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13화
지금 갈지혁이 무슨 의도를 지녔는지 모르지만 둘을 죽이려 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할 게다.
둘은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힘을 거뒀다.
성격이 불같은 적검 먼저 화를 냈다.
“이 개 같은 새끼가!”
적검은 망설임 없이 검을 날렸다. 그렇지만 갈지혁은 옆으로 슬쩍 비켜서면서 피해 냈다. 가만히 서 있던 풍도가 갈지혁이 등을 보이자 그대로 도를 휘둘렀다.
평소 성인군자로 불리는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그만큼 화가 났다는 소리다. 그는 적검과의 대결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차에 이런 방해꾼이 등장하자 화가 난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갈지혁은 수투를 낀 손을 휘둘러 도를 쳐냈다.
그 일수에 적검과 풍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어린 자가 쉽사리 할 만한 대처가 아니다.
몸을 돌린 갈지혁이 수투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적검, 풍도 맞습니까?”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이 싸움에 왜 끼어든 것이냐.”
풍도의 어투가 거칠다. 갈지혁이 씨익 웃었다.
“당신들이 강하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그게 내가 이곳에 선 이유입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놈이 딱 그 꼴이구나. 죽고 싶냐?”
적검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풍도는 화를 억누르지만 적검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보였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고 당신들은 절 이기지 못합니다.”
갈지혁이 수투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 주변에 녹색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수라독공을 운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갈지혁의 주변으로 녹색 파장이 흔들렸다.
무서운 독기가 흘러나왔다. 적검과 풍도는 직감적으로 호흡을 멈췄다. 독기가 몸 안에 파고들 뻔했지만 순간적인 판단으로 최악의 상황은 막아 냈다.
적검은 검을, 풍도는 도를 갈지혁을 향하게끔 했다.
갈지혁을 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갈지혁이 바라던 바다.
망설임 없이 갈지혁은 품안에 있던 독단을 꺼내 던졌다. 하얀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둘은 동시에 안력을 돋우며 갈지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갈지혁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비상했다.
그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무엇인가가 다가온다는 생각에 둘 모두 각자의 병기를 들어 올렸다. 미약한 무엇인가가 검과 도에 닿는다고 느낀 것과 동시에 둘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손목이 저릴 정도의 충격이 그 둘에게 전해진 것이다. 마치 쇠망치에 맞은 듯하다. 둘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작은 단환 같았다. 그 크기는 사람 눈의 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문제는 그런 것에서 이 같은 힘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터지면서 동시에 흰 가루가 뿌옇게 흘러 나왔다. 가루가 어깨에 닿는 순간 적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살이 타 들어간다.
뜨겁다. 차가운 물이라도 있다면 당장이라도 어깨에 뿌리고 싶다.
풍도는 운이 좋았다. 바람을 등졌던 탓에 뒤로 물러서면서 그나마 독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대로 적검은 바람을 마주해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녹아 버렸다.
어깨의 살이 마치 불에 지져진 듯 흉하게 일그러졌다.
간단한 손놀림 한 번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위력이 엄청나다. 갈지혁을 얕보던 둘의 얼굴이 변했다. 그저 빨리 끝내고 다시금 이 기나긴 싸움을 끝내기 위해 합공을 펼친 것이다. 한 명으로는 당해 내지 못할 상대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얕봤다. 그랬기에 당했다.
“이것도…… 독?”
적검이 아는 독은 이런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독을 접한 것이 생전 처음인 탓에 생소한 것이다. 물론 사천당문에도 이 같은 식으로 독을 사용한다. 다만 그들이 정파 무림을 향해 손을 휘두르지 않는 탓에 모르는 것이다.
살이 녹아드는 것을 본 풍검은 도를 다시금 들어 올렸다. 오른손으로 들고 있던 도를 왼손으로 옮겼다. 적검에게 펼치기 위해 몰래 준비했던 좌수도다.
그렇지만 풍도는 그렇게 준비했던 비장의 한 수를 갈지혁에게 펼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차피 적검은 부상을 입었다. 지금 상태에서 싸워 이긴다해서 진정으로 이겼다는 마음이 들 턱이 없다.
비록 적검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갈지혁이 그보다 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풍도는 자신 있게 좌수도의 자세를 취해 보였다.
“직지좌립도법(直指坐笠刀法).”
풍도는 작게 중얼거렸다.
풍도가 왼손으로 도를 들어 올리자 구경하고 있던 무인들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풍도가 오른손잡이라는 것은 이미 무림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그가 왼손으로 도를 들었다. 자신이 없다면 그리 하지 않을 게다. 오른손으로 펼치는 도법보다 강했기에 그는 왼손으로 도를 쥔 것이다.
더욱 강해진 그의 도를 본다는 생각에 무인들은 흥분되는 모양이다.
아무도 이 안에서 갈지혁의 승리를 생각하는 자는 없다. 비록 갈지혁이 섬서를 시끌벅적하게 한 독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의 이름에 무게를 느껴본 적은 없는 탓이다.
직접 갈지혁과 대면했던 칠천룡만이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분명 적검과 풍도 모두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꼭두각시 독이라는 것으로 청우는 완벽하게 제압했던 것을 아직도 그들은 잊지 않는다.
그리고 유일하게 무리 안에서 갈지혁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사내가 있다.
진검백이다.
‘적검과 풍도. 강한 자들이지. 하지만…….’
일반적으로 둘의 패배를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갈지혁을 바라본 진검백은 고개를 저었다.
