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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69화 (69/200)

# 69

19화

연무장은 당려환의 거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당풍은 당려환이 연무장 중에서도 그곳으로 향하자 대충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당문십독을……!’

분명하다. 지금 당려환은 당문십독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당문십독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곳으로 향할 필요도 없다.

지금 당려환은 진심으로 갈지혁을 상대하려고 하는 게다.

당문십독은 말 그대로 당문이 자랑하는 열 가지의 독이다. 사용 방법이 각기 다르고, 제조 방법도 다르다. 식물성 독, 동물성 독…… 재료 또한 다르고 하독 방법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열 가지 독 모두 당하는 순간 죽는 절대극독이라는 것이다.

사천당문에서는 딱히 당문십독을 선보이지 않는다. 무림에 경계심만 불러일으킬 뿐이기도 하고 너무나 잔인한 탓이다. 괜히 그런 것을 보였다가는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정파 무림의 먹잇감이 될 게 분명하다.

연무장에 다다르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무인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당려환을 본 탓이다.

당려환은 수문장에게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물러서라는 신호다. 처음 보는 갈지혁과 진검백에 의문이 들 만도 하련만 당려환의 가벼운 행동 하나에 그는 군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

당려환이 안으로 들어서자 셋 또한 연무장 안으로 몸을 들여 넣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갈지혁이 말했다.

“흑석(黑石)?”

“아는 모양이군.”

갈지혁은 단박에 이 검은색 돌들이 독에 내성을 지니고 있는 흑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려환은 갈지혁의 눈썰미에 내심 감탄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당려환은 걸치고 있던 장포를 옆에 집어던졌다.

아직 손 한 번 겨루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으로 갈지혁은 대단한 고수다. 하지만 소문을 믿지는 않는다. 소문이라는 것은 커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직감이라는 게 있다. 흑석의 색깔이 특이하긴 하지만 검은색 돌이 그거 하나뿐인 건 아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맞췄다는 건 그만큼 독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소리다.

“사문은?”

“이긴다면 가르쳐 드리죠.”

“큭큭, 그 말 잊지 말거라.”

당려환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음울하면서도 뭔가 모르게 소름 끼치는 기운이다.

슉!

가만히 서서 호흡을 고르던 당려환의 몸이 갑작스럽게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간단한 주먹질에 불과했지만 빠르고 정확했다. 갈지혁은 뒤로 물러서면서 그 공격을 피해 냈다.

순간 당려환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폭우이화침(暴雨梨花針)!”

파파팍!

그의 손에 통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나 싶더니 바로 안에서 날카로운 침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갈지혁은 다리를 들어 올려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쿠웅!

땅을 이루고 있던 돌들이 솟아오르며 갈지혁은 그대로 몸을 숙였다.

탱탱!

돌들은 날아오는 침들을 막아 냈다. 잠시 당려환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갈지혁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소매 속에서 강한 바람과 함께 녹색 가루가 흘러 나왔다.

당려환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소매를 마구 흔들었다. 날아오던 독분이 미칠 듯이 솟구치더니 이내 땅으로 가라앉았다.

당려환은 부서져 버린 땅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돈 꽤나 깨지겠군.”

갈지혁은 그저 당려환을 바라만 봤다. 몇 번 손을 겨루지 않았지만 직감할 수 있다. 이자는 강하다. 그것도 단순히 강하다고만 판단하기가 뭐 할 정도로.

‘강해. 내가 무림에 나와 만난 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여태까지 무림에서 이름났다고 하는 자들과 수없이 싸웠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맥없이 무너졌다.

그런데 지금 앞에 있는 당려환은 그런 상대가 아니다.

젊지만 강하고, 무엇보다 독에 대해서 잘 안다.

폭우이화침이라는 것,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실로 위협적인 무기가 아닐 수 없다.

무림의 많은 고수들이 달려들어도 폭우이화침 하나에 그들이 모두 몰살당할 수도 있다. 폭우이화침은 웬만한 고수의 호신강기쯤은 우습게 뚫어 버린다.

과연 사천당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직 당문십독의 하나도 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과연 무림에서 명맥을 이어 온 것이 이해가 간다.

갈지혁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제대로 싸워야 한다. 여태까지처럼 만만하게 여겼다가는 패하게 될 게다.

갈지혁이 수라독공을 운기하자 당려환은 놀랍다는 듯이 감탄성을 내뱉었다. 갈지혁의 주변에 모이기 시작한 녹색 기류가 어떠한 것인지 잘 아는 탓이다.

“호오…… 재미난 무공을 익혔군.”

아마 쉽사리 다가갈 수도 없을 게다.

대단한 무공인 것 같지만 당려환은 웃었다. 강해야 싸울 맛도 나는 법 아닌가.

기대를 했던 만큼 갈지혁이 채워주지 못하면 곤란하다.

“그래, 싸움은 무릇 이렇게 재미가 있어야지.”

그가 웃었다.

절대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얼굴 가득 묻어난다.

그것이 몇백 년을 이어온 사천당문의 자존심이다. 바로 당려환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금의 사천당문인 셈이다.

수라독공을 보면서 당려환은 갈지혁에 대해 몇 가지 파악했다. 아마 독에 대한 내성이 상상을 불허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 같은 무공을 운기할 수 없다.

도리어 자신이 독에 중독될 수도 있는 탓이다.

‘내성이 강한 놈에게 어쭙지않은 독을 쓰는 건 오히려 낭비. 바로 가야겠군.’

