혁의 혈도를 누르려고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갈지혁이 고개를 들으면서 입 안에 고여 있던 피를 뿜어냈다.

걸왕은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 틈을 이용해 갈지혁은 걸왕의 옆에서 벌어졌다.

피를 막아 낸 걸왕은 그제야 갈지혁이 피해 내기 위해 꾀를 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름대로 어렵사리 잡은 갈지혁을 놓쳤지만 걸왕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강룡십팔장을 그대로 받았다. 다리도 완전히 풀린 것이 분명하다. 다리가 묶였다면 승부는 이미 끝난 것이다.

“그만 투항하지그래?”

“……아직 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 몸으로 해도 뭘 하겠다는 거냐. 네놈도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다만…… 그건 네 입장이고 나 또한 해야 될 일이 있다. 널 데리고 가야겠다.”

“쉽지 않을 겁니다.”

갈지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독이다.

독을 써야만 한다. 애초부터 이들과 무공으로 싸워 이길 생각을 한 적도 없다.

절정의 고수 다섯이다. 그런 상대들에게 무공으로 싸운다는 건 미친 짓이다. 더군다나 갈지혁은 검객도, 도객도 아니다. 장법이나 지법 등을 나름대로 깊이 익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다섯을 이길 수 없다.

소매 속에서 검은색 수투가 나왔다. 갈지혁은 묵묵히 수투를 손에 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갈지혁은 손가락 다섯 개를 하나씩 움직였다. 무엇인가 수상함을 느낀 걸왕은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계속해서 타구진을 펼치라는 신호다.

어차피 승부는 결정지어졌다. 다른 무공도 아닌 강룡십팔장이다. 천하에서 그만한 파괴력이 없다고 자부하는 장법이다.

맞고 서 있는 것이 용하다. 그것만으로도 갈지혁이 대단한 고수라는 것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

‘끝난 싸움.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이미 갈지혁은 진법 안에 있다. 이 안에서 갈지혁은 빠져나갈 수 없다. 그나마 발이라도 멀쩡하다면 모를까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걸왕은 타구봉을 들어 올렸다.

싸움을 끝내라는 신호다. 그때 갈지혁의 오른손 약지가 움직였다.

무엇인가 미약하게 흔들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폭음이 터져 나왔다.

쾅!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아무도 그 공격에 휘둘리지 않았다. 뒤로 약간 물러섰을 뿐 진은 깨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잠시간의 빈틈을 갈지혁은 놓치지 않았다.

파파팍!

빠르게 무엇인가가 갈지혁의 소매에서 빠져나와 주변에 틀어박혔다. 이상한 막대기 같은 것이다. 그런데 색깔이 온통 거멓다.

그 이상한 나무토막이 땅에 박힘과 동시에 이상한 냄새가 사방으로 팍 퍼져 나갔다.

살짝 코를 스치는 냄새를 맡는 순간 걸왕의 표정이 사색이 됐다.

걸왕이 소리쳤다.

“온몸의 구멍을 막앗!”

걸왕의 외침에 네 명의 무인은 급히 호흡을 멈췄다. 그렇지만 방비가 느렸던지 오결제자 중 하나가 쓰러졌다.

“컥컥!”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기관을 이용해 독분이 스며들었다. 아무런 것도 하독되지 않았다. 그저 나무토막이 땅에 꼽혔을 뿐이다.

‘저, 저건…….’

걸왕은 들은 적이 있다.

남만에 있는 나무 중 일부는 독기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독황독립문에서는 그런 나무에 독기를 더욱 강하게 해서 암기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갈지혁의 검지가 움직이면서 녹색 지공이 날아들었다. 가만히 서 있던 구명은 급히 손을 휘저었다.

지공은 방향을 틀었지만 방금 전 당했던 공격의 내상도 채 가시기 전에 급히 운기를 해 버리니 속이 뒤틀렸다.

구명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망할 놈!’

걸왕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이대로 더 갈지혁을 설치게 둬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놈은 독인이다. 독을 쓴다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눈을 까뒤집고 누워 있는 개방도를 보니 더 이상의 여유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버렸다. 차라리 자신이 빨리 끝냈다면 소중한 인명을 하나 잃는 일은 없었을 게다.