‘저놈이 진다는 건 말도 안 되지. 더군다나 적검과 풍도의 합공이라면…… 나도 막아 낼 수 있다. 갈지혁 또한 어렵지 않겠지.’
누가 들으면 웃을 게다.
비록 화산파의 매화검수라 하지만 그 둘은 매화검수 보다도 위의 단계로 분류되는 무인이다. 그런 그 둘을 다른 매화검수도 아닌 낙화검 진검백이 그리 판단했다.
그렇지만 결코 허언이 아니다. 진검백은 그 둘과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
모두가 검을 놓았다 생각하지만 오히려 검을 쥐고 있을 때보다 강해졌다.
마음에 검이 있거늘 굳이 손에 쥐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뿐이다.
진검백은 이미 승자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아무리 둘이 강하다 해도 갈지혁보다는 아래다.
갈지혁의 수투 끝에 흰 선이 걸렸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풍도는 망설이지 않았다. 독이라는 것은 요사스러운 수법이다. 분명 위협적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도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윽.
직지좌립도법이라는 이름답게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도가 움직였다.
갈지혁의 손끝에 실처럼 걸린 흰색 줄이 앞으로 쏘아졌다. 갈지혁은 몸을 숙여 날아드는 도기를 피하면서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흰색 선이 포물선을 그리며 도기의 간격 밖으로 벗어나며 풍도의 몸을 감쌌다.
풍도는 도를 땅에 꼽았다. 그 어떠한 날카로운 것도 날라내는 도다. 도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풍도가 내공을 불어넣기 시작한 탓이다. 이렇게 얇은 줄 따위 도에 닿는 순간 잘라져 나갈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예상이 빗나갔다.
도에 닿은 실 같이 얇은 줄은 결코 잘려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몸에 닿은 줄은 풍도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으…….”
그는 자신의 몸을 점점 파고드는 실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실이다. 오히려 탄력이 있다기보다는 흐느적거렸다. 그런데 피부에 닿는 순간 무섭게 살을 파고든다.
풍도는 도를 땅에 박은 채로 손을 급히 움직였다. 손으로 파고드는 하얀 실을 잡아냈지만 멈추지가 않는다. 그가 내공을 손에 집중하고서야 파고들던 실을 간신히 멈추는 것을 성공했다.
남만에는 칠갑지주(七甲蜘蛛)라는 거미가 있다.
무려 일곱 겹의 갑옷 같은 껍데기로 몸을 지키는 거미다. 그 칠갑지주가 내뿜는 거미줄은 특이하다. 바람이 불면 그대로 흔들린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끊어질 듯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에 걸리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해도 빠져 나오지 못한다. 심지어 사람이라고 해도.
검으로도 끊지 못하는 거미줄이지만 독을 이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랬기에 갈지혁은 그 거미줄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칠갑지주의 거미줄을 끊어 내지 못하는 풍도는 그저 땀만 뻘뻘 흘렸다.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해 부상을 치료하던 적검은 그 광경에 입을 쩍 벌려 버렸다.
풍도와 십 년이 넘게 싸워왔다. 그만큼 강했던 상대다. 그런 그가 막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젊은 자에게 장난감처럼 당하고 있다.
‘도대체 뭐야?’
풍도와 달리 적검은 성격이 급하다. 하지만 싸움에 임해서는 차분함도 잃지 않는다.
그런 적검조차도 이 상황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독을 쓰는 자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사천당문과는 싸울 일이 없다. 그 외라면 무림에서 독을 쓰는 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
지금 풍도가 당한 이상한 실만 해도 그렇다. 아마 적검이었다고 해도 실을 베어 버리려고 했을 게다. 풍도의 내공이 담긴 도에 닿고도 끊기지 않는 실이라니…… 적검이었어도 베지 못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하다.
‘어떻게 해야 되지? 나 적검이 겨우 저런 애송이 때문에…….’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구경꾼들의 시끄러운 소란도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탓이다.
귀주성을 휘어잡고 있는 두 명의 무인인 적검과 풍도가, 제대로 무기도 휘두르지 못하고 제압당하고 있다.
채 병기를 움직이기도 전에 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각인을 시키는 것이 애초 갈지혁의 목적이기도 했다.
진짜 독은 무공을 펼치기 전에 승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싸우기 전에 이미 싸울 의사를 꺾을 수 있다는 소리다. 사람들은 지금 독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
그저 얕봤을 게 분명하다. 독이라는 것은 지금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런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러지 않을 게다. 갈지혁을 단 한 번이라도 봤다면…… 결코 그럴 수 없다.
독이란 것은 그 어떠한 것보다 강하다.
손을 꺼내지도 않았음에도 상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독의 위험성을 안다면 말이다.
무림 모두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아무리 강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진정한 독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들은 애초에 손을 꺼내 들지도 못할 게다.
적검은 검을 든 채로 갈지혁의 주변을 돌았다. 어깨가 뭉개졌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최고의 상태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다.
“비겁한 놈…… 독을 써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진짜 네 실력이라고 생각하느냐?”
적검의 말에 갈지혁은 피식 웃으며 수투를 낀 손을 들어 올렸다.
무림에서 만난 무인 중 저런 말을 한 자가 한 둘이 아니다. 모두가 독을 쓴다면 실력이 아닌 요행이라고만 생각한다.
“당신 그릇도 알 만하군.”
“뭐……?”
“아무런 노력도 없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얻은 힘이었다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습니다.”
적검은 검을 든 채로 계속해서 갈지혁의 말을 듣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