당려환은 바로 당문십독을 전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당려환이 자세를 바꿔 잡자 당풍의 얼굴빛이 변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지금 당려환이 무엇을 하려는지 잘 안다.

‘당문십독이다!’

그 같은 멸시와 압박 속에서도 오늘까지 당문을 버티게 한 저력. 바로 당문십독이 쏟아져 나오려는 것이다.

당문십독 중 몇 가지는 맨손으로 쓸 수 없다. 그만큼 독성이 강한 탓이다.

맨손으로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중독이 되고, 손이 썩어 들어간다.

그랬기에 특별히 제작된 수투를 끼곤 하지만 그것으로도 당문십독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는 없다.

당문십독을 완벽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필요하다.

당문에는 십독(十毒)이 있고, 오병(五兵)이 있다. 열 가지의 독, 그리고 다섯 가지의 병기다. 그 다섯 가지 병기는 모두 다르다. 네 가지는 모두 싸울 때 쓰는 것이지만 유독 하나만은 다르다.

연화칠갑(燕火七甲)이라는 갑주가 바로 그것이다.

가슴을 가리는 흉갑(胸甲), 그리고 손을 감싸안는 검은색 수투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지금 당문의 주인인 당려환의 손에 있다.

그는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항상 흉갑을 차고 수투를 챙긴 채 밖으로 나가곤 했다. 하지만 지금 흉갑은 없다. 그는 수투를 꼈다.

연화칠갑의 수투다.

갈지혁 또한 품속에서 수투 하나를 꺼내서 손에 끼기 시작했다. 웃고 있던 당려환의 얼굴이 변했다.

“그건…….”

그다지 볼품없어 보이는 수투다. 화려하지 않고, 그저 손만 가린 것이 고작인 듯하다. 이런저런 무늬가 박혀 있는 연화칠갑의 수투와는 달리 너무나 투박하다.

그런데…… 같다.

모습은 전혀 다른데…… 모든 게 같다.

독인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전혀 느낄 수 없는 미세한 향기마저도.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

“어디서 그 수투를 구했느냐?”

“……?”

“내 것을 봐라.”

당려환은 연화칠갑의 수투를 들어 올렸다. 갈지혁 또한 그것이 같은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갈지혁은 자신의 묵빛 수투를 슬쩍 만졌다. 독을 완벽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이 수투는 꼭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갈지혁 또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독을 사용해야 한다.

이 수투가 어떤 건지 갈지혁은 잘 안다. 일악천이 손수 만들어준 것이니까.

“연화칠갑의 수투와 네놈의 것이 어떻게 같은지 설명해 보거라.”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제 스승이 만들어준 거니까요.”

“스승이…… 전해 준 것도 아니라 만들어서 줬다고?”

“그렇습니다만.”

“……누구냐?”

“아까 말했잖습니까. 이긴다면 가르쳐 드린다고.”

당려환으로서는 갈지혁을 꺾어야만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연화칠갑의 수투는 당문의 오병의 하나다. 그만큼 대단한 것이라는 소린데 그것은 유일하게 가주에게만 내려오는 것은 수투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만들어 내는 자가 있다고 한다.

당문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

누군지 알아내고야 만다. 만약 알아낸다면…… 당문은 몇십 년 이상을 단숨에 발전하게 된다.

“그 말 허언이 아니길 빌지.”

더 이상 길게 말을 끌 것도 없다. 이미 서로가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다.

갈지혁과 당려환이 크게 다른 점은 바로 암기에 있다. 갈지혁은 암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당문 자체가 암기술로도 유명하기에 당려환은 암기에 능하다.

선제 공격은 당려환의 암기로 다시 시작됐다.

“구환살(九幻殺)!”

파팟!

아홉 개의 얇은 침 같은 것이 갈지혁을 노렸다.

수투 사이사이에 숨겨져 전혀 보이지 않았거늘 갑작스러운 공격인 셈이다.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갈지혁은 간단한 발 움직임만으로 침을 피해 냈다.

애초에 이런 공격으로 갈지혁을 잡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당려환은 준비했던 다음 공격을 펼쳤다.

그의 몸이 어느새 갈지혁에게 바짝 붙었다.

부웅!

그의 주먹이 공기를 갈랐다.

갈지혁이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뒤로 젖힘으로써 피해 내는 순간 당려환의 발이 움직였다. 정확하게 단전을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갈지혁은 또다시 뒤로 피하면서 피해 냈다.

그때 신발 끝이 열리며 작은 칼날이 튀어나왔다.

쉬익!

작은 검날이 뒤로 연신 물러서던 갈지혁의 가슴 부분을 스치고 지나갔다.

옷깃이 베이며 갈지혁의 맨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한 줄기 핏줄기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드러났던 검날이 사라졌다. 당려환의 얼굴에 여유가 가득했다. 막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시종일관 당려환에게로 분위기가 유리하게 흐르는 듯하다.

물론 그건 당려환의 생각이다. 정작 갈지혁은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움은 지금 시작됐다.

아직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고, 그저 가벼운 상처 하나 입었을 뿐이다.

이 정도로 불리하다 어쩐다를 이야기하는 게 더 우스운 일인 게다.

당려환이 가볍게 계속해서 몸을 튕겼다. 언제라도 다가와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다.

가벼운 움직임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게다. 독이라는 걸 쓰는 것만으로도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은 상대다. 하물며 암기까지 수족처럼 다룬다면 더 까다롭다. 갈지혁은 수라독공을 운기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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