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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전설-34화 (34/200)

# 34

9화

말을 마침과 동시의 그의 커다란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그의 발이 정확하게 진검백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진검백은 힐끔 돌아보더니 손을 뻗었다.

날아들던 장백의 발이 옆으로 비틀렸다. 땅에 발이 닿기가 무섭게 장백이 으르렁거렸다.

“죽여 버린다!”

재차 몸을 움직이며 내뻗은 장백의 주먹이 진검백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 장백은 발을 휘둘렀지만 그것도 진검백은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아니, 애초부터 진검백이 장백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고 봐야 옳다.

진검백이 자리를 벌리며 말했다.

“와봐. 어서.”

“미꾸라지 같이 빠져나가긴!”

장백의 손이 미친 듯이 휘둘렸다. 하지만 정작 그 손은 진검백에게 닿지 않았다. 장백은 거리를 벌리는 듯싶더니 다시금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의 발이 진검백을 노렸다.

피식 웃은 진검백이 손을 휘둘렀다.

펑!

검을 뺄 필요도 없었다. 가볍게 휘두른 손이 날아드는 장백의 다리를 비틀었다. 단숨에 장백이 땅에 처박혔다. 땅을 때굴때굴 구른 장백이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이미 땅에 긁혀 얇은 핏줄기가 가득했다.

“싸움 좀 한다 이거지?”

장백은 침을 뱉었다. 입안에서 침과 함께 피도 배어 나온다. 아마도 입안이 터져 버린 듯하다. 진검백의 웃음이 장백을 더욱 화나게 했다.

그는 손에 수투를 꼈다. 가뜩이나 위력적인 그의 주먹에 수투까지 합쳐진다면 그 괴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일 게다. 무섭게 달려드는 장백을 향해 진검백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화산파의 절기 중 하나인 복호권(伏虎拳)을 약간 변형시킨 것으로 이름에서처럼 호랑이도 굴복시킬 정도로 강인한 위력을 지녔다.

퍽퍽!

단 두 번의 주먹질이었다. 그 두 번만으로 장백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

아까와는 달리 정확하게 가슴에 틀어박힌 주먹은 장백을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장백은 그대로 게거품을 물고 자리에 철푸덕 하고 쓰러졌다.

진검백이 말없이 주먹을 거두었다.

“쌤통이다 놈!”

그때 옆에 있던 사내가 말했다. 아까 전 장백에게 쥐새끼라는 말을 들었던 좌청이라는 사내다. 그는 통과한 여섯 명 중 하나로 평소 장백에게 당한 게 너무 많아 한이 되었던 자다. 그는 진검백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뭐가 있나. 나에게 덤비기에 손 좀 봐준 것뿐이야. 가자.”

진검백은 갈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갈지혁은 말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

모두가 각자 개인 방을 쓰려고 했지만 진검백은 갈지혁과 같은 방을 쓰겠다고 했다.

갈지혁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사황을 품 안에서 꺼냈다. 사황은 답답했는지 방 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갈지혁에게 진검백이 다가와 말했다.

“유명한 도둑이 경고장이라도 보낸 모양이야. 그렇지 않으면 이만큼 철통같은 경비를 할 이유는 없지.”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이곳에 있는 수많은 자들의 눈을 받았다. 그들 모두 보초를 서고 있는 자일 게다. 그만큼 중요한 물건이고, 상대도 녹록지 않다는 말이다.

“보수는 쓸 만하니까. 그거면 된 거야. 너와 내가 받을 돈이면 필요한 것을 사고도 남으니까.”

“어, 어이 왜 내 돈까지 그래? 그건 엄연히 내 돈이라고.”

“내 집에 얹혀살면서 말도 많군.”

“말은 바로 하자. 그게 어떻게 네 집이냐. 동굴이지.”

진검백의 말에 갈지혁은 별반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갈지혁은 진검백에게 돈을 받고야 말 듯한 모습이다.

“젠장, 잠이나 자야지.”

진검백은 말을 마치고 침상에 몸을 던졌다.

해가 지고 느지막한 어둠이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거부 문우령의 거처는 오히려 바빠졌다. 진검백은 귀찮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는 대충 허리에 검을 찬 채로 이리저리 고개를 휘휘 젓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 갈지혁이 묵묵히 선 채로 앞을 응시했다.

장백은 진검백과 먼 곳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코뼈가 내려앉았는지 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진검백을 노려보고 있는 그였지만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비록 제대로 무공을 익힌 고수는 아니라고 해도 장백 또한 기본적인 건 아는 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근방에서 떵떵거리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아까 와도 같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리라.

그리고 그런 오묘한 변화를 문진학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장백의 조용해진 모습과 상처를 보고 대충 상황을 알았다. 문진학은 모르는 척 헛기침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흠흠! 자네들이 맡을 부분을 정해 주겠네.”

문진학이 지도를 펴자 여섯 명의 무인이 다가와서 그것을 살폈다. 지도에 이곳의 지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문진학은 다른 곳은 별 신경도 안 쓰면서 몇 군데를 짚었다.

“자네들이 맡을 곳은 이 부분이네. 알아서들 조를 짜서 이쪽을 지켜 주게.”

모두가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 딱히 이야기를 꺼내는 자가 없었다. 문진학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안은 침묵이 감돌았다. 선뜻 누구 하나 나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때 갈지혁이 말없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검백이 갈지혁에게 따라붙었다.

“어딜 가?”

“가라는 곳에 가 있어야지.”

갈지혁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자들도 엉겁결에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진검백은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여섯 명의 무인들은 목적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대충들 찢어지기 시작했다.

갈지혁의 옆에는 진검백이 붙은 채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기다리는 건 내 적성에 안 맞는데…….”

“네가 잘하는 게 뭔데?”