걸왕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막 몸을 날리려던 후개가 멈칫했다.

“다들 물러서라.”

걸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짧은 한 마디에 개방의 인물들이 모두 뒤로 물러섰다. 심지어 피를 토하고 있던 구명조차 억지로 몸을 뒤로 뺐다.

걸왕은 타구봉을 들어 올리며 숨을 크게 쉬기 시작했다.

호흡이 길다. 주변의 사물들이 일렁거린다. 그의 타구봉 끝이 향하는 곳의 모든 것이 변했다.

바라만 보고 있던 진검백이 마침내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손이 검 손잡이에 가 버렸다.

검 손잡이에 손이 닿았지만 아직도 망설여진다. 지금 이 검을 뽑는다는 건 스승의 이름에까지 욕을 먹게 하는 게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지금 걸왕의 타구봉을 막지 않는다면 사달이 벌어질 게다.

타구봉법을 펼치려고 하는 탓이다.

개를 두드려 팬다는 의미를 닮은 봉법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방주만이 이어오는 개방의 절세무공이다.

타구봉법은 절대 어딘가에 적지 않는다. 오로지 구두로만 전해지는 것이 타구봉법이다.

걸왕은 타구봉을 갈지혁을 향해 천천히 뻗었다.

타구봉법은 막아 낼 수가 없다. 봉타쌍견(棒打雙犬)부터 마지막 초식인 천하무구(天下無狗)까지 모두 36로(路) 봉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초식에 8개의 구결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구봉법 자체가 288개의 초식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실로 놀라운 무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전력을 다할 생각은 아니다. 애초에 갈지혁을 죽이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방의 방주는 멍청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평생 구걸이나 하는 놈이 머리가 좋을 리가 있겠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니다.

개방의 방주들은 천재가 아니면 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구결만으로 전해지는 타구봉법을 익힐 수가 없다. 단 하나의 구결만 틀린다 해도 타구봉법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런 걸왕이다. 비록 갈지혁을 잡으러 오긴 했지만 그에게서 뭔가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다. 이유야 어쨌든 독황독립문의 인물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것만으로도 걸왕은 갈지혁은 잡아야 할 이유가 있다.

개방도의 희생은 분명 화가 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먼저 검을 빼 든 것이 자신 쪽임을 감안한다면 그것을 가지고 갈지혁을 몰아붙일 수는 없다.

‘미안하구나.’

속으로 탄식을 내뱉은 걸왕이 타구봉을 높게 치켜들었다.

봉타쌍견의 초식이 막 펼쳐졌다.

갈지혁은 가만히 서 있는 듯했다. 재빠르게 날아드는 봉타쌍견의 초식. 갈지혁은 손에 내공을 집중하고 타구봉을 마주했다.

펑!

갈지혁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다리를 쓸 수 없으니 손으로 막았다.

당연히 그 충격이 내상으로 돌아오는 건 당연했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타구봉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갈지혁은 바짝 붙은 상태로 손을 휘둘렀다.

녹색으로 물든 손이 걸왕을 후려쳤다.

타구봉을 비틀어 막으며 걸왕은 큰 충격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오산이었다. 타구봉이 꺾이는 듯한 충격과 함께 걸왕이 뒤로 자빠져 버렸다.

뒤로 데굴데굴 구른 걸왕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충격이 걸왕을 당황케 했다. 이 장법이다. 이것에 구명도 당해 저토록 허덕이고 있다.

‘너무 얕봤어.’

다소 늦게 알아 버렸다.

그렇다면 이 정도로 얼굴 붉힐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게다.

“……캬악 퉤!”

걸왕이 침을 뱉었다.

이제는 방심은 없다.

갈지혁을 너무 얕봐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받고야 말았다. 또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할 걸왕이 아니다.

걸왕은 타구봉을 높게 들어 올렸다.

오른손에 들린 타구봉이 기괴한 음성을 토해 내는 듯하다. 더 이상의 방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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