“아직도 몰라?”

“언제나 자는 것밖에 못 봐서 말이지.”

갈지혁의 말에 진검백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다시금 긁적였다.

진검백은 옆에 있는 벽에 몸을 기댔다. 정말로 이렇게 기다리는 건 진검백에게 맞지 않는다. 차라리 누군가를 찾아내라는 거라면 진검백은 신이 날지도 모른다.

그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살폈다.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커다란 건물의 남쪽이다. 언뜻 보기에는 누군가가 머물 거처 같아 보이지만 아마도 이 안에 그 귀중한 물건이 있으리라.

“뭘까? 갑자기 궁금한데.”

진검백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갈지혁에게 그것은 전혀 신경 쓸거리가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거부 문우령…….”

진검백은 중얼거렸다. 그에 대해 궁금증이라도 치민 듯한 모습이다.

지키라는 기일은 사 일. 그 기간만 지켜내면 일은 끝이다. 갈지혁은 앞에 있는 자들을 하나씩 살폈다. 완전히 기가 죽어 버린 장백, 그런 그에게 궁지에 몰렸던 좌청, 그리고 발이 빠른 사내. 나머지 셋은 딱히 달라 보이는 것도 없다.

그때 좌청이 스리슬쩍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들 오셨습니까?”

그의 물음에 진검백이 대답했다.

“산에서.”

“예? 산에서요? 혹시 녹림도?”

“큭! 어디서 그런 산 도둑놈들과 나를.”

진검백의 말에 좌청은 찔끔한 모습이다. 그는 근방에서는 꽤 알아주는 고수다. 하지만 그것도 이 근방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로 그는 장백만 만나도 굽히고 들어가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장백을 가볍게 날려 버린 진검백. 상대가 될 턱이 없다.

“그런데 말을 건 이유가 뭐냐.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아이고! 단박에 알아내셨군요. 사실은…….”

좌청은 장백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 부근의 일부를 휘어잡고 있는데 좀 도와주셨으면 하고……. 저와 대치해 있는 자들을 밀어내는 것은 조금만 도와주시면 보수는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진검백이 고개를 돌려 갈지혁을 바라봤다. 갈지혁 또한 좌청이 다가온 순간부터 그를 예의주시하던 중이었다. 대답을 바라는 듯한 진검백을 보면서 갈지혁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이면 돈은 충분해.”

“못 해 주겠다. 저 친구가 저리 말하니.”

좌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곧 보수를 노린다는 것이 된다. 그랬기에 많은 돈을 가지고 어떻게 넘어오게 하려고 했는데 갈지혁이 초를 쳐 버린 것이다.

“어서 가 봐.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좌청은 고개를 꾸벅하면서 물러서긴 했지만 얼굴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마음 같아선 혼쭐을 내주고 싶지만 상대가 녹록지 않다. 갈지혁의 실력을 보지는 못했지만 끼리끼리 모인다 했다. 진검백을 보면 갈지혁의 수준도 어느 정도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진검백은 좌청을 보내고 갈지혁을 바라봤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벽에 기댄 채로 허공을 응시하는 갈지혁의 눈은 분명히 보인다.

다소 이색적인 빛을 띠고 있는 눈. 눈을 보면 사람을 안다. 갈지혁의 눈을 보면 순간적으로 많은 것이 쏟아져 나온다. 꿈을 지니고 있는 탓일까? 가려진 머리카락 사이로 스치듯 검상이 지나갔다.

‘사연이 많겠지.’

딱히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다. 갈지혁은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문이 어딘지도 모르고 어느 지방 출신인지도 들은 적이 없다. 잘은 모르지만 분명 많은 일을 겪고 이곳에 서 있는 걸 게다. 그랬기에 저토록 가서는 안 될 길을 고집하는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은 없다. 그것은 갈지혁이 지고 걸어야 할 몫이다. 진검백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비록 같이 있지만 둘은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자리에서 주변을 지키던 도중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모두의 눈이 멀리서 다가오는 무리에게로 향했다. 선두에는 꽤나 단련된 듯한 사내와 문진학이 있었다.

대략 이십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그 무리는 창고 근처로 다가왔다. 맨 앞에 있던 사내가 다리를 멈추고 말했다.

“수고들 많군.”

정확한 나이를 판별하기 어려운 외모다. 척 보기에는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데 희끗희끗한 머리는 그를 오십 대로 보이게끔 했다.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자 사내가 말했다.

“모르는 것 같으니 말하지. 내가 이곳의 주인인 문우령이네.”

“헛!”

좌청이 소리쳤다.

그는 거부 문우령이라는 자를 보기 흉할 정도로 살이 찐 돼지 같은 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문우령이라는 자는 제대로 무공을 익힌 무인 같아 보였다. 균형 잡인 몸매, 날카로운 눈, 터져 나오는 기세 그 무엇 하나도 얕볼 만한 것이 없다.

좌청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야망이 큰 자다. 겨우 근처의 파락호들이나 끌어 모아 대장 행색을 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는 우선 파락호들의 힘을 모아 신풍이라는 이 마을을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은 필수다. 그리고 그 돈이 가장 많은 자가 바로 문우령이다.

좌청이 돈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할 리가 있겠는가. 그는 문우령의 거처를 한 번 보고자 직접 이렇게 나타났던 것이다.

언젠가 집어삼킬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안에서 본 그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랬기에 좌청이 진검백을 포섭하려고 들었던 것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잘 감시들 해야 하네. 물건을 노리고 달려든 도둑놈을 때려잡기라도 한다면 내 후히 사례함세. 그럼.”

말을 마친 그는 다른 자들과 함께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진검백은 갈지혁을 힐끔 쳐다봤다. 갈지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우령은 고수다. 손을 겨루어